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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1.8 / 그들의 행위를 본받지 말라! (마태복음 23:1~12)

할렐루야!  오늘도 예배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여러분들은, 언제 여러분들의 주변 사람들이, 참으로 아름답게 느껴 지시는지요?  아마도, 자신을 얼마든지 드러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용하고 묵묵히 아무도 모르게 다른 사람들을 섬길 때, 자신이 가진 막강한 권력의 자리를, 자신의 부나 명예를 추구하기 위한 욕심의 자리가 아닌, 많은 사람들을 위한 엄중한 책임의 자리로 받아드릴 때, 그리고 누군가를 높이기 위해, 자기 자신을 기꺼이 한없이 낮출 때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종 높은 자리에 앉아, 떵떵거리는 삶을 살고 싶어 합니다.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받고 싶어 합니다.  내가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합니다.

 

물론, 인정받고 싶은 마음 자체가, 모두 잘못된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다만, 여기서의 문제는, 인정받기 위해 진실을 잃고,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해, 다른 사람을 험담하고 낮추며, 섬김을 받아야 할 권리만 생각하고, 섬겨야 할 책임은 모두 망각하는 데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그 당시 이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종교 지도자들을 엄히 책망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의 행위를 본받지 말라.”

 

이 말씀은, 단지 과거 예수님 주변에 있던 사람들에게만, 주어진 말씀이 아닙니다.  오늘 교회에서 직분을 맡은 사람들, 가정과 사회에서 책임을 가진 사람들,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고백하는 우리 모두를 향해, 직접 주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여러 직분과 삶의 자리 안에서, 장차 어떠한 모습과 삶의 자세로 살아가야 하는지, 오늘 말씀을 통해 여러분들과 함께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우리의 섬김 없는 권위는, 반드시 무너진다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2절에서, 예수님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당시, 이들은 율법을 가르치는 권위를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말을 존중했고, 그들의 가르침을 중요히 여겼습니다.  예수님 역시, 이들의 가르침 자체를 모두 부정하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가진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의 말과 삶이, 전혀 일치하지 않았다라는 사실입니다.  즉,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지만, 정작 그 말씀대로 살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엄격한 기준을 요구하면서도, 자신들은 그 기준을 전혀 따르려고도 혹은 지키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예수님은 오늘 본문 4절에서, 이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바로,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면서도, 그 짐을 전혀 함께 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모습을, “섬김 없는 권위의 모습”으로 강하게 질책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서 직분을 맡았다라는 것은, 다른 사람들보다 높은 사람이 되었다는는 뜻이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더 많은 사람을 섬기라는,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그렇기에 목회자를 포함한 교회의 직분자들은, 더욱 성도들의 짐을 함께 져야 합니다.  다시 말해, 교회의 직분자들은, 교회를 섬기고 성도들을 돌보는 책임을 맡은 사람들로서, 이들은 다른 사람들 보다 주변 성도들을 더욱 적극적으로, 사랑과 긍휼함을 가지고, 돌보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듯, 참된 권위는 사람을 억압하며 누르는 데서, 절대 나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넘어진 사람들을 함께 세우고, 힘든 사람들의 짐을 함께 나누어 지며, 연약한 사람을 섬기며 돌보는 데서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이러한 모습은, 데살로니가전서 2장에서도 발견됩니다.  즉,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면서, 성도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기 목숨까지도 나누어 주기를, 기뻐했다라고 고백합니다.  바로, 위대한 이방인의 사도인, 사도 바울의 진정한 권위는, 자신을 높이는 데에 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끊임없이 복음을 위해, 함께 고통을 받고,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주변 성도들과 함께 나누고, 내어주는 데에 있었습니다.

예수님 역시, 마태복음 20:28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우리 예수님은 가장 높은 분이셨지만, 가장 낮은 자리로 친히 내려오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을 모두 내어주심으로써,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르는 참 제자들은, 높은 자리를 자랑하거나 탐하는 사람들이 아닌, 늘 낮은 자리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우리 교회 역시, 참된 예수님을 따르는 교회가 되려면, 권위보다 섬김이 앞서야 합니다.  직분보다 사랑이 앞서야 합니다.  말보다는 언제나 실천의 삶이 앞서야 합니다.  그러므로, 섬김 없는 권위는 사람을 무너뜨리지만, 섬김의 권위는 사람을 세우게 됨을 기억하시며, 우리 모두 사랑과 섬김을 통해, 믿음의 아름다운 권위를 세워 나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둘째로, 세상의 권위적 이름보다, 사랑의 관계가 우선이고, 중요하다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8절에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그리고 이어서, 아버지라 불리는 것과, 지도자라 불리는 것에 대해서도, 주의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이 말씀은 단순히 어떤 호칭도 사용하지 말라는 뜻이 아닌, 인간의 권위와 명예가, 하나님보다 앞서서는 결코 안 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참된 공동체는 이름과 지위로, 사람들을 구분하는 공동체가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다 형제, 자매니라.”  다시 말해,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동일하고도 소중한, 자녀요 백성들이란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 사람들을 구분합니다.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 가진 사람과 가지지 못한 사람, 영향력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마치 중요한 계급처럼 나눕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러한 모든 구분과 차별을 거부하시고, 우리 모두를 형제 자매라고 부르십니다.

 

이것은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서 목회자와 성도는, 각자의 역할과 책임이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 모두 은혜가 필요한, 동일한 존재들입니다.  그 누구도, 자신의 직분이나 지위를 이용하여,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억압해서는 안 됩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서로 다른 직분과 은사를 가지고 있지만, 모두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하나의 교유하고 중요한 지체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교회 안에서 만이 아닌, 우리 가정과 일터, 그리고 사회와 정치에서도, 반드시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지난주 미국 중간선거가 끝났습니다.  예상보다 훨씬 더, 공화당이 크게 패배하였습니다.  특별히,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불린 텍사스에서, 민주당 제임스 탈라리코 후보가 상원 선거에서 승리 했고, 심지어 캔자스에서는 94년만에 민주당 애덤 해밀턴 후보가 상원 선거에서 승리했습니다.  특별히, 이 두 분 가운데, 한 분은 참신한 젊은 신학생 출신이고, 다른 한 분은 우리 연합감리교회의 큰 존경받는 중견 목사님이십니다.  이들은 선거 내내, 네거티브 선거 전략을 거부하고, 신앙과 목회적 경험을 앞세우며, 다시 이 미국을 올바른 하나님의 뜻과 말씀 위에 세우겠다라고 약속했습니다.

 

장로교 신학생 출신인 탈라리코는 승리 연설에서, 예수님을 이웃 사랑을 친히 말씀하시고 가르치신 분으로 언급하며, 정치적 분열을 넘어, 모든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라는 메시지를 강조했습니다.  그는 정치적 증오가. 사람들의 삶을 개선할 수 없으며, 오직 우리 주변 이웃들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바로 우리 정치의 중요한 지향점이 되어야 한다라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또한, 감리교 목회자이신, 애덤 해밀턴 당선자는, 승리 연설에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언급했습니다.  그는 정치에서도, 서로에게 어떠한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서로를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지를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라고 말하며,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정치와 연결하며, 앞으로 이것을 적극적으로 실천할 것임을 약속했습니다.

 

이러한 메시지는, 오늘 본문의 예수님 말씀과 직접적으로 연결이 됩니다.  즉, 정치인들은 자신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국민들을 섬기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입니다.  바로, 이들에게 주어진 권력은, 자기 영광을 위한 수단이 아닌, 이웃들의 삶을 적극적으로 돌보고, 공동의 아름다운 선을 이루기 위한, 거룩한 책임에 해당 한다라는 사실입니다.

 

물론, 우리는 어떤 정치인도 예수님과 같이, 완전하고 흠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기독교 정치인들의 모든 정책이나 판단이, 성경의 가르침과 일치한다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강조하는 이웃 사랑, 약자를 돌보는 마음, 서로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려는 태도, 공동체를 위해 일하려는 책임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 함께 격려하며, 이 같은 새로운 움직임을 지속적으로 이어 갈 수 있도록, 끊임없는 힘을 불어넣어 주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 기독교인들은 정치적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우리 주변 이웃들을 미워해서는 안 됩니다.  나와 다른 사람도, 여전히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그 분의 자녀들임을 우리는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하여, 교회는 특정 정당의 편을 드는 곳은 절대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을 선포하는 사람들이라면, 우리는 그들을 적극적으로 후원하고, 격려하며, 기도함으로써, 모든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따라, 행하도록 함께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참으로 지지해야 할 가장 중요한 모습과 자세는, 특정 정당이나 특정 정치인의 이름이 아닌, 바로 하나님 나라의 가치 추구임을 기억하시며, 앞으로 우리가 선택한 정치인들이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선하고 아름답게 이루어 가도록, 함께 후원하고, 함께 기도하는 거룩한 동역자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마지막 셋째로, 자기를 낮추는 자는, 비로소 하나님 앞에서 높아진다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 11절에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그리고 12절에서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솔직히 이 말씀은, 세상의 가치관과 정반대입니다.  즉, 세상은 높은 자리로 올라가라고 말합니다.  더 많은 권력을 가지라고 말합니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향해, 끊임없이 낮아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단순히 겸손한 마음을 가지라는 도덕적인 권면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앞으로 따르고 지켜야 할, 하나님 나라의 삶의 모습이요, 우리 삶의 존재 방식인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직접, 이 길을 걸으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하늘의 모든 영광을 내려놓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사람들의 섬김을 받기보다, 병든 자를 돌보셨고, 죄인을 용서하셨으며, 제자들의 발을 친히 씻기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십자가에서 자신을 완전히 낮추셨습니다.  세상은 십자가를 패배라고 생각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십자가를 통해, 우리 모두를 위한 새로운 구원의 길을 여셨습니다.  바로, 세상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하나님의 귀하고 거룩한 사랑이, 가장 높이 드러난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이 말씀 앞에서, 우리 자신을 철저히 돌아보아야 합니다.  나는 교회에서 어떤 자리를 원하고 있는가?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혹시 나의 섬김을 지배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가정에서 내 뜻을 관철하려고만 하지 않는가?  일터에서 다른 사람의 수고를,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고 있지는 않는가?

 

우리가 낮아진다는 것은, 우리 자신의 가치를 모두 없애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의 자리를, 올바로 찾는 과정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얼마든지 높일 수 있습니다.  자기의 권리를 내려 놓을 수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아픔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명예를 앞세우지 않는 사람은, 공동체의 평화와 하나됨을 이루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3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제사장들이 친히 언약궤를 메고, 가장 먼저 앞서가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백성들보다, 먼저 물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사명은, 백성들 위에 서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따라, 앞에서 섬기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교회와 사회의 지도자들도 그러해야 합니다.  지도자는,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을 위해, 먼저 책임지는 사람입니다.  정치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민의 고통을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서로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어려운 이웃들을 돌보며, 정의와 평화를 위해 일해야 합니다.   우리도 그러한 지도자들을 적극적으로 선택하고, 격려해야 합니다.  동시에, 그들이 겸손과 섬김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그리하여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책임을 다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우리 가정과 교회, 그리고 일터에서, 끊임없이 낮은 자리를 선택해야 합니다.  왜나햐면, 하나님 나라의 아름다운 꽃과 열매는, 높은 자리에서 피는 것이 아닌, 언제나 사랑으로 자신을 낮추는, 삶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아름답게 피어나 열매를 맺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오늘 예수님은 우리 모두에게 이렇게 물으십니다.  “너는 지금 어떤 자리에 앉아 있느냐?”  바로 이어, 더 중요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십니다.  “그 자리에서 지금 너는 누구를 섬기고 있느냐?”

 

우리는 높은 자리에 앉는 것보다, 그 자리에서 지금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바로,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은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직분을 가진 사람은, 더 많이 섬겨야 합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은, 더 큰 책임을 져야 합니다.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은, 그 고백을 삶으로 명백히 보여주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탈라리코와 해밀턴의 연설에서, 이웃 사랑과 섬김의 가치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이들이 강조한 사랑과 공동체의 책임이, 실제 정치와 사회 속에서 열매 맺도록, 우리는 격려하며, 모든 정치 지도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고 정의롭게, 국민을 섬기도록, 우리는 그들을 비난하기에 앞서, 그렇게 하도록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보다, 더 크고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부터, 오늘 변화하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 교회가 사람을 높이는 교회가 아니라, 서로를 섬기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가정이,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힘없는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고, 서로 다른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으며,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는 사회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은 높은 자리에서 성공의 꽃을 찾지만, 우리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 삶의 낮은 자리에서, 사랑의 꽃을 피우심을 분명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우리 가정에서, 우리 교회에서, 우리 일터에서, 그리고 이웃을 섬기는 모든 삶의 자리에서, 자신을 낮추고 사랑을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그러 했을 때, 우리 하나님께서는 그 낮은 자리에서, 아름다운 생명의 꽃을 새롭게 피우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금 우리 마음과 삶속에 새기며, 언제 어디서나 가장 낮은 자리에서, 사랑의 꽃을 피우는 참 믿음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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