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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7.4 / 토요 새벽 기도회 (시편 109:1~16)

오늘도, 예배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이유 없이, 미움과 차별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특별히, 이민자들에 대한 증오가 증가하는 미국 사회 안에서, 우리는 이 같은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남을 보게 됩니다.   또한, 이민 교회 안에서도, 이 같은 일들이 일어남을 종종 목격합니다.  즉, 진심으로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을 도왔는데, 배신을 당하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을 희생하며 사랑을 베풀었는데, 그 사람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비난과 상처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 인간들은, 두 가지 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합니다.  하나는 분노와 복수의 길이고, 또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기도의 길입니다.

 

오늘 본문의 다윗도, 그런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는 사울에게 쫓길 때도 있었고, 가까운 사람들의 배신도 경험했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아들인 압살롬에게도, 배신당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상황 속에서, 다윗은 하나의 고백을 합니다.  그것은, “나는 기도할 뿐이라”입니다.  이 문장을, 히브리어 원문에서 직역해 보면, “나는 기도다”란 뜻이 됩니다.  즉, 즐거울 때나 혹은 괴로울 때만 기도하는 것이 아닌, 매사에 그의 삶이 기도가 되었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우리 역시, 어떠한 삶을 하나님 앞에서 매순간 살아가야 하는지, 함께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우리는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이러한 고백으로 시작을 합니다.  “내가 찬양하는 하나님이여, 잠잠하지 마옵소서.”  이 같은 고백이 나온 상황을 살펴보면, 다윗 주변의 원수들이 그를 향해, 사방에서 거짓말을 내밷고 있습니다.  그래서, 억울하게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또한, 사랑을 베풀었는데 미움으로 되갚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다윗은 하나님을 향해, “내가 찬양하는 하나님”이라 고백을 합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다윗이, 이 같은 고백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는 상황보다, 언제나 하나님을 먼저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우리는 다윗과 반대의 삶을 살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즉, 문제가 생기면,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생겼습니까?”  “왜 하나님은 침묵만 하고 계십니까?”라고, 먼저 묻게 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 받은 이전의 모든 은혜와 사랑을 잊어버리고, 그저 당장 자신 앞에 놓여진 여러 일들로 인하여, 여러 불만과 불평들을 늘어 놓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다윗의 모습을 통해 분명히 기억해야 할 사실은, 참된 믿음이란, 상황을 보는 것이 아닌, 그 상황 뒤에 여전히 머물고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욥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재산을 잃었습니다.  사랑하는 자녀들도 잃었습니다.  건강 또한 잃었습니다.  심지어, 이러한 일들로 인해, 주변 친구들의 위로가 아닌, 자신의 죄를 회개하라는, 강한 비난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같이 고백합니다.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송은, 우리의 모든 문제가 말끔이 해결된 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여러 현실적 문제 속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이요 참 인도자 되심을 믿고, 고백하는 찬양이 되야 하는 것입니다.

 

신약 성경에 등장하는, 바울과 실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들은, 빌립보 감옥에 갇혔습니다.  온 몸은 피투성이였습니다.  발은 쇠사슬에 묶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우리의 찬양 역시, 우리의 환경이 좋아서 드리는 것이 아닌, 우리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기 때문에, 조건과 상황에 관계없이 드리는 것임을, 분명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기에, 우리 삶에, 갑작스런 질병이 찾아와도, 경제적 어려움이 일어나도, 우리 주변 사람들로 인해 억울한 비난을 받더라도, 우리는 “내가 찬양하는 하나님”이란 고백을, 시종일관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모습이야 말로, 하나님이 참으로 원하시고, 바라시며, 기뻐하시는 믿음의 모습이요, 고백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우리는, 우리의 상처와 억울함을, 하나님께 맡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보면, 아마도 크게 놀라는 분들이 있으실 것입니다.  즉, 다윗은 원수에게 무서운 심판을 낫낫이 구하고 있습니다.  처음 이 본문을 접하시는 분이시라면, “성경에 이런 기도가 있었나?”라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내용보다, 그것이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의 방향성입니다.  다시 말해, 다윗은 원수에게 다가가, 자신의 뜻과 생각으로, 복수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의 도움만을 간절히 구했습니다.

 

세상은 우리들에게 끊임없이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받은 대로 꼭 갚아라.”  “절대 참지 마라.”  그러나 다윗은, 여러 분노와 억울함 속에서도, “나는 기도할 뿐이라”라는 방향을, 전혀 잃지 않았습니다.

 

성경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감정을 철저히 숨기라고 이야기 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슬프면 슬프다고, 억울하면, 억울하다고, 세상과 주변 사람들이 아닌, 오직 하나님께 나와 이야기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심지어, 분노가 치밀어 오르면, 있는 그대로 자신에게 나아 오라고 이야기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분노와 감정을 감당하실 만큼, 크고 자비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한나를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녀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아픔을, 주변 사람들이 아닌, 하나님께, 아주 솔직히 쏟아 놓았습니다.  매일을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그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셨습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고통스럽게 외치셨습니다.

 

믿음은, 감정이 없는, 로봇과 같은 모습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모든 감정들을 하나님께 가져가, 솔직히 쏟아 놓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약, 우리의 감정들을, 여과없이 사람들을 향해 쏟아 놓게 되면, 그들과의 관계는 반드시 깨질 것입니다.  인터넷에 쏟으면, 여러 사람들이 상처를 입게 될것입니다.  또한 어떻게든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복수를 하려 하면, 또 다른 죄가 시작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가져가면,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상황들을, 공의롭게 판단하십니다.  이러한 이유로,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장에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원수 갚는 것이 하나님께 있으니, 하나님이 갚으시리라.”  우리 역시, 우리 스스로가 심판자가 되려 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겨야 함을, 분명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 믿음의 사람들은, 여러 상처들을 품고 사는 사람들이 아닌, 우리의 모든 상처들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가 올려드리는 진솔한 기도를 통해, 우리의 모든 상처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바꾸게 됨을 경험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마지막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늘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 16절은, 모든 저주의 이유를 설명합니다.  즉, 악인들은 인자를 베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괴롭혔고, 마음이 상한 사람들을 짓밟았습니다.

 

여기서 “인자”는, 히브리어로 “헤세드”입니다.  헤세드는, 일방적으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랑, 바로, 변치 않는 신실한 사랑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여전히 자신이 잘못을 모르는 죄인이었을 때, 예수님을 우리 가운데 보내셨습니다.  우리가 넘어질 때마다, 우리를 다시금 붙들어 세워 주셨습니다.  우리가 실패해도, 결코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한 사랑을 받은 사람들은, 그 사랑을 자기만 품고 살아가는 것이 아닌, 주변으로 끊임없이 흘려 보내야 합니다.  그리고, 힘든 사람들을 함께 품고, 상처 입은 사람을 위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연약한 사람들이 다시금 믿음 안에서 일어서도록 도와야 합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강도 만난 사람을 저마다의 이유를 대며, 지나쳤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인은 멈추었습니다.  기름을 붓고, 상처를 싸매고, 여관에 맡기고, 심지어 그 비용까지 모두 지불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헤세드입니다.

 

우리 교회도 그래야 합니다.  아픈 성도들을 찾아가는 교회, 낙심한 성도들을 붙드는 교회, 새가족을 품는 교회, 눈물 흘리는 사람과 함께 우는 교회…  그런 교회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의 모습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자를 경험한 사람들은, 반드시 인자를 베푸는 사람으로 살아감을 기억하시며,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원하시고, 바라시며, 기뻐하시는 삶을, 매순간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르으로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오늘 다윗은 우리에게 세 가지를 가르쳐 줍니다.  첫째는,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며, 둘째는, 상처를 주변 사람들이 아닌, 하나님께 가져가야 하며, 마지막 셋째로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헤세드를 늘 기억하며, 그 사랑을 세상 속에서 실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세상은, 우리에게 받은 대로, 아니 그 이상으로 복수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끊임없이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은 미워하라고 말하지만, 하나님은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은 이만하면 됐으니 포기하라고 말하지만, 하나님은 끝까지 믿음으로 견디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했던 다윗의 고백, 바로 “나는 기도할 뿐이라”라는 고백이, 오늘 우리 삶의 진심 어린 고백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리하여, 기도하는 사람은, 결코 무너지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며,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응답을 받게 될 것임을 굳게 믿으시며, 어떠한 상황과 환경 속에서도, 기도의 자리를 지키며, 하나님의 인자와 은혜를 매순간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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