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예배에 참여신 모든 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천로역정이라는 작품과 함께,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사랑받는, 기독교 고전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란 책입니다.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이 책을 두고, “성경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책이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 책의 저자인 제임스 페커는, 서론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놀라운 에너지를 가지고 살며, 하나님에 대한 위대한 생각을 품고, 하나님을 위해 담대히 행동하며, 무엇보다 하나님 안에서 큰 기쁨과 만족을 누린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과거와는 다르게, 우리는 지식의 홍수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인터넷과 유튜브를 통해, 성경도 깊이 알고, 유명한 목사님들을 통해, 좋은 설교도 많이 듣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한결 같은 질문 하나를, 우리들에게 던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은 정말 하나님을 알고 있느냐?”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알고 있는지,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과 유대 종교 지도자들 사이에 벌어진, 마지막 논쟁 장면입니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그 누구 보다 성경을 잘 알고, 이해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들은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에서는, 참으로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의 두 가지 기준을,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첫째로,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은, 사랑으로 나타난다라는 것입니다.
한 율법사가 예수님께 이러한 질문을 합니다.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큽니까?” 당시 유대인들은, 율법이 613개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613은 인간 몸에 존재하는 모든 뼈의 갯수로써, 하나님의 율법은 우리 인간들을 지탱하는 중요한 요소라 믿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유대 지도자들은, 이들 가운데, “어떤 계명이 더 중요한가?”, “어떤 계명이 더 크고 작은가?” 끊임없이 토론하고 논쟁하였습니다. 이들은, 율법을 분석하고 분류하는 데는, 대단히 뛰어났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논리적 사고 속에서, 정작 율법의 본질적 핵심을 놓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이 같은 복잡한 논쟁을, 단 두가지 계명으로 정리하셨습니다.
먼저, 첫 번째 계명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입니다. 이 말씀은 신명기 6:5에, 이미 기록된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한다”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그것은, 우리 존재 전체로, 하나님을 사랑하라라는 뜻입니다. 즉, 우리의 생각과 말로 만이 아닌, 우리의 행동과 삶 전체로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따르며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이어, 예수님은 두 번째 계명을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입니다. 이 말씀은, 레위기 19:18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발견합니다. 그것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결코 분리될 수 없다라는 사실입니다. 즉, 하나님을 사랑한다라고 말하면서, 우리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는 다라는 것은, 참된 신앙이 아닌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요한일서 4장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가, 어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바로, 참된 신앙은, 머리에 있는 사랑에 대한 지식이 아닌, 삶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사랑의 실천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반드시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흘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호세아 6:6절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 아는 것을 원하노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모습은, 단순히 주일 교회에 모여, 예배만들 드리는, 종교 행위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사랑하는 만큼, 그 사랑을 우리 주변 사람들에게 전하는, 구체적이며 실천적인 사랑을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 삶에 구체적 사랑의 실천이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이 없는 것임을 분명히 기억하시며,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실천을 통해, 온전한 신앙에 이르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란 사실입니다.
이제 유대 종교자들은, 자신들이 질문하는 상황에서, 예수님이 질문을 하시는 상황으로, 바뀌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향해 이렇게 질문하십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는 누구의 자손이냐?” 바리새인들은 즉시 대답했습니다. “다윗의 자손입니다.” 물론, 이 대답은 논리적으로 틀리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메시아가 다윗의 혈통에서 오실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 하나가 발생합니다. 그것은, 이 같은 사실에, 자신들의 생각과 판단을 첨가하여, 장차 오실 메시아가, 위대한 왕의 후손 정도로, 오실 것이라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들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하시고자, 시편 110편을 인용하십니다. 즉, “주께서 내 주께 말씀하시기를….” 여기에는 놀라운 사실 하나가 숨어 있습니다. 그것은, 다윗이 장차 오실 메시아를 “내 주”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과거의 조상이, 자신의 후손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이겠습니까? 만약, 이것이 가능하다라면, 이 말씀의 의미는 분명합니다. 즉, 메시아는 단순한 다윗의 자손 중, 장차 탄생할 한 인간이 아닌, 하늘에서 직접 내려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란 사실입니다. 바로, 예수님은 지금 이 같은 사실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바로, “나는 단순한 다윗의 후손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다윗이 섬긴 주님이다”라는 것을,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 명확히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성경 지식이 많아도,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바로 알지 못하면, 그 지식은,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생명의 지식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를 멸망으로 이끄는, 잘못된 지식이 될 것입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훌륭한 교사, 위대한 종교 지도자, 사랑의 스승 정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살아 계신 만왕의 왕이시요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실 구세주란 사실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 삶의 주인으로 모시는 순간, 우리 삶은 완전히 달라지게 됩니다. 즉, 사랑이 더 이상 율법의 의무가 아닌, 이제는 우리를 이미 구원하신 하나님 사랑에 대한, 감사의 반응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죄인 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바로,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기 위해, 당신의 거룩함을 우리에게 선물로 허락해 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은, 분명하게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의, 두 가지 기준을 말합니다. 먼저, 그 지식은 사랑의 실천으로 나타나는 것이요, 다음으로, 그 지식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고백하는 믿음이란 사실입니다. 사실, 이 두 가지는 절대 분리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 모실 때, 사랑은 더 이상 억지로 지켜야 하는 율법의 규칙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우리의 기쁨과 감사의 자발적 반응이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번 한 주 동안, 우리와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교회 성도님들에게, 그리고 우리 주변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에게, 작은 사랑을 실천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내가 하나님을 얼마나 알고 사랑하는지를 증명하는, 우리 삶의 구체적인 수치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모심으로써, 매 순간 사랑의 용서와 실천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