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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8.16 / 우리 상처의 마지막 해석을 바꾸라! (창세기 45:1~15)

할렐루야!  오늘도 기쁨과 감사함으로 예배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우리 모두의 인생에는, 지나온 시간의 발자취들이 있습니다.  그 안에는, 기쁜 기억도 있지만, 동시에,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아픈 상처의 기억들도 있음을 보게 됩니다.  즉,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섭섭하여,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있기도 하고, 믿었던 사람의 배신 때문에, 깊은 상처를 입기도 합니다.  가정의 문제, 관계의 문제, 실패와 좌절, 억울한 일, 질병과 경제적인 어려움 등이,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아픈 흉터의 흔적을 남기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같은 우리 마음의 상처에는, 이상한 힘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상처가 과거에 일어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나의 현재 삶에 영향을 미쳐, 나의 삶을 제한하며 구속하려 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커다란 과거의 상처들은 우리를 향해, “나는 버림받은 사람이다.”  “나는 사랑받을 수 없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내 인생을 망쳤다.”  “나는 이미 실패했다.”  “내 인생은 여기서 끝났다.”라고 말하며, 우리 인생을 허무하고 비참한 인생으로, 마지막 마침표를 찍으려 합니다.

그러나, 우리 믿음의 백성들은, 우리의 쓰디 쓴 상처가, 우리 인생의 마지막을, 결코 결정 짓지 못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허락하신 본문의 주인공, 요셉의 삶이, 이같은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즉, 요셉은 17세의 어린 나이에, 형들에게 미움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구덩이에 던져졌고, 이후에는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낯선 땅 애굽으로 끌려가, 보디발의 집에서 종으로 살았습니다.  또한, 누명으로 인하여, 억울하게 감옥에 갇히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그는 20년이 넘는, 고되고 힘든 역경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요셉은 자신의 과거를 새롭게 해석합니다.  다시 말해. 요셉은 자신의 비참한 과거를 애써 지우지 않았습니다.  형들이 자신을 팔았다는 사실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오늘 본문 속에서, 이 모든 사건에 대한 마지막 결론을, 새롭게 해석합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그렇다면, 오늘 허락하신 말씀을 통해, 우리 역시, 오늘 우리의 상처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바라보며, 해석해야 하는지, 여러분들과 함께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과거의 상처는 우리의 발목을 끊임없이 잡지만, 하나님은 그 곳에서 우리를 벗어나게 하신다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 1절과 2절을 보면, 예상치 못한 놀라운 장면이 펼쳐집니다.  즉, 요셉은 더 이상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곳에 있는 시종들을 모두 나가게 한 후, 크게 웁니다.  요셉의 울음이 어찌나도 컸던지, 오늘 본문은, “그가 큰 소리로 우니, 애굽 사람에게 들리며, 바로의 궁중에도 들리더라”라고 말씀합니다.

 

사실, 이 울음은 단순한 감정의 눈물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지나온, 22년 동안, 쌓여 있던 눈물이었습니다.  바로, 17세의 소년 요셉이 형들에게 버림받던 날의 눈물입니다.  구덩이에서 살려 달라고 외쳤지만, 철저히 외면당했던 그날의 눈물입니다.  노예로 팔려가면서 느꼈던 두려움의 눈물입니다.  감옥에서 아무도 자신을 기억하지 않는 것 같았을 때, 흘렸던 눈물입니다.

 

그러던 요셉이, 이제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러나 높은 자리에 올라갔다고 하여,  그가 가진 과거의 상처가, 저절로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간이 흐른다고 하여, 우리의 모든 상처가 저절로 치료되거나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상처는 10년이 지나도 기억납니다.  20년이 지나도 생각납니다.  어떤 말 한마디는, 어린 시절에 들었는데도, 지금까지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며, 우리를 괴롭게 합니다.

 

그렇다면 이같은 상처를 가진 우리 믿음의 백성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과거를 억지로 잊으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상처를 없었던 일처럼 만들라고도 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성경은 우리의 상처를 정확하게 직면할 것을 말씀합니다.

 

3절 말씀을 보면, 요셉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요셉이라.”  그리고 형들에게 묻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요셉은 먼저, 자신이 누구인지 명확히 밝힙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당한 과거의 일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잘못을 저지른 형들은, 그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의 기억 속에도, 22년 전의, 그 참혹한 사건이 그대로 살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이들은 아마도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는 죽은 목숨들이다.”  “우리가 행한 악행이 돌아왔으니, 이제 요셉은 우리에게 복수할 것이다.”  요셉의 형제들은, 과거의 사건이, 자신들의 미래까지 결정할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이야기의 결말을 이미 잘 알고 있듯,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과거에 일어난 사건을,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바꿀 수는 없지만, 그 사건이, 내 인생의 마지막 문장이요, 내 인생 전체의 결말로 해석 되도록, 그냥 내버려 두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상처는 끊임없이 말합니다.  “여기가 끝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의 아픈 상처는 말합니다.  “너는 실패한 인생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통해 새로운 일을 시작하겠다.”  우리의 상처는 말합니다.  “그 사람이 너의 인생을 망쳤다.”  하지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 사람의 악이, 결코 너의 미래를 결정지을 수 없다.”

 

우리 삶의 상처가 우리를 아프게 할 수는 있지만, 그 사건 자체가, 우리 인생의 마지막 결론으로 맺읍지아져서는 안됩니다.  과거는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이것입니다.  내 인생의 상처가 우리 삶의 쓴 뿌리가 되어, 우리 삶의 마지막 문장요 결론이 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깨어 기도하고, 하나님 은혜의 말씀을 힘껏 붙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했을 때, 우리는 이미 우리의 상처 속에 깊이 들어오셔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그 상처들을 싸매시며 새롭게 치료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과 비로소 대면하게 될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때로, 우리 하나님의 은혜는 악을 선으로 포장하는 것이 아닌, 악을 넘어 구원의 길을 새롭게 여신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요셉은 형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7절에서는 다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그리고 8절에서는, 결정적인 신앙 고백을 합니다.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우리는 이 말씀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즉, 요셉은 과거 형들의 모든 악행들을, 선행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분명, 형들이 요셉에게 저지른 모든 일들은, 악한 일이었습니다.  전적으로 형들이 잘못했습니다.  요셉 역시,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4절에서, 자기를 처음 소개할 때,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라고 소개했습니다.  바로, 요셉은 이같은 사건을 억지로 지우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요섭은 이 사건을, 세상의 관점이 아닌,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요셉은 “당신들이 나를 팔았습니다.”  “이것이 사건의 진실입니다”로, 끝을 맺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러한 해석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먼저 보내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참된 신앙의 모습입니다.

 

물론 우리는 이러한 생각을 할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애초에, 우리 인간들이 악을 저지르지 않도록 창조하셨으면, 이러한 일이 없었을 텐데….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악을 허용하여, 우리를 아프게 하고, 힘들게 하며, 지치게 하여, 상처를 끊임없이 만드시는가?

 

우리가 비전 세미나에서 보았듯이, 우리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에게 진정한 사랑과 순종을 나눌 수 있는, 자유 의지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렇게에, 우리가 이 자유 의지를 잘못 사용하게 되었을 때, 악과 고통이 우리 삶에 들어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할 사실은, 이같은 악과 고통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 하나님은, 악을 만드시거나, 악을 기빠하시는 분이 아닌, 우리의 불순종으로 탄생한 이 악들을 통해서, 더 큰 선을 지금도 이루어 가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에,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고난과 시련의 아픔과 상처, 그리고 진심어린 회개를 통해, 하나님을 향한 더 깊은 믿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세상의 악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악을 악이라고 인정하면서도, 그 악이 하나님의 구원보다, 더 큰 힘을 갖지는 못한다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바로, 악은 영원히 하나님을 이기지 못하며, 하나님 역시, 이 세상의 악을 방관하시는 분이 아닌, 우리를 통해, 그 악을 선으로 새롭게 바꾸어 가신다라는 사실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이 같은 악들에 대하여, 반드시 공의로운 심판을 하실 것입니다.

 

요셉의 삶을 보면, 형들이 악한 마음을 품고 요셉을 팔았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형들의 악은, 하나님의 계획을 결코 무너뜨리지는 못했습니다.  즉, 요셉은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러나 감옥이 하나님의 약속을 파기하거나 혹은 가둘 수 없었습니다.  요셉은 버림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버림받음이,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전혀 없앨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계획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을,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단숨에 바꾸어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자신이 뜻하시고 말씀하신 분명한 계획 속에서, 오늘도 우리 삶의 새로운 구원의 길을, 우리의 순종을 통해, 선하고 아름답게 만들어 가고 계시는 것입니다.

 

요셉의 삶은, 구덩이에서 애굽으로, 애굽에서 보디발의 집으로, 보디발의 집에서 감옥으로, 감옥에서 바로의 궁전으로, 궁전에서 애굽의 총리로 이어졌습니다.  그때그때만 보면, 모두 끊어진 사건처럼 보였지만, 그 사건의 내면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하나의 아름다운 구원 이야기가 됩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우리의 모든 상처와 고통들이 이해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났습니까?”  “왜 하나님께서 이것을 허락하셨습니까?”  “왜 나는 이 길을 지나가야 합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과 계획은, 우리의 현재만으로, 결코 판단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한 페이지를 보고 있지만, 하나님은 책 전체를 보고 계십니다.  우리는 오늘을 보고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 삶의 내일을 보고 계십니다.  우리는 한 사건을 보고 있지만, 하나님은 그 사건을 넘어 새롭게 이루어질 구원의 이야기를, 오늘고 생생히 바라 보며, 인도하고 계십니다.

 

요셉은 그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과거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습니다.  “내가 버림받았다”에서, “하나님께서 먼저 보내셨다”로 바뀌었습니다.  “내 인생이 망가졌다”에서, “하나님께서 생명을 구원하셨다”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그 일들이 나를 아프게 했지만, 그 일이 내 인생의 마지막을 결정하지는 못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내 인생의 마지막을 결정합니다”란 고백으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마지막 셋째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상처의 마지막 문장을, 용서와 생명으로 바꾼다는 사실입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얼마든지 복수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요셉에게는 강력한 힘이 있었습니다.  형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들을 강하게 처벌할 수도 있었습니다.  22년 동안 쌓인 분노를 한꺼번에 쏟아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자기 아우 베냐민의 목을 안고 울었고, 또한 형들과도 입맞추며 안고 울었습니다.  이 장면은, 22년 동안 끊어졌던 관계가, 다시 새롭게 연결됨을 보여 줍니다.  22년 동안 하지 못했던 대화가 다시 시작됨을 보여 줍니다.  상처의 기억으로 굳어 있던 가족이, 다시 서로의 품에 안긴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요셉이 단순히 “괜찮아”라고 말한 것이 아닙니다.  바로, 요셉은 자신의 상처를 하나님의 구원 이야기 속에서, 다시 새롭게 해석했기에, 비로소 형들을 용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용서는 과거에 아무 일이 없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용서는, 잘못을 없었던 것으로 만드는 것도 아닙니다.  오늘 성경이 우리들에게 선포하고 있는 용서는, “당신이 나에게 한 일이, 나의 남은 인생을 지배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겠다”라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나에게 상처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이미 떠났는데도, 내가 계속 그 사람을 미워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내 삶에서,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 사건은 끝났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계속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용서는 그 영향력을 하나님 손에 전적으로 맡겨 드리는 것입니다.  즉, “주님, 그 사람의 잘못을 주님께 맡깁니다.”  “주님, 내가 받은 상처들을 모두 주님께 맡깁니다.”  “나는 더 이상 그 사건이, 내 인생의 마지막 결론이 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라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그렇게 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인생 마지막 문장은, “형들이 나를 팔았다.”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먼저 보내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생명을 구원하셨다.”라는 문장으로 이어졌습니다.

 

우리의 삶속에서, 하나님의 한량없는 사랑과 은혜의 손길을 경험한 사람들은, 더이상 자신의 상처를, 다른 사람들을 죽이는 칼로 사용하지 않고,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살리는 통로가 됩니다.  요셉의 상처는 복수의 도구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상처가, 이제는 하나님의 손에 맡겨졌기에, 생명을 살리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모든 아픔과 상처들을 모두 주님 앞에 맡겨드림으로서, 이러한 삶을 매순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오늘 우리는 요셉의 인생을 함께 보았습니다.  17세의 소년이, 형들에게 팔렸습니다.  구덩이에 던져졌습니다.  노예가 되었습니다.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모든 자리에서 요셉의 인생을 결코 놓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요셉은 형들 앞에서 자신의 과거를 ,하나님의 관점으로 다시 해석합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우리의 삶에도 아직 해결되지 않은, 여러 상처들이 분명 있을 것입니다.  “나는 왜 이런 일을 당했을까?”  “왜 그 사람은 나에게 그렇게 했을까?”  “왜 우리 가정에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왜 하나님은 나를 이 길로 보내셨을까?”  그 질문을, 억지로 지우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또한, 그 질문이, 우리 삶의 깊은 상처가 되도록, 그냥 내버려 두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시간,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아픔과 상처들을 맡기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인생에는 아직 다음 페이지가 있습니다.  아직, 하나님께서 쓰실 문장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군가 우리 삶에, 상처의 마침표를 찍었다면, 그 마침표를 하나님께 모두 내어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내 삶의 마지막 문장은, 내 상처가 쓰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내 삶의 주인은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 한분 이십니다.”  “과거의 악이 나의 미래를 결정하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내 삶의 마지막 결론을 내릴 것입니다.”

 

우리 모두, 더 이상, 과거의 상처가 아닌, 우리 삶을 향한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과 계획을 바라보며, 원망이 아니라 소망으로, 복수가 아니라 용서로, 절망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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