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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5.2 / 토요 새벽 기도회 (룻기 1:15~22)

이 새벽, 예배에 참여신 모든 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크고 작은 순간들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즉, 기대했던 것들이 단숨에 무너지고, 그 동안 밀접했던 관계가 철저히 끊어지며, 내가 세운 모든 계획들이 불분명하여, 미래가 보이지 않는 순간이 있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이렇게 묻습니다.  “하나님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오늘 본문에는, 두 여인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나오미와 룻으로써, 바로 이런 절망의 한복판에 서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나오미와 룻은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로써, 나오미는 이방 땅에서, 남편과 두 아들을 모두 잃었고, 룻은 남편을 잃었습니다.  그 당시, 가부장적 사회에서, 한마디로, 이들은 모든 삶의 기반을, 완전히 잃어 버린 것이었습니다.  마치, 완전히 실패하여, 아무것도 남지 않은 텅빈 인생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바로 이 절망의 자리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또 다른 역사를 시작하심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역시, 우리 저마다의 절망의 자리에서도 여전히 일하시는 하나님을 향해, 어떠한 믿음의 모습과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여러분들과 함께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우리는 보이는 현실을 넘어, 하나님을 선택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나오미는 룻에게 말합니다.  “너도 동서 오르바처럼 고향으로 돌아가라.”  이 말은 대단히 모질고 냉정한 말이 아닌, 룻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배려한, 나오미의 현실적인 조언이었습니다.  즉, 그 당시 문화와 상황 속에서, 룻이 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은,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 재혼하고, 다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이 말하는 가장 지혜롭고 합리적이며, 현실적인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룻은 전혀 다른 선택을 합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이 고백은, 단순한 감정적 고백이 아닙니다.  이것은 마치, 자신의 인생 전체를 건, 위험한 결단과도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선택 속에는, 아무런 장밋빛 미래도 보장되지 않고, 앞으로의 생존도 대단히 불확실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룻은, 아무런 조건도, 보장도 없는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룻은, 여러 현실적이고 이익이 되는 당장의 결정들을 뒤로 하고, 가장 어리석은 결단으로 보여지는, 이와 같은 결단을 했던 것이겠습니까?

 

그 이유는 바로, 자신의 시어머니인, 나오미의 삶 속에서, 오늘도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분명히 보았기 때문입니다.  비록, 나오미는 남편과 두 아들을 잃은 비참한 고통 속에 머물고 있었지만, 그녀의 굳건한 신앙은, 룻에게 강한 영향력으로 다가와, 하나님을 경험하도록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주일, 주추를 놓는 신앙의 중요성에서 보았듯이, 참된 믿음은 환경이 좋을 때만,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불안하고, 불분명한 상황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고 행하는 가에서, 분명히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 모두에게도, 이 같은 선택의 순간들이 분명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우리는 지금 당장의 상황을 붙들 것인가, 혹은 우리의 감정을 따라갈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 것인가, 혹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바라볼 것인가… 반드시 선택을 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 속에서, 룻은 우리 모두를 향해 이렇게 선포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선택하겠다.”  우리 역시, 당장 보여지는 눈앞의 현실에만 사로 잡혀, 좌지우지 되는 인생이 아닌, 룻과 같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묵묵히 바라보며, 그 분의 선하신 뜻과 말씀에, 마지막까지 믿음으로 순종하며 나아가시는 인생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붙드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룻은 단순히 나오미를 따라간 것이 아닙니다.  그녀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이 고백은 대단히 중요한 고백입니다.

 

일반적으로 신앙에는 두 단계가 있습니다.  먼저는, 하나님을 이 세상의 창조주요, 만물을 다스리시는 주관자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고, 그 다음으로는, 이러한 하나님이 바로, 나의 하나님이 되는, 체험과 경험의 단계입니다.  솔직히,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첫번째 단계에 머물며 신앙생활을 합니다.  마치 하나님을, 우리 부모님의 하나님, 우리 주변 믿음 좋은 사람들의 하나님, 혹은 내가 일상적으로 경험하지 못하는, 멀리서 그저 나를 지켜만 보시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신앙이 말과 혀로 만의 지성적 신앙이 아닌, 이제는 실제적 실천과 행함으로 변화가 일어나는 신앙의 시점은 바로, 이 같은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으로 경험 될 때입니다.  다윗을 보시기 비랍니다.  그는 하나님을 “나의 목자”로 경험함으로써,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같은 상황 속에서도, 주님의 위로하심을 고백하게 됩니다.  다니엘은 어떻습니까?  그는 사자굴에 던져지는 위기의 상황 속에서도, 자신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며, 감사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자신이 그토록 미워하고 핍박하는 예수님을 다메섹 도상에서 체험하고 경험함으로써, 그후,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라는 담대한 고백을 하게 됩니다.

 

이들은 모두, 개인적이고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룻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녀는 이제, 나오미의 하나님이 아닌, 자신의 삶속에서 역사하시는 “나의 하나님”을 경험하고, 그것을 믿음으로 담대히 붙들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저와 여러분들의 하나님은 과연 어떠한 분이십니까?  머리로만 아는 지식과 논리의 하나님입니까?  아니면, 우리의 삶속에서, 우리의 예상을 늘 뛰어 넘으시며 오늘도 우리와 함께 동행하시는,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입니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이제는 하나님을 체험하고 경험함으로써, “나의 살아 계신 하나님”이 되는 순간, 우리의 믿음은 더 이상 교리가 아닌, 우리 삶의 간증이요 귀한 열매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붙드는 예배자가 됨으로써, 우리와 늘 함께하시고 동행하시는 그 분께서, 지금 이 시간, 새롭게 허락하시는, 힘과 능력으로, 매순간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마지막 셋째로, 우리는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의 때를 신뢰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제, 이방 땅을 떠나, 베들레헴에 도착한 나오미는, 자신을 알아보는 주변 이웃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마라라 부르라.”  나오미 이름의 뜻은 “기쁨”입니다.  하지만 마라의 뜻은 “쓴물”입니다.  바로,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완전한 실패요 절망이다”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나오미의 이 같은 고백은, 대단히 솔직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아픔을 하나님 앞에서 뿐만이 아닌, 사람들 앞에서도, 조금도 숨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신앙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점은, 비록 자기 자신이 실패한 인생처럼 보여지고 느껴질찌라도, 그녀는 하나님을 떠나거나 멀리하지 않았다라는 사실입니다.  바로, 여전히 하나님을 붙들고, 그녀의 쓰디 쓴 인생의 고난들을, 서서히 해쳐 나갔던 것입니다.

 

이러한 고백 이후,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보리 추수를 시작할 때에, 그들이 베들레헴에 이르렀더라.”  이 구절은,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쉽게 지나쳐 버릴 수도 있는 구절입니다.  하지만 이 말씀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 안에는 중요한 비밀 하나가 있음을 보게 됩니다.  즉, 이들이 “보리 추수를 시작할 때”에 그곳에 도착한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닌, 하나님의 치밀한 계획이요, 절묘한 타이밍이란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풍족하게 먹을 것이 준비된 때”는, 다시금 새로운 시작이 가능한, 하나님의 은혜가 장차 놀랍게 펼쳐질 것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비록, 나오미는 “텅 비었다”고 말했지만, 그 이면에서, 하나님은 여전히, 이들의 필요를 묵묵히 채우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후, 우리는, 보리 추수가 시작된 바로 그 곳에서, 룻이 새로운 동반자 보아스를 만나게 되었고, 이들을 통해, 장차 우리를 구원하실 메시야, 바로 예수님의 계보가 이어짐을 생생히 목격하게 됩니다.

 

때때로 우리 역시 이렇게 생각하며 말할 때가 있습니다.  “내 인생은 실패다.”  “나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나님은 우리의 어떠한 절망 속에서도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절망과 낙담 속에서도, 하나님의 때와 일하심을, 마지막까지 신뢰하는, 자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오늘 말씀은 우리들에게 분명히 선포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선, 우리의 절망 속에서도, 여전히 그리고 묵묵히 오늘도 일하고 계신다라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반드시 붙들어야 할 믿음은, 이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현실이 아니라 하나님을 선택하는 것이요, 둘째는,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붙드는 것이며, 마지막 셋째는, 어떠한 상황 속애서도, 하나님의 때를 묵묵히 신뢰하며 기다리는 모습이요 자세입니다.

 

오늘 본문 속애서, 룻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한 가지만을 굳건히 붙들 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한 분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그녀의 선택이, 그녀의 인생을 바꾸고, 구원의 역사를 새롭게 열었습니다.  우리 역시, 룻과 같이, 어떠한 상황과 환경 속에서도, 가장 먼저, 하나님 만을 붙들며 나아가는 결단을 하길 소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텅 빈 손을, 새로운 하늘의 사랑과 은혜로 가득 채우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매순간 경험하고 체험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우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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