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예배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성공하기를 원합니다. 인정받기를 원하고, 힘을 갖기를 원하며, 높아지기를 원합니다. 물론, 이것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님 없이 높아지려는 마음, 다른 사람들을 밟고 올라서려는 마음, 그리고, 자기의 힘과 능력 만을 의지하는 마음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두로는, 바로 그런 도시였습니다.
두로는 지중해 최고의 무역 도시였습니다. 경제력도 있었고, 군사력도 강했습니다. 즉, 천혜의 항구와 높은 성벽으로 인해, 그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는, 난공불락의 도시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들은, 예루살렘이 바벨론에게 처참히 무너지는 장면을 목격합니다. 그러자 이들은 슬퍼하고 아파하기 보다는, 오히려 크게 기뻐하며 이러한 생각을 했습니다. “잘됐다. 이제 우리의 경쟁자가 없어졌다. 이제, 모든 부와 명예가 우리에게 모두 몰려올 것이다.” 다시 말해, 두로는 다른 사람들의 눈물 위에, 자신의 성공을 세우려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교만한 자를, 내가 낮추겠다.” 그렇다면, 오늘 허락하신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어떤 사람들을 사용하시고, 이와는 반대로, 어떤 사람들을 낮추시는지를 살펴보며, 우리가 함께 마지막까지 순종하며 걸어갸야 할 길을,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우리 하나님은,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이용하는 마음을, 절대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2절을 보면, 두로의 백성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루살렘이 폐허가 됐으니, 이제 내가 번성할 것이로다.” 이 말 속에는, 탐욕이 들어 있습니다. 즉, 예루살렘은 처참함과 황폐함 속에서 울고 있는데, 두로는 자신의 이익만을 계산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남의 눈물과 불행은 자기의 기회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이 같은 마음을, 죄라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오늘날도 이런 모습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발견합니다. 직장에서 동료가 실수하면, “이번에는 내가 인정받을 것이다.” 사업하는 사람들은, “저 회사가 망하면, 우리 매출이 오를 것이다.” 교회 안에서도, 다른 교회가 어려워지고 갈라지면, 은근히 좋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러한 모습으로 살아가서는 안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15절에서,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라고 말씀합합니다. 예수님은 나사로가 죽었을 때, 자신이 그를 곧 살릴 것을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저 그곳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우셨습니다.
왜 그러셨겠습니까? 예수님은, 우리를 정죄하시는 분이 아닌, 우리의 아픔을 먼저 어루만져 주시고, 헤아려 주시며, 함께 나누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믿음의 백성들, 하나 하나는 경쟁자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하나님의 가족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 형제 자매들의 실패를 통해, 내가 성공하는 모습을 기뻐하시는 것이 아닌, 남의 눈물을 함께하며 닦아주는 긍휼과 자비의 사람들을, 바라며 원하고 계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아픔과 고난을 우리의 이익과 욕심을 채우기 위해 이용하려 하지 말고, 함께 울며, 함께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바로, 하나님 앞에서 우리 삶의 진정한 성공은, 남을 밟고 올라가 나 혼자 최고의 자리에 서는 모습이 아닌, 지치고, 낙심하여 넘어진 자들과 함께, 그 자리에서 다시 함게 일어나, 세워지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우리 하나님은, 자신의 힘과 능력만을 의지하는 사람들을, 반드시 무너뜨리십니다.
두로가 가장 믿었던 것이 무엇입니까? 강한 성벽이었습니다. 부유한 재산이었습니다. 강력한 군사력이었습니다. 또한, 끊임없는 주변 지역과의 무역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절대, 무너질래야 무너질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느부갓네살 왕을 보내십니다. 그러자, 그 높은 성벽들은 단숨에 무너집니다. 아름다운 집들도 무너집니다. 거리의 음악이 끊깁니다. 강력한 군사들도 사라집니다. 사람들도 따나고, 모든 무역도 멈추게 됩니다. 결국 그곳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이 모든 이유는 바로, 교만함 속에서, 자신들의 힘과 능력을, 하나님보다 더 앞세우며 믿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배워야 합니다. 즉, 돈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건강을 추구하는 것도 나쁜 것이 아닙니다. 또한,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성공하는 것 역시, 절대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여기서의 문제는, 이 모든 것들의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단순히 현재 나의 삶의 편안함과 이익, 그리고 욕심을 채우기 위한,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감리교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 목사님은 이러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할 수 있는 한, 많이 벌고, 할 수 있는 한, 많이 저축하고, 할 수 있는 한, 많이 주어라(Gain all you can, Save all you can, Give all you can).”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벌라는 것은, 정당하고 정직한 노동으로, 최선을 다해 부를 창출하되, 자신이나 이웃, 자연환경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벌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할 수 있는 한 많이 저축하라는 뜻은, 낭비와 사치를 피하고, 검소한 삶을 살라는 뜻입니다.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한 많이 베풀어라는 것은, 자신의 삶을 유지한 후, 남은 수입들을,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돕는 일에, 아낌없이 사용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부와 명예의 축적은, 우리 삶의 일차적 목적이 아닌, 이웃과 사회를 섬김으로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세우는 것이, 다름아닌, 우리 삶의 최우선 목적이 되어야 함을 보여줍니다.
잠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우리의 직장도, 우리의 재산도, 건강도, 자녀들도, 주변 사람들도, 모두 하나님 손안에 있습니다. 즉, 하나님이 붙드시면 유지되고, 하나님이 손을 거두시면, 언제든지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습니다.
모세를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모세는 애굽 왕궁에서 자랐습니다. 왕자였습니다. 최고의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의 능력으로, 이스라엘을 얼마든지 구원할 수 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계획은 무참히 실패하고 맙니다. 오히려 살인자로 몰려, 그후, 광야로 도망을 갑니다. 묵묵히, 40년 동안 양을 치며 살아갑니다. 그는 이제,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비워진 그릇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무언가로, 자신의 내면을 가득 채운 교만한 사람보다, 비어 있는 겸손한 사람을 오늘도 찾고 계시며, 그러한 사람들을 지금도 사용하고 계십니다. 예수님도 그러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끊임없이 기도하며, 자신의 뜻과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내려 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힘이 끝나는 곳이, 바로 하나님의 능력이 시작되는 곳임을 기억하시며, 교만은 하나님의 능력을 가로막지만, 겸손은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함을 믿으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마지막 셋째로, 우리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을 통해, 예나 지금이나, 역사하신다라는 사실입니다.
두로는 결국 역사 속에서 사라집니다. 한때, 세계 최고의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완전히 폐허가 되어, 흔적조차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바로 하나님 없이 높아지려던 사람들의, 마지막 모습과도 같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들을 사용하십니다. 사도 바울을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자신을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라 말하며, 엄격한 율법주의자요, 학문에 뛰어난 자임을 자랑했습니다. 그려면서 그는, 이 같은 자신의 교만함으로, 하나님과 대적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만난 후, 그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는, 빌립보서 3장 8~9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모든 것을 해로 여기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라.”
이것이 바로 겸손입니다. 우리 자신을 비울 때, 하나님은 반드시 그 빈곳에, 그 분의 은혜를 충만히 채우십니다. 바로,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뜻과 말씀 앞에 철저히 내려놓을 때, 비로소 하나님은 우리를 온전히 사용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겸손히 준비된, 그 빈 그릇의 사람을 간절히 찾고 계십니다.
이러한 이유로, 야고보서는 이렇게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들은, 세상적 능력이 많거나 뛰어난 사람들이 아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철저히 비우는 사람임을 기억하시며, 우리도 하나님의 뜻과 말씀 앞에서 끊임 없이 기도함으로써, 하나님의 힘과 능력을 온전히 담아 내는, 겸손의 빈 그릇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오늘 두로의 모습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그것은, 나는 다른 사람들의 실패를 기뻐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하나님보다 내 능력을 더 믿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교만으로 가득 찬 사람인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채우실 수 있는 빈 그릇의 사람인가?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경고하며, 우리 모두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교만은 결국 무너진다. 그러나 우리의 겸손은, 우리의 빈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를 매순간 품으며 경험하게 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가장 낮추셨습니다. 하늘의 영광을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셨고, 종의 모습으로 섬기셨으며,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높이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 우리 자신을 죽기까지 낮출 때, 하나님께서 가장 선한 때에, 우리를 반드시 높여 주실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이 사실을 분명히 기억하시며, 오늘도 우리의 힘과 지혜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겸손히 하나님만 의지하며, 빈 그릇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