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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6.13 / 토요 새벽 기도회 (고린도전서 15:12~19)

오늘도, 예배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여러분들은, 기독교 신앙의 가장 큰 핵심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십자가입니까?  사랑입니까?  은혜입니까?  물론, 이 모두 중요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주저함 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라 선포합니다.

 

사실, 세상의 무수한 종교들은, 훌륭한 가르침을 남긴 지도자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단순히 위대한 스승의 가르침을, 존중하며 모시거나, 따르는 종교가 아닙니다.  우리는 죽음을 이기고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생생히 믿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 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즉, 헬라 철학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인간의 육체를, 그저 영혼의 감옥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을 얽매고 있는 몸이, 다시 살아난다라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워했습니다.

 

이에, 사도 바울은 매우 강한 논리를 사용합니다.  그것은, “만일 부활이 없다면 어떻게 되는가?”라는, 반어법을 사용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부활이 없는 신앙이 얼마나 허무하고, 무가치하며, 비참한지를 자세히 설명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역시, 부활이 왜 우리의 신앙의 기초가 되어야 하는지, 여러분들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부활이 없다면 복음은 헛된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먼저 고린도 교회가 이미 들었던 복음을, 다시 강하게 상기시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죽으셨지만,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일부 성도들은, “예수님의 부활은 인정하지만, 장차 죽은 자의 부활은 결코 없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대단한 모순이라 지적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부활은, 장차 우리에게 일어날 부활의 첫 사례요,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열매를 맺는 씨앗이 땅에 심겨졌는데, 과연 그 자라난 나무에, 열매가 없을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다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만 부활하고 우리는 부활하지 않는다라는 것은, 마치 하나님의 구원 계획 전체를 부정하는 것과 같은 것이 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15절에서 이렇게 주장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다시 말해, 부활이 없다면 사도들은 모두 거짓말쟁이가 된다라는 것입니다.  바로, 베드로가 거짓말을 했고, 요한이 거짓말을 했으며, 야고보 역시 거짓말 히였고, 사도 바울 자신도, 거짓말쟁이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언하다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채찍을 맞았습니다.  심지어 순교를 당했습니다.  이 세상에, 거짓말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을 사람들이 과연 있겠습니까?  이들이,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언한 이유는, 이들이 실제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훌륭한 스승이었다.”  “좋은 가르침을 남긴 분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는 단지, 세상의 윤리 교육을 담당하는, 하나의 단체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사실을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복음은 좋은 삶을 위한 충고가 아닌, 복음은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셨다라는, 실제 역사적 사건이란 사실입니다.

 

우리 믿음의 백성들에게 부활이 없다면, 우리가 전하는 모든 복음은, 그저 헛된 소식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실제로 살아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는 복음은, 거짓이 아니라, 생명의 힘과 능력이 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모두는, 매순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그 분을 전하는, 생생한 복음의 증인들로 살아가야 함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부활이 없다면,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17절에서 매우 충격적인 선언을 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라는 말씀입니다.

 

여전히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신앙생활을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십자가와 부활을 결코 분리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부활은 십자가의 완성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상에서 마지막으로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후, 만약 예수님이, 무덤에 그대로 남아 계셨다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예수님도 결국 죽음을 이기지 못했다.”  “죄와 사망이 최종적으로 승리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예수님을 죽음에서 다시 살리심으로써, 십자가에서의 승리를 최종적으로 확증하셨습니다.  바로, 부활은, 이 땅에서 우리들에게 들려주신, 예수님의 모든 말씀, 이 땅에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예수님의 모든 행동들이, 하나님의 전적인 뜻이요 계획임을, 공식적으로 승인한 사건인 것입니다.

 

초기 기독교 신자들은, 유대교와 로마 정부로부터, 엄청난 박해를 받았습니다.  즉, 이들은, 자신들의 모든 재산을 빼앗겼습니다.  감옥에도 갇혔습니다.  심지어, 모든 가족들이 한꺼번에 목숨도 잃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절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그들은 죽은 예수를 믿은 것이 아닌, 살아 계신 예수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바로, 부활하신 주님이 지금도 살아 계신다라는 사실이, 죽음 앞에서도 큰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그들의 힘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종종, 세상 속에서 큰 죄책감에 눌릴 때가 있습니다.  실패와 연약함 때문에, 낙심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오늘 우리 모두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의 죄는 용서받았다.”  “사망은 더 이상 너를 지배할 수 없다.”  “예수님이 승리하셨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지녀야 할, 부활의 능력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확신을 가지고, 더 이상, 죄책감이나 두려움이 아닌, 용서와 자유 가운데 살아가야 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셋째로, 부활이 없다면 성도의 삶은 가장 비참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여기서,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믿음의 백성들의 삶의 모습과 자세가, 과연 어떠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합니다.  즉, 왜 성도들은 손해를 감수하는가?  왜냐하면, 성도들은 세상의 가치관과 기준, 그리고 방식대로만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참 믿음의 성도들은, 정직을 선택합니다.  용서를 선택합니다.  섬김을 선택합니다.  때로는, 큰 손해를 보더라도 믿음을 지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그것은, 우리 안에 영원한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세상의 이익과 세상의 욕심들은, 우리 인생의 제일 목표가 아닌, 그저 부차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만약, 부활이 없다면, 만약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믿음을 위해 흘린 눈물도, 희생도, 헌신도, 순교도, 모두 헛된 것이 됩니다.  그러면, 세상 사람들처럼, 자기 이익과 욕심대로 사는 것이, 어쩌면 더 현명한 일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사도 바울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부활이 없다면, 다시 말해, 우리의 인생이 부활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만나지 못했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다”라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에서 살아나셨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눈물도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기도도 헛되지 않으며, 우리의 묵묵한 헌신도, 헛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마음과 정성으로 드리는 예배도, 절대로 헛되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것들, 바로 주님 안에서 행한 모든 수고는, 반드시 주님 앞에서 영원한 열매로 남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소망 안에서, 죽음 너머에 있는 영원한 생명을 기억하고 바라보며, 오늘도 그리고 앞으로도, 믿음으로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을, 오늘 사도 바울은 세 가지 사실을, 우리들에게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부활이 없다면 복음은 헛된 소식이요, 둘째는, 부활이 없다면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으며, 셋째는, 부활이 없다면 우리 믿음의 백성들의 삶은, 가장 비참하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실제로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죄는 용서받았고, 우리의 소망은 살아 있으며, 우리의 수고는 무의미하지 않으며, 우리의 믿음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 속에서도 부활의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바로, 절망보다 크신 주님, 죽음보다 강하신 주님, 오늘도 살아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부활의 증인으로 세상 가운데 담대히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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