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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7.12 / 은혜가 만든 새로운 정체성! (누가복음 15:25~32)

할렐루야!  오늘 예배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지난주 우리는, 우리 교회 역사에, 참으로 특별하고 감사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즉, 두 교회가 하나 되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며, 새로운 믿음의 여정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이 모든 과정을 인도하시고, 지금까지 은혜로 이끌어 주신 하나님께, 먼저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또한, 새로운 시작을 위해, 기도하며 서로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주신, 모든 성도님들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우리는, 과거의 아름다운 전통을 이어가면서, 동시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 주신, 새로운 사명을, 함께 감당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힘과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 되었음을 기억하고, 장차 우리를 통해 행하실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를 믿음으로 기대하며, 함께 연합의 길을 기쁨과 감사함으로 걸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허락하신 본문은,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탕자의 비유” 가운데, 후반부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 비유를 아버지를 떠난 둘째 아들에 집중하며, 읽어 왔습니다.  그런데, 전체적인 흐름을 보면,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이 비유의 중심은, 아버지를 떠난 둘째 아들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아버지를 떠나지 않고, 그 집안에 있었던, 큰 아들에게도 관심이 있으셨습니다.

 

솔직히, 우리의 시각과 관점에서, 잃어버린 아들은, 단연코 아버지의 재산을 받아, 그것을 모두 탕진한 둘째 아들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둘째 아들은 아버지를 멀리 떠났지만, 큰 아들은 여전히 아버지의 집 안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둘째 아들은, 방탕했지만, 큰 아들은 대단히 성실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수님은 오늘 말씀 속에서, 두 사람 모두, 잃어버린 아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엄밀히 말해, 이 둘 모두는, 아버지를 사랑한 것이 아닌, 아버지가 가진 것을 더 사랑했습니다.  다시 말해, 둘째 아들은 자유를 원했고, 첫째 아들은, 자신의 노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원했습니다.  그 결과, 한 아들은 방종으로 아버지를 떠났고, 다른 아들은, 순종이라는 이름으로, 아버지를 떠났던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우리는, 그 동안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바라 보지 않았던, 큰 아들의 모습을 통해, 현재 우리 신앙의 모습을, 진지하고 돌아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오늘 본문은, 은혜를 모르면 그 어떤 순종도, 결국 거래가 됨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이제 큰아들은, 하루 종일 밭에서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런데, 자신의 집에서 큰 잔치가 벌어지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 이유를 듣자, 그는 크게 화를 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가 왜 화가 났는지, 그 이유를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여기서 “섬겼다”라는 헬라어의 뜻은, 노예가 주인을 섬길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즉, 늘 아버지와 함께한 첫째 아들은, 아버지를 자신의 부모님으로 섬긴 것이 아닌, 마치 주인과 종의 관계 속에서, 엄격하고 무서운 주인처럼 섬겨왔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의 마음속에는, 이러한 계산이 늘 깔려 있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밤낮으로 순종하고 노력 했으니, 아버지도 나의 필요를 반드시 채워 주셔야 합니다.”  우리는 흔히 이러한 관계를, “기브앤 테이크”라 부릅니다.  다시 말해, 한쪽이 양보하면, 다른 쪽은,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라는 사고입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관계속에서의 순종은, 서로에 대한 존경이나 사랑이 아닌, 철저한 거래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솔직히, 오늘 교회 안에도, 우리는 이러한 모습을 심심치 않게 발견합니다.  “나는 평생 교회를 열심히 다녔는데…”  “나는 봉사를 이렇게 많이 했는데…”  “나는 헌금을 남들보다 더 많이 했는데…”  그렇기에, 나는 그에 대한 정당한 대가와 대우를, 하나님으로부터, 교회로부터, 그리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받고 싶다.  혹시라도, 우리 역시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신앙 생활을 하고 있다라면,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사랑과 은혜가 아닌, 철저한 기브엔 테이크의 계약 관계로 변해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복음은, 시종일관 우리를 향해 이렇게 선포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철저히 순종함으로, 그 결과 그 분의 자녀가 된 것이 아닌, 이미 그분의 자녀가 되었기에, 기쁨과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순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은 “너희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라고, 명확히 선언합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구원은, 우리의 노력과 헌신에 대한 상급의 결과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우리의 어떠한 행위로도 받을 자격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시기에, 아무런 값없이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일방적 은혜의 선물인 것입니다.

 

우리가 어느 순간, 하나님의 이 같은 은혜를 잃어버리고, 우리의 뜻과 생각대로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라면, 우리의 순종과 헌신 역시, 거래의 수단과, 당연히 받아내야할, 계산의 결과물이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늘 아버지의 은혜 안에 머물면서도, 그 은혜를 잊어버리고, 불평과 불만을 늘어 놓는 첫째 아들의 모습, 바로 하나님을 떠나 잃어버린 자의 모습으로, 마지막까지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분명히 알고 그것에 감사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의로워서 혹은 거룩해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것이 아닌,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죽어 마땅한 존재들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먼저 사랑하시어 자녀 삼아주신, 그 하나님의 십자가 사랑 때문에, 기꺼이 기쁨과 감사함으로 순종하고 복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다시 한번,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를 기억하기를 소원합니다.  그리하여, 그 은혜를 선물로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답게, 기쁨과 감사함으로, 매순간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행동보다, 우리의 정체성을 먼저 바꾸고 계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아버지는, 크게 분노하고 있는 첫째 아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너의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말씀입니다.  지금까지, 큰아들은 아버지로부터 염소 새끼 한 마리도 못 받았다리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나의 모든 것이 다 너의 것이다”라고 이야기 하십니다.  여기서의 가장 큰 문제는, 아버지가 첫째 아들에게 아무 것도 주지 않은 것이, 그 원인이 아닌, 정작 큰 아들이 자신이 누구인지를 몰랐다라는 사실입니다.  바로, 자기의 정체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었던 것입니다.

 

팀 켈러 목사님은, “탕부 하나님”이란 책에서 이러한 말씀을 하십니다.  “도덕주의자들은 존재하기 위해 행동하지만, 복음은 이미 존재하기 때문에 행동하도록 만든다.”  여기서의 존재는,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사람으로 인정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인간의 노력과 공로를 중요시 하는 도적주의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인정 받기 위해, 끊임 없이 다양한 방법으로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노력을 합니다.  반면, 복음은,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인정 받았기에, 그 기쁨으로, 그에 합당한 삶을 자연스럽게 살아가도록, 우리를 인도합니다.

 

다시 말해, 첫째 아들은, 전형적인 도적주의자로서, 아버지 집에 살면서, 열심히 일을 했지만, 그것은 아버지를 사랑해서가 아닌, 아들의 자격과 재산을 얻어내기 위한 계산적 행동이, 그 밑바탕에 깔려 었습니다.  반면, 아버지는, 다시 자신에게 돌아온 둘째 아들에게, 네가 탕진한 모든 것을 다 갚으라고 요구하지 않고, 오히려, 너는 내 아들이기 때문에,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큰 잔치를 베풀어 줍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신앙은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까?  종교적 도덕주의자들처럼, 하나님께 버림받을까 봐 두려워, 마지못해 순종하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신 구원의 크신 은총 속에서, 이미 받은 은혜에 감사하며, 기쁨으로 순종하는 삶을 살고 있으십니까?

 

복음은 우리 정체성의 변화가 먼저라고, 분명히 말씀합니다.  즉, 우리는 오늘 하나님께 사랑받기 위해, 오늘 이 자리에 함께 모여,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예배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사랑받는 존재들이기 때문에, 이 곳에서 기쁨과 감사함으로 예배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용서받기 위해, 혹은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 받기 위해, 봉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았고,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을 받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봉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복음은, 우리의 행동을 가장 먼저 고치는 것이 아닌, 우리의 정체성 자체를, 새롭게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복음은, 우리의 공로와 행위를 통해, 신분이나 자격을 얻게 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먼저 허락해 주시고, 이제 우리 앞에 놓여진 삶을, 기쁨과 감사함으로 살아가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의 모습을 진실되이 돌아보며, 혹시라도 지금, 종교적 도적 주의자의 모습에 사로 잡혀 있다면, 그 모습에서 즉시 벗어나, 우리가 누구인지의 정체성을 가장 먼저 다시금 명확히 회복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마지막 셋째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들은,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닌, 사랑으로 살아가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아버지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씀합니다.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데, 큰아들은 끝까지, 자신의 동생을, “내 동생”이라 부르지 않습니다.  시종일관, 자신의 동생을 “아버지의 아들”이라 부릅니다.  우리는 여기서,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은혜를 모르면, 내 앞의 사람보다, 원칙이 중요해진다라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함 사람들은, 원칙보다 생명을 더 우선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 속에서, 큰 아들의 가장 큰 문제는, 율법을 너무나도 잘 지킨 것이 아닙니다.  그의 가장 큰 문제는, 사랑하지 못한 것입니다.

 

도덕주의자들은, 심판이 두려워 죄를 피합니다.  그러나, 복음의 은혜를 덧입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 싫어서, 죄를 멀리합니다.  비록 겉 모습은 똑같이 보여도, 이들의 동기는,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제가 참으로 존경하는 김기석 목사님은, 사랑을 이렇게 정의하십니다.  “사랑은 추상적인 감정이 아니라, 내 평온을 깨뜨리면서까지, 한 사람을 환대하는 의지적인 선택이다.”  다시 말해, 예수님이 보여주시고 말씀하신 구체적 사랑은,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나, 이제는 하나님이 귀하게 여기시는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내 마음에 품는 삶인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모습이야 말로, 복음이 만드는 기적적인 은혜의 삶인 것입니다.  더 이상, 억지 의무가 아니라, 감사와 사랑으로 살아가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위해 피 흘리신 예수님의 사랑을 아는 사람들은, 이제 일상에서의 작은 죄 하나까지도,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같은 대속의 은혜는, 우리의 삶을 방탕하거나, 방종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장 깊은 순종의 길로, 우리 삶을 이끌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경험한 사람들은, 더 이상 의무감이 아니라 감사로, 두려움이 아니라 사랑으로, 하나님과 우리 주변 이웃을 섬기게 됨을 기억하시며, 우리 역시, 죽음과 심판의 굴레에서 벗어나,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생명과 구원의 길을 향해, 기쁨과 감사함으로 나아가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오늘 우리는 큰아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 자신의 깊은 내면을 살펴 보았습니다.  혹시, 우리는 교회 안에 있지만, 첫째 아들과 같이, 아버지의 마음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우리는 봉사와 헌신으로, 끊임없이 하나님께 인정받으려 애쓰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오늘, 우리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된 우리 모두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얘야,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다.  그러니, 내 것이 다 너의 것이다.”

 

복음은, 우리를 더 열심히 살라고 채찍질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하나님의 백성들이요 자녀들이라고 먼저 선언합니다.  그리고, 그 새로운 정체성의 은혜가, 우리의 모습과 삶을, 장차 변화시킬 것이라 약속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 모두는 하나님 자녀의 정체성을 명확히 가짐으로써,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니라 사랑으로, 의무가 아니라 감사로, 계산이 아니라 은혜로 매순간 살아가시기를, 우리의 힘과 능력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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