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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18 / 부르심의 삶! (고린도전서 1:1~9)

할렐루야!  예배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2026년 새해가 시작된 지도, 어느덧 3주가 지났습니다.  여러분들이 저마다 세운, 새해의 계획들은 잘 지켜지고 있는지요?  물론, 지금까지 잘 지키고 계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요즘 제가 자주 방문하는 Ambler YMCA를 보면, 새해 첫 주만큼, 많은 사람들이 운동하고 있지 않음을 보게 됩니다.  아마도, 새해 첫날의 다짐은, 어느새 점점 희미해지고, 다시 현실의 무게만이 느껴지는, 삶속으로 돌아간 것으로 보입니다.

 

이 시점이 되면, 마음 깊은 곳에서 조용히 고개를 드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는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가?”  “지금 사람들이 보고 있는, 이 모습이 진짜 나의 모습인가?”입니다.

 

우리는 평생 수많은 이름으로 불립니다.  직장에서는 여러 직함으로, 가정에서는 부모나 자녀로, 사회에서는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으로 불려집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여러 사람 앞에서, 나의 체면을 유지하느라, 하나님 앞에서의 진정한 나의 모습을, 잃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심리학자 칼 융은, 이런 모습을 가리켜 “페르소나”, 즉 사회적 가면이라 불렀습니다.  물론, 이 가면이 필요할 때도,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이 가면을 너무 오래 쓰고 있으면, 우리는 점점 진짜 자신과 멀어지고, 결국 괴리감으로 인해, 깊은 외로움과 두려움에 빠지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이런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우리 모두에게, 아주 분명한 복음의 메시지 하나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는, 우리 스스로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존재가 아닌, 우리가 태어나기도 이전, 하나님께서 먼저 부르시고 택하신 존재”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 어디를 향해 가야 하는지를 다시금 살펴보며, 하나님 안에서 우리의 본래 모습을 회복하기를 소원합니다.

 

첫째로, 오늘 본문은 우리의 정체성이 우리 스스로나 혹은 세상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부르심에서 시작됨을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은 편지의 첫머리에서, 자신과 고린도 교회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너희.”  여기서 반복되는 핵심 단어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부르심”입니다.

 

먼저, 사도 바울은 오늘 말씀을 시작하며, 자신의 그 어떤 업적이나, 깊은 학문적 배경을 말하지 않습니다.  또한, 현재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여러 문제를 지적하며, 나열하지도 않습니다.  대신, 가장 먼저, 하나님이 그들을 어떻게 부르셨는지를, 분명히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고린도는 무역과 교통의 중심지인 항구 도시로써, 부와 성공의 도시로 불렸습니다.  즉, “얼마나 가졌는가”, “얼마나 올라갔는가”가, 곧 사람의 가치요 평가 기준이었습니다.  한마디로, 경쟁과 성취가, 곧 자신의 정체성이 되는 도시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이 같은 세상의 논리를 정면으로 거부하며 이렇게 선포합니다.  “너희는 성도가 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아니라, 이미 성도로 불려진 사람들이다.”

 

‘성도’라는 말은, 한자로 거룩할 성과 무리 도를 써서, 거룩한 무리로 해석 됩니다.  하지만 성경은, 성도를 도덕적으로 완전한 사람들을 뜻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거룩한 무리를 뜻하는 성도는, 성경에서 “구별되다”란 의미를 가집니다.  즉, 마치 평범한 그릇이, 성소에 놓이는 순간, ‘성물’이 되는 것처럼, 우리 역시, 하나님의 부르심 안에 들어올 때, 우리 존재의 의미가, 완전히 바뀌게 된다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릇의 재질이 금이냐 흙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가 그것을 선택해 어디에 두었느냐가, 그 존재의 본질적 가치를 결정한다라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믿음 생활을 하며, 이러한 착각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내가 좀 더 나아지면, 하나님이 쓰시겠지.”  “내가 온전히 준비되면, 그 후에 하나님이 부르시겠지.”

 

그러나, 오늘 우리에게 허락하신 성경 말씀은 정반대로 선언합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신 후에, 실제적으로 변화시키신다라는 사실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부르심이 먼저이고, 이후 믿음의 성장으로 이어진다라는 사실입니다.  주님은, 죄인 된 우리들을 먼저 부르셨고, 그 부르심의 사랑 안에서, 우리를 매일같이 거룩하게 빚어 가고 계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지금 여러분의 이름은 어디에서 결정되고 있습니까?  주변 사람들의 평가입니까?  과거 실패의 기억입니까?  아니면, 앞으로 성취될 업적에 의한 것입니까?  이 모두가 아닙니다.  우리의 참된 이름은, 다름아닌, 하나님의 거룩한 부르심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사실을 분명히 기억하시고, 더 이상 세상이 붙여준 가격표에 좌지우지되는 삶에서 과감히 벗어나, 하나님이 불러 주신 이름, “내 백성”, “내 자녀”, 그리고 “성도”라는 이름을 다시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이 같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우리의 정체성을 명확히 붙잡을 때, 우리는 비로서, 나라는 존재의 무거움과 실망감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보여 주시고 말씀하신, 새로운 존재로서의 거룩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우리의 정체성은,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귀한 선물임을, 겸손히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문제 많은 고린도 교회를 향해, 이 같은 놀라운 말씀을 선언합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 이유는, 이어지는 5절에 나옵니다.  그것은,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기 때문이란 것”입니다.  표준새번역 성경은 이렇게 번역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살면서, 모든 면에서 곧 온갖 언변과 온갖 지식에 풍족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표현이 있습니다.  그것은 “풍족하게 되었다”라는 말입니다.  이 표현은, 수동태적 표현으로, “너희가 스스로 이룬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들을, 너희에게 전적으로 선물로 주셨다”라는 뜻입니다.

 

사실, 고린도 교회 안에서 여러 문제들의 원인은, 하나님의 은혜가 부족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이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알지 못한 것이, 가장 큰 문제였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주신 재능을, 내 실력으로 착각했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여러 선물들을, 자신들의 노력과 공로로 바꾸었으며, 하나님을 향한 감사 대신, 서로를 비교하고, 질투하며, 자랑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인간의 공로와 업적으로 바뀌는 순간, 믿음의 공동체는 갈라지고, 협력의 관계는 경쟁이 되며, 기쁨과 감사의 신앙은, 도리어 무거운 율법의 짐으로 돌아옵니다.

 

그렇다면, 지금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이 가진 것들을, 한번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건강, 직업, 재능, 물질, 자녀,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않아 있는 신앙의 모습 등…  이 모든 것을, “내 힘과 능력으로 이루었다”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 분의 뜻과 말씀을 세상에 드러내도록, 잠시 맡기신 것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이 허락하신 모든 것들을, 선물로 알면, 우리는 겸손해지지만, 이 모든 것들을 당연한 것이나, 혹은 우리의 노력과 공로로 알면, 우리는 반드시 교만해집니다.  하나님이 진정 원하시고, 바라시며, 기뻐하시는 신앙의 모습은, 더 많이 소유한 삶이 아닌, 더 많이 감사하는 삶임을 기억하시며, 모든 것이 주님의 것임을, 매순간 겸손히 인정하시며, 언제 어디서나 감사와 나눔의 삶을 실천하며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마지막 셋째로, 우리의 앞으로의 정체성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달려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마지막으로 우리 믿음의 사람들의 삶이, 왜 흔들리지 않는지를 분명히 말씀합니다.  그것은, 우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미쁘시다”라는 말은,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을 지신다”라는 뜻으로, “신실하다”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8절에 나오는 “견고하게 하시리라”라는 단어는, 당시 상업 사회에서 법적으로, 보증한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견고하시고 미쁘신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과 인생에 마치, 법적인 공증의 도장을, 확실히 찍으셨다라는 것입니다.   바로,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내가 너를 끝까지 책임지겠다.  중간에 포기하는 일은 절대 없다”라는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요, 공개적인 약속인 것입니다.

 

솔직히, 우리들은, 호수위에 떠 있는 배처럼, 물결에도 흔들리고, 주변 바람에도 수시로 흔들리는 존재들입니다.  그렇기에, 2026년 한 해에도, 수 없이 죄에 넘어지고, 환경에 절망하며, 스스로에게 실망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사실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은,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라는 사실입니다.  바로, 우리가 매순간 믿고 의지하는 복음의 위대함은, 우리의 신실함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있디라는 사실입니다.

 

유아 심리학에서는, 자신이 언제든지 돌아갈 안전지대가 확실한 아이들만이, 두려움을 물리치고 새로운 세상을 마음껏 탐험할 수 있다라고 이야기힙니다.  즉, 뒤를 돌아봤을 때, 언제나 나를 받아줄 부모가 있다는 확신이, 아이들을 새로운 세계로, 과감히 모험하게 만든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 영혼의, 영원한 안전지대, 곧 안식처가 되고 계십니다.  우리가 실패해도, 우리가 넘어져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근거는, 바로 그 곳에, 하나님의 미쁘심이요, 실신하심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필라제일연합감리교회 성도님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나는, 우리는 누구냐?”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이렇게 묻고 있습니다.  “너는 무엇을 달성했느냐?”, “너는 얼마를 가졌느냐?”, “너는 몇 평에 사느냐?”  우리는 이 같은 질문에 대답하느라, 정작 지치고 병들어, 하나님이 허락하신, 우리의 본질적 정체성을 잃어버린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에게, 오늘 하나님은 조용히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내 딸과 아들아, 너는 내 것이다.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라.”

이제, 이 같은 하나님의 은혜 앞에서, 우리 모두 이렇게 고백하기를 소원합니다.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더 이상, 세상이 부르는 이름이 아니라, 주님이 불러 주신, 그 이름으로, 그 이름대로 살겠습니다.  내 힘과 지혜, 그리고 능력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은혜로 살겠습니다.”

 

우리의 미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은, 2026년 남은 모든 날 동안, 우리의 삶을 끝까지 붙드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부르신 목적을, 반드시 선하고 아름답게 이루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부르심의 정체성으로 살아가는 사람, 그리고 그분의 은혜로 인해, 기쁨과 감사함으로 살아가는 성도가 되어, 우리와 늘 동행하시는, 주님 안에서, 참된 자유와 기쁨을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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