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오늘도 예배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우리는, 저마다의 삶속에서,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학력과 경력을 자랑합니다. 어떤 사람은 재산과 사회적 지위를 자랑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이룬 성공과 업적을 자랑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성실하게 살아왔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을 도왔는지, 얼마나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 왔는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물론 열심히 살아가는 것은 귀한 일입니다. 즉, 맡은 일을 성실하게 감당하고, 가정을 돌보고, 교회를 섬기며,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아가려는 노력은, 대단히 귀하고 소중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에게 허락하신 본문 말씀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그것은, “우리가 자랑하는 과연 그것이, 정말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가? 진정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그것들이, 예수 그리스도보다 더 귀한 것인가?”
빌립보서 3장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이 과거에 자랑스럽게 여기던, 많은 것들을 이야기합니다. 다시 말해, 그는 좋은 가문에서 태어났고, 철저히 율법을 지켰으며, 누구보다 열심히 종교생활을 했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기준으로 보면, 정말 자랑할 것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그의 생각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과거에는 유익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이제는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됩니다. 자신이 자랑하던 것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훨씬 더 귀하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8절에서 이러한 고백을 합니다.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그렇다면, 우리 역시, 사도 바울과 같이 “오직 예수 때문에” 살아가기 위해, 과연 우리 삶에 무엇이 필요한지, 여러분들과 함께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우리는 예수님 없는 자랑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시작에서, 자신이 세상에 얼마나 자랑할 것이 많은 사람인지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가진 조건들을 하나씩 열거합니다. 즉, 나는 할례 받은 사람이며, 이스라엘 백성이고, 베냐민 지파 출신이며,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다.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었고,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했으며,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다고 여길 만큼 철저하게 살았던 사람이다. 이 모든 것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사도 바울은, 당시 유대 사회에서 인정받을 만한 종교적 배경과 열심을 모두 갖춘, 완벽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그의 삶에, 문제가 하나 생깁니다. 그것은, 이 모든 것들이, 예수 그리스도보다 앞자리에 놓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즉, 이전의 사도 바울은, 자신의 종교적 열심을 의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의롭다고 크게 인정받을 수 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고,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다시 말해 사도 바울은 자신의 의를, 그 어떤 것보다, 그 무엇보다, 강하게 확신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잘못된 확신은,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철저히 무시하고 거스르는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사도 바울은 자신이 완전히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라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바로, 지금까지 그가 그토록 자랑하며 앞세웠던 것들이, 도리어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데, 너무나도 큰 장애물이 되고 있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7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 보아여 할 표현은, “그리스도를 위하여”입니다. 즉, 사도 바울은, 지금 자신의 모든 과거가 쓸모없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학문과 열심, 배경과 경험 자체가 악하다는 뜻도 아닙니다. 여기서의 핵심은, 지금까지 그것들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의를 증명하고 내세우는 근거로 삼아 왔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 없이도, 우리 자신이 충분히 의롭다라고 생각한다면, 내 삶에 하나님의 은혜가 전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바로, 큰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모습이 부지불식간에, 얼마든지 드러날 수 있습니다. 즉, “나는 이 교회에 오래 다녔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습니다.” “나는 교회를 위해 많은 일을 했습니다.” “나는 남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아왔습니다.”
물론, 이런 고백 자체가 잘못은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러한 우리의 고백이, 우리 믿음과 신앙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거나, 혹은 하나님 앞에서 내세울 나의 의와 공로가 된다면, 우리는 반드시 조심해야 합니다.
어쩌면, 우리 인간들의 본성은, 세상에서 만이 아닌, 교회 안에서도 자신의 수고와 노력을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또한, 내가 더 이 교회에 오래 다녔으니, 내가 더 오래 봉사했으니, 내 생각과 내 판단이 옳고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더 많이 헌신했으니, 다른 사람들보다 더 크게 인정받아야 한다라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이러한 마음이 커지면, 섬김은 자랑이 되고, 봉사는 경쟁이 되며, 교회는 서로를 세워주는 공동체가 아닌, 서로를 비교하고 판단하는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우리에게 이 같은 길이 아닌, 전혀 다른 새로운 길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우리가 구원받은 것이, 우리의 공로 때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때문이란 것입니다. 바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완벽하기 때문이 아닌, 하나님의 독생자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공로를 주변 사람들과 세상에 자랑하기보다, 주님의 은혜만을 자랑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자랑은 “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가?”가 아닌, “예수님께서 나 같은 죄인을 얼마나 사랑하셨는가?”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오늘 본문 말씀은, 세상이 인정하는 성공과 성취를, 모두 버려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오늘 말씀의 핵심은, 최선을 다해 일하고, 노력하며, 성취하되, 이러한 것들이, 장차 우리 삶의 주인이 되지 않게 하라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그렇기에, 지금,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우리의 힘과 능력 그리고 지혜로 성취한 것들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것들임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순간 우리가 이룬 성취 앞에서, “주님, 제가 자랑할 것은 제 공로가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임을, 결코 잊지 말고 고백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둘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삼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8절에서 한층 더 깊은 고백을 합니다. 그것은,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여기서 사도 바울은, 단순히 과거의 자랑을 포기하는 데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는, 그보다 훨씬 더 귀한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예수를 아는 지식”을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예수님에 관한 성경 지식을 많이 쌓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하는, 예수를 아는 지식은, 단순한 정보의 양이 아닌, 예수님을 믿고, 그분과 관계를 맺으며, 그분의 은혜를 경험하고, 그분을 자기 삶의 주님으로 모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로, 이 같은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야 말로, 우리 믿음의 백성들의 본질적 생각과 가치관, 그리고 삶의 방향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원동력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 과거의 사도 바울은, 그 어떤 것 보다, 자신의 의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뭐라 하든, 자신의 뜻과 생각이, 언제나 옳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후, 그는 더 이상 자기 자신이 아닌,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 그 한 분만을 온전히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9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사도 바울의 소원은, 자신이 어디에 있든, 어떤 상황에 있든, 심지어 마지막 날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에도,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으로써, 발견되어 인정받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제 그는, 더이상 자신의 의를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율법을 얼마나 잘 지켰는가로 하나님 앞에, 서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제,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게 되는, 하나님의 의 만을, 붙드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를 향한 복음의 핵심 중의 핵심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무엇으로, 감히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선행입니까? 우리의 봉사입니까? 우리의 헌금입니까? 우리의 오랜 신앙 경력입니까? 집사, 권사, 장로, 목사라는 직분입니까? 이 모든 것들은, 그저 하나님께 당연히 감사하며, 우리가 드려야 할, 믿음의 귀한 열매들입니다. 어떠한 순간에도, 이러한 것들이 우리를 구원하는 원인이요 근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오직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 단 한 분 뿐이십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의 죄사함을 위해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생활의 중심은,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가에 있기보다, 내가 지금 누구를 의지하고 있는가에 달려 있는지, 분명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교회에 나오는 가장 중요한 이유, 내가 봉사하고 섬기는 가장 중요한 이유, 내가 기도하고 말씀을 읽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다름아닌,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야 합니다. 바로, 내가 예수님을 더 사랑하기 위해 예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뜻을 더 잘 알기 위해 말씀을 읽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더 닮기 위해 이웃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신앙의 최종 목표는, 단순히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더 깊이 알고, 그분을 닮아가는 것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백성들에게 있어, 우리의 가장 큰 재산은, 돈이나 권력 혹은 명예가 아닙니다. 우리의 가장 큰 자랑은 성취나 경력이 아닙니다. 우리의 가장 큰 보물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더 깊이 알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분의 말씀을 가까이하시기 바랍니다. 그분의 사랑 안에 거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매일 이러한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주님, 제가 가진 모든 것보다, 예수님을 더 귀히 여기게 하여 주시 옵소서.”
마지막 셋째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온전히 닮아가기 위해, 푯대를 향해 달려 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10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아는 것을, 단순히 마음의 위로를 얻는 것이라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리스도를 알고자 한다라는 것은, 세상의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이 아닌, 그분의 부활 능력을 경험하고, 그분의 고난에도 참여하며, 그분을 닮아가는 삶을 살아간다라는 것이라 말합니다.
우리 믿음의 백성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뻐합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셨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다는 사실을 굳게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부활의 능력을 단지 미래의 천국에서만 누릴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지금 우리의 삶에서도 부활의 능력을 경험해야 한다라고 선포합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말하는 부활의 능력이 무엇이겠습니까? 사도 바울이 선포하는 부활의 능력은, 미움으로 가득했던 마음이 사랑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용서할 수 없었던 사람들을 용서하기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자기중심적으로 살던 사람이, 이제는 이웃들을 섬기는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절망 가운데 있던 사람이, 이젠 하나님을 바라보며 다시 일어서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의 예수의 생명이, 우리 안에서 부활하여 역사하는, 생생한 장면인 것입니다.
물론,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길이, 항상 편안한 것만은 아닙니다. 때로는 손해를 감수해야 합니다. 내 자존심을 내려놓아야 할 때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양보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내 뜻보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선택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걸으셨듯이, 우리도 때로는 자기 중심적인 욕심을 철저히 그리고 모두 내려놓고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삶을, 자기 인생의 유일한 푯대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사도 바울 스스로가, 자신의 믿음이, 이미 완성되었다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라는 사실입니다. 그는 12절에서,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라고 겸손히 고백합니다.
그 당시, 사도 바울은 이미 위대한 사도였습니다. 수많은 교회를 세웠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온갖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참 믿음의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자기 자신은, 이미 완전해졌다라고 언급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일은, 단 한번에 이루어 지는 일회적 사건이 아닌, 평생 계속되어야 하는, 반복의 연속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과거의 성공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지금까지 이룬 일만을 바라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과감히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새롭게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힘껏 달려 갔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하나를 발견합니다. 바로, 믿음은 과거의 은혜를 기억하지만, 동시에 과거의 성취에, 결코 머물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과거의 은혜로운 경험을 지속적으로 이야기합니다. “예전에 제가 얼마나 뜨겁게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예전에 하나님께서 제게 큰 은혜를 주셨습니다.” “예전에 교회를 위해 참 열심히 봉사했습니다.” 물론, 그 모든 기억은 소중합니다. 그러나, 과거에 은혜를 받았다는 사실이, 지금 오늘 우리의 순종을, 결코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다시 말해, 과거에 기도했다고 해서, 오늘 기도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과거에 봉사했다고 해서, 오늘 섬김을 멈춰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과거에 믿음이 좋았다고 해서, 오늘 그리스도를 닮아가기 위한 노력을 멈춰도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또한, 우리는 과거의 실패에만 붙잡혀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실수할 수 있습니다. 넘어질 수 있습니다. 잘못된 선택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실패가 우리 인생의 마지막 모습이 되도록 허락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와, 다시 새로운 은혜 안에서 걸어가야 합니다.
우리에게도 명확한 인생의 푯대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푯대는, 단순히 더 많은 돈을 버는 것, 다른 사람보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또한, 교회 안에서, 더 많은 인정과 칭찬을 받는 것이, 우리 삶의 푯대가 되어서도 안 됩니다. 우리의 푯대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바로, 오늘보다 내일, 예수님을 더 사랑하는 것, 오늘보다 내일, 주님의 말씀에 더 순종하는 것, 오늘보다 내일, 다른 사람을 더 따뜻하게 품는 것, 오늘보다 내일, 하나님께 더 겸손히 충성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달려가야 할 최종적 구원의 길인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생명의 길로 초청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 초청에 응답하여, 다시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씀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다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푯대를 향해, 마지막까지 담대히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인생의 목표가, 세상에서 가장 크게 인정받는 사람이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닮아가는 사람이 되는 것임을 믿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분명한 믿음의 길을 보여줍니다. 첫째는, 예수님 없는 육체의 자랑은, 모두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셋째로, 우리 모두는, 예수님을 닮아가기 위한 유일한 푯대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이 끝나는 마지막 날, 하나님 앞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가졌는지가 아닙니다. 얼마나 높은 자리에 있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았는지도,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진정 중요한 것은, 우리가 누구에게 속한 사람인가 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저와 여러분들은,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입니까?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여전히 세상의 인정과 성공을 쫓아가며, 우리의 인생을 헛되이 낭비하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입니까?
우리 믿음의 백성들은, 이 질문 앞에서 이러한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 제가 자랑할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 제가 가장 얻고 싶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 제가 평생 달려갈 푯대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고백이, 우리 가정과 교회, 그리고 일터에서, 우리의 구체적 실천으로 나타나기를 소원합니다. 그리하여, 마지막 날 주님 앞에 섰을 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으로 온전히 발견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