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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24 / 토요 새벽 기도회 (마태복음 6:1~15)

오늘도, 예배에 참여신 모든 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우리는 인간들은, 의식적이든 혹은 무의식적이든, 여러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 갑니다.  신앙생활도 예외가 아닙니다.  얼마나 봉사하는지, 얼마나 기도하는지, 얼마나 헌신을 하며 예배에 참여하는지 등, 우리 눈에 보여지는 외적 모습이, 신앙의 기준이 되기 쉽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사람에게 보이는 신앙보다, 하나님께 보이는 신앙을, 더 중요하게 말씀하십니다.  즉, 사람의 칭찬과 박수는 잠시지만, 하나님의 인정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허락하신 마태복음 6장은, 예수님께서 산 위에서, 제자들과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말씀하시고 가르치신, 산상수훈의 중심부로써, 예수님은 여기서 경건의 동기를 정면으로 다루고 계십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보다, 그것을 “왜 하느냐”를 본질적으로, 질문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진정 기뻐하시는 참된 경건의 모습은 무엇이고,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과연 어떠한 자리에서 빛이 나야하는지, 오늘 말씀을 통해 여러분들과 함께 묵상해 보기 원합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보이려는 경건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오늘 본문 시작에서, 예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여기서 ‘의’는, 구제, 기도, 금식과 같은, 종교적 경건 행위를 뜻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행위 자체가 아니라 동기입니다.

 

예수님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구제할 때 나팔을 불며,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의 인정과 칭찬 보다, 당장 사람들로부터 들려오는, 인정과 칭찬을 더 원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외식하는 자”라 부르셨습니다.  즉, 외식이란, 겉과 속이 다른 신앙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향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자기 자신과 주변 사람을 향한 신앙인 것입니다.  우리 역시, 외식하는 신앙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우리의 행위의 크기보다, 늘 우리 마음의 중심과 그 방향을 보고 계시는 분이심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예수님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우리가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비밀리에 수행하라는 지침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말씀의 의도는, 자기 만족, 자기 과시, 자기 의를 철저히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겸손히 따르라는 예수님의 명령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고, 바라시며, 기뻐하시는, 참된 경건은 아무도 몰라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그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아도, 하나님 한 분만으로 충분한 믿음이요, 신앙인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예수님은 마태복음 25장 40절에서 이렇게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아무도 모르게 드린 헌금, 아무도 몰래 한 섬김, 이름 없이 흘린 눈물의 기도를, 하나도 놓치지도 않으시고, 잊지도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오늘도, 우리의 선한 목자 되신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요구와 필요를 아시고, 비록 우리의 기준에 넉넉하지는 않을지라도, 부족함이 없이, 은밀한 중에 보시며, 우리의 삶을 은혜로 채워주고 계십니다.  이 같은 하나님의 변함없으시고, 한량없으신 사랑 속에서, 오직 하나님을 향한 경건의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진실한 기도를 원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향한 경건에 이어, 기도의 문제를 다루십니다.  먼저 예수님은, 회당과 거리에서, 서서 기도하는 사람들을 강하게 질책하십니다.  예수님이 보시기에 이들의 문제는, 기도의 내용이 아니라, 그 기도의 대상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하나님과의 대화라 부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기도는, 하나님과의 진실된 대화가 아닌, 그저 사람들을 향한 자기 자랑의 연설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기도하는 가운데,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지금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까”라는 생각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사람들을 의식하는 순간, 우리의 기도는 힘과 능력을 잃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 앞에서, 말과 혀로만의 기도가 아닌, 혹은 일방적으로 나의 이야만 하고 마치는 기도가 아닌, 성경을 통해, 때로는 침묵 가운데 임재 하셔서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통해, 그 분의 뜻을 알고, 그 분이 이끄시는 대로, 매순간 진실된 모습으로 나아가시기를 기도합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골방은 특정한 장소라기 보다는, 하나님 앞에 겸손히 홀로 서는, 자세와 태도를 의미합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이 말씀하신 기도의 능력은, 골방이란 은밀한 장소가 아닌, 우리 마음이 과연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의 방향에 달려 있음을, 강조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에, 여러 의미 없는 말들을 사용하며, 중언부언한 모습을 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많은 말로 설득해야 하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이미 우리의 모든 필요와 요구를 너무나도 잘 알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에, 기도는 하나님께 나의 정보를 드리는 시간이 아닌,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생각과 뜻을 정확히 알고, 그 분이 원하시는 자리와 방향으로 나아가는 시간, 다시 말해,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거룩한 마음으로 맞추는 시간인 것입니다.

 

때로는, 하나님 앞에서 말보다 침묵이, 눈물보다 신뢰가, 더 깊은 기도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하시며, 하나님이 언제나 내편이 되 달라는 기도의 모습에서 벗어나, 이제는 우리 모두, 어떠한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의 편에 서게 해달라는 기도가, 우리 삶속에서 끊이지 않기를 소원합니다.

 

마지막 셋째로,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기도하는 자녀로 부르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단순히 기도를 비판하지 않으시고, 기도의 모범을 새롭게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주기도문입니다.

 

먼저 주기도문의 시작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로 시작됩니다.  사실, 이 한 문장 안에 복음의 모든 핵심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부모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자녀들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모든 기도는, 종들에게 주어지는 의무와 같은 억압적이고 강압적인 것이 아닌, 하나님의 자녀들이 갖는, 기쁨이요 독특한 특권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특권을 감사로 여기고,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이러한 이야기를 주변에서 듣습니다.  기도를 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잘 알고 있는데, 삶이 너무 바빠, 시간이 없어서 못한다라는 것입니다.

 

존 웨슬리 목사님의 어머니인 수잔나 웨슬리는, 존 웨슬리 목사님을 포함한 17명의 자녀가 있었습니다.  한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한 두 명도 키우기 힘든데…  17명의 자녀가 매일같이 한 집에서 생활하고 있다면, 그 어머니의 삶은 얼마나 바쁘고, 분주했겠습니까?  그렇기에, 수잔나 웨슬리는 기도하고 싶은데, 기도할 수 있는 시간과 장소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고민하다가, 한가지 결심을 하고, 모든 아이들을 불렀습니다.  “애들아, 너희가 엄마에게 달려왔을 때, 엄마가 치마를 뒤집어 쓰고 있으면, 그때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이니, 절대로 방해 해서는 안된다.”  그후, 수잔나 웨슬리는 열심히 집안 살림을 하다가도, 시간이 되면, 그 자리에서 치마를 뒤집어 쓰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면, 그 시끄럽고 부산한 아이들도, 지금은 엄마가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라는 걸 알고, 조용했다고 합니다.

 

정말로, 시간이 없어서 기도를 못한다라는 것이, 과연 하나님 앞에서 정당한 핑계가 될 수 있겠습니까?  누구나, 어디서는, 마음만 먹으면, 우리는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교회에서 만이 아닌, 지금 내가 있는 가정과 일터가, 얼마든지 거룩한 기도의 장소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하시며, 우리 삶의 모든 현장에서, 매순간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경험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주기도문을 보면, 분명한 순서가 있음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뜻, 그리고 그 다음에야, 우리의 필요, 용서, 보호입니다.  이것은, 우리 신앙의 우선 순위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 줍니다.  바로, 참된 기도는, “내 뜻이 이루어지이다”가 아닌, 오직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이다”란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기도 후에, 특별히 용서를 강조하고 계십니다.  바로, 기도는 단순히 우리 입술의 고백에서 끝나지 않고, 우리 삶에서 구체적 실천으로 드러나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즉, 용서하지 않는 마음을 품은 채 드리는 기도는, 하나님 나라의 질서와 맞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예수님은 우리를, 여러 사람들과 세상 앞에서 빛나는 신앙이 아닌, 오직 하나님 앞에서 빛나는 신앙으로 부르고 계십니다.  주변 사람들이 모르는 은밀한 경건, 하나님의 뜻을 향한 진실한 기도, 하나님 나라 백성의 정체성 등, 이 모든 것들이 합해져, 우리는 하나님이 참으로 기뻐하시는 성도의 모습으로 자라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세상은 화려한 신앙을 원하지만, 하나님은 진실한 신앙을 원하십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은밀한 골방으로 초대하십니다.  바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조용히 무릎 꿇는 그 자리에서, 우리의 존재와, 우리가 가진 신앙이, 가장 밝게 빛날 것입니다.  이 사실을 분명히 기억하시며, 사람의 눈과 의식이 아닌,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며, 은밀한 곳에서 하늘의 영광을 드러내는,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되시기를,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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