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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4.26 / 우리의 신앙은 진짜입니까? (누가복음 6:46~49)

할렐루야!  오늘도 예배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한마디로 “보여지는 것”에 열광을 합니다.  예를 들어, 집을 살 때도, 세련된 인테리어와 멋진 조망권에, 우리의 마음이 쉽게 빼앗기게 됩니다.  하지만, 건축가들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진짜 좋은 집은, 보이는 것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것으로 결정된다”라는 것입니다.  즉, 겉으로는 아무리 화려하고 세련되 보여도, 그 집의 기초가 부실하면, 그 집은 대단히 위험한 집이란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허락하신 본문에는, 두 명의 건축가가 등장합니다.  두 사람 모두 집을 짓습니다.  그들이 지은 두 집은, 폭풍이 불기 전까지는, 아무런 차이 없이, 똑같이 아름다웠습니다.  어쩌면 주추 없이 흙 위에 지은 집이, 공사 기간도 짧고, 돈도 적게 들어, 훨씬 더 화려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매우 불편하고 충격적인 질문을 던지십니다.  그것은, “지금 괜찮아 보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폭풍이 왔을 때도, 여전히 괜찮을 수 있느냐?”의 물음입니다.  다시 말해, 지금 우리 삶은 평안할 수 있습니다.  마치, 모든 것이 잘 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세상의 거대한 폭풍이 몰려올 때, 심지어 죽음 앞에서, 저와 여러분들은,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수 있는가?”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허락하신 말씀을 통해, 지금까지 우리가 놓치고 있던 신앙의 기초를 들여다보며, 어떻게 진짜 신앙을 소유한 사람들로, 마지막 순간까지 살아갈 수 있는지,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흔히 이 야야기를, 마태복음에 등장하는 “모래 위에 지은 집과, 반석 위에 지은 집”으로 이해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인 누가복음의 말씀을 자세히 살펴 보면, 마태복음의 비유와는 그 초점이, 조금은 다름을 발견합니다.

 

마태복음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그런데 오늘 본문인, 누가복음은 그 시작이 이렇습니다.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

 

우리는 여기서, 가장 먼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의 딜레마를 보게 됩니다.  즉, 예수님을 “주님”으로 “주여 주여”부르는 이 사람들은, 예수님을 결코 부정하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고백하는 사람들이요, 동시에 예수님을 예배하는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들을 향해, 엄중히 꾸짖으십니다.  즉, “왜 말은 하는데, 행동은 하지 않느냐?”  다시 말해, “입으로는 나를 주인이라 부르면서, 왜 너의 삶의 결정권은, 여전히 너희 스스로가 쥐고 있느냐?”입니다.

 

솔직히, 이러한 모습은, 오늘 우리들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모습입니다.  우리는 예배 때 뜨겁게 찬양도하고, 때로는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또한 “주님!”을 부르짖기도 합니다.  그런데, 막상 우리의 현실적 삶에서는 어떻습니까?  예수님을 주님이라 부르면서, 여전히 내 삶은 내가 결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 삶의 기준은, 여전히 세상의 가치가 되고 있으며, 내 삶의 방향은, 지금의 내 욕심이 정하고 있습니다.  바로, 입술은 하나님을 향하지만, 우리 삶은 여전히 내가 주인인 것 처럼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대 신학자들은, 이러한 역설적 모습을 가리켜, “종교적 소비주의”라 부릅니다.  즉, 종교적 소비주의는, 마치 쇼핑을 하듯, 나에게 위로가 되는 말씀만 골라 듣고, 정작 나를 변화시켜야 하는, 불편한 말씀에는 철저히 귀를 닫는 태도입니다.

 

사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어리석은 건축가는, 신앙생활에 열심이 없던 사람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는 나름대로, 자신의 삶을 계획하며, 열심히 자신의 집을 지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의 가장 큰 문제는, 열심은 있었으나, 그 열심의 기초, 바로 출발점이, 대단히 잘못되었다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우리 신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신앙의 밑바닥 기초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 신앙의 밑바닥에, 내 생각, 내 감정, 내 기준이 자리하고 있다라면, 그것은 다름 아닌, 주추 없이 흙 위에 지은 집, 바로 모래와 같은 신앙이란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모래는 부드럽고 다루기 쉽습니다.  그래서 얼마든지 내 마음대로, 내가 원하는 모양을 쉽게 만들어 냅니다.  그래서, 대단히 편리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것입니다.  그 모래로는, 절대로 이 주추 없는 집을, 지탱할 수 없다라는 사실입니다.  바로, 예수님의 뜻과 말씀이 아닌, “내 생각에는 이래야 해”, “남들도 다 이렇게 살아”라는 생각이, 지금 내 신앙의 토대가 되고 있다라면, 우리는 지금 가장 위험한 모래 위에 서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참된 신앙은, “아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내 입술의 고백이, 삶의 현장에서 순종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반석이 아니라, 순간의 강한 바람에 여기 저기 흩어지는 먼지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지금 우리의 신앙이, 주변 사람들의 한마디 말 때문에, 혹은 지금 당장 펼쳐진 내 앞의 여러 근심과 고난으로 인하여, 이리 저리 쉽게 흔들리고 있다라면, 지금 나의 신앙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것은, 하나님의 반석과 같은 뜻과 말씀이 아닌, “나의 생각과 고집”이라는 모래임을 분명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의 이 같은 모래의 신앙이, 굳건한 반석의 신앙으로 변화될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 48절을 보면, 굳건한 신앙의 사람들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  새번역 성경은 이렇게 번역합니다.  “그는 땅을 깊이 파고, 반석 위에다 기초를 놓고 집을 짓는 사람과 같다.”

 

우리는 여기서 주목해 보아야 할, 한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깊이 파고”라는 단어입니다.  이 말씀은, 마태복음에는 등장하지 않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반석은 이미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다름 아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데, 여기서의 문제는 이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그 반석까지 도달하여, 그 후, 집을 지었느냐입니다.  바로, 우리의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도착하기까지, 우리는 어떠한 모습과 자세로, 땀과 눈물을 흘리는, 삶의 노력을 했는가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구원의 중요한 원리를 발견합니다.  즉,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집니다.  그러나 그 구원의 완성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우리 삶의 순종으로, 세워진다라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예수님은 누가복음 17장 34~35에서 이러한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날 밤에 두 사람이 한 잠자리에 누워 있을 터이나, 하나는 데려가고, 다른 하나는 버려 둘 것이다.  또 두 여자가 함께 맷돌질을 하고 있을 터이나, 하나는 데려가고, 다른 하나는 버려 둘 것이다.”  우리에게 두려운 말씀으로 다가올수도 있겠지만, 이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가 교회 안에서 함께 예배 드린다고 하여, 우리 모두에게 저절로 구원이 주어지지 않는다라는 분명한 말씀입니다.  바로, 예수님의 뜻과 말씀대로, 행하는 자들만이, 장차 예수님이 예비하신 구원의 기쁨과 즐거움에 참여할 수 있다라는 사실입니다.

 

이제, 오늘 말씀은, 예수님의 뜻과 말씀의 반석 위에, 굳건한 믿음의 집을 짓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과정을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깊이 파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깊이 파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그것은, 우리 삶의 영원한 구원이요 반석이신 주님 위에, 우리 신앙의 기둥을 굳게 세우기 위해서는, 그 사이에 가로 막힌 흙과 자갈들을, 반드시 모두 제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우리의 사이를 가로 막고 있는, 흙과 자갈들은 파내는 것은, 바로, 우리의 고집을 깨뜨리는 것, 우리의 잘못된 습관을 바꾸는 것, 죄를 끊어내는 것, 그리고 내 뜻을 내려놓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바로, 영원한 반석이신 예수님으로 향하는, 우리의 영적 곡괭이질과 같은 것입니다.

 

물론, 이 과정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말씀을 실천한다는 것은, 내 삶의 익숙한 모든 잘못된 습관들을, 모두 긁어내는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내 원수를 미워하며 살아가는 것이 편한데, 예수님의 사랑하라는 말씀 때문에, 우리는 용서의 곡괭아질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번 돈을, 내 마음대로 쓰고 싶은데, 이 모든 것들이 주님의 은혜로 잠시 주어진 것을 알기에, 우리는 주님이 원하시고 뜻하는 곳에 귀히 사용되도록 헌신의 곡괭이 질을 끊임없이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내가 하기 싫은 것, 그리고 내려 놓기 싫은 것 또한, 예수님이 말씀하시기에, 그것들을 모두 포기하기 위한 실천의 곡괭이 질을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이 과정은 힘이 들고 아픕니다.  때로는 귀찮습니다.  또한, 시간도 굉장히 오래 걸릴 것입니다.  하지만 이 “깊이 파는 과정”이 없는 신앙은, 결코 영원한 구원과 생명의 반석에 닿을 수 없기에, 우리는 견고해질 수 없습니다.

 

솔직히 말해, 우리의 신앙이 늘 표면적인 수준에 머무는 이유는, 이 같은 깊이 파는 고통을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은, 내 삶의 익숙한 방식들을, 모두 포기하며 내려 놓는 작업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이, 얼마나 날카롭게 우리의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는지 경험하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말씀을 듣고도, 현실의 삶에서 단 한 걸음도 행동으로 내딛지 못할 때, 그 화려했던 우리의 종교적 지식과 말들은, 분명 거센 비바람 앞에 힘없이 무너져 내리는 모래성처럼, 우리의 영혼을 영원한 멸망으로 몰아넣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 수고로운 과정을 통과한 사람만이, 결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확신에 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혹시, 지금 여러분들의 신앙생활이 힘들고 괴롭습니까?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려하니, 손해 보는 것 같고 속이 상하십니까?  그렇다면 이 사실을 분명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제대로 땅을 파고 있다라는 증거입니다.  오히려, 지금 우리가 아무런 근심과 염려 없이 살아가고 있다라면, 이것이야 말로, 우리 신앙의 최대 위기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보여주시고 말씀하신 길은, 십자가의 길이요, 좁고 협착하여, 자기 고난과 자기 부인을 통해 영원한 생명과 영광으로 인도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바로 우리 모두는, 그 고통스러운 길 끝에서, 비로소 흔들리지 않는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반드시 기쁨으로 만나게 될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우리의 삶은 무엇을 향해야 하는지 명확해졌습니다.  즉,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즉시 행하거나, 혹은 그분의 말씀을 듣고도, 나중으로 미루며 행하지 않는 삶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이 선택 앞에서, 우리는 거룩한 척하며 폼을 잡는,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의 모습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참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곧장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들로써, 자신의 생각이나 고집을 꺾고, 세상의 방식이 아닌 예수의 방식을 선택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결과, 행함이 있고 그 행함을 통해, 말씀의 능력을 몸소 경험하기에, 이제는 강한 확신과 성령의 역사를, 우리 주변 사람들에게도 담대히 증거하며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필라제일연합감리교회 성도님들!

오늘 우리는 이 비유를 통해, 반드시 3가지 사실을 점검해 보고, 실천해야 합니다.

 

첫째로, 우리 신앙의 기초를 처음부터 다시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신앙은, 정말 예수님의 뜻과 말씀 위에 세워져 있는지? 아니면, 우리 인간의 지혜나 사회적 평판이라는, 모래 위에 멋진 십자가만을 올려둔 모습은 아닌지?  반드시 살펴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권위있는 말씀을 우리 삶의 유일한 기초요 토대로 삼지 않는다리면, 그 신앙은 위기의 순간, 가장 먼저 우리를 배신하게 될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말씀을 깊이 파고 실천하는 수고를 즐거워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단순히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에 만족하지 말고, 그 말씀을 우리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단순히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은혜를 기억하고 생각만 하기보다, 그 말씀을 우리 삶에 실제로 적용할 때 부딪히는, 여러 갈등과 고통을 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응시하며 통과하시기 바랍니다.  그러했을 때, 그 치열한 영적 곡괭이질의 과정을 통해, 비로소 결코 무너지지 않는 우리의 진정한 신앙의 기초가 세워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셋째로, 예수님의 말씀과, 늘 일치를 이루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단순한 교훈 전달자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이셨습니다.  우리 역시, 입으로만 복음을 외치는 껍데기 그리스도인들이 아닌, 우리의 삶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참 신앙의 모습과 자세를 회복해야 합니다.  말로만 사랑을 이야기하고, 정의를 외치는 것은, 그저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의 위선에 동참하는 것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의 능력을 우리 삶 속에서 비로소 실천하며 증명해낼 때, 비로소 세상은 우리를 통해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반드시 보게 될 것임을 기억하시며, 기회를 얻든 못 얻든, 예수님의 뜻과 말씀을 세상에 증거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예수 그리스도라는 영원한 반석 위에, 순종이라는 깊은 곡괭이질로 세워진 단단한 인생이 됨으로 말미암아, 어떤 세상의 폭풍우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증언하며, 마지막 순간까지 무너지지 않는, 믿음의 사람으로 서게 되시기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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