오늘도, 예배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어느 날 한 환자가, 갑자기 심장에 이상이 생겨, 응급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의사는 환자에게 “수술은 잘되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환자는 의사에게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덕분에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라고, 자신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그때 의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닙니다. 저 혼자 한 일이 아닙니다. 수술실 간호사, 마취과 의사, 검사실 직원, 혈액을 공급한 사람들, 병실을 관리하는 직원들까지, 모두 함께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눈에 보이는 사람만 기억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의 수고가 있었기에, 이 한 생명이 살아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섬기는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강단에 서서 설교를 하고, 기도를 하는 사람만이,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기도하는 사람, 예배를 준비하는 사람, 청소하는 사람, 성도들을 위로하는 사람, 식사를 준비하는 사람, 헌금을 계수하는 사람 등… 수많은 성도님들의 보이지 않는 헌신으로, 비로소 교회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허락하신 본문 말씀은, 교회에 관한, 매우 중요한 진리를 선포합니다. 그것은, “너 없이는 나도 없다”란 사실입니다. 교회는 결코 혼자 존재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써, 우리는 그 몸을 이루는 하나 하나의 지체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교회의 지체된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온전히 세우기 위해, 과연 어떠한 모습과 자세가 필요하겠습니까?
첫째로,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과, 가치 있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고 있는, 고린도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비교 의식이었습니다. 즉, 어떤 사람은 방언을 하고, 어떤 사람은 예언을 하고, 어떤 사람은 가르치는 은사를 가졌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저마다의 은사들을 자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저 사람보다 더 중요하다”, “나는 더 영적이다”, “나는 교회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다”라는 잘못된 우월의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을 향해,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절대 그럴 수 없다.” 왜냐하면, 한 몸을 이루기 위해서는, 여러 지체들이 동시에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진 몸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얼굴은 잘 보입니다. 손도 보입니다. 발도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심장은 보이지 않습니다. 간도 보이지 않으며, 폐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 중에서 과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만약, 심장이 멈춘다면 얼굴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소용없습니다. 폐가 기능을 멈추면, 손과 발도 움직일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당장 눈에 보인다고, 눈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바로, 보이는 것 뿐만이 아닌, 보이지 않는 많은 것들이, 동시에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하고 중요한 존재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종종 강단에 서는 목사, 대표 기도하는 장로님들, 예배 가운데 찬양을 드리는 성가대원들을 쉽게 기억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늘 우리의 중심을 꿰뚫어 보시는 분으로써, 보이지 않는 사람들 역시, 동일하게 귀히 여기십니다. 바로, 다른 사람들의 눈에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새벽예배에 참석하시는 성도님들,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청소하시는 성도님들, 친교를 위해 수고하시는 성도님들, 조용히 기도와 말씀에 순종함으로 저마다의 자리에서 헌신하는 성도님들 등, 우리 교회는 이 분들의 섬김 없이는, 아름답게 세워질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사도 바울은 24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사….” 하나님은 눈에 드러나는 사람들 보다 오히려, 눈에 드러나지 않고, 사람들이 덜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더 큰 가치를 부여하고 계십니다.
물론, 우리 생각에, 교회 안에는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라고, 얼마든지 생각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착각하지 말아야 할 사실은, 눈에 띄지 않는다고 가치 없는 것이 아니란 사실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섬김을 더 귀하게 여기시며,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기억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를 하나님의 형상이 담긴 귀한 존귀하게 여기며, “당신이 있기에 우리 교회가 든든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어야 함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우리는 서로의 아픔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군대와 같은, 상명하복의 조직이 아닙니다. 혹은, 최고의 이익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기업 역시 아닙니다. 교회는 우리 몸과 같은, 끊을 래야 끊을 수 없는, 생명으로 연결된 유기적 존재들입니다.
우리 몸의 가장 큰 특징은, 서로 연결이 되어 있다라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들은 길을 가다가 돌뿌리나 혹은 단단한 물건에, 발가락을 부딪혀 본 기억이 있으십니까? 발가락 하나만 다쳤는데 온몸이 모두 동시에 반응함을 볼 수 있습니다. 즉, 손이 발을 붙잡습니다. 입에서는 신음 소리가 나옵니다. 눈에서는 눈물이 납니다. 그 이유는 바로, 우리 몸이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사도 바울은 26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가운데 한 성도가 아프면, 함께 아파해야 합니다. 어떤 성도가 슬프면, 함께 울어야 합니다. 어떤 성도가 어려움을 겪으면,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 교회에 이러한 모습이 없다면, 어쩌면 우리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아닌, 그저 하나의 사회적 공동체나 친목 조직에 불과할 것입니다.
솔직히,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사회는, 점점 개인주의적으로 사고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교회 안에서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칩니다. 즉, “나만 잘 믿으면 된다.” “남의 신앙과 다른 이들에게 일어난 일은, 크게 관심 없다.”라는 생각이, 자리 잡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모습은 하나님이 원하시고, 바라시며, 기뻐하시는 교회의 모습이 절대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를 자신의 몸 안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러면서, 서로의 짐을 함께, 때로는 나누어 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국 초기 교회가 그리고 이민 초기 교회가 부흥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서로를 위해 함께 울고, 함께 웃으며, 함께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초기 기독교 공동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누군가 감옥에 갇히면, 그를 비난하지 않고, 오히려 온 교회가 함께 그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누군가 어려움을 당하면, 인과응보라 말하지 않고, 함께 아파했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이들을 보며 크게 놀랐습니다. “저들은 서로 사랑하는구나.”
교회의 가장 큰 능력은, 획기적 프로그램이나 유창한 설교, 혹은 화려고 풍성한 친교가 아닌,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아끼는, 사랑의 마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누군가의 아픔에 무관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변, 힘들어하는 이웃들이나 성도들이 있다면, 먼저 다가가시기 바랍니다. 화려하고 거창한 모양의 건물이나, 수많은 성도들, 그리고 유익한 프로그램이 없어도, 서로 함께 울고, 함께 기도하는 교회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임을 기억하시며, 그리스도의 몸 된 우리는, 서로의 짐을 기쁨과 감사함으로, 늘 함께 나누어 짊어지는, 사랑의 공동체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은사가 자랑이 아닌, 교회를 세우는 선물임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어서, 사도, 선지자, 교사, 능력 행하는 자, 병 고치는 은사 등을 언급합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는, 방언을 매우 높이 평가했습니다. 마치, 방언을 하면 특별한 사람처럼 여겼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은사의 목적을 분명히 선언합니다. 그것은, 자랑하기 위해 받은 것이 아닌, 교회 공동체를 아름답게 세우기 위해, 받은 것이란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집 한 채를 짓기 위해서는, 설계하는 사람도 필요하고, 기초를 놓는 사람도 필요하고, 전기를 설치하는 사람도 필요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단 하나의 같은 일을 한다라면, 집은 결코 완성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교회도 동일합니다. 누군가는 가르치고, 누군가는 섬기고, 누군가는 기도하고, 누군가는 위로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에게, 저마다의 다른 은사들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이 같은 은사를, 하나님이 뜻하신 곳에 올바르게 사용하기 보다, 자랑하는데 몰두해 있음을 발견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사실은, 은사란 내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닌, 모든 것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선물이란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리가 선물로 받은, 저마다의 은사를 사용하여, 교회를 세우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기에, 오늘 본문 마지막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사를 귀한 선물로 여기고 적절히 사용하게 되면,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라는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우리 주변 성도들과 비교하거나 자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작은 은사라도, 귀히 여기며, 충성되이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은사는 나를 높이거나 자랑하는 도구가 아닌, 교회를 세우는 하나님의 선물임을 기억하시며, 이 은사들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3가지 사실을 분명히 가르쳐 줍니다. 첫째는, 눈에 보이지 않아도, 모든 지체는 소중하다라는 사실입니다. 둘째는, 우리는 서로의 아픔과 기쁨을 함께 나누는, 한 몸이란 사실이요, 마지막 셋째는, 하나님이 주신 은사는, 자랑이 아닌 교회를 세우기 위한 선물이란 것입니다.
우리는 혼자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도록 부름 받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한 몸을 이루는 여러 지체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서로를 존중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변 믿음의 백성들을 격려하시기 바랍니다. 서로를 위해, 함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저마다의 은사로, 주님의 교회를 아름답게 세워 나가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우리의 남은 삶을 통해, 이 땅에 아름답게 세워 나가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