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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9.20 / 반가이 맞으라! (로마서 14:1~12)

할렐루야!  오늘도 예배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여러분들은 교회를 어떤 곳이라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교회를 생각할 때, 아름다운 모습을 먼저 떠올립니다.  즉, 함께 찬양하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봉사하고,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를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 교회는 이러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엄밀한 현실을 돌아보면, 이러한 이상적 교회의 모습이 쉽지 않음을 발견합니다.  그 대표적 이유는, 실제로 교회 안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즉,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격이 다른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대가 다른 사람들이 있습니다.  살아온 환경이 다릅니다.  신앙의 경험도 다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는, 때때로 예기치 못한 갈등이 생깁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왜 저 사람은 저렇게 생각하지?”  “우리가 지금까지 해 온 것이 맞는데, 왜 바꾸려고 하지?”  “저 사람은 너무 보수적이야.”  “저 사람은 너무 자유로워”… 등등.

 

그런데, 이러한 문제는 지금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활동하던 그 시절에도,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동일한 문제로 인하여, 교회 안에 여러 분쟁들이 발생했습니다.  즉, 그 당시 교회 안에도,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모든 음식을 먹어도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음식에 대해 조심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특정한 날을 중요하게 여겼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동일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의 가장 큰 문제는, 생각이 다른 것, 그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서로 다른 생각을 기준으로, 서로를 판단하며, 비난하기 시작한 것이, 정말 큰 문제였습니다.

 

이애 대하여,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1절에서 단호히 말씀합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공동 번역 성경은, 이 구절을, 이렇게 번역합니다.  “믿음이 약한 사람이 있거든, 그의 잘못을 나무라지 말고, 반가이 맞으십시오.”

 

그렇다면, 교회의 교회 다움을 회복하기 위해, 사도 바울이 언급한, “반가이 서로 맞이하는 모습”이 과연 무엇인지, 오늘 허락하신 말씀을 통해, 여러분들과 함께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우리는 믿음이 연약한 자를, 비판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1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생각을 비판하지 말라.”  여기에서 “받으라”리는 말은, 단순히 “묵인하며, 참아주라”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연약한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공동체 안에 받아들여, 함께하고, 관계를 맺음으로써, 굳건한 믿음의 사람들로 성장하도록 이끌라는 것입니다.

 

그 당시, 사도 바울이 목회하던 교회에는, 믿음이 강한 사람들과,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 사이에, 여러 갈등이 있었습니다.  믿음이 강한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나는 복음 안에서 자유롭다. 음식이 신앙의 본질이 아니다.”  그런데, 믿음이 연약한 사람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지금까지 지켜온 전통이 있는데, 어떻게 우상에게 드려진 음식을 먹을 수 있는가?”  이 같이 서로의 생각은 교회 안에서 자주 충돌하였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어느 한쪽 편을 일방적으로 옳다고 선언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비판하지 말고, 서로를 받으라.”  “나무라지 말고, 서로 반가이 맞으라.”  이것이 중요합니다.  바로, 교회는 나와 같은 사람들만 모인 곳이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교회는 나와 다른 사람을 기꺼이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차이와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곳인 것입니다.

 

하지만, 솔직히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면, 우리는 연약한 사람들을, 쉽게 판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즉, 우리 인간들은 본성적으로, 자기보다 약하고 작은 사람들을, 쉽게 판단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이러한 말을 합니다.  “저 사람은 믿음이 약해.”  “저 사람은 아직 신앙을 잘 몰라.”

 

그런데, 사도 바울은, 먼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믿음이 강한 사람에게, 특별한 책임을 요구합니다.  오늘 본문 이후의 말씀인, 로마서 15장 1절을 보면,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해야 한다”라고 말씀합니다.  다시 말해, 강한 사람은, 약한 사람을 판단하고, 비판하며 밀어내는 사람이 아닌, 오리려, 약한 사람들을 은혜와 사랑으로 품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린아이가 처음 걸음마를 배울 때, 부모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왜 아직도 제대로 못 걷니?”  오히려, 부모는 아이가 넘어지면, 다시 일으켜 줍니다.  한 번 더 손을 잡아줍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주변에, 장로, 권사, 집사, 평신도란 직분을 떠나, 여전히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이 있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무시하거나 밀어낼 것이 아니라, 긍휼과 자비, 그리고 사랑으로 붙잡아주어야 합니다.  바로, 교회의 건강함은, “교회가 얼마나 큰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가?  얼마나 좋은 프로그램이 있는가?”가 아닌, 우리가 우리 주변 약한 사람들을, 어떻게 관심을 가지고, 대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예수님은 마태복음 25:40절에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는, 오직 믿음이 강한 사람들만 모여 있는 장소가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이 말씀하신 교회의 모습은, 죄인들의 공동체로서, 마치 병원과 같은 곳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의롭고 완벽한 사람들만이 모인 곳이 아닌, 영적으로 아프고 상처 입은 사람들이 모여, 함께 치유와 회복을 구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 필라제일연합감리교회는, 지금까지 해오던 것처럼, 연약한 사람을 더욱 사랑으로 받아주고, 서로의 부족함을 인내와 소망의 믿음으로, 기다려 주는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죄인 된 우리들을 반가이 맞아 주신 것 처럼, 우리 역시, 서로의 다름과 차이를 반가이 이해하고 받아주는, 사랑과 은혜의 공동체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둘째로, 우리는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어도, 언제나 주님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2절과 5절에서, 음식 문제와 절기 문제를 이야기합니다.  즉, 어떤 사람들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지만, 이와는 다르게 연약한 사람들은 채소만 먹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지만, 어떤 사람들은 모든 날을 동일하게 여깁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들이 동일하게, 똑같은 생각민을 해야 한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도 바울은, 서로 다른 생각이 있을 수 있다라는 사실을 명확히 인정합니다.  그래서 5절 후반부에서,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라고 선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개인의 신념과 확신보다, 더 중요한 것을, 이어지는 6절에서 이야기 합니다.  그것은 바로, 모든 것을 “주를 위하여…”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즉, 먹는 사람도 주를 위하여 먹습니다.  먹지 않는 사람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않습니다.  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주를 가장 먼저 위해야 합니다.

 

바로, 사도 바울은, 여기서 우리에게 중요한 신앙 원리를 강조하여 말씀합니다.  그것은, 우리 모든 문제의 중심을, “나에게” 두지 말고, 오직 “주님께” 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너무 쉽게 ‘내가 옳다’라는 생각과 판단을 중심에 놓고, 살아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교회 안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내가 더 교회 오래 다녔으니, 내가 더 직분이 높으니, 내가 옳다, 내가 더 잘 안다, 내 방식을 맞다”라는 일방적 주장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들에게 이렇게 질문합니다.  그렇다면, 그 모든 것들이, “과연 주님을 위한 것입니까?”  “내가 아닌, 오직 주님을 위하여 하고 있는 것입니까?”  다시 말해, 내가 봉사하는 이유가 정말 주님 때문입니까?  내가 교회를 사랑하는 이유가, 정말 주님 때문입니까?  내가 어떤 전통을 지키는 이유가, 정말 주님 때문입니까?  아니면, 내가 옳다라는 것을,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하는, 나의 욕심 때문입니까?

 

우리는 이것을 명확히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신잉의 중요한 본질과 비본질을, 우리는 우리의 신앙 생활 속에서, 분명히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 기독교 신앙에는,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원자로 믿는 것.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는 것.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것.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 입니다.  이것은 우리 신앙에서,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핵심 본질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모든 신앙의 문제가, 다 이와 같은 것만은 아닙니다.  예배의 형식, 찬양의 스타일, 교회의 여러 전통, 세대에 따른 문화, 개인의 신앙 습관 등… 얼마든지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비본질적인 것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의 가장 큰 문제는, 비본질적인 신앙의 문제들을, 마치 복음의 본질적인 것처럼 만들어, 서로를 정죄하고 판단하는 모습입니다.

 

그 동안 설교를 준비하며, 여러 번 주저하며, 여러분들께 말하지 못한 질문 하나가 있습니다.  왠지 오늘을 이 질문을 “꼭” 해야 할 시점 인 것 같아,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립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교회에 일하러 오셨습니까?  아니면 쉬러 오셨습니까?  세상에서 6일 내내 일을 하다가, 교회 와서 또 일을 하면, 우리는 언제 쉴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우리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예수님은, 여기에 일손이 부족하니 빨리 오라고, 우리를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쉼을 누리라고 우리를 친히 부르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다고, 저는 여러분들에게, 우리 교회에서 봉사가 전혀 필요 없다라고, 말씀드리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섬김과 봉사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다만, 여기서의 핵심은, 우리 신앙에 있어, 쉼을 잃어버린 봉사는, 쉼을 잃어버린 섬김은, 더 이상, 하나님 은혜에 다한 감사가 아닌, 노동이 되어 버린다라는 사실입니다.

 

한주, 혹은 두주, 혹은 한달 동안, 교회에 친교가 없어도, 저는 괜찮다라고 생각합니다.  밥이 아니고, 빵이나 쿠키가 준비되어도, 저는 얼마든지 좋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로 인하여 누군가기 교회에서 노동이 아닌, 쉼을 얻을 수 있다라면, 다시 말해, 교회가 교회로서의 본질에, 더욱 충실하게 집중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그러한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교회에 왔는데, 친교와 식사가 없는 것이 말이 되는가?”  “밥이 아닌 빵이나 쿠키가 말이 되는가?”

 

오늘 성경 본문은, 이러한 다른 생각이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말씀합니다.  그것은, “무엇이 내 생각을 관철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가?”가 아닌, “무엇이 주님을 더 기쁘시게 하는가?”라는 물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는 얼마든지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중심은 반드시 하나여야 합니다.  바로, “나는 주님을 위하여 살아간다.”  내 생각보다 주님이 중요하고, 내 자존심보다 공동체가 중요하고, 내 주장이 받아들여지는 것보다, 하나님의 영광이 중요해야 합니다.

 

그러했을 때, 우리의 다름은, 분열과 분쟁의 이유가 아닌, 서로를 더욱 풍성하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다른 시각과 다른 관점을 가질 수 있지만, 언제나 주님을 향한 마음은 하나로 일치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셋째로, 서로를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말고, 모든 결과는 하나님 손에 맡길 수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제 조금 더 강하게 이야기합니다.  10절을 보면,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라고 말씀합니다.  표준 새번역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어찌하여 우리는 형제나 자매를 비판합니까?  우리는 모두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 앞에서, 변변치 못한 수준의 우리들이, 서로 “내가 더 낫다”라며 다툴 필요가 전혀 없다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장차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오직 우리의 최종적인 심판자는, 우리 자신이 아닌, 하나님 한 분 이신 것입니다.

 

마지막 날, 우리는 모두는, 반드시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날에는, 내가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여, 얼마나 의롭고, 정직하며, 잘 살아왔는지를, 자랑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향해 이렇게 물으실 것입니다.  “내가 너에게 맡긴 형제와 자매를 어떻게 대했느냐?”  “내가 너에게 은혜를 베풀었는데, 너는 다른 사람에게 어떤 은혜를 베풀었느냐?”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시선을 다른 사람들이 아닌, 우리 자신에게 끊임없이 돌려야 합니다.  다시 말해, “저 사람은 왜 저럴까?”가 아닌, “나는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기야 하는가?”를 지속적으로 물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는, 그저 “사이 좋게 지내자”라는 윤리적 교훈 때문이 아닙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먼저 죄인 된 우리들을, 사랑으로 받아주셨다라는 복음의 핵심적 메시지 때문입니다.

 

여러분들,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자격이 있었습니까?  우리의 삶이 율법적으로 완벽했습니까?  우리 삶에 죄가 전혀 없었습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죄가 많고 흠이 많은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어,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값없이 선물로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15장 7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이것이 오늘 말씀의 핵심적 결론입니다.  바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주셨으니, 우리도 서로 반가이 맞으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내가 다른 사람들 인내와 사랑으로 받아줄 수 있는 힘은, 내 성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좋은 사람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도 절대 아닙니다.  오직, 내가 먼저 받은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가 있기 때문에, 비로소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 주변 사람들을 진정으로 변화시키는 힘은, 냉철하고 엄격한 비판이 아닌, 오히려 묵묵히 기다려 주는 사랑임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즉, “왜 아직도 안 변했습니까?”라고 몰아붙이는 것보다, “괜찮습니다. 함께 걸어갑시다.”라고 말하는 것이, 우리 주변 사람들을 새롭게 살리는 원동력인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을 진솔이 돌아보면, 우리 역시,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변화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한 번에 완벽한 사람으로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넘어질 때마다 일으켜 세워주셨습니다.  실수하면 다시 기회를 주셨습니다.  기도하지 못할 때에도 기다려 주셨습니다.  믿음이 약할 때에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러한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도 서로 반가이 맞으라.”

 

사랑하는 성도님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세 가지를 말씀합니다.  첫째로, 믿음이 연약한 사람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서로 다른 생각이 있어도, 주님을 위하여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셋째로, 서로를 함부로 판단하지 말고, 의로운 재판장이신 하나님 손에 전적으로 맡겨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바로 이런 공동체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다시 말해, 믿음이 강한 사람들이, 믿음이 약한 사람들을 사랑으로 품고, 오래 믿은 사람이 처음 믿는 사람들을 기다려 주고, 어른 세대가 젊은 세대를 이해하고, 젊은 세대가 어른 세대를 존중하며, 서로 다른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우리 모두는 분명 다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는 동일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매순간 필요한 사람들이란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먼저 받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본받아 살아가는 우리 역시, 오늘부터 이러한 말씀을 품고 “서로 반가이 맞으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는 더이상 서로를 판단하고 정죄하는 교회가 아닌, 서로 맞이하는 교회, 서로 배척하며 밀어내는 교회가 아닌, 서로 품는 교회, 서로의 약점을 비판하는 교회가 아닌, 서로의 믿음을 세워주는 교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먼저 반겨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를 인내하며, 서로의 다름과 차이를, 하나님의 축복으로 기꺼이 받아들이는,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백성들이 되시기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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