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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2.7 / 토요 새벽 기도회 (마태복음 11:1~19)

오늘도, 예배에 참여신 모든 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여러분들은 혹시, 거대한 태풍이 지나간 자리를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어떤 나무는 밑동째 뽑혀, 길가에 나뒹굴고 있지만, 어떤 나무는 잎사귀가 좀 떨어지고 가지가 꺾였을 뿐, 여전히 그 자리에 굳건히 서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차이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단순히 외형적 크기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닌, 뿌리의 깊이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용비어천가의 내용을 보면,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으므로, 꽃이 좋게 피고, 열매가 많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즉, 뿌리가 깊은 나무는, 고난의 순간으로 상징되는, 바람이 불 때 오히려 그 진가를 발휘합니다.  바로,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뿌리는 땅속 더 깊은 곳을 파고들고, 나무의 지지력을 강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안할 때는 모두가 좋은 믿음을 가진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 삶의 폭풍, 즉, 예상치 못한 질병, 경제적 위기, 관계의 파탄이라는 강풍이 불어올 때, 우리 신앙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비로소 드러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믿음의 거장이라 불리던 세례 요한이 등장합니다.  그는, 이전에 예수님으로부터,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이보다 큰 이가 없다”라는, 극찬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그의 모습은, 과거 굳건한 신앙의 모습이 아닌, 차디찬 감옥 안에서, 이리 저리 흔들리는 신앙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세례 요한을 향한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 역시 거센 세상의 풍파 앞에서, 우리가 진정 내려야 할 믿음의 뿌리가 무엇인지, 함께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먼저, 오늘 본문 2절과 3절을 보면, 세례 요한은 불의를 지적했다는 이유로, 지금 헤롯의 감옥에 갇혀,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고난의 풍파 앞에서, 세례 요한은 과거 광야에서 힘껏 회개를 외치던 모습은 사라지고, 자신의 제자들을 보내, 예수님께 이 같은 질문을 합니다.  “오실 그 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사실, 이 질문은 겉으로 보기에, 세례 요한의 의심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한걸음 더 깊이 들어가 묵상해 보면, 이 같은 질문은 세례 요한의 불신앙적 모습이 아닌, 오히려 어떻게든 흔들리는 자신의 믿음을, 올바르게 세우고자 하는, 인간의 진실된 씨름이며, 고뇌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세례 요한의 관점에서, 그가 기대했던 메시야의 모습은, ‘손에 키를 들고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으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는’ 심판자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감옥에서 듣게 되는 소문에 의하면,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들과 먹고 마시며, 심판보다는 치유와 긍휼의 사역만을 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우리도 종종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주님, 제가 주를 위해 이렇게 헌신했는데, 왜 내 삶은 언제나 손해를 보고, 주변 사람들의 따가운 눈초리와 핍박으로 인해, 여전히 감옥에 갇혀 있는 것 같습니까?”  “왜 악한 사람들은 저렇게 떵떵거리며 잘 사는데, 믿음 지키려는 우리는 왜 이리 힘들고 고달픕니까?”  “하나님은 정말 살아 계셔서 이 세상을 통치하고 계시는 것이 맞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분명히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물론, 믿음의 사람도 이리 저리 세상의 풍파 앞에서 얼마든지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의심이 찾아오는 것 자체가, 우리 불신앙의 죄는 더더욱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은, 세례 요한은 그 흔들림을 속에서, 실망하거나 좌절하며 세상 속으로 도망치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께 질문을 던지며 매달렸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삶에 흔들리는 순간이 오면,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세상 사람들을 찾거나, 혹은 지금의 환경을 원망하기보다, 우리의 솔직한 질문을 가지고, 주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아무리 세상의 풍파로 흔들려도, 주님의 손을 놓지 않는 것이 우리 신앙을 지키고 유지하는 첫걸음이 된다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풍파로 인해, 방황하고, 갈팡질팡하는 우리의 모습을 긍휼히 바라보시며, 탕자의 아버지와 같은 모습으로, 우리를 간절히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 사실을 분명히 기억하며, 오직 주님의 품만이, 우리 삶의 참된 평안이요 안식처가 됨을 기억하시며, 언제 어디서나, 주님을 손을 붙잡고 나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다음으로,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질문에, 직접적으로 맞다 혹은 틀리다라고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오늘 본문 4절에서 6절 말씀을 통해, 구약 이사야의 예언이 지금 어떻게 성취되고 있는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즉,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이것은 예수님이 능력이 없어, 감옥에 갇힌 세례 요한을 단숨에 구출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하나님의 뜻과 말씀대로, 하나하나 차근차근, 서서히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로, 세례 요한은 불 같은 심판의 순간을 기다렸지만, 하나님은 지금 회개와 용서, 그리고 회복의 시간을, 은혜 가운데 허락하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여기서 ‘실족하다’라는 말은, 덫에 걸려 넘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나의 기대와 하나님의 일하심이 다를 때, 우리는 하나님께 실망혀며 서운함을 느낍니다.  때로는, 이로 인하여 큰 시험에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믿음은, 내가 원하고 바라는 기대가 아닌, 나의 모든 것들을,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순종하며 맞추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내가 원하는 때에,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나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았다고 하여,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거절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고요한 침묵 속에서, 자신의 뜻과 계획을 묵묵히 이루어 가고 계십니다.  이제 믿음의 눈을 들어, 우리를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어두운 곳에서 나무의 뿌리가 서서히 자라나듯,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삶 속에 서서히 구원의 역사를 써 내려가고 계십니다.  심지어, 우리가 감옥 같은 상황 속에 거할찌라도, 여전히 우리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은, 우리를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시는 선하신 목자요 인도자이심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제자들이 떠난 후, 예수님은 그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세례 요한을 변호하십니다.  즉, 세상 사람들은 세례 요한의 믿음이 흔들린다고 비웃었을지 모르지만, 예수님은 그를 향해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가 절대 아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세례 요한은 부드러운 옷을 입고 왕궁에서 편안한 인생을 사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구원 사명의 완수를 위해, 광야를 선택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일시적인 흔들림보다, 그의 인생 전체가 붙들고 있었던, 올바른 방향을 보셨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위로입니까?  주님은 결코 우리의 연약함 때문에,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잠시 의심하고 흔들려도, 우리의 중심이 주님을 향해 올바로 서 있다면, 주님은 세례 요한과 같이, 우리를 “큰 자”라고 인정해 주시며, 불러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지금 우리는 무엇에 흔들리는 삶을 살고 계십니까?  사람의 말입니까, 통장의 잔고입니까, 아니면 미래에 대한 불안입니까?  오늘 본문의 세례 요한처럼, 우리 역시 사명의 자리를 가장 먼저 소중히 여기며 지키시기 바랍니다.  바로, 감옥 안에서도 실망하거나 좌절하 않고 어떻게든 주님께 사람을 보내 질문했던, 그 끈질긴 믿음이, 우리에게도 역시 필요함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예수님은, 장터에서 아이들이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곡을 해도 울지 않는 모습과 같다라고 말씀하시며, 그 당시 사람들을 비판하십니다.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은, 세례 요한이 금욕하며 회개를 외칠 때, “귀신 들렸다”고 비난을 하였고, 예수님이 죄인들과 먹고 마시며 기쁨의 복음을 전할 때, 예수님을 향해 “먹보요 포도주를 즐기는 자”라고 비난했습니다.  바로 지금의 이 세대는,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으면, 무조건 거부하고 비판했던 세대였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도 이와 대단히 유사합니다.  우리가 믿음을 지키려 하면 할 수록, 세상은 우리를 여러 방법으로 조롱합니다. 심지어, “하나님이 계시면, 왜 세상이 이 모양, 이꼴이냐”라며 우리의 믿음을 흔들어 놓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마지막 절인 19절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결국 옳고 그름의 진리는,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드러나게 되어있습니다.  마치 어둠이 빛을 이기지 못하듯,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흔들리지 않고 믿음의 길을 걸어간 사람들은, 반드시 최후에 승리하게 된다라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세상의 반응에 일희일비하는 신앙이 아닌, 혹은, 세상의 장단에 맞춰, 춤추는 인생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리듬에 맞춰 마지막까지 걸어가 승리하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인생의 폭풍은, 한번이 아닌, 예고 없이 수차례 찾아옵니다.  오늘 말씀 속에서, 세례 요한 같은 신앙의 거인도, 감옥이라는 현실 앞에서 여지없이 흔들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흔들릴지언정 주님의 손을 절대로 놓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 신앙이 세상의 풍파 앞에서 흔들리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실은, 그 흔들리는 순간에도, 어떻게든 주님의 손만은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우리의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반석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비바람이 불어올 때, 비로소 나무 뿌리의 깊이를 알 수 있든, 우리 역시, 세상의 고난 속에서, 여전히 우리를 붙들고 계신 주님의 강한 손을 의지하며, 승리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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