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오늘도 예배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우리는, 밤새 거센 폭풍우가 지나간, 다음 날 아침을, 경험해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밤에는 크게 천둥이 치고, 비가 매섭게 쏟아지며, 바람 소리가 무섭게 들립니다. 때로는, 정전이 되어, 밖은 캄캄하고, 마치 모든 것이 단숨에 무너질 것처럼, 공포스럽습니다. 그런데 아침이 되면 어떻습니까? 무서운 비바람과 짙은 구름들이 모두 걷히고, 다시 환한 태양이 떠오르는 것을 봅니다.
사실 아침의 태양은, 어젯밤 폭풍우 때문에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언제나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보지 못했을 뿐인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질병이 찾아올 때, 사업이 어려워질 때, 가정에 문제가 생길 때,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낼 때 등…, 우리는 마치 인생의 폭풍우 앞에서,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은, 두려움과 절망의 감정에 휩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변 상항으로 인하여, 잠시 인식하지 못할 뿐이지,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라 할지라도, 그러나…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너를 굳세게 하리라,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오늘 우리에게 허락하신 본문의 말씀 역시, “그러나”의 반전을 통해, 우리 모두에게, 강력한 희망의 메시지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이 한 문장이, 인류의 역사를 바꾸었습니다. 다시 말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십자가가 끝인 줄 알았습니다. 무덤이 끝인 줄 알았습니다. 죽음이 승리한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이 모든 상황을, 단숨에 역전시키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같은 예수님의 부활이, 과연 오늘,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 여러분들과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첫째로,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 모두의 부활을 확실히 보증합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가리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라고 선언합니다. 더 이상, 농경사회가 아닌, 무역과 상업이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 우리에게 “첫 열매”라는 표현은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과거 농경사회 중심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첫 열매는,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가졌습니다. 즉, 농부가 씨를 뿌리고 오랜 시간 기다리다가, 가장 먼저 익은 곡식을 거두면, 그것을 하나님께 기쁨과 감사함으로 드렸습니다.
그 이유는, 첫 열매가, 앞으로 다가올 풍성한 추수를 보증하는, 명확한 증거요, 출발점이 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첫 열매가 있다라는 것은, 곧 뒤 따라올, 수많은 열매가 있다라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바로 이 개념을 사용합니다. 즉,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 단 한 분만 살아나신 사건이 결코 아닌 것입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부활은, 장차 이 땅의 모든 믿음의 백성들이 경험하게 될, 새로운 부활의 시작인 것입니다.
몇 해전, 한 장로님의 장례식에 참석했을 때, 설교하시는 목사님께서, 이러한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무덤은 종착역이 아닌, 환승역입니다.” 이 얼마나 은혜로운 표현입니까?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게, 무덤은 모든 것의 끝이요 종말입니다. 하지만, 우리 믿음의 백성들에게 있어, 무덤은 결코 모든 것의 끝이 아닙니다. 오리려 또 다른 삶의 시작인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이 길을 새로운 길이라, 생각 할 수도 있지만, 우리에게는 이 길을 먼저 지나가신 분이, 한 분 계십니다. 그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부활의 첫 열매로, 죽음의 무덤 문을, 활짝 열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믿음의 백성들은, 죽음을 “영원한 이별”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죽음을 “잠든다”라고 표현합니다. 오늘 본문도, “잠자는 자들”이라 언급하고 있습니다.
잠이라는 것은, 다시 깨어날 것을 전제로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믿음의 백성들의 죽음은, 영원한 소멸이 아닙니다. 부활의 아침을 기다리는 잠과 같은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어, 아담과 그리스도를 비교합니다. 즉,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첫 사람 아담은, 우리 인류의 죄를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그 죄는, 우리의 죽음을 야기했습니다. 그래서, 세상 모든 사람들은, 죽음의 영향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두 번째 아담으로 오셨습니다. 이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아담이 닫아 버린 생명의 문을, 다시 활짝 열어 주셨습니다. 다시 말해, 아담 때문에 죽음이 들어왔다면, 예수님 때문에 생명이 들어온 것입니다. 아담 때문에 절망이 왔다면, 이제는 예수님 때문에 소망이 왔습니다. 아담 때문에 무덤이 생겼다면, 예수님 때문에 부활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믿음의 백성들의 소망은, 육체의 건강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풍성한 재산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세상의 큰 성공에도 있지 않습니다. 바로 우리의 소망은, 오직 부활하신 예수님께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살아나셨기에, 우리도 반드시 다시 살아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종종, 예수님의 빈 무덤을, 단순히 먼 과거의 사건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부활은, 과거의 사건이 아닌, 장차 우리가 경험하게 될, 우리 미래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음의 백성들은, 죽음을 향해 가는 절망의 사람들이 아닌, 부활을 향해 나아가는 소망의 사람들임을, 오늘 이 시간, 다시한번 분명히 기억하며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부활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사건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질문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미 부활하셨다면, 왜 세상은 아직도 무질서 합니까?” 왜 전쟁이 있습니까? 왜 질병이 있습니까? 왜 눈물이 있습니까? 왜 교회도 어려움을 겪습니까?
사도 바울은 이에 대해,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것은,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라”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는 우선순위의 순서가 있다라는 사실입니다. 그 순서의 첫째는, 그리스도입니다. 그 다음은 주께서 재림하실 때,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하나님 나라가 온전히 완성됩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시간표보다, 우리의 시간표를 더 신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즉, 기도하면 바로 응답 받고 싶어합니다. 문제가 생기면 즉시 해결되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인내의 과정을 통해, 예나 지금이나, 묵묵히 일하고 계십니다. 다시 말해, 씨앗이 심어졌다고, 바로 열매가 맺히지 않습니다. 아기가 태어났다고, 바로 어른이 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나라 역시 점진적으로 하나님의 뜻과 계획 속에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의 부활과 함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명확히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계획 전체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미” 시작은 되었지만, “아직” 완성이 되지 않는, 그 하나님 나라의 틈새를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우리는 교회의 미래를 놓고, 벤살렘연합감리교회와의 연합을, 기도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물론, 기대도 있지만, 걱정도 있습니다. 희망도 있지만 두려움도 있는 것이,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 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에서 여전히 일하고 계신다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다 알지 못하고, 다 이해하지 못해도, 우리의 신실하신 하나님은, 결코 실수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우리의 앞 길을 다 보지 못해도, 하나님은 우리의 미래를 환히 알고 계십니다.
요셉도 하나님의 계획을 다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형들에게 애굽으로 팔려갔습니다.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습니다. 수많은 시간을, 감옥에서 눈물로도 보냈습니다. 하지만 훗날, 그는 깨달았습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 모든 것들을 선으로 바꾸셨다.” 하나님의 계획은, 언제나 우리 인간들의 계획보다 크고 위대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소유한, 부활 신앙은, 현실을 부정하는 믿음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계획을 철저히 의지하고, 신뢰하며, 따르는 순종의 믿음입니다. 그렇기에, 지금 이해되지 않는 일들 속에서도, 우리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위해 선한 일을 하고 계심을 믿으시며, 하나님의 뜻과 계획하심에, 온전히 그리고 전적으로 순종하며 나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마지막 셋째로, 부활은 우리 인생의 마지막 원수인, 죽음조차 무너지게 합니다.
오늘 본문 최고의 절정은 26절로,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무서운 적이,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돈입니까? 권력입니까? 전쟁입니까? 아닙니다. 우리 인류 최대의 원수는, 죽음입니다.
아무리 위대한 왕도, 죽음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과학자도, 죽음을 막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부유한 사람도, 죽음을 피해 갈 수 없습니다. 죽음은, 모든 사람들을, 단숨에 굴복시켜, 무릎 꿇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 같은 죽음이,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 역시, 붙잡아 두려고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무덤이 예수님을, 철저히 가두려고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사망의 권세가 예수님을 삼키려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 이 죽음을, 부활을 통해, 완전히 삼켜 버리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15장 55~57절 말씀에서, “죽음아, 너의 승리가 어디에 있느냐? 죽음아, 너의 독침이 어디에 있느냐?” 죽음의 독침은 죄요, 죄의 권세는 율법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라고 선포합니다.
과거, 제가 뉴저지 오버룩 병원에서, 1년동안 채플린 인턴 교육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 때 항암 치료를 받던, 한 환자가, 저에게 기도 부탁을 하며, 이러한 믿음의 고백을 하였습니다. “강한 암 세포가 내 몸을 이길 수는 있어도, 내 영혼을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저는 이것이 부활 신앙의 상징적 모습이라 믿습니다.
우리 믿음의 백성들은, 현실의 고난과 어려움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믿음의 백성들은, 지금 당장의 고된 현실보다, 더 크고 위대한 소망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승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승리는, 단순한 미래의 승리가 아닙니다. 이미 결정된 승리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오늘도 승리를 위해 고군분투하며 싸우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미 승리하신 주님이 걸어가신, 그 생명의 길을, 순종하며 묵묵히 따라가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그래서, 눈물을 흘려도 소망을 잃지 않습니다. 그래서, 죽음 앞에서도 기쁨과 감사함으로, 찬송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죽음의 완전한 패배 선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믿음의 백성들은 패배가 예정된 인생을 사는 사람이 아닌, 새로운 승리가 보장되고 약속된 인생을, 지금부터 살아 가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분명히 기억하시며, 부활의 주님이 허락하시는 성령의 힘과 능력으로, 매순간 승리하며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오늘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분명히 선언합니다. 그것은,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셨다라는 사실입니다. 이 말씀은 단순한 교리가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의 소망이요, 우리의 위로이며, 우리의 미래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 역시, 확실하게 보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우리 모두는, 절망보다 부활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현실의 두려움과 고난 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 수 있어야 합니다. 눈물보다 하나님의 계획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죽음보다 생명의 주님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 교회가 어떤 고난의 과정을 지나가더라도, 우리 가정에 어떤 문제가 찾아오더라도, 우리 인생의 마지막 결론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셨기에, 우리도 반드시 다시 살아날 것이다”입니다. 이 같은, 부활의 힘과 능력이 지금부터 우리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의 삶 가운데, 충만하게 임하기를,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