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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2.1 / 십자가를 입는 삶! (고린도전서 1:18~31)

할렐루야!  오늘도 예배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우리 인간들이 살아가는데, 기본적으로 필요한 세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의식주로써, 덥고 추운 와부의 날씨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옷, 힘과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음식, 그리고 안전하고 편안하게 쉬고 잠을 잘 수 있는 집입니다.

 

그 중에서도, 우리의 정체정을 주변 사람들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옷이 될 것입니다.  즉, 우리는 의복을 통해 자신의 취향, 신분, 가치관, 심지어는 인생관까지 표현합니다.  그렇기에, 현대 사회에서 옷은, 단순한 천 조각만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명품, 학벌, 직업, 재산, 성공, 종교적 업적과 같은, 보이지 않는 저마다의 “상징의 옷”을 입고 살아갑니다.  다시 말해, 우리 모두는 무언가로 자신을 끊임없이 증명하려는, 옷을 입고 살아가는 존재들인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들은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이 영화는, 겉으론 패션 산업을 다루는 이야기지만, 그 본질은 “사람이 무엇으로 자기 존재를 증명하려 하는가?”라는, 진지한 질문을 던집니다.  즉, 이 영화의 주인공 앤드리아는, 오직 자신의 능력으로 여러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고자 끊임없이 노력하지만, 이 같은 노력은 번번히 실패하고 맙니다.

 

그리고, 그녀는 이 과정을 통해 한가지 깨달음을 얻습니다.  그것은, 이 세계에선 정직함과 진실함보다, 냉혹한 경쟁과 자기 포장이, 더 큰 힘을 가진다라는 사실입니다.  즉, 서로를 이용하고 속이는 모든 과정들을, 마치 자신이 뛰어난 능력인양, 아름답게 포장되어 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영화는 세상의 지혜가 얼마나 교묘하게, 우리들을 현혹하고, 잘못된 길과 방향으로 향하게 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오늘도 세상의 최고 가치를 상징하는 프라다는, 우리에게 이같이 속삭이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성공하면, 네 가치는 증명된다.”  “조금만 더 뛰어나면, 네 존재는 존중받는다.”  “조금만 더 인정받으면, 네 인생은 의미 있다.”  그러나 이 같은 프라다는, 결코 우리 인간들을 자유롭게 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끊임없이 비교하게 하고, 경쟁하게 하며, 자기 자신을 증명하게 만드느라, 우리를 힘들고 지치게 만듭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어떤 옷을 걸치고, 주님 앞에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오늘 허락하신 말씀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며, 우리가 참으로 입어야 할 옷이 무엇인지 여러분들과 함께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속 고린도 교회도, 마치 세상 최고의 가치를 상징하는, 화려한 프라다를 입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들을 향해 충격적 선언을 합니다.  그것은, “그 화려한 옷을 지금 당장 벗어 버리고, 이제는 세상이 가장 미련하다고 여기는, 고난의 십자가 옷을 입으라”는 것입니다.

 

그 당시 고린도는, 그리스 문화와 로마의 상업이 결합된 도시였습니다.  즉, 철학과 수사학을 숭상했고, 마치 큰 재물을 소유한 사람들이, 성공한 사람들로 존중을 받는 사회였습니다.  그래서, 누가 더 논리적으로 말하는지가, 곧 그 사회의 권력이었고, 동시에 출신과 신분, 재산과 성공이, 곧 사람의 가치를 결정했습니다.  이 같은 문화는, 자연스럽게 교회 안에도 스며들었습니다.  “나는 바울 편이다.”  “나는 아볼로 편이다.”  “누가 더 지혜로운 복음을 전하는가?” 등, 이들은 서로의 논리와 지식을 경쟁적으로 앞세우며, 복음을 통해 하나님을 높이기보다는, 복음을 통해 자기의 우월감을 끊임없이 증명하려 했습니다.

 

그렇기에, 고린도 교회는 하나됨이 아닌, 그 안에서 끊임없는 분열과 분쟁이 일어났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사도 바울은, 그들의 잘못된 기준 자체를 무너뜨리기 위해, 완전히 새로운 기준을 제시합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은 이들을 향해, 이렇게 선포합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세상 사람들은, 죽음의 사형 틀인 십자가를, “미련함”이라 부릅니다.  왜 그렇습니까?  유대인들의 관점에서, 메시아는 강력한 힘과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십자가에 달려 무능력하게 죽은 메시아는, 그저 저주받은 자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헬라인들의 시각에서, 신은 결코 고통받지 않아야 하는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고난을 받아 죽었기에,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패배의 상징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상이 가장 부끄럽다고 여기는 그 십자가를, 우리 구원의 중심으로 삼으셨습니다. 다시 말해, 세상이 패배라고 부른 그 절망의 자리를, 하나님은 승리의 자리로 바꾸셨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하나님의 계획을, 오늘 본문 25절에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십자가를 통해, 우리 인간들의 예상과 지혜를 철저히 무너뜨리고 계시는 것이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그 이유를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즉, 인간의 이성과 철학은, 세상을 분석할 수는 있어도, 우리 인간의 본질적 문제인 죄와 죽음을 해결할 수 없고, 우리 구원을 스스로 만들어 낼 수도 없습니다.  다시 말해, 만약 우리 인간의 지혜로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여 구원을 얻을 수 있다면, 그 구원은 더 이상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우리의 공로요 성취가 되고, 우리들은 저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업적들을 자랑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의 그 어떤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고, 이 같은 계획을 세우셨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십자가는 인간의 욕심과 교만을 뿌리 채 뽑아내는 방법으로써, 하나님은, 세상의 강한 자들이 아닌, 철저히 무능하고 약한 자들을 의도적으로 택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십자가를 택하시어, 세상의 가치 체계를 뒤엎으셨습니다.  이는 복음이, 우리의 세상적 신분을 변화시키거나 혹은 높여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적 기준으로 사람들을 평가하는 체계를, 철저히 무너뜨리는 능력임을 보여줍니다.

 

그렇기에, 오늘 본문 말씀이 지금 우리에게 던지는 도전은 분명합니다.  그것은 “세상의 높음을 상징하는 프라다를 벗고, 이제는 겸손의 십자가를 입으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프라다는, 세상의 성공, 학벌, 재산, 명성, 종교적 업적, 나의 능력 등을 상징합니다.  이 같은 프라다는, 우리를 향해, “너는 너의 가치를 세상에 증명하라”라고, 끊임없이 소리를 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우리들에게 이같이 속삭입니다.  “너는 이미 사랑받는 하나님의 자녀다.”  “너는 너의 존재를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  마치, 프라다는, 나를 증명해야 입을 수 있는 옷이라면, 십자가는, 이미 하나님의 은혜로 용서받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용납 받은 자에게, 저절로 입혀지는 옷인 것입니다.

 

사실 오늘 본문을 쓴, 사도 바울은 이미 완벽한 프라다를 입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즉, 그는 율법적으로 흠이 없었고, 학문적으로 뛰어났으며, 종교적으로도 대단히 큰 성공을 이룬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 빌립보서 3장에서, 이러한 고백을 합니다.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표준새번역 성경은 이렇게 번역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나에게 이로웠던 것은 무엇이든지,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귀하므로, 나는 그 밖의 모든 것은 해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고, 그것들을 오물로 여깁니다.  그것은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인정 받으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종교 개혁의 아버지라 불리는, 마틴 루터 역시, 카톨릭 교회 안에서, 율법과 학문이라는, 프라다를 입고 살았습니다.  그는,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이 은혜를 주신다”라는

논리에 매달렸지만, 결국 자신의 한계를 발견하고, 구원의 확신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사도 바울이 쓴 로마서를 연구하며, 하나님의 의는, 인간이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로 ‘입혀지는 하나님의 선물’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 같은 깨달음을 얻은 후, 이러한 고백을 합니다.  “이것은 마치 냐 앞에 천국의 문이 열린 느낌이었다.”  이후, 마틴 루터는 영광을 추구하는 신학을 버리고, 철저히 고난과 낮아짐의 십자가의 신학을 선택하게 됩니다.

 

우리 감리교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 목사님 역시, 1738년 5월 24일, 런던 올더스게이트 거리의 한 집회에서, 이 같은 회심을 경험한, 마틴 루터가 쓴, 로마서 서문을 듣던 중,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참 구원을 받게 된다라는 확신을 경험했습니다.  즉, 웨슬리 목사님은, 늘 경건한 생활을 추구했지만, 정작 그의 삶속에서는, 구원의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아주 우연히 누군가 마틴 루터의 로마서 서문을 읽는 것을 들게 되었고, 이 글을 통해, “마음이 뜨거워지며”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리는 사실을 깨닫고, 죄와 죽음으로부터 구원받았다는 구원의 강한 확신을 비로소 얻었습니다.

 

사랑하는 필라제일연합감리교회 성도님들,

우리가 십자가를 입는 삶이란, 내 지혜를 자랑하지 않는 삶, 내 성취를 구원의 조건으로 삼지 않는 삶, 약함을 숨기지 않고 하나님께 맡기는 삶, 무언가를 세상에 증명하려 애쓰기보다, 그저 하나님의 은혜에 묵묵히 머무는 삶, 나를 드러내기보다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삶, 그러므로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믿고, 의지하며, 바라보는 삶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어떠한 옷을 입고, 매일 같이 살아가고 계십니까?  세상의 프라다입니까?  아니면 십자가입니까?

 

분명, 십자가를 입는 삶은, 세상에서 가장 멋져 보이는 삶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이 십자가의 옷이야 말로, 우리 모두에게 가장 자유롭고, 가장 안전하며, 가장 영원한 삶을, 허락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 이러한 고백이, 우리의 신앙 고백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주님, 프라다를 벗게 하시고, 십자가를 입게 하소서.  나를 자랑하지 않게 하시고, 오직 주님만 자랑하게 하여 주소서.”

 

오늘 이 시간, 우리들을 옥죄고 있던, 세상의 모든 프라다를 과감히 벗어 던짐으로써,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 그리고 거룩함과 구원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의 십자가 옷을, 기쁨과 감사함으로 입기를 소원합니다.  그러 했을 때, 우리의 부족함과 연약함 그리고 우리의 약함이,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며 머무는, 축복의 통로가 될 것임을 기억하시며, 오직 주님 안에서, 주님의 십자가 만을 자랑하는, 그리하여 주님을 따르는 참 제자들이 되시기를,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시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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