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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5.31 /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고린도전서 4:1~8)

할렐루야!  오늘도 예배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먼저, 2주전, 정회원 목사 안수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를 위해, 지금까지 기도해 주시고, 격려해 주시며, 함께 기뻐해 주신 성도님들께, 이 자리를 통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지난주, 벤살렘교회에서 설교를 하고, 성도님과 친교를 나누었습니다.  벤살렘교회가 제일연합교회와 합쳐진다는 것이 대하여, 힘들어 하시고 안타까워하시지만, 또 다른 한편으론, 새롭게 시작하는 연합을 통해, 하나님께서 새롭게 이루실 많은 일들과 역사들을, 기대하고 계심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제 한달 남았습니다.  물론, 여러 실제적인 준비도 필요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는 자세요 마음임을 기억하시며, 이를 위해 기도로 준비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우리 모두는, 자유를 대단히 소중히 여깁니다.  특별히, 미국에서는 개인의 자유를 미국 연방 헌법과 수정헌법을 통해, 최상위 법적 보호를 받도록, 규정해 놓았습니다.  그렇기에, 누군가가, 나의 자유를 제한하려 한다면, 대단히 불편함을 느낍니다.  즉, “내가 잘못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왜 간섭합니까?”  “내 돈으로 하고 싶은 것을 하는데, 무슨 문제가 됩니까?”  “내 당연한 권리인데, 왜 그것을 포기해야 합니까?”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인간의 자유를, 최고의 가치 가운데 하나로,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에게 허락하신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놀라운 이야기를 우리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할 수 있다고, 다 해서는 안된다.”  “나의 정당한 행동이, 언제나 다 옳은 것은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같은 자유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으니, 그것은 다름아니 “사랑”이라 선포합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자기 만족과 유익을 위한 자유가 아닌, 복음을 위한 자유가 되야 하며, 이웃을 살리는 자유가 되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자신의 권리를 모두 포기하시고 십자가를 지셨던 것처럼, 우리 믿음의 백성들 역시, 사랑 때문에, 얼마든지 우리의 자유를 자발적으로 제한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두 교회의 통합을 앞둔 시점에, 과연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원하시고, 바라시며, 뜻하시는, 참 자유의 모습과 자세가 무엇인지, 오늘 말씀을 통해, 여러분들과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우리 믿음의 백성들은, 개인의 자유보다, 공동체의 유익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시작인 23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우리말 성경은, 이 부분을 이렇게 번역합니다.  “모든 것이 허용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  모든 것이 허용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닙니다.”

 

그 당시, 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자유를 강조했습니다.  어제 새벽 예배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이들은, “우상은 가짜니까 우상의 제물을 얼마든지 먹어도 된다.”  “나는 믿음이 강하니까, 어떠한 우상 숭배의 유혹도 이겨낼 수 있으니 괜찮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신학적으로 전혀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이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이렇게 묻습니다.  “그것이 과연 공동체에 유익한가?”  “그것이 다른 사람들을 온전히 살리며,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세우는데 유용한 것인가?”

 

참된 기독교 신앙은, “내가 지금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제일 먼저 묻는 것이 아닌, 과연 “그것이 지금 우리 공동체를 살리는가?”를 물음으로써, 내가 지금, 그 일들을 얼마든지 할 수 있어도, 하지 않을 수 있는, 믿음의 인내와 용기, 그리고 결단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적재 적소에, 그리고 필요한 상황에, 자신의 생각을 말함으로써, 마치 자신이 적합한 말을 했다라고 판단하여, 크게 만족감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는 적재적소에 아주 적합한 10마디의 말을 하는 것보다, 오히려 정말 하지 말아야 할, 한마디 말을, 통제하지 못해, 크게 난처함을 겪을 때가 있음을 봅니다.  바로, 반드시 해야 할 10마디의 말보다, 정말 하지 말아야 할, 한마디 말을 안 하는 것이, 우리 인생과 우리 공동체를 살리는데 있어, 더 중요하고 소중한 것입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 역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 분은, 하늘의 모든 영광을 버리시고,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십자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전혀 십자가를 지실, 이유가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죄인 된 우리를 살리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모든 권리를 내려놓으셨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갈등의 대부분은, 자유 때문이 아닌, 배려의 부족 때문에 일어남을 봅니다.  “내 말이 뭐가 틀렸냐?”  “이것은 내 권리다.”  물론, 이 말은 맞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권리가 우리 공동체를 해하고 아프게 한다라면, 우리는 그 권리를, 잠시 내려놓을 수도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전, 제가 뉴져지연합교회 부교역자로 있을 때, 한 남성이 처음으로 예배에 참석했고, 교회에 등록했습니다.  그리고 새신자 교육을 받고, 이후 세례를 통해, 눈물을 흘리며,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런데, 이 세례가 끝난 이후, 한 권사님이 저를 찾아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 사람이 세례를 받는 날에, 반바지를 입고 왔어요.  이건 좀 예의에서 벗어난 것이 아닌가요?”

 

솔직히, 저는 이 말을 듣고, 그 권사님 앞에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굉장히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왜냐하면, 그 분에게 있어, 한 영혼이 구원을 받은 기쁨보다, 세례 때 입은, 그 반바지기 더 크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떠하십니까?  우리 역시, 아주 사소한 것으로 인하여, 정작 오늘도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여러 복음의 위대한 능력을 간과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똑같은 것을 보다라도, 감사보다는 불평하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오래전 어떤 책에서 이러한 글을 본적이 있습니다.  “율법은 규정을 가장 먼저 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담긴 복음은, 그 사람의 영혼을 가장 먼저 들여다봅니다.”

 

우리 믿음의 백성들에게 있어, 참된 자유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는 능력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얼마든지 할 수 있어도, 사랑 때문에 그리고 복음 때문에, 멈출 수 있는 능력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기에,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십니다.  “네 유익보다 네 주변의 이웃 그리고 네가 속한 공동체의 유익을 먼저 구하라.”  다시 말해,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러므로, 우리의 자유가, 우리의 욕심과 유익을 채우기 위함이 아닌, 우리의 공동체를 세우고, 우리 주변의 영혼들을 살리는 하나님 구원 사역에, 귀하게 사용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둘째로, 우리는, 우리 주변 믿음이 연약한 성도들을 위해, 우리 자유를 절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시장에서 파는 고기를, 얼마든지 먹어도 된다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불신자의 집에 초대받았을 때, 가리지 말고, 준비된 음식을 자유롭게 먹으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예외가 있습니다.  그것은, 누군가, “이 음식이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입니다”라고 밝힐 때입니다.  그러면, 그 음식을 먹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그것은, 음식 자체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바로, 양심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내가 먹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그것을 보고, 신앙적으로 혼란을 겪는다면, 상황이 전혀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네 자유가, 언제든지 다른 사람을 넘어뜨리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솔직히,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법적으로, 내가 옳으면 됐다”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우리의 옳고 그름을 넘어서서, 과연 “그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 깊이 생각하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 역시, 수많은 주변의 죄인들과 약한 자들을 품으셨습니다.  실수한 베드로를 품으셨고, 세리와 죄인을 품으셨으며, 심지어,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던지라 말씀하시며, 그녀를 사랑으로 품어 주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공평하게 우리 죄의 유무를 따라 우리를 평가하고 품으신 것이 아닌, 언제나 강한 자들보다, 연약한 사람들의 편에 서셔서, 이들과 함께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이 같은 예수님의 불공평한 사랑으로, 우리 모두는 죄와 허물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이요 자녀들이 되어, 영원한 생명과 구원을, 값없는 선물로 받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무심코 내뱉은 말 한마디가, 누군가를 실족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내 행동 하나가, 누군가의 믿음을 무너뜨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믿음의 백성들은, “내가 옳다.”  그러니 모든 것이 “괜찮다”에서 머물러서는 절대 안 됩니다.  오히려, “그 영혼에게 나의 말과 행동이 유익한가?”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우리 모두에게 보여주시고 말씀하신 복음의 메시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자신이 옳다”라는 것을 증명하는 데 힘쓰는 사람들이 아닌, 한 영혼이 실족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은 권리를 주장하는 데서 드러나는 것이 아닌, 기꺼이 절제하는 데서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바로, 성숙한 신앙은, 자유를 끝까지 주장하는 것이 아닌, 사랑 때문에 기꺼이 양보하는 것이며, 한 영혼을 내 자존심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며, 또한 한 영혼을, 내 권리보다 더 소중하게 인정하는 것임을 믿으시며, 우리 주변의 수많은 영혼들을, 어떻게든 살리고 소생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마지막 셋째로, 우리 믿음의 백성들은, 우리의 자유보다, 늘 하나님의 영광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31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이 말씀은, 우리 행동의 모든 최종 기준을, 명확히 제시하는 것으로써,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에 맞추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주, “이것이 나에게 좋은가?  유익이 되는가?”를 질문합니다.  하지만, 우리 믿음의 백성들은,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인가?” “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인가?”를 끊임없이 물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사도 바울은, 평생 그러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복음을 위해, 자신의 모든 권리를 포기했습니다.  즉, 그는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 이요, 동시에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의 자격을 갖추었지만, 복음 앞에서 이 모든 것을 포기했습니다.  또한, 누구의 도움도 없이, 스스로 천막을 만들며 선교를 했습니다.  때로는 복음 때문에, 위협과 핍박을 받았습니다.  감옥에도 갇혔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복음이 전해지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일이기에, 기꺼이 자신이 행할 수 있는 모든 자유를 내려놓았던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제자들은 겁에 질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에게 오순절 성령이 임하시자, 이들은 새롭게 변화하게 됩니다.  바로, 성령이 임하신 이후, 이들은 더 이상 자신을 위해 살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 성령을 받은 후에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희생을 했으니, 무엇을 얻을까?”를 기대하기 보다, 나를 통해 “하나님이 어떻게 영광 받으실까?”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됩니다.  바로, 성령 충만한 사람의 특징은, 자기 권리를 철저히 주장하는 사람들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기쁨과 감사함으로, 포기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마지막 순간, 이 같은 질문 앞에, 반드시 서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의 지나온 삶이, 과연 하나님께 영광이 되었는가?”  아니면 “나에게만 영광이 되었는가?”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 질문 앞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서게 된다라면, 우리는 비로소, 우리가 포기해야 할 것들이 보이고, 우리가 내려놓아야 할 것들도 보이며, 우리가 반드시 붙들어야 할 것 역시, 더욱 명확히 보일 것입니다.  아직 우리에게 기회가 남아 있을 때, 붙들어야 할 것을 붙들고, 바라보아야 할 것을 참으로 바라보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필라제일연합감리교회 성도님들, 세상은 우리들에게 끊임없이 이야기합니다.  “네 유익을 지켜라.  네 권리를 지켜라.  이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모든 유익과 권리를 내려놓고, 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세상은 말합니다.  “네 자유를 포기하지 말라.”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사랑 때문에 복음 때문에, 기꺼이 그 모든 자유를 내려놓아라.”

 

예수님은 우리 모두를 위해, 하늘의 영광도 포기하셨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은 우리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불공평하게 십자가에 기꺼이 내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바로 그 불공평하고, 불의한 사랑 때문에,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복음을 위해, 한 영혼을 위해, 교회를 위해,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기 위해, 우리는 이제 우리의 자유와 권리를 기꺼이, 모두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 권리보다 한 영혼을, 내 자유보다 복음을, 내 만족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선택하는 성도….  바로 그런 사람이, 오늘 주님께서 찾으시는, 참 그리스도인들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사랑 안에서, 우리의 자유를 제한하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 우리의 자유를 모두 내려놓을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의 남은 삶이 되시기를, 우리의 구원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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