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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7.11 / 토요 새벽 기도회 (시편 115:1~8)

오늘도, 예배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끊임없이 자신을 드러내고 자랑하는 시대입니다.  이러한 모습 속에서, 사람들은 성공하면 자신의 능력이 뛰어남을 크게 내세우고, 혹시라도 실패하면, 주변 사람들을 강하게 비난합니다.  한마디로,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성공하면 나 때문이고, 실패하면, 너 때문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 믿음의 백성들의 시각은, 이 같은 세상 사람들과 전혀 다릅니다.  즉, 하나님의 사람들은, 성공할 때에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실패와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높입니다.

 

오늘 본문의 시편 말씀은, 바벨론 포로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고백을 담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무너졌고, 성벽은 허물어졌으며, 나라는 약해졌습니다.  그러자, 이러한 모습을 본 주변 민족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크게 조롱했습니다.  “도대체 너희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지만, 오늘 본문의 시인은, 이 같은 주변 조롱으로 인해, 전혀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담대하게 외칩니다.  “그 어떤 영광도,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닌, 오직 하나님께 있다.”

 

그렇다면,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역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참된 예배자의 모습이 무엇인지, 함께 묵상하며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참된 예배자는, 모든 영광을 오직 하나님께 돌립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여기서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는 말이 두 번 반복됩니다.  이 같은 말을 두 번이나 강조하여 선포하는 이유는, 우리 인간들은 본능적으로 영광을 받고 싶어하는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비난보다는 칭찬받고 싶어 합니다.  인정도 받고 싶습니다.  다른 사람들 보다 높은 위치에 서길 원합니다.  그래서, 많은 경우, 하나님께 돌아갈 영광을, 중간에 자신이 가로채려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시인은 분명히 선포합니다.  “오직 주의 이름에만 영광을 돌리소서.”  이 같이 선포한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구원도, 우리의 회복도, 우리의 삶도, 모두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신실하심의 은혜로만, 주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인자하심”은, 히브리어 헤세드입니다.  지난 주일 예배에서도 말씀 드렸듯이, 이 헤세드의 뜻은, 결코 변하지 않는 하나님 사랑의 언약입니다.  바로, 자신이 하신 약속을 반드시 지키고 이루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 같은 말씀은, 현재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에서 돌아온 이유가, 그들이 잘해서가 아님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다시 말해, 이들이 현재, 다시 자신의 고국으로 돌아온 이유는, 과거 하나님께서 이들과 하신 약속을, 친히 지키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건강도, 가정도, 교회도, 사역도, 사업도, 자녀도, 모두 하나님이 허락하신 은혜의 현장입니다.  오늘 우리가 여기까지 걸어 온 것 역시,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 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지난 목요일, 정범구 감리사님의 아버님이신 정용기 목사님 장례식이 있었습니다.  정용기 목사님을 향해 주변 사람들이 하나 같이 이야기 하는 공통점은, “그 분은 참으로 겸손했다”입니다.  우리는 종종, 과거의 화려한 영광과 순간에만 사로잡혀, 정작, 우리가 가장 충실하고 소중히 여겨야 할, 현재의 순간과 미래를, 허무하게 날려 버릴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정용기 목사님은, 과거 모든 영광의 순간들을 뒤로 하고, 매순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거창하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조용히 자신의 삶을, 믿음과 소망 안에서 마무리 하셨습니다.

 

우리는 종종 교회 안에서 이러한 이야기를 들을때가 있습니다.  “내가 젊었을 때, 정말 열심히 봉사도 하고, 신앙 생활도 했다.  그러니, 이제는 세월이 지나고 나이가 들었으니, 좀더 편안하게 대접 받으며 신앙 생활 하고 싶다.”  우리가 착각하지 말아야할 사실은, 신앙은 마일리지가 아니란 사실입니다.

 

누가복음 12장에 보면,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던 부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가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라고 경고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과거의 업적과 물질적 풍요만을 의지하여, 현재, 자신의 생명과 영혼의 주인이신 하나님과 거리를 두며 멀어진 삶을 산다라면, 결국 우리 삶은, 성공이 아닌 완전한 실패로 끝나버리게 될 것입니다.

과거, 우리가 큰 업적을 남기고, 화려한 성과를 남겼기에, 이미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었다라고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처음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 된 자가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은, 절대로 교만하거나 나태하지 않음을 기억하시며, 매순간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그 은혜에 합당한 책임의 삶을, 겸손히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둘째로, 참된 예배자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아도, 지금도 이 세상을 친히 다스리고 계심을 믿고 고백하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 보다 많은 고난과 어려움을 겪고, 또한,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지키려 노력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세상 속에서 어리석은 자들로 취급 받는 모습을 보며, “도대체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바로 세상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없다라고 자신있게 말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시인은 3절에서 이렇게 대답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여전히 하늘에서 다스리신다.”  여기서 “하늘”은 단순히 높은 곳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곳은, 절대 주권의 자리를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은 세상의 어떤 권세에도 제한받지 않으시는 분으로써, 세상의 나라가 망해도, 경제가 무너져도, 질병이 찾아와도, 하나님의 통치는 절대 멈추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박국서를 보면, 하박국 선지자는, 현재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해 있는 비참한 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즉, 이들의 농사는 망했습니다.  포도도 없었습니다.  양도 없었습니다.  소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이러한 고백을 이야기 합니다.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라.”

왜 그렇습니까?  그는 주변 환경이나 사람이 아닌,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 보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풍랑 가운데 계셨습니다.  제자들은 두려워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평안히 주무셨습니다.  그 이유는, 풍랑보다 크신 하나님을 신뢰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인생의 풍랑을 예외 없이 만나게 될 것입니다.  질병의 풍랑, 경제의 풍랑, 가정의 풍랑, 교회의 어려움 등.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순간, 우리 상황과 주변만을 바라보고 실망하거나 좌절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은, 여전히 하늘 높은 보좌에서, 우리와 세상을 친히 다스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고, 버라시며, 기뻐하시는 믿음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현실보다, 그 현실 이면에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통치를, 마지막까지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실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비록 우리의 뜻과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을찌라도,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삶을 가장 선하고 아름다운 길로 인도하고 계심을 믿고, 담대히 나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마지막 셋째로, 참된 예배자는, 자신이 예배하는 대상을 닮아간다라는 사실입니다.  .

이제 시인은 우상을 설명합니다.  우상에게는 입이 있습니다.  그러나 말하지 못합니다.  눈이 있습니다.  그러나 보지 못합니다.  귀가 있습니다.  그러나 듣지 못합니다.  손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잡지 못합니다.  발이 있습니다.  그러나 걷지 못합니다.  즉, 겉으로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아무 능력이 없습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오늘 시편의 시인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우상을 만드는 자와 의지하는 자도, 다 그와 같으리라.”

 

우리 인간들은, 자신이 예배하는 대상을, 원하건 원치 않건, 닮게 되어 있습니다.  즉, 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면, 돈의 사람이 됩니다.  권력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면, 권력의 사람이 됩니다.  세상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면, 세상을 닮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진심으로 따르고 예배하면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갑니다.  바로, 나를 구원하신 그 사랑으로, 하나님과 주변 사람들을 사랑으로 섬기게 됩니다.  나를 용서하신 그 은혜로, 용서하게 됩니다.  나를 위해 희생하신 십자가의 그 사랑 앞에서, 겸손하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따라, 정직하고 거룩한 삶을 매순간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모세는, 하나님과 끊임없이 동행하는 삶을 살았던 대표적 인물입니다.  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영광 속에 거하며, 40일 동안, 아무것도 먹고 마시지 못하고, 십계명이 새겨진 증거의 두 돌판을 받고 내려왔을 때, 그의 얼굴에서는, 초췌함이 아닌, 눈부신 광채가 나고 있었다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정작 모세 자신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지만, 아론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광채를 보고 두려워하여, 감히 모세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라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가까이하면, 우리의 모습 속에서 하나님이 나타난다라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2장을 보면,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향기가 자연스럽게 흘러 나온다고 말씀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볼수록, 그 영광의 형상으로, 서서히 변화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가 오늘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을 닮아가는 귀하고 소중한 시간입니다.  또한, 오늘 우리가 드리는 기도는,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시간입니다.  오늘 우리가 듣고 순종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성품을 배우는 시간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토요 새벽, 하나님 앞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우리 삶을 막고 있는, 우상은 무엇입니까?  돈입니까?  성공입니까?  명예입니까?  자녀입니까?  건강입니까?  충분한 수면입니까?  급속도로 발달한 영상 기술때문입니까?  우리가 우리의 우상을 판단하는 기준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가 가장 많은 시간을 쓰며 드리는 것이 있다라면, 그것이야 말로, 우리 삶의 분명한 우상이란 사실입니다.

 

우리는 우상을 바라보면, 점점더 영적으로 쇠하고, 서서히 죽어갑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바라보면,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며, 서서히 그분이 허락하시는 힘과 능력 속에서, 그분의 향가를 아름답게 발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나님이 찾으시는 간절한 그 예배자가, 바로 내가 되기로 결단함으로 말미암아, 우리 삶의 매순간, 하나님만을 참되게 예배하는 하늘의 백성들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오늘 시편 기자는 우리에게 세 가지를 가르쳐 줍니다.  첫째는,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하며, 둘째는, 눈에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다시리고 계신다는 사실이며, 마지막 셋째로, 우리 삶의 모든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만을 참되게 예배해야 한다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예배하는 대상을 반드시 닮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예배하면,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사람들로 자연스럽게 그리고 반드시 변화될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의 목적은 나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높이는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통해 영광 받으신다면, 우리의 삶은 그야말로 성공한 삶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순종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신실하심이 이 세상에 환히 드러나기를, 그리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부활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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