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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7.25 / 토요 새벽 기도회 (에스겔 30:10~26)

오늘도, 예배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사람 인(人)’ 자를 보면 서로 기대어 있는 모습입니다.  이 같은 사실은, 우리 인간이란 본래 의지할 무언가의 대상을 끊임 없이 찾으며, 살아가는 존재임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무엇을 의지하느냐’입니다.  어떤 사람은 돈을 의지하고, 어떤 사람은 건강을 의지하며, 어떤 사람은 자신의 경험과 능력을 의지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강한 사람을 의지하고, 세상의 권력을 의지합니다.

 

고대 이집트 바로, 애굽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애굽은 당시 세계 최강의 나라였습니다.  강력한 군대와 막강한 경제력, 수천 년 동안 이어져 내려 온 문명은, 사람들에게 존경과 동시에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많은 주변 사람들은, 애굽을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 굳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오늘 말씀에서, 애굽을 향해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내가 바로의 팔을 꺾겠다.”

 

바로, 우리 인간들이 가장 강하다고 생각하는 것조차, 언제든지 하나님 앞에서는,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구체적 교훈이 무엇인지, 여러분들과 함께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모든 역사의 주관자이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가장 반복되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행하리라”입니다.  사람들 눈에는, 그저 바벨론이 애굽을 정복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바벨론을 사용한다.”  바로, 하나님은 느부갓네살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사실은, 사실 바벨론이 의로운 나라가 아니었다라는 것입니다.  즉, 그들은 그 어느 나라들 보다 잔인했습니다.  포로를 학대했고, 수많은 나라들을 침략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들을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사용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을 종종 만납니다.  왜 악한 사람이 잘될까?  왜 불의한 사람이 성공할까?  왜 하나님은 침묵하실까?  그때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우리 모두를 향해 분명히 선언합니다.  바로, 하나님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일하고 계신다라는 사실입니다.

 

요셉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형들은 악한 마음으로 요셉을 애굽의 노예상에게 팔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악한 사건조차, 그 가정을 구원하는 역사로 바꾸셨습니다.  요셉은 훗날 이렇게 고백합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하나님은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금 당장 우리 눈 앞에 펼쳐진 상황과 환경보다, 그 모든 것 뒤에, 여전히 살아서 역사하고 계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이해되지 않는 현실이 우리 앞에 놓여져 있다 할찌라고, 우리 삶의 역사를 친히 주관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만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변치 않는 믿음으로,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삶 가운데 여전히 선한 뜻을 이루고 계심을 고백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둘째로, 하나님 앞에서는, 단 하나의 예외도 없다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애굽의 여러 도시 이름들이 나옵니다.  놉, 바드로스, 소안, 아웬, 비베셋, 드합느헤스, 이 도시들은, 애굽의 정치, 경제, 종교의 중심 도시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모두 심판하겠다.”  여기서 단 한 도시도 예외가 없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하나님은 겉 모습만을, 보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의 현재 직분이 우리를 결코 구원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의 경력들이 우리들을 자동적으로 구원하지 않습니다.  또한, 교회에 오래 출석했다고 안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 마음의 중심을 정확히 꿰둟어 보시고, 그것을 통해 우리를 판단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종종 이러한 착각을 할때가 있습니다.  “나는 오래 믿었으니까.”  “나는 목사니까.”  “나는 장로니까.”  “나는 권사니까.” “나는 집사니까” 당연히 구원 받는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할 것은, 하나님께 중요한 것은, 외적으로 드러난 직분이나 우리의 공로가 아닌, 그 마음 중심에 놓여 있는, 우리 행위와 순종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오직, 이 순간,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사람만이, 하나님께 인정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지금 이 순간, 우리 마음의 중심을 최우선적으로 보시는 분으로써,  그 누구도 예외 없이, 항상 하나님 말씀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겸손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마지막 셋째로,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철저히 꺾으시고, 겸손한 자에게 한없는 은혜를 주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바로의 팔이 꺾이는 장면입니다.  팔은, 칼과 방패를 잡는 힘을 상징합니다.  바로, 군사력이요, 권력이며, 자신감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미 한쪽 팔을 꺾으셨습니다.  그런데도, 바로는 전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이제 남은 팔마저 꺾겠다고 선언하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교만은 반드시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종교 개혁자요 장로교의 창시자인 칼빈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우상을 만들어 내는 공장이다.”  과거의 사람들은 금과 은으로, 끊없이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오늘날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여러 우상들을 만들고 섬긴다는 것입니다.  즉, 돈이 우상이 됩니다.  명예가 우상이 됩니다.  자녀가 우상이 됩니다.  성공이 우상이 됩니다.  지금까지 내가 교회에서 헌신하고 봉사한 모든 일들이, 우상이 됩니다.  심지어 자기 자신의 뜻과 생각이 우상이 되기도 합니다.

 

팀 켈러 목사님은, “내가 만든 신”이란 책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만든 신은 반드시 나를 배신하게 되어 있다.”  그 어떤 우상도 결코 우리를 만족시키지 못합니다.  물론, 잠시 평안과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 같아도, 결국 우리를 영원히 무너뜨리게 됩니다.

 

에덴동산에서, 사탄은 하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선악과를 먹으면, 너희가 하나님이 정하신 저 선만 넘으면,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처럼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모든 죄의 시작입니다.  다시 말해, “내가 하나님처럼 살겠다.”  “내 인생은 내가 결정하겠다.”  “나는 하나님 없이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  이것이 현대인의 가장 큰 우상인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는, 세상의 그 어떤 강력한 힘도 아닌, 우리 자신입니다.  내가 예전에 교회에서 얼마나 많이 봉사하고 헌신도 했는데… 이제는 좀 편안히 쉬어도 되겠지.  내가 세상에서 얼마나 바쁜게 사는데… 일주일에 교회 한번 나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겠지.  온라인 예배만으로도 충분하겠지.  혹시, 이러한 생각에 사로 잡혀, 우리 삶의 중심에, 하나님이 아닌 혹시 우리 자신이나 혹은 우리의 생각과 판단이 만들어 놓은, 우상이 있지는 않은지요?  그리고 이러한 우리 자신이, 이제는 하나님이 되어,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가고 있는지는 않은지요?

 

우리 믿음의 백성들은, 내가 아닌, 하나님이 우리 삶의 중심이 되시어, 우리를 이끌어 가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선줄로 생각하다가 넘어지는 인생이 아닌, 우리의 구원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마지막 순간 완성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하나님은 절대로 교만한 사람들을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겸손한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왕자였을 때는, 그를 쓰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광야에서,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그를 찾아가 사용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핍박하던 사울이, 자신의 의와 지식, 그리고 혈통적 배경을 자랑할 때는, 하나님을 대적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모든 것들을 배설물처럼 여기고, 예수 그리스도만 붙들었을 때, 그는 위대한 사도 바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빈 그릇을 채우고 계십니다.  교만으로 가득 찬 그릇에는, 하나님의 그 어떤 은혜도 결코 담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내 힘과 내 능력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그러했을때, 하나님께서 낮아진 우리들을 높여 주시고, 비워진 우리의 마음과 삶을, 반드시 하나님의 능력으로 채워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오늘 애굽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그것은, “지금 나는 무엇을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는가?”입니다.  내 능력입니까?  내 재산입니까?  내 경험입니까?  아니면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까?

세상의 모든 것은 언젠간 반드시 무너집니다.  돈도, 건강도, 권력도, 사람도, 변화무쌍한 세상 속에서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찌라도, 우리 하나님괴 그 분의 말씀은 영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은, 변하는 세상이 아닌, 변함없으신 하나님께 두어야 함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오늘도 우리의 마음속 저마다의 우상을 겸손히 그리고 과감히 내려놓음으로써, 오직 하나님만을 예배하며,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는 삶을, 오늘부터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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