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예배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우리는 흔히 우상숭배라고 하면, 나무, 돌, 금속 등으로 조각상이나 형상을 만들고, 그 대상에게 초자연적인 힘이 있다고 믿어, 절하거나 복을 비는 모습이라,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는 우상숭배는, 훨씬 더 깊은 문제입니다. 즉, 우상숭배는 단순히 무언가의 형상을 섬기는 행위가 아닌,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사랑하며, 소중히 붙드는 모든 것을 말씀합니다.
다시 말해, 돈이 하나님보다 더 중요해질 때, 성공이 삶의 목적이 될 때, 사람의 인정이 하나님의 인정보다 더 크게 느껴질 때, 세상의 즐거움이 하나님보다 더 큰 자리를 차지할 때, 등… 우리도 모르는 사이, 우리 마음의 중심은, 하나님에게서 멀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아주 강한 경고를 합니다. 그것은, “우상 숭배를 피하라”라는 말씀입니다.
고린도는 항구와 무역의 중심지로, 여러 지역에서 모여든 우상이 가득한 도시였습니다. 도시 곳곳에는 여러 신들을 섬기는 신전이 있었고, 사람들은 우상 제사와 연관된 문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살아갔습니다. 그러자,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서서히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니까 괜찮다”라고 생각하며, 세상과 타협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이들을 향해 강하게,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주님과 우상을 함께 섬길 수 없다.”
오늘 우리의 시대 역시, 도처에 우상이 넘쳐납니다. 그렇다면, 우리 믿음의 백성들은, 호시 탐탐 우리의 신앙을 위협하는 우상에서 멀리 떠나, 어떻게 주님을 향한 믿음을, 마지막까지 지키며 매순간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첫째로, 우상숭배를 피하라는 경고의 말씀은, 우리를 향한 사랑의 명령임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가장 먼저, 고린도 교회 교인들을 향해, “내 사랑하는 자들아”라고 부릅니다. 이 같은 사실은, 이것이 단순한 위협이나 협박이 아닌, 오히려, 사랑에서 나오는 충고요 경고임을 보여줍니다.
즉, 부모가 자녀에게 “위험하니 절벽에 가까이 가지 마라”라고 말하는 이유는, 미워 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우상숭배를 피하라고 말씀하시는 것도, 우리를 미워 해서가 아닌, 어떻게든 우리를 살리기 위한 사랑의 말씀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용하는, “피하라”는 단어는 매우 강한 표현입니다. 이 단어는, 그냥 조심하라는 정도가 아닙니다. 그 근처에 가까이 가지도 말라는, 머뭇거리지 말라는, 즉시 떠나라는, 강한 명령이 담겨 있는 단어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상은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사이, 우리의 마음을 서서히,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즉, 처음에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다들 이렇게 사는데 뭐.” “신앙은 마음에 있으면 되지.” 그러나 작은 타협이, 결국 우리 마음 전체를 무너뜨립니다.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삼손을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처음, 그는 세상과 아주 작은 타협을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그는 하나님이 주신 모든 힘을 잃어버렸습니다. 솔로몬은 어떻습니까? 처음 그는 지혜로운 왕이었지만, 우상과 타협하다가, 서서히 자신의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은 결코 강한 다짐이나, 자신감으로 지켜지지 않습니다. “나는 괜찮다.” “나는 넘어지지 않는다.” 이런 생각이 가장 위험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사도 바울은, 우상과 맞서지 말고, “피하라”라고 말씀합니다. 다시 말해, 유혹 앞에서 가장 지혜로운 방법은, 싸우는 것이 아닌, 피하고 도망가는 것입니다. 마치, 요셉이 보디발 아내의 유혹 앞에서 도망쳤던 것처럼, 우리 믿음의 백성들은, 어떠한 죄와도 타협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같이, 우상숭배를 피하라는 말씀은, 우리를 억압하는 명령이 아니라, 우리를 살리는 하나님 사랑의 경고임을 분명히 기억하시며, 하나님보다 소중히 여기는 모든 것에서 즉시 떠나, 오늘도 겸손히 주님 곁에 머무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둘째로, 성찬에 참여하여,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성찬 이야기를 강조합니다. 16절 말씀을 보면,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라고 선포합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시고, 행하라 말씀하신 성찬은, 단순한 예식이 아닙니다. 우리 믿음의 백성들은, 이 성찬을 통해,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과 은혜에 참여하게 됩니다. 즉, 성찬을 통해, 우리 모두는, 주님의 피로 죄 사함을 받았고, 주님의 몸으로 새 생명을 얻었으며, 주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었음을, 다시금 깨닫고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성찬은 “나는 예수님께 속한 사람입니다”라는, 우리 믿음의 고백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주님의 상에 참여하는 사람이, 어떻게 우상의 상에도 함께 앉을 수 있느냐?”
당시 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우상의 신전에서 식사하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러면서 이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냥 음식 먹는 것뿐인데, 이것이 무슨 큰 문제냐?” 하지만, 사도 바울은 그것이 단순한 식사가 아닌, 마음 가짐, 바로 참여의 문제라고 강조하여 말씀합니다. 즉, 믿음의 백성들에게 있어, 어디에 참여하느냐는, 곧 누구에게 속해 있느냐의 문제란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솔직히,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서도, 동시에 세상의 가치관을 따라 살아갈 때가 많이 있습니다. 즉, 입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실제 삶에서는, 세상을 더 의지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백성들은, 한 우물에서, 단물과 쓴물이 동시에 나올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결코 두 마음으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도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주님의 성찬은, 오늘 우리 모두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너는 누구에게 속해 있느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은 거룩한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 역시, 주님께 속한 삶이어야 합니다. 예배의 자리뿐 아니라, 일상의 자리에서도, 예수님의 사람 답게 매순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찬에 참여하는 믿음의 백성들은, 단지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이 아닌, 그리스도와 연합한 사람들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소속이 더 이상 세상이 아닌, 우리 구주 예수님이심을 분명히 기억하며, 삶의 모든 자리에서, 주님의 자녀들 답게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마지막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 아닌, 세상의 다른 것을 온전히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19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런즉 내가 무엇을 말하느냐, 우상의 제물은 무엇이며 우상은 무엇이냐?”
사도 바울은 우상이 실제 신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배후에 늘, 하나님을 대적하는, 영적 어둠이 숨어 있다라는 사실입니다. 즉, 우상 숭배가 겉으로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이 같은 행실을 통해,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서서히 멀어지게 만드는, 매우 위험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과거의 시대보다, 우상 숭배가 더 교묘합니다. 돈, 성공, 인기, 쾌락 등과 같은 것으로,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 없이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합니다. 하지만, 결국 세상은, 우리에게 그럴듯한 평안을 잠시 줄 수 있어도, 영원한 하늘의 참된 평안을 결코 주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들 하나님 없이 살아가도록 창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사도 바울은 다시 한번, 21절에서 단호하게 선포합니다.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에 겸하여 참여하지 못하리라.”
우리 믿음의 백성들은 결코 두 주인을 동시에 섬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동시에 세상을 의지하는 삶은, 결국 모래위의 집과 같이, 우리 영혼을 단숨에 무너뜨릴 것입니다. 과거 엘리야 시대 백성들도, 하나님과 바알 사이에서 갈팡 질망 머뭇거렸습니다. 그때 엘리야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하려느냐?”
오늘 하나님도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과연 네 마음의 중심에는, 누가 있느냐?”
우리의 진짜 평안은 세상에 있지 않습니다. 돈도, 명예도, 능력도, 세상의 성공도, 우리 모두를 영원한 평안으로 인도할 수 없습니다. 오직,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영원한 생명과 소망이 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세상을 동시에 붙들고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과감히 세상의 모든 우상들을 주님의 발 앞에 겸손히 내려놓고, 오직 주님만 의지하며 살아가는, 믿음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오늘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그것은 지금 당장, “우상 숭배를 피하라”라는 명령입니다. 신앙은 단지 교회 안에서의, 거룩한 모습이 아닙니다. 진정한 신앙은, 지금 우리의 마음이, 누구를 가장 의지하고, 사랑하며, 신뢰하고 있는지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되어있습니다. 혹시, 우리 마음에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다름아닌, 우상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하나님보다 더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면, 하나님 보다 더 붙드는 것이 있다면, 그것 역시 우리의 잘못된 우상임을, 분명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주님의 거룩한 뜻과 말씀 앞에서, 세상의 모든 헛된 우상들을 겸손히 주님 앞에 내려놓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며 살아가기를 소원합니다. 주님 안에 참된 기쁨이 있고, 참된 자유가 있으며,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오늘도 주님께 속한 자녀들이요, 하나님의 백성들 답게, 주님만을 의지하고 바라보며, 이 믿음의 길을 끝까지 성공적으로 걸어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