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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7.19 / 먼저 찾아 오시는 은혜! (누가복음 19:1~10)

할렐루야!  오늘 예배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우리 인간들은, 자신의 인생을, 불안 속에서, 그저 예상치 못한 우연의 연속이라, 종종 생각하곤 합니다.  즉, 우연히 좋은 사람을 만나고, 우연히 교회를 다니게 되었고, 우연히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단 한 번도, 우리의 구원을 우연이 이루어진 사건이라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필연적 사건, 다시 말해, 반드시 일어나야만 하는 사건으로 증언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등장하는 삭개오도, 사실 우리의 눈에는, 그저 예수님을 보기 위해, 우연히 나무에 올라기, 예수님을 만난 사람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 말씀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즉, 삭개오는, 자신이 먼저 예수님을 찾아간 것이 아닌, 오히려, 예수님께서 이미 오래전부터, 삭개오를 향하여 걸어오고 계셨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 인간들이 하나님을 찾기 전에, 하나님깨서 먼저 우리를 향해 은혜의 손길을 늘 내밀고 계셨던 것입니다.  우리 연합감리교에서는 이것을, 선행 은혜라 부릅니다.

그렇다면 이 같은 은혜가, 우리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고, 지금도 변화 시키고 있으며, 앞으로도 어떻게 변화 시킬지, 오늘 본문의 삭캐오를 통해, 여러분들과 함께 살펴 보며,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찾기 전에, 먼저 우리를 찾아 오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본문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겉으로 보면, 이같은 모습은, 단순한 이동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걸음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삭개오를 만날 당시의 상황을 살펴 보면, 예수님은 이미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예루살렘으로 향해 나아갈 결심을, 굳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명확한 목적지가 정해졌고, 십자가를 지겠다는 결심이 단호하다면, 이제 그 일을 이루기 위한,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길을 선택하는 것이 상식일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가는 가장 빠른길로 가지 않으시고, 굳이 이방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여리고를 통과하는 우회로를 선택하십니다.

 

왜 예수님은 그러한 결정을 하셨던 것이겠습니까?  바로, 삭개오 때문입니다.  삭개오는 자신이 예수님을 보기 위해, 나무 위로 올라갔다고 생각했지만, 예수님께서 먼저 그를 만나기 위해, 여리고까지 오셨던 것입니다.

 

우리 역시, 종종 이러한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먼저 찾았다.” “내가 이 교회를 먼저 선택했다.”  그러나 로마서 5장 8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느니라.”

 

삭개오와 같이, 우리 역시 자주 간과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기도하기 전에, 우리가 회개하기 전에, 우리가 하나님을 생각하기도 전에, 하나님은 이미 우리를 향해 걸어오고 계셨다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선행적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구원의 시작은 우리의 다짐이나 결심이 아닌,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찾아오시는 은혜에 의한 것으로써, 내가 먼저 하나님을 잡은 것이 아닌, 하나님이 먼저 나를 그리고 우리를 붙잡아 택하신 것임을, 분명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이름을 먼저 아시고 부르시는 은혜를 베푸십니다.

이제 삭개오를 찾아오신 예수님은, 나무 아래에 멈추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너라.”

 

예수님은 삭개오를 그 이전에,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습니다.  삭개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의 이름을 먼저 부르십니다.  성경에서 이름을 부른다라는 것은, 그 사람을 내가 너무나도 잘 안다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내가 그 존재를 알고, 그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그 당시, 삭개오는 주변 사람들 눈에, 세리요, 배신자이며,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죄를 먼저 보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의 이름을 먼저 부름으로써. 그가 누구인지, 자신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를 변화시키는 생명의 복음입니다.  즉, 우리는 우리의 원래 이름이 아닌, 세상이 붙여 준 이름으로, 살아갈때가 있습니다.  즉, 세상은 우리를, 실패한 사람, 부족한 사람, 상처 입은 사람, 혹은 죄인으라 부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옛 모습이나 지금의 모습 보다, 우리 본래 이름을 먼저 부르십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참 정체성을 회복시키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삭개오를 향해, “지금 당장 네가 회개하면, 내가 너와 함께 가겠다”라고 말씀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먼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바로,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은, 우리의 힘과 능력이 아닌, 우리를 찾아 오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먼저입니다.  회개는 그 다음입니다.  사랑이 먼저입니다.  변화는 그 다음의 일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이 순서가 참된 복음의 역사임을, 우리 모두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그 어떤 죄보다, 우리의 이름을 먼저 부르시며, 사랑으로 찾아오시는 분이심을 기억하시며, 그분의 부르심의 은혜에, 주저하거나 거부하지 마시고, 즉각적으로 응답하며 나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마지막 셋째로, 우리 하나님의 선행 은혜는, 우리의 삶을 새롭게 변화시킨다라는 사실입니다.

이제 예수님을 자신의 집에 모신 삭개오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변화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억지로 헌금을 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네가 가진 재산들을, 가난한 자들과 나누어야, 구원을 받는다고도 말씀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삭개오는 이미 변화하였습니다.  그것도 억지로가 아닌, 기쁨으로 자신의 변화를 이끌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삭개오는 스스로 변화되었던 것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율법주의자나 도덕주의자들은, 평소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당신이 먼저 변하면, 내가 용서하고 사랑하겠다.”  하지만, 복음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시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복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먼저 사랑하겠다”입니다.  바로, 이 같은 사랑이, 그 동안 완고하고 고집이 센 삭개오를, 새롭게 변화시킨 것입니다.

 

우리 연합감리교회 창시자이신, 존 웨슬리 목사님은, “우리의 거룩함이란, 의무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하나님 은혜에 대한 감사에서부터 나온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억지 순종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사랑받은 사람은, 기쁨으로 순종합니다.  아니, 순종하게 되어 있습니다.

 

삭개오는, 구원을 받기 위해, 자신의 것을, 두려움 속에서 억지로 나눈 것이 아닙니다.  그가 자신의 것을 나눈 이유는, 바로, 이미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의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행위가 구원을 만든 것이 아닌, 하나님이 허락하신 구원의 선물이, 이 같은 우리의 행위를 만든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예수님은 오늘 본문 마지막에서, 이와 같은 선언을 하십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라.”

 

다시 말해, 예수님의 이 말씀은, 다시 한번, 삭개오가 예수님을 먼저 찾아온 것이 아닌, 예수님이 먼저 그를 찾아 나선 것임을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바로, 삭개오를 찾으신 것도, 만나신 것도, 모두 예수님 이셨던 것입니다.

 

이 같은 사실은, 우리 구원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의 모든 과정이, 우리의 힘과 능력이 아닌,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임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우리가 주일을 성수하는 것 때문에, 헌금 하는 것 때문에, 봉사 하는 것 때문에, 혹은 우리 부모님의 신앙 때문에, 내가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계십니까?  우리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달려 있는 것으로써, 이 같은 구원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들은, 이제는 억지 의무가 아닌, 감사와 기쁨으로 변화된 삶을 살아가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는 종종, “내가 예수님을 믿었다.” “내가 예수님을 만났다.”라고 생각하며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그보다 더 놀라운 사실을 들려줍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먼저 우리를 찾아오셨다리는 사실입니다.  바로, 우리가 하나님을 찾기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찾으셨습니다.  심지어, 우리가 세상 속에서, 우리 이름을 잃어 버리고 살아갈 때, 주님은 우리의 이름을 알고, 그 이름을 친히 부르고 계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주님은 이미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선행 은혜입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은, 우리 인생의 여리고에 직접 찿아오고 계십니다.  즉, 우리의 삶을 바라보시고, 우리의 삶 가운데 들어 오셔서, 우리의 잊혀진 이름을 부르고 계십니다.  “나의 사랑하는 정균아, 속히 내려오라.  오늘 내가 너의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이 같은 부르심 앞에, 더 이상 주저하며 미루거나, 혹은 거부하는 모습이 아닌, 이제는 기쁨으로 응답하여, 주님의 은혜 안에서, 새로운 구원의 삶을 이루며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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