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기쁨과 감사함으로 예배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어느덧 사순절 중반부에 접어 들고 있습니다. 마지막까지 우리의 내면을 겸손히 들여다 보며,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숨겨진, 진짜 신앙의 모습을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내려 놓고, 오직 그분의 은혜와 도우심을 구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자신이 선택한 백성들의 신앙 점검을 위해, 이들을 종종 광야로 이끄시는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에게 있어서 광야는 어떠한 장소이십니까? 혹 몇몇 분들은 광야를 낭만적인 장소로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광야는 불편한 장소입니다. 또한, 누구의 도움 없이는 결코 살아 갈수 없는, 매순간이 결핍의 자리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어느 곳에서는, 자기 자신을 그 어떤 것으로도 포장하거나 숨길 수 없는, 노출의 자리입니다.
그래서, 광야에 서면, 그 사람이 지금 소유하고 있는, 신앙의 본 모습이 드러납니다. 즉, 평안할 때는 누구나 믿음이 좋아 보이지만, 불편과 고난 그리고 결핍의 광야에서는, 진짜 우리의 믿음이 어떠한 지를, 여실히 증명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 속 이스라엘 백성들도, 바로 그런 광야에 서게 됩니다. 그들은 홍해의 기적을 뒤로 하고, ‘르비딤’이라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이 사건에 대해,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여호와의 명령대로…”. 즉, 이들은 광야를 떠 돌다가, 우연히 이곳에 도착한 것이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의 치밀한 인도하심과 계획을 따라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가장 먼저 마주한 현실은, 무엇이었겠습니까? 이들은, 힘들고 어렵게 광야를 지나 왔지만, 또 다른 고난과 마주하게 됩니다. 바로, 이들에게 마실 물이 없습니다. 광야에서 물이 없다는 것은, 단순한 불편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생존의 문제입니다. 물이 없다는 것은, 나도 죽고, 내 어린 자녀도 죽고, 전 재산인 가축도 죽을 수 있는, 대단히 절망적인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주의 깊게 살펴볼 것은, 이 사건이 단지 ‘물의 문제만이 아니란 사실입니다. 이것은 신앙의 문제와도 직접적으로 연결됩니다. 즉, 우리 인생을 살펴보면, 저마다의 르비딤과 같은 장소가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우리 삶에 르비딤은, 건강의 문제, 경제적 결핍, 관계의 갈등, 혹은 미래에 대한 불안이라는 모습으로 우리 삶에 찾아옵니다.
하지만 성경은 시종일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에게 참으로 중요한 것은, 우리 앞에 펼쳐지고 놓여진, 상황 그 자체가 아니란 것입니다. 오히려, 그 상황을 대하는 우리의 ‘반응’이란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향해 반응해야 하는지, 오늘 말씀을 통해 여러분들과 함께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원망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란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 2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이르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여기서 “다투다”라는 히브리어 원어의 뜻은, 단순한 말다툼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즉, 법정에서 시시비비를 가리듯, 강하게 따지고, 항의하며 소송을 거는 것과 같은, 대단히 공격적인 태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장 먼저 모세에게 강하게 책임을 묻습니다. “물을 내놓으라!” 그러자 모세는 이들의 중심을 간파하고, 이들을 향해 이렇게 선포합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3절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축이 목말라 죽게 하느냐….” 이 한 문장 안에, “우리”라는 말이, 무려 네 번이나 반복됩니다. 즉, 이들은 모든 초점이, 바로 나 자신에게만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바로, 신앙이 병들면 시야가 좁아집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전혀 보이지 않고, 그분의 계획이 의심스럽기만 합니다. 오직 나의 고통과 나의 결핍만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얼마전 하나님의 은혜로 홍해를 건넜던 사람들입니다. 또한 광야에서는, 만나를 먹었으며, 마라의 쓴 물이 단물로 변하는 기적을 본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지금 물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냈느냐”며 하나님 구원의 사건 자체를 철저히 부정합니다. 다시 말해, 불평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은, 과거의 산더미 같은 은혜는 당연하게 여기고, 현재의 당면한 문제만, 현미경으로 보듯, 크게 과장하고 확대한다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 걸음 더 불신앙의 모습으로 나아갑니다. 이들은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나님을 시험하게 됩니다. 이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은, 마치 재판을 맡은 재판관이, 판결을 내리기 전 질문하는 모습과 같습니다. 즉, “하나님, 진짜 살아계시면 물을 주어 증명해 보십시오. 내 마음에 들게 행동하시면, 이제 믿어 드리겠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참 신앙인의 모습이 아닌, 바로 교만함과 오만함으로 똘똘 뭉친, 불신앙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신앙의 모습은 어떠하십니까? 우리의 미움은, 원망은, 비난은, 내 시선이 오직 “나의 결핍”에만 고정될 때 시작됩니다. 그렇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내 형편을 근거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어리석게 시험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믿고 따르는 하나님은, 증명 대상이 아니라 신뢰의 대상입니다. 내 삶의 잠깐의 결핍을 불평의 이유로 삼지 말고, 오히려 하나님의 채우심을 경험할 은혜의 기회로 바꾸는, 믿음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둘째로, 우리는 위기의 순간, 돌을 드는 사람이 아닌,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4절은, 인생의 위기 앞에서 인간들이 어떻게 갈라지는지 여지없이 보여줍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분노하여 ‘돌’을 들었지만, 이들의 지도자인 모세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다시 말해, 같은 상황, 같은 갈증 속에서도, 이들의 반응은 하늘과 땅 차이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모세 역시, 이러한 상황이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 앞에서 이러한 기도를 드리게 됩니다. “내가 이 백성에게 어떻게 하리이까, 그들이 조금 있으면 내게 돌을 던지겠나이다.”
그러나 모세는 이들과 맞서 싸우지 않았습니다. 또한, 모세는, 비난의 화살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돌려, “너희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느냐”라고 분노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구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진짜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즉, 신앙인의 권위는 사람으로부터 오는 지지나, 혹은 사람들의 큰 목소리에서 오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 겸손히 서서 부르짖는, 기도의 무릎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나일 강을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이 지팡이는, 흔들리는 모세를 지탱하는 단순한 나무 막대기가 아닙니다. 이것은, 나일강을 피로 변하게 하고, 홍해를 갈랐던 하나님의 능력이 새겨진 ‘기억의 상징’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모세를 향하여, “내가 과거에도 너와 함께하지 않았느냐? 그때를 기억하며 이 지팡이를 다시 잡아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흔들리는 믿음이 다시 설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할 입니다. 혹시, 지금 내 앞에 놓인 문제가 너무 커서, 사람을 향해 비난의 돌을 던지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그때, 우리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분노의 돌을 내려놓고, 하나님 ‘은혜의 지팡이’를 다시 잡으시기 바랍니다.
위기의 순간, 우리가 무엇을 손에 들었는지가, 우리의 신앙을 결정합니다. 우리의 감정에 휩쓸려, 분노의 돌을 들어, 사람을 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닌, 더욱 악화시킬 뿐입니다. 오늘 본문의 모세처럼, 기도의 무릎을 꿇고, 과거에 나를 도우셨던 은혜의 지팡이를 다시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사람들과 다투거나 싸우지 않고, 하나님 앞에 전적으로 엎드릴 때, 하나님께서 비로소 우리 가운데 선하고도 아름다운 일을 새롭게 시작하실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이 반석에서 생수를 내시는 분이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제, 오늘 본문 6절에서, 하나님은 놀라운 선언을 하십니다. 그것은 “내가 거기서 네 앞에 서리라”는 말씀입니다. 즉, 창조주 하나님께서, 친히 인간 모세 앞에 서서, 그를 지키시고, 앞으로 책임지시겠다라는 약속입니다. 그후,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하신 대로 반석을 치게 됩니다. 그러자 단단한 바위가 쪼개지며 생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상식적으로, 물은 우물이나 강에서 나옵니다. 솔직히, 광야의 바위는, 물과 가장 거리가 먼 존재요, 장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기대와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불가능할 것만 같은 반석에서, 물을 내셨습니다. 바로, 하나님은 인간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절망과 좌절의, 그리고 불가능의 자리에서 새로운 능력과 힘으로 역사하시는 분이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이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무례한 모습과 거만한 자세는, 심판 받아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늘에서 불을 내려 심판하시는 대신, 땅에서 물을 내어 그들을 다시 살리셨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고 따르는 하나님의 성품이요 모습입니다. 우리의 연약함, 우리의 불평, 우리의 변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를 먹이시고 인도하시는,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앞에 놓인,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반석 같은 문제들을 결코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은 반석을 쪼개어 생수를 내시는 창조주이십니다. 우리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고 신뢰할 때, 우리 인생의 가장 절만적이고 메마른 자리는, 이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가 될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과거 뿐만이 아닌,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의 남은 우리의 삶의 여정에서도, 반드시 ‘르비딤’과 같은 상황이 찾아올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 상황일수록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사실은, 우리의 구원자 하나님은, 그 메마른 광야에서도, 여전히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하나님과 주변 형제 자매들 앞에서 우리의 모습은 어떠하십니까? “우리는 광야에서 돌을 드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기도하는 사람입니까?”, “하나님을 시험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입니까?”
우리의 불평이 멈추고, 그 불평의 자리에서 비로소 기도가 시작될 때, 다툼의 장소였던 므리바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고 증거하는 기적의 장소로 바뀔 것입니다. 사순절의 기간, 이제 우리의 삶에서, 원망의 소리 대신 찬양의 소리가 울려 퍼지는, 르비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하여,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예수께서 인도하시니, 어려운 일 당할 때도 주님께서 나를 지키시리라”는 이 고백이, 저와 여러분들의 기도요 삶의 찬양이 되기를,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