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예배에 참여신 모든 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허락하신 말씀인, 역대상 11장을 읽다 보면, 조금 특별한 느낌이 듭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흥미를 가지고 집중하여 읽는 부분들은, 극적인 장면이 담긴 말씀입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떤 놀라운 일을 행하셨는지, 누가 어떻게 승리했는지, 어떤 생각지도 못한 기적이 일어났는지를 읽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살펴보면, 여러 사람들의 이름만이 열거 되고 있습니다. 아비새, 브나야, 아사헬, 엘하난, 삼훗, 엘리사마 등… 어쩌면 이 부분을 읽으면서,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성경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인물들의 이름을, 왜 이렇게 열거하고 있는가?”
그러나, “아는 만큼 보인다” 라는 말이 있듯이, 성경은 이 사람들의 이름들을, 그냥 무의미하게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 성경은 그들의 이름을 기록함으로써, 하나님 나라와 공동체는, 몇 사람의 영웅만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닌, 각자의 자리에서 충성스럽게 헌신한, 수많은 사람들의 수고와 노력을 통해 세워진다는 사실을, 우리들에게 명확히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나라는 어떠한 사람들을 통해, 오늘도 세워지는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여러분들과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맡겨진 자리에서 충성하는 사람을 사용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은 가장 먼저 아비새를 소개합니다. 그는 매우 뛰어난 용사였습니다. 창을 들어 300명을 죽였다라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브나야가 소개됩니다. 브나야 역시 뛰어난 용사였습니다. 그는 모압의 두 용사를 죽였습니다. 또 눈이 오는 날에, 구덩이에 내려가서 사자를 죽였습니다. 그리고, 장대한 애굽 사람과 맨손으로 싸워, 그 사람의 창을 빼앗아, 그 창으로 그를 죽였습니다. 정말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이렇게 뛰어난 사람들이, 왜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가지 않았겠습니까? 성경은, 그들의 능력과 용맹함을 기록하면서, 동시에 그들이 맡은 자리가, 어디인지를 보여 줍니다. 즉, 아비새는 다윗의 군대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고, 브나야 역시 다윗을 섬겼습니다. 바로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들이 자기의 능력을 가지고 어떤 자리를 누리며 차지했느냐가 아닌,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바로 그 자리에서,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충성했느냐입니다.
솔직히,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면, 우리는 종종 직분과 자리에, 연연하는 모습을 발견합니다. 때로는,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자신의 위치를 생각합니다. “내가 어떤 직분을 맡았는가?”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인정해 주는가?” “내가 얼마나 중요한 일을 감당하고 있는가?” “왜 저 사람에게는 저런 역할이 주어지는데, 나는 이것밖에 주어지지 않는가?” 그런 마음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믿음의 백성들이 명심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보시는 것이, 우리 자리의 크기가 아닌, 충성의 크기란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주일 대표 기도하는 권사님들과 장로님들만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설교하는 목사만도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성가대만 중요한 것도 아닙니다. 예배 전에 일찍 와서, 문을 열고 준비하는 사람도 중요합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청소하며 친교를 준비하는 사람도 중요합니다. 교회의 재정을 정직하게 관리하는 사람도 중요합니다. 주방에서 묵묵히, 설거지와 뒷정리하는 사람들도 중요합니다. 아픈 성도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도 중요합니다. 말없이 헌금하고, 말없이 봉사하고, 말없이 누군가를 격려하는 사람들도 역시 중요합니다. 바로, 우리 사람의 눈에는 작아 보일 수 있지만, 하나님께는 이 모든 일들이 결코 사소한 것들이 아닙니다.
예수님 역시, 요한복음 13장에서, 섬김의 중요성을 말씀하시며 가르치셨습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당시 발을 씻기는 일은, 종과 노예와 같은, 가장 낮은 사람들이 전적으로 담당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예수님의 삶은, 높아지는 삶이 아닌, 낮아지는 삶이었습니다. 바로,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자리를 찾으신 것이 아닌,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는 자리로 늘 향하셨던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어떤 자리에 있는가?”보다, “내가 그 자리에서 얼마나 충성하고 있는가?”가, 하나님 앞에서 더욱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은,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보다, 하나님이 맡기신 자리에서, 언제나 최선을 다해 충성하는 사람들을 인정하시고, 이들을 기뻐하심을 믿으시며, 오늘 우리가 서있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 맡겨 주신 일들에 충성을 다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둘째로, 우리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헌신조차, 모두 기억하시는 분이십니다
26절부터는 수많은 용사들의 이름이 기록됩니다. 우리는 이 이름들의 주인공들이, 과연 누구인지 다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이름들을 성경에 직접 남겨 놓으셨습니다. 여기에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들의 헌신들을, 결코 잊지 않으신다라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노력을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우리의 수고를 알아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내가 얼마나 애썼는지 아무도 모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아십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여러 수고 역시, 매순간 소중하고 세밀하게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는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출신 배경이 다양함을 발견합니다. 유다 지역 출신도 있고, 다른 지역 출신도 있습니다. 요단 동쪽에서 온 사람들도 있고, 심지어 모압 사람들도 등장합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공동체는, 오직 한 종류의 사람들만 모이는 공동체가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한 마음과 한 뜻을 품고, 서로를 이해와 사랑으로 섬기는 공동체인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 교회에도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즉, 교회 안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격도 다르고, 나이도 다르고, 경험도 다르고, 은사도 다르고, 생각도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같은 주님을 섬기고 있다라는 사실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에는, 큰일을 하는 사람들 만이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여러 작고 사소한 일을 감당하는 사람들의 노력 역시, 필요합니다.
어떤 성도님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나는 특별한 재능이 없습니다.” “나는 하나님과 여러 사람들 앞에 나설 능력이 없습니다.” “내가 하는 일이 너무 작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사실은, 하나님 앞에서는 절대로 큰일과 작은 일, 중요한 일과 중요하지 않는 일의 구분이 없다란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한 사람의 기도가 공동체를 살릴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격려가, 낙심한 사람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섬김이, 예배를 아름답게 만들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사랑이, 교회에 새로운 가족을 따뜻하게 맞이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충성되이 행하는 모든 일들이, 앞으로 어떠한 결과로 다가올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알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0장 42절에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을 주는 자는, 결코 그 상을 잃지 않을 것이디”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는 작은 사랑도 작은 것이 아니고, 작은 섬김도 결코 작은 것이 아닌, 모두다 하나님을 향한, 충성과 순종의 동일한 결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때 조금 더 잘 할 걸,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지금부터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낙심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장차 우리의 모든 이름과 수고를 기억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잘하였도다 충성된 종아”라고 인정받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마지막 셋째로,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헌신할 때, 하나님의 공동체가 세워진다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세워지기까지, 다윗 혼자만의 노력이 아닌, 여러 지역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의 헌신과 노력이 함께 있었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공동체를 세우는 원리입니다. 즉, 하나님의 교회는 한 사람의 교회가 아닙니다. 다시 말해, 교회는 목회자 한 사람의 힘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장로님 몇 분의 힘으로도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특정한 사람의 능력으로 세워지는 것, 역시 아닙니다. 오직, 모든 성도가 함께 기도하고, 섬기며, 헌신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에서, 사도 바울은 교회를 몸에 비유합니다. 즉, 눈이 손에게 “너는 필요 없다” 말할 수 없고, 머리가 발에게 “너는 필요 없다” 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몸은 각각의 역할을 충실히 담당하는, 저마다의 지체가 모두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는 기도해야 합니다. 누군가는 가르쳐야 합니다. 누군가는 찬양해야 합니다. 누군가는 섬겨야 합니다. 누군가는 전도해야 합니다. 누군가는 재정을 관리해야 합니다. 누군가는 어려운 성도를 찾아가야 합니다. 누군가는 다음 세대를 돌봐야 합니다. 바로, 각자의 역할은 다르지만, 교회의 목적은 단 하나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를 우리 가운데 세우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다름은 틀림과 잘못이 아닌, 하나님 나라를 온전히 세우기 위한, 저마다의 은혜요 달란트인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서로 다르기 때문에, 때론 갈등이 생깁니다. “왜 저 사람은 저렇게 생각할까?” “왜 나는 저 사람처럼 하지 못할까?” “왜 내 방식대로 하지 않을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똑같이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각자 다른 은사를 주셨습니다. 각자 다른 경험을 주셨습니다. 각자 다른 자리를 주셨습니다. 각자 다른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서로 협력하여 하나님의 일을 아름답게 이루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모든 일을 다 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리는 서로를 필요로 합니다. 내가 잘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과 감사함으로 나누고, 다른 사람이 잘하는 것을 기쁨으로 인정하고, 서로 부족한 부분을 사랑으로 채워 주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공동체가 건강하게 세워질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오늘 역대상 11장에 기록된 수많은 이름들은, 우리들에게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나라는, 여러 사람들의 눈물어린 헌신으로 세워진다라는 사실입니다. 물론, 아비새와 브나야처럼 뛰어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수많은 용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기록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의 헌신을, 귀하고 소중하게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첫째, 맡겨진 자리에서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원하는 자리가 아닌, 하나님께서 주신 자리에서 충성하십시오. 둘째,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주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우리 하나님은 여러분들의 수고를 다 알고 계십니다. 셋째, 서로 함께 섬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한 사람의 능력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닌,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함께 충성되이 헌신할 때, 비로소 세워집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실은, 우리 이름이 여러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닌, 하나님의 기억 속에, 우리의 충성과 사랑이 남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우리가 있는 그 자리에서, 충성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작은 일이라도 정성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섬김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서로의 헌신을 격려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모든 헌신을 기억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통해, 이 땅에 아름다운 하나님의 나라를 온전히 이루어 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