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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3.1 / 구원은 오늘입니다! (누가복음 4:16~21)

오늘도 기쁨과 감사함으로 예배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우리는 지금 사순절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도 강조하였지만, 사순절은, 단지 교회력의 한 절기가 아닙니다.  이 기간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를 묵상하며, 우리의 신앙을 철저히 점검하는, 거룩한 시간입니다.  다시 말해, 화려함을 덜어내고, 본질로 돌아가는 회개의 시간이요, 또한, 외적인 분주함을 멈추고, 우리 내면의 깊은 심연을 들여다보는 성찰의 시간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사순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고 있습니다.  “나는 지금 누구를 따르고 있는가?  그리고 나는 어떠한 구원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가?”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은, 구원을 “죽어서 천국 가는 보장” 정도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만일 우리의 구원이 그 정도의 차원에 머문다라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너무나도 작아집니다.  즉, 예수님의 고난은, 단지 우리 사후 세계의 보험정도가 아니란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허락하신 본문 말씀은, 이 사실을 명확히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구원의 참 모습이 어떠한 것인지, 오늘 본문을 통해, 여러분들과 함께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누가복음 4장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선포하신 첫번째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마치 예수님의 소명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선언문과도 같습니다.  이 선언문의 마지막 부분에서, 예수님은 이러한 말씀을 우리에게 들려주십니다.  그것은,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입니다.

 

이 같은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의 구원이 ‘언젠가’ 우리에게 다가올 미래의 사건이 아닌, 바로 ‘오늘’ 우리 가운데 임하였음을 선언하는, 현재적 사건이란 것입니다.  바로, 사순절은, 이 ‘오늘’을 다시금, 우리의 삶에 실제적이고 구체적으로 회복하는 시간인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시작을 보면, 예수님은 회당에서, 이사야 61장을 읽으셨습니다.  “주의 영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여기에는 분명한 흐름이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로, 성령의 임재이고, 다음으로 기름 부으심이며, 마지막으로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과정입니다.

우리는 흔히 성령의 능력을, 마치 자신을 과시하는 듯한 도구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즉, 성령의 능력을 통해, 주변 사람들을 크게 놀라게 하며, 그로 인해, 자신이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특별한 부르심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다는, 과시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성령의 능력을 한마디로, “십자가를 향한 능력”이라 정의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사순절은”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의 모습에서 벗어나, 이제는 “하나님이 생각하는 대로”의 모습을 회복하는 시간입니다.  바로, 성령의 능력을 다시 우리의 삶속에서 구체적으로 정의하는 시간인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성령의 능력을 성공과 확장, 성장과 영향력으로 오해하곤 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보여주시고 말씀하시는 성령의 능력은, 다름아닌, 높고 화려한 자리가 아닌, 낮고 초라한 자리로 내려가는, 힘과 결단이었습니다.

 

성령께서는, 예수님께서 하늘의 높은 보좌로 올리시기 전, 가난한 자 곁으로, 심지어 십자가의 죽음으로 보내셨습니다.  바로, 영광 이전에 섬김이 있었고, 부활 이전에 십자가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이러한 순서를 망각하곤 합니다.  사순절은, 이 순서를 다시금 되찾는 시간임을 기억하시며, 사순절 성령 충만함을 통해, 높아지는 능력이 아닌, 겸손히 낮아지는 용기로 나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다음으로, 예수님은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누가복음에서 가난은, 영적 가난을 상징하는 모습이 아닌, 실제 현실의 모습으로써, 경제적 결핍, 사회적 배제, 구조적 소외를 말합니다.

 

우리는 사순절을 회개의 시간이라 부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구체적으로 회개해야 하는 것이겠습니까?  혹시. 우리는,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기준보다, 세상의 기준을 앞세우고 있지 않습니까?  또한 성공한 사람들은 크게 환영하지만,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을, 외면하거나 혹은 부담스러워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세상의 능력을 소유한 자들에게, 더 큰 기대와 관심을 두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의 출발점은 달랐습니다.  그분은, 철저히 아래에서부터 시작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에게 있어 가난한 자들은, 복음의 부수적 대상이 아닌, 가장 우선적 대상이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모습은, 하나님이 세상의 능력과 재물을 소유한 자들을 멀리하시고 미워하신다라는 뜻은 아닙니다.  이 말씀의 핵심은, 세상이 외면했다고 하여, 하나님 역시, 이들을 외면하지 않으신다라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사순절 회개는, 다름아닌, 그 동안 우리의 도움과 관심이 절실히 필요한 가난한 사람들을 향해, 우리의 무관심과 냉담함을 돌이키는 데에서, 시작되어야 함을 기억하시 바랍니다.

 

또한, 예수님은 가난한 자들 다음으로, 포로 된 자들에게, 자유를 선포하십니다.  여기서 포로는, 단순히 영적인 은유가 아닙니다.  실제로, 빚의 구조, 억압적인 제도, 사회적 차별 등, 제도의 모순 속에서 신음하는, 모든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어떠한 정치적 혁명을 일으키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복음은 가장 급진적인 혁명의 모습과도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십자가는 폭력으로 체제를 무너뜨리는 방식이 아닌, 사랑으로 악을 이기고, 죄를 완전히 뿌리까지 무너뜨리는, 새로운 방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사순절은, 이 같은 급진적인 십자가 복음을, 깊이 묵상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바로, 십자가는 단지 한 개인의 죄 사함을 넘어, 사회의 억압 질서를 모두 깨뜨리는, 하나님의 새로운 방식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워싱턴 D.C. 링컨 기념관 근처에, 한국전 참전 용사 기념공원이 있습니다.  그곳에 가면, 참전용사들의 이름과 함께, “Freedom is not free”라는, 커다란 문구를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는, 거져 주어진 것이 아닌, 이들의 숭고한 목숨의 값비싼 대가로 인한 것임을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우리 신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순절의 십자가는,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자유케 할 뿐 아니라, 우리가 다른 이들을 자유케 하는 통로가 되도록 부르고 있음을, 분명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후, 예수님은 복음을 통해, 눈먼 자들을 보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혹시 지금 우리들은 무엇인가에 눈이 멀어 있지는 않으십니까?  사회의 구조적 불의에 둔감하지 않으십니까?  혹은, 고통받는 이웃을 보지 못하고 있지는 않으습니까?  아니면, 내 안의 욕심과 교만을 전혀 보지 못하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사순절은, 이 같은 우리의 어두워진 마음의 눈을, 밝히 뜨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눌린 자들을 자유케 하셨습니다.  여기서 눌림은, 단순한 경제적 문제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정서적 억압, 관계의 상처, 실패감, 정죄감 등, 우리 인간 관계에서 발생하는, 여러 고통과 아픔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이 선포하신 구원은, 단순히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닌, 이 같은 영혼의 평안과 안식까지도 모두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주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십니다.  이는 구약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희년의 완성입니다.  즉, 모든 빚이 탕감되고, 종들이 풀려나며, 땅이 원래의 주인들에게로 돌아가는, 회복의 해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이 같은 희년은, 50년마다 돌아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 말씀에서, 자신이 그 희년이라 선언하시며, 지금 그 희년이, 자신을 통해 지금 실재로 이 땅에 실현되고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인으로, 믿고, 고백하며, 따르는 자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죄와 죽음에서 즉시 해방되는, 진정한 희년을 바로 지금 여기서 누리며 살게 된다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몸인 우리의 교회는, 희년 공동체와도 같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안에서, 죄와 죽음으로부터 해방되어, 이제는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하나가 되며, 어떠한 차별도 존재하지 않는, 하나님 나라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사순절은, 우리 스스로의 모습만을 점검하는 시간을 너머, 우리 교회 역시, 그 본질과 의미를 철저히 지키며 따르고 있는지, 점검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교회는 희년 공동체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세상의 경쟁 구조를 그대로 교회 안에 가지고 들어와, 그것을 답습하고 있습니까?  사순절은 교회가 희년의 공동체로 다시 세워지는 시간임을 기억하시며, 교회의 지체로서, 헌신과 봉사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지금 이곳에, 아름답게 세워 나가는,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이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서, 오늘 이루어졌다”라고 분명히 선포하십니다.  바로, 사순절은 이 ‘오늘’을, 지금 우리의 삶속으로 붙들어 가져 오는 시간입니다.  즉, 구원은 미래의 약속이지만, 동시에 현재의 사건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누구를 외면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무엇에 가장 열정적으로 사로잡혀 있습니까?  우리는 무엇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다시 하나님이 원하시고, 바라시며,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회복하기 위해, 가장 먼저 구해야 할 것은, 우리의 철저한 반성이 아닌, 그 이전에, 성령의 충만함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성령 충만은, 우리를 세상의 높은 자리가 아닌, 사랑과 섬김을 위한, 세상의 가장 낮은 자리로 우리의 삶을 인도할 것입니다.

 

이번 사순절, 우리는 작은 희년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아니, 시작 해야만 합니다.  용서하지 못했던 이를 용서하고, 외면했던 이를 돌아보고, 두려움 속에 있는 이와 함께 담대히 서는 것… 그 작은 순종이, 바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오늘 이루어졌느니라”의 실현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필라제일연합감리교회 성도님들!

사순절은 십자가의 사랑으로, 오늘 우리의 현실 속에, 구원을 현재화하는 거룩한 결단의 시간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이 말씀하신 구원은, 영혼을 넘어 삶을, 개인을 넘어 공동체를, 하늘을 넘어 이 땅을 실제적으로 포함합니다.

 

그 사순절 중심에는, 바로 십자가의 길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의 길 끝에는 부활의 기쁨과 감격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구원은 오늘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우리의 작은 순종에서 출발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선포하신, 성령의 충만함의 은혜를 덧입음으로 말미암아, “주의 은혜의 해”가, 우리 교회와 가정, 그리고 우리의 삶 가운데, 실제로 이루어지기를, 거룩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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