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기쁨과 감사함으로 예배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우리는 흔히, 눈이 보이면 모든 것들을 다 본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과연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경은 곳곳에서,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반대로 눈이 보이지 않아도 진짜 보는 사람들이 있다”라고 시종일관 말씀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허락하신 본문이, 바로 이 같은 역설적 진리를 보여주는, 대표적 말씀 가운데 하나입니다.
오늘 말씀 전체적 내용을 살펴보면,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했던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 눈을 뜨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의 핵심은, 단순히 앞을 보지 못하는 한 사람이, 기적적으로 치유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 사건을 통해, 과연 누가 진짜, 열린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인지를 드러내십니다.
오늘 본문 39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이 같은 예수님의 말씀은, 오늘 우리를 향해 이렇게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진짜 보는 사람입니까?” 특별히, 예수님의 고난과 고통을 묵상하는 사순절의 시간, 우리의 영적 시력을 점검해 봄으로써, 과연 우리는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보는 참 믿음의 백성들인지, 여러분들과 함께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진짜 보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 35절은, “예수님께서 그들이 그 사람을 쫓아냈다 하는 말을 들으셨더라”라고 시작합니다. 오늘 말씀 직전의 상황을 잠시 살펴보면, 제자들은 예수님께 맹인의 장애가 과연 누구의 죄 때문인지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나 혹은 부모의 죄 때문이 아닌,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라고 말씀하시며, 진흙을 이겨 그 맹인의 눈에 바르고, 실로암 못에서 씻게 하여, 그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이후, 이 소식을 접한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 치유가 일어났다라는 이유로, 맹인이었던 사람과 그의 부모를 심문하게 됩니다. 자신들에게 협조할 것을 강요하던 바리에인들을 향해, 맹인이었던 사람은 오히려 예수님을 선지자로 고백하게 됩니다. 그 결과 바리새인들은 그를 죄인이라 비난하며, 결국 그를 회당에서 쫓아내는 출교 조치를 하게 됩니다.
그 당시, 민족 중심의 유대 사회에서, 출교는 단순히 가벼운 징계가 아니었습니다. 출교는, 사회적 관계, 경제적 관계, 심지어 가족과의 모든 관계가, 완전히 끊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사회적 죽음과도 같은 처벌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 속에서 놀라운 일이 하나 일어납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그가 좇겨났다라는 소식을 접하시자 마자, 직접 그를 찾아가 만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쫓겨난 자가 예수님을 먼저 찾은 것이 아닌, 예수님이 그의 상황을 먼저 알고, 직접 찾아오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핵심이요, 복음의 은혜입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먼저 찾아가 만난 것이 아닌,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찾아오신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넘어졌을 때, 우리가 버림받았다고 느낄 때, 우리가 세상에서 쫓겨났을 때, 우리가 먼저 예수님을 찾기 전, 예수님이 먼저 우리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사순절은, 바로 이 같은 사건을 다시금 기억하는 은혜의 시간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예수님을 위해, 세상에서 버림 받고, 핍박 받으며, 멸시 받는 사람들을, 결코 예수님으로부터 잊혀 지지 않음을 기억하시며, 진짜 하나님을 보는 사람들은, 세상의 인정을 쫓아 살아가는 삶이 아닌, 예수님의 뜻과 말씀에 철저히 순종함으로써, 예수님의 인정만을 쫓아 살아가는 삶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진짜 하나님을 보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참으로 믿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맹인 되었던 자에게, 36절에서 이렇게 질문하십니다. “네가 인자를 믿느냐?” 여기서 인자는, 매우 중요한 단어입니다. 이 말은, 단순히 사람의 아들이란 의미가 아닙니다. 구약 다니엘서 말씀에 등장하는 “인자”는, 유대 사회에서, 장차 세상을 심판하시고자 다시 오시는, 메시아를 상징적으로 의미합니다. 바로 예수님은, “너는 내가 메시아인 것을 믿느냐?”라고 질문하셨던 것입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예수님,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그가 누구이든, 예수님이 말씀하시면,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여러분들, 오늘 이 맹인된 자의 고백을, 주의 깊게 바라 보시기바랍니다. 그는 아직 메시아가 누구인지 완전히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지금 말씀만 해주신다라면, 그는 어떻게든 그 사실을 믿고 싶어합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시작입니다. 다시 말해, 믿음은, 우리가 이성적으로 완전히 이해한 후 시작되는, 논리적인 사건이 아닙니다. 또한, 자신이 믿고 싶다고 하여, 저절로 믿을 수 있는 것도 혹은 믿어지는 것도 절대 아닙니다.
참된 믿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시작됩니다. 바로, 예수님이 허락하시는 은혜의 선물을 통해, 우리 마음 속에 믿음의 싹이, 비로소 자라날 수 있는 것입니다.
이후,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바로 그 메이아이니라.”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주여 내가 믿나이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께 경배하였습니다.
이 장면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을 허락하고 있습니다. 즉, 오늘 본문인 요한복음 9장은, 한 맹인이 눈을 뜨는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그 마지막은, 한 사람이 예수님을 참으로 믿게 되는 이야기로 마칩니다. 다시 말해, 맹인된 자의 인생이 완전히 바뀐 이유는, 그가 단지 막힌 육체적 눈이 열린 기적 때문만이 아닌, 믿음의 눈이 새롭게 열렸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인생을 바꾸는 기적은, 세상 사람들이 깜짝 놀랄, 단 한 번의 환경적 변화가 아닌, 예수님이 허락하시는 은혜를 통한, 새로운 믿음의 고백으로 나아가는, 사건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을 참으로 그리고 제대로 만난 사람들은, 결국 예수님을 믿는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혹시, 지금 우리의 모습이, 예수님을 만난 전과 후가 여전히 동일하다면, 우리는 아직 예수님을 제대로 만나지 못한 것임을 기억하시며, 이 시간, 예수님이 허락하시는 은혜의 선물을 통해, 예수님과 온전히 대면하여, 그 분을 우리의 구세주로 고백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마지막 셋째로, 진짜 맹인들은, 자기 스스로 진짜 본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 40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을 듣고 이르되, 우리도 맹인인가….”
바리새인들은, 단순히 성경 지식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아닌, 이 같은 지식을 너머, 성경 해석에 대해서도 정통한 전문가들입니다. 즉, 이들은 성경의 율법들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해석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이 예수님의 말씀은, 과연 무엇을 뜻하는 것이겠습니까? 이것은, 자신이 참으로 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야 말로, 영적으로 가장 위험한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본다고 생각하면, 더 이상 새로운 빛을 찾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바리새인들은, 성경을 잘 알고, 율법에도 정통하며, 유대 종교를 제일 앞에서 이끄는 지도자들이기에, 이들은 하나님을 그 누구보다도 제일 잘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역설적이게도, 하나님 앞에 서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 예수님을, 전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이 같은 일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교회를 오래 다니고, 성경을 많이 알며, 신앙생활을 오래 했지만, 정작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 우리 가운데 너무도 많이 있는 것입니다. 바로, 외부의 눈은 열려 있지만, 우리 내부의 영적인 눈은 닫혀 있는 상태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오히려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우리 믿음의 백성들에게 있어 가장 큰 위험은, 사탄도 아니요, 이단도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하나님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라고 생각하는 교만함입니다. 나는 그와 같은 사람이 아니다라는 오만함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0장 12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운동 경기에서 뿐만이 아닌, 우리 삶에 있어 참된 승리는, 처음도 중간도 아닙니다. 마지막에 결정되는 것입니다. 내가 옛날에는, 하나님의 일에 열심히 봉사했지, 기도도 열심히 했지, 믿음도 뜨거웠지라고 생각하며, 지금 우리의 삶이 오직 과거에 매여 살아가고 있다라면, 우리 신앙은 참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지금 열심히 봉사해야, 기도도 지금 열심히 해야, 뜨거운 믿음으로 지금 예배에 참여해야, 우리는 넘어진 자가 아닌, 온전히 선자로, 마지막 순간 하나님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옛날의 과거보다, 지금이 더 뜨겁고, 앞으로 더 열정적인 믿음으로 살아가야 함을 기억하시며, 우리의 교만함과 오만함을 모두 주님 앞에 내려 놓고, 늘 주님의 뜻과 말씀 앞에, 겸손히 나아가시는, 그리하여 성공한 인생으로 우리 삶을 장차 마감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예수님은 오늘, 우리 모두에게 이렇게 질문하고 계십니다. “당신은 진짜 보는 사람입니까?” 진짜 눈을 뜬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를 믿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경배했습니다. 반대로 눈을 뜨지 못한 바리새인들과 같은 사람들은, 성경을 알고, 종교를 알고, 율법적 전통을 알았지만,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 예수님을, 전혀 보지 못했습니다.
바로, 사순절은 이 같은 질문을, 우리 스스로에게 던지는 시간입니다. 나는 예수님을 그저 지식적으로 아는 사람인가 아니면 예수님을 참으로 만난 사람인가, 나는 종교를 가진 종교인인가 아니면 주님을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인가?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질문, 바로 “네가 인자를 믿느냐”의 진지한 물음에 대하여, 우리 모두 마음 깊은 곳에서, 이 같은 고백이 풍성히 흘러 넘치기를 소원합니다. “주여, 내가 믿나이다.”
이, 고백이, 단순히 우리의 지나간 과거 신앙 모습이 아닌, 지금 우리 인생을 바꾸고, 우리 영적 눈을 열며, 앞으로 우리의 삶을, 빛으로 인도할 능력이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사순절의 기간, 우리의 어두운 눈을 열어, 주님을 보게 하시고, 주님을 믿게 하시며, 주님을 따르며 행하게 하시는, 하늘의 풍성한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우리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