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오늘도 예배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오늘 우리는 매우 특별한 은혜의 자리에 서 있습니다. 지금까지 서로 다른 공동체였던 우리가, 이제 하나의 공동체가 되어,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만남은 단순히 두 교회가 하나가 된 사건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시는, 분명한 출발점입니다.
하지만, 우리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좋아하면서도, 막상 새로운 시작을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즉, 새 집으로 이사하는 것은 설레지만, 동시에 낯섭니다. 새 직장이 대단히 기대가 되지만, 한편으로 두렵기도 합니다. 교회 연합도 마찬가지입니다. 익숙했던 예배당, 익숙했던 사람들, 익숙했던 주변 상황과 환경을 떠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들은, 바벨론 포로생활 속에서, 늘 과거만을 바라보고, 회상하며, 그리워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들은 늘 이같이 말했습니다. “예전이 참 좋았는데…” “그 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그때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이들을 향해,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그것은,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모든 과거를, 즉시 말끔하게 잊어버리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 말씀의 핵심은, 우리가 더 이상 과거의 은혜에만 머물며, 그것이 집착하지 말라라는 경고의 말씀인 것입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그 이유는, 오늘도 살아 역사하시는 우리 하나님은, 현재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일을 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허락하신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 공동체 가운데 어떤 새로운 일을, 시작하시고, 장차 이루기를 원하고 계신지,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이 과거에 머무시는 분이 아닌, 새 일을 행하시는 분이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큰 기적의 사건은, 출애굽입니다. 즉, 출애굽의 과정을 통해, 이들은 홍해가 갈라지는 것을, 눈앞에서 보았습니다. 또한, 하늘에서 만나가 내려, 이들의 굶주린 배를 풍성히 채운, 은혜의 경험을 했습니다. 또한, 메마른 광야의 반석에서, 샘물이 솟아나는 것을 생생히 보며, 자신들의 갈증의 문제를 즉시 해결하였습니다. 지금 이들에게 이러한 과거의 은혜는 아름다운 추억과도 같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들을 향해, 뜻밖의 말씀을 선포하십니다. 그것은,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라는 것입니다. 공동번역 성경은 이 부분을 이렇게 번역합니다. “지나간 일을 생각하지도 말라. 흘러간 일에 마음을 묶어두지도 말라.” 다시 한번, 강조하여 말하지만, 이 말씀은 과거를 잊으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것의 본 뜻은, 과거의 은혜에만 머물러 있지 말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지난 과거 속에만 머물러 계시는 분이 아닌,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홍해가 갈라졌고, 하늘에서 만나가 내렸고, 반석에서 물이 솟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나는 홍해만 가르던 하나님이 아니다.” “나는 오늘도, 너희 가운데에서, 새로운 일을 행하는 살아있는 하나님이다.”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전 교회가 더 좋았는데.” “예전에는 사람이 참 많았는데.” “예전 목사님 때는… 이러 이러 해서 좋았는데…” “이전의 예배가 나에게는 큰 은혜가 되었는데…” 등등… 우리는 하나님이 과거 우리 공동체 안에서 행하신, 여러 일들을 그리워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실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과거의 은혜를 결코 잊지 말고 감사해야 하지만, 그러한 과거들이, 오늘 우리 삶의 우상이 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라는 것입니다. 바로, 과거의 은혜가, 오늘 우리 가운데 새롭게 일어날, 하나님의 역사를 막는 기준이 되어서는 절대 안된다라는 것입니다.
출애굽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은 광야에서 하루치의 만나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 이유는 어제의 만나가 아닌, 오늘 새롭게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믿고, 의지하며, 신뢰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어제의 만다, 다시 말해, 지금까지 우리 삶을 이끌어온, 과거의 하나님 은혜로만, 오늘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오늘도 새로운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내일도 새로운 하나님의 은혜 위의 은혜가, 더욱 필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앞에는 아직 구원의 여정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한 이후, 새로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과 같습니다. 그렇기에 광야의 길을 걷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순간 하나님의 새로운 공급의 은혜가 필요하 듯, 우리 역시, 우리 구원의 온전한 완성을 위해, 매순간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새로운 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야만,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구원의 마지막 종착점에, 온전히 다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전에는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한, 새로운 길을 가야 합니다. 두 교회가 하나가 되었다라는 것은, 이제 예전의 우리 교회가 걸어온 모습만을 기억하며 회상하는 것이 아닌, 장차 “하나님께서 앞으로 세우실 새로운 교회”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행하신 과거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되, 이것이 전적으로 붙들리지 말고, 하나님이 행하실 새로운 일들을, 기대하며 나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은 광야에서도 길을 내시고, 사막에서도 강은 내시는 분이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하나님은 새 일을 약속하시면서,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강을 내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한마디로, 광야는 길이 없는 곳입니다. 또한, 사막 역시, 물이 전혀 없는 곳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길이 없는 곳에서는 방향을 잃고, 끊임없이 헤매게 되어 있습니다. 또한, 물이 없는 곳에서는, 죽음을 경험하며 크게 좌절하고 절망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의 힘과 능력으로 도저히 해결하 수 없는, 절망의 자리에서, 새로운 소망의 길을 만드시고, 좌절의 장소에서, 새로운 생명의 강을 만드시는 분인 것입니다.
교회의 연합도 마찬가지입니다. 솔직히, 우리 인간의 눈으로, 연합을 생각하고 바라보면, 여러 우려와 걱정이 생기는 것이 사실입니다. 문화가 다르고, 환경이 다르며, 생각이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재정도 걱정되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몰라, 두려움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언제나 새로운 길을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지금 믿고 신뢰하는 하나님은, 황무지와 같은 광야에 새로운 길을, 메마른 사막에서 샘솟는 강물을 만드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에베레스트 산은, 우리 인간들의 한계와 도전을 상징하는 장소입니다. 이러한 에베레스트 산을 등반하기 위해서는, 여러 루트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루트는, 코리안 루트, 러시아 루트, 호주 루트가 있다고 합니다. 이 루트들의 이름은, 아직 아무도 다니지 않은 험난한 벽이나 능선을, 새로 발견하여 개척하게 되었을 때, 그 원정대 국가의 이름을 붙여 만들어졌습니다.
다시 말해, 처음에는 아무 길도 없었지만, 누군가가 그 길을 처음 걸어 갔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이 그 길을 따라 걸어 갔습니다. 그러자, 그 곳에 자연스럽게 등반의 길이 만들어지게 된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가장 먼저 우리 구원의 길을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우리 구원의 완성을 위해, 그 길을 순종하며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이러한 이유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유일한 길이요, 변치 않는 진리이며, 죽음을 이기는 생명이니,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하나님께 이를 수가 없다.” 바로, 예수님은 우리에게 길을 가르쳐 주시는 표지판과 같은 분이 아닌, 그 길 자체가 되어 주신 것입니다.
솔직히, 우리의 새로운 공동체 안에, 때로는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 안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확신하는 한가지 사실은, 하나님은 이미 우리가 나아갸아 햘 길을 지금도 만들고 계신다리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믿음으로, 그 길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음의 백성들은, 우리 앞에 길이 보여 믿는 사람들이 아닌, 그 길을 만드시는 하나님이 우리보다 앞서 걸어가고 계시기에, 때로는 그 길이 보이지 않아도, 담대히 걸아 갈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셋째로, 우리 하나님은 새로운 일을 통해,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향해, 오늘 본문 마지막 21절에서, 이렇게 선포하십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라.”
교회의 존재 목적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다시 말해, 교회가 커지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사람이 많아지는 것도 목적도 아닙니다. 건물이 좋아지는 것 역시, 그 목적이 아닙니다. 교회의 존재의 유일한 이유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우리 연합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연합의 목적이, 교회 생존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목적이어야 합니다. 즉, 연합을 통해 더 많은 영혼이 구원받고, 더 많은 선교가 이루어지며, 더 많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 주변과 세상 속으로 흘러 들어 간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새 일인 것입니다.
작은 씨앗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씨앗이 그대로 있으면, 하나의 씨앗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땅에 심겨지면 나무가 됩니다. 나무가 되면, 수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그리고 그 수많은 열매들이, 다시 씨앗이 되어, 무수한 새로운 생명을 맺게 됩니다.
연합도 그렇습니다. 두 교회 가운데 하나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큰 생명을 위한 새로운 씨앗이 되는 과정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새 일의 목적은, 우리의 만족이 아닌, 하나님 나라를 세우고, 죽어가는 영혼들을 살림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는 것, 그 자체임을 우리는 매순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오늘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 말씀은 언젠가 이루어질 단순한 약속이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 우리 가운데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하나님의 현재진행형적 선언입니다. 바로, 하나님은 이 모든 일들을 위해, 지금도 묵묵히 우리 가운데에서, 우리를 통해, 일하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 공동체는, 새로운 출발선에 서 있습니다. 이 출발선에서, 우리는 과거를 은혜를 기억하되, 그 과거의 은혜에만 전적으로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또한, 우리의 생각과 판단을 앞세워, 황무지나 메마른 광야를 두려워해서도 안됩니다. 오히려, 우리는, 우리보다 먼저 길을 만드시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번 연합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실, 더 큰 영광과 더 많은 생명의 역사를 기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두려움보다는 기대를, 염려보다는 믿음을 분명히 선택해야 합니다.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보며, 함께 믿음으로 걸어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공동체를 통해, 우리가 이전에 단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상상할 수 없는 은혜와 놀라운 역사를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그 은혜의 길에, 기쁨과 감사함으로 참여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지금부터 생생히 경험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 죽음에서 부활하시어, 우리의 새생명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