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예배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우리 인간들은 가끔씩 이러한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내 환경이 조금만 달랐다면, 더 잘 살 수 있었을 텐데…” “내 상황이 아주 조금만 바뀌었 더라면, 신앙생활도 더 잘할 수 있을 텐데…” “다른 사람들처럼 좋은 조건이 있었다라면, 하나님께 더 크게 쓰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우리는 종종, 지금 현재의 자리보다, 다른 자리를 꿈꿀 때가 있습니다. 지금보다 더 좋은 환경, 더 나은 조건, 더 편안한 삶을 원합니다. 물론, 환경이 바뀌는 것이 때로는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우리들을 향해 분명히 말씀하고 있는 사실은, 신앙의 본질이 환경의 변화에 있는 것이 아닌,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있다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허락하신, 고린도전서의 본문을 보면,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아주 중요한 신앙의 원리를 말씀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너를 부르신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라”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단지 직업이나 신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우리 믿음의 백성들의 삶 전체에 대한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학교에서, 우리가 서 있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가는 것이, 바로 소명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같은 소명의 삶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실천하며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그 자리에서, 매순간 믿음으로 걸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시작인 17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행하라”입니다. 신앙은 단순히 마음속 생각이 아니라, 구체적 삶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그 당시 고린도 교회 성도들 가운데는, 이런 고민이 있었습니다. “나는 지금의 상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환경이 바뀌어야, 더 거룩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의 조건으로는 하나님을 잘 섬기기 어렵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이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먼저 지금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께 순종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 현재 상황을 전혀 모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오히려, 내 형편을 아시고, 내 부족함도 아시고, 내 눈물도 그 누구보다, 심지어 우리 자신 보다, 더 잘 아십니다. 이러한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지금의 자리로 친히 부르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영광의 자리에 섰을 때가 아닌, 오히려 고난과 어려움의 자리에 서 있을 때, 그 때 우리를 만나 주시고 불러 주시는 분인 것입니다.
모세를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만난 장소는, 바로의 화려한 왕궁이 아닌, 초라하고 황량한 광야였습니다.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역시, 편안하고 안전한 장소가 아닌, 들판에서 홀로 외로이 양을 치고 있을 때,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베드로 역시, 밤새 수고했으나, 아무것도 잡지 못한, 그 빈 그물 앞에서,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완벽한 조건을 먼저 만들고, 우리를 부르시는 분이 아닌, 부르신 그 자리에서 우리를 새롭게 빚어 가시는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지금 저와 여러분이 서 있는 자리는 어디입니까? 지친 가정의 자리입니까? 반복되는 직장의 자리입니까? 남몰래 흘리는 눈물의 자리입니까? 아니면, 막연한 기다림의 자리입니까? 바로 오늘 그 자리가,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친히 만나시고, 새롭게 훈련하시는 자리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참신앙은 “언젠가”가 아니라 “오늘” 순종하는 자세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은 결코 환경이 좋아질 때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허락하신 오늘의 자리에서 주님과 함께 걸어갈 때 믿음은 자라갑니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선 자리가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자리임을 믿고, 오늘도 순종의 믿음으로 걸어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둘째로, 우리는 외적인 조건과 환경 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늘 순종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19절에서, 매우 강하게 말씀합니다. “할례 받는 것도 아무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 당시 유대인들은, 외적 할례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복음의 본질을 이렇게 선언합니다. 그것은, “겉모습이 아닌 삶의 순종”이란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외형보다, 늘 그 중심의 동기를 보시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신앙을 외적인 모습과 결과로만 판단합니다. 즉, 교회 직분이 있으면 믿음이 좋은 것처럼 생각합니다. 오래 교회 다니면 신앙이 깊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을 많이 아는 사람들이, 더 거룩하다라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매일의 삶을 세밀히 들여다보십니다. 다시 말해, 말씀 앞에서 순종하는가? 죄를 멀리하려 애쓰는가? 작은 일에도 정직하려 노력하는가? 사랑하려 몸부림치는가?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진짜 믿음의 신앙인 것입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초기, 사울이 등장합니다. 그는 외형적 외모로는 대단히 훌륭한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사건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결국 하나님은 사울을 버리셨습니다.
반면, 사울에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은, 자주 넘어지고, 많은 실수를 했지만, 끝까지 하나님의 뜻과 말씀 앞에서, 회개하며 순종하려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윗이 죄와 허물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성경에서 유일하게 “내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인정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화려한 외적 형식과 모습보다, 순종하는 내적 마음을 찾으십니다. 우리 신앙은, 크고 위대한 일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나, 힘들어도 정직하게 살아가는 것, 미워하는 마음 대신 용서를 선택하는 것, 그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예배의 자리를 지키는 것, 그리고 작은 일에도 수시로 감사하는 것 등이 바로 이러한 것들입니다. 이런 작은 순종들이 모여, 우리의 거룩한 신앙을 세워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의 믿음은, 외적인 조건이나 모습으로 증명되지 않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얼마나 순종하며 살아갔느냐로, 마지막 순간 명확히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도 그리고 앞으로도 아주 작고 사소한 순종의 믿음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세상에 아름답게 드러내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마지막 셋째로, 우리는 사람의 종이 아닌 그리스도의 종으로, 매순간 살아가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22절에서, 종과 자유인에 대하여 이야기를 합니다.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인이요, 또 그와 같이 자유인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이 말씀은 굉장히 놀랍습니다. 왜냐하면, 세상 사람들은 그 사람이 소유한 것들로, 그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가 어디에 속한 사람인지를 통해, 그를 판단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누구에게 속해 있는 사람들입니까?
우리 믿음의 백성들의 정체성은, 현재의 직업이나 환경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해,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요 백성들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23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표준 새번역 성경은 이렇게 번역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값을 치르고 사신 몸입니다. 여러분은 사람의 노예가 되지 마십시오.”
우리가 사는 미국땅에서는 1865년, 노예제와 강제 노동을 금지하는 수정헌법 13조가 비준되며, 법적으로 노예제가 완전히 폐지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과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들여다보면, 우리는 노예 제도 속에 살고 있지는 않지만, 여전히 많은 것의 종이 되어 살아가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즉, 사람들의 시선, 인정받고 싶은 욕구, 비교 의식, 성공에 대한 압박, 세상의 기준 등, 여러 주변 사람들의 평가에 묶이면서,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믿음의 백성들은, 사람과 세상의 종이 아닌,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 역시, 주변 사람들의 인기에 전혀 흔들리지 않으셨습니다. 심지어, 십자가의 길을 걸으실 때, 사람들은 모두 등을 돌렸지만, 예수님은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따르셨습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에게 있어, 참된 자유는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데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의 종은, 세상에 묶인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가장 자유로운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리므로,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보혈의 은혜로, 새롭게 태어난 존재들임을 기억하시며, 세상 사람들보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주님께 속한 자들의 담대함으로, 매순간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오늘 본문은 우리들에게 분명히 말씀합니다. 그것은, 신앙이란 조건을 바꾸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닌, 오직, 하나님이 부르신 그 자리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데서 시작된다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믿음으로 담대히 걸어 가시기 바랍니다. 외적인 모습보다, 내적인 순종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사람과 세상의 종이 아닌, 그리스도의 종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평범한 일상 속에서 크고, 비밀스러운 모습으로, 놀랍게 역사하고 계십니다. 바로,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절망과 눈물의 자리에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그러면서 우리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늘 너와 함께한다.” 그러므로, 오늘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말씀을 분명하고도 명확히 기억하고 붙듦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부르신 자리에서 믿음으로 살아가며, 소명을 따라 매 순간 복된 삶을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