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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6.20 / 토요 새벽 기도회 (요나 1:1~10)

오늘도, 예배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피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책임, 하기 싫은 사명, 만나기 싫은 사람, 순종하기 부담스러운 하나님의 말씀 등, 여러 버거운 일들 앞에서, 우리는 종종 뒤로 물러섭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요나도 그랬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선지자였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듣고 순종해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명령이 주어졌을 때,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뜻과 생각을 앞세워, 정반대 방향으로 도망쳤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나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바로, 요나가 도망간다고 해서, 하나님이 그를 포기하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폭풍을 보내시고, 선원들을 사용하시어, 결국 요나를 다시 부르고 계십니다.  다시 말해, 오늘 우리가 믿고 끝까지 의지하는 하나님은, “도망치는 자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찾아오시는 자비로우신 분”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과 말씀 앞에서, 주저하며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보다, 내 뜻과 생각을 앞세우면, 도망하게 됨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니느웨는 앗수르의 수도였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앗수르는 자신의 나라를 몰락시킨, 원수와 같은 나라였습니다.  그렇기에,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즉, 요나는 “왜 하나님은 심판 받아 마땅한, 저들을 살리려고 하시는가?” 라는 생각 속에서 분노하며,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의 생각이, 더 옳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는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니느웨와 정반대 도시인, 다시스로 향하는 배를 탔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실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과 말씀 앞에서, 순종을 방해하는 가장 큰 장애물은, 우리의 무지가 아니란 사실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을 몰라서가 아닙니다.  바로, 가장 큰 적은, 내 생각과 내 판단이, 하나님의 뜻보다 앞서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도 그랬습니다.  사울 왕도 그랬습니다.  베드로도, 예수님을 향해, 십자가의 길을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 모두의 공통점은, 바로 자신의 생각이, 하나님의 뜻보다 앞섰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이런 일을 해야 합니까?”  “왜 벌을 받아야 할 사람들을, 내가 용서해야 합니까?”  “왜 내가 손해를 봐야 합니까?”  “왜 지금 기다려야 합니까?”  솔직히 우리의 이 질문 속에는, 하나님의 뜻보다, 내 생각을 우선하려는 마음이, 강하게 숨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믿음의 백성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신앙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한 후에,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이해되지 않아도, 다 알지 못해도,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분의 뜻과 계획을, 철저히 신뢰하며 순종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자신의 목적지를 모르고 떠났습니다.  모세 역시,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했습니다.  마리아는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계획 앞에서도, 믿음으로 순종했습니다.

 

우리 신앙에 있어서 실패의 시작은, 우리 마음가짐에 달려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뜻보다 내 생각을 앞세우는 순간,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서, 멀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참된 믿음은, 이해보다 순종을 선택하는 것임을 믿으시며, 우리가 다 알지 못해도, 그것이 분명한 하나님의 뜻과 말씀이라면, 전적으로 순종하며 나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둘째로,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치더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는 분이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요나는 배를 타고 다시스로 향했습니다.  아마, 그는 배를 타고, 크게 안도했을 것입니다.  “이제 끝났다.”  “나는 더 이상, 나의 원수들이 있는, 니느웨로 가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큰 바람을 보내셨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큰 바람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폭풍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손길이었습니다.  그러자, 배는 부서질 정도로 흔들렸습니다.  그 배의 선원들은 크게 두려워하며, 각각 자신의 신들에게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모든 사람들이, 이 폭풍우에서 어떻게든 살아 남기 위해 애썼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요나는 어디 있습니까?  그는, 배 밑창에서 깊이 잠들어 있었습니다.

이 모습은, 참으로 아이러니합니다.  위험과 어려움 앞에서, 가장 깨어 있어야 할 선지자가, 배의 가장 안전한 곳에서, 깊이 잠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서 점점 더 멀어질수록, 우리의 영혼이 대단히 둔감해짐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죄는 우리의 양심을 서서히 마비시킵니다.  불순종은, 우리의 영적 감각을 무디게 만듭니다.  그래서, 요나는 폭풍우 속에서도,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이제, 선장이 잠들어 있는 요나에게 내려와, 이렇게 외칩니다.  “일어나 네 하나님께 구하라.”  이 말은, 단순히 잠에서 깨어 나라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제 영적으로 깨어나라는, 외침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를 깨우시기 위해, 우리 삶의 폭풍우을 허락하십니다.  사업의 어려움, 관계의 갈등, 건강의 문제, 인생의 예상치 못한 위기들 등… 그것이 모두 우리 잘못에 대한 심판만은 아닌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사랑의 초청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멸망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오늘도 잠자는 우리 영혼을 어떻게든 깨우고자 하십니다.  바로, 여러 세상의 폭풍우를 통해, 우리의 몸이 곤하고 피곤하지만, 영혼의 평안이 있는, 순종의 자리로 끊임없이 부르고 계신 것입니다.  그 결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이요 백성들의 모습으로, 다시금 돌아오게 하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사실은, 인생의 폭풍우가 우리를 무너뜨리기 위한 고난과 고통이 아닌,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하기 위한, 은혜의 손길이란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대한 인생의 폭풍우 속에서, 불평과 원망을 늘어놓기 보다, 지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귀 기울이며, 우리의 삶과 모습을, 하나님의 뜻과 말씀으로 돌이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마지막 셋째로, 우리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를 끝까지 붙들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당시, 하나님의 뜻을 명확히 알기 위해, 제비를 뽑는 문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제비를 뽑았고, 결국 요나가 이 폭풍우의 원인 제공자임이 드러났습니다.

 

요나는 이 같은 사실 앞에서, 더 이상 자신의 죄를 숨길 수 없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라.”  그런데, 그의 이 같은 고백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의 말과 그의 삶이, 전혀 일치하지 않음을 발견합니다.  다시 말해, 입으로는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말하지만, 그의 행동은 하나님을 피해 도망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요나를 포기하거나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왜 우리 하나님은, 이같이 하셨던 것이겠습니까?  그것은, 요나가 잘 나서가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실패한 선지자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넘어진 성도들 결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지만, 주님은 그를 다시 찾아오셨습니다.  탕자가 아버지를 떠났지만, 아버지는 그를 밤낮으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실패한 제자들을 다시 찾아가 부르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힘이요 능력입니다.  바로, 하나님은 완벽한 사람들을 선택하여 사용하시는 것이 아닌,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회개하는 사람들을, 비로소 인정하며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은혜로, 도망쳤던 요나는 니느웨로 향하게 됩니다.  실패했던 베드로도, 이후, 교회의 기둥이 됩니다.  또한, 예수님의 핍박자였던 사도 바울도, 위대한 예수님의 사도가 됩니다.

 

이 같은 사실은,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그 어떤 실패보다 위대함을 보여줍니다.  바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불순종보다 큼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게 돌아오라.”  “나와 함께 다시 시작하자.”  “내가 너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러하겠다.”  하나님의 은혜는, 오늘 우리가 도망친 자리보다, 더 멀리까지 우리를 찾아오고 계십니다.  이 같은,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를 정죄하기 위함이 아닌, 회복시키기 위해 부르시는 것임을 분명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오늘 말씀을 통해, 세 가지 사실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뜻보다 내 생각을 앞세우면, 도망하게 된다는 것이고, 둘째는, 하나님은 폭풍을 통해서라도 우리를 깨우시며, 마지막 셋째는, 하나님은 끝까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신다라는 것입니다.

 

혹시 지금 우리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피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시,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순종하기보다, 육신의 편안함을 위해, 도망치는 길을 선택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리하여, 영적으로 깊은 잠에 빠져 있지는 않으십니까?

 

하나님은, 이 같은 우리들을 오늘도 부르고 계십니다.  바로, 도망치는 요나를 찾아오셨던 것처럼, 오늘 우리를 친히 찾아오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그 부르심을 외면하지 말고, 그 사랑과 그 은혜의 부르심 앞에서 다시 일어나, 순종의 결단으로 나아가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부활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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