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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9.27 / 죄를 이기는 삶! (로마서 6:1~11)

할렐루야!  오늘도 예배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믿으십니까?  그런데, 우리는 구원받은 이후에도, 우리 안에 여전히 죄의 뿌리와 씨앗이 남아 있음을 보게 됩니다.  즉, 화가 날 때가 있고, 미워할 때도 있으며, 욕심이 생길 때가 있고, 알면서도 같은 죄를 반복할 때가, 분명히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들에게, 오늘 본문 1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공동번역은 이 본문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풍성히 받기 위하여, 계속해서 죄를 짓자’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쉽게 말하면 이런 질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크니까, 죄를 좀 더 지어도 얼마든지 괜찮은 것 아닙니까?”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아주 단호히, 한마디로 대답합니다.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이미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죽었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 생명을 얻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죄 앞에서 연약한 이 같은 우리가, 어떻게 해야 죄를 이기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여러분들과 함께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죽었다라는 것을 “알이야”합니다.

오늘 본문 3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사도 바울은, 우리가 죄를 이기는 삶의 시작점이, 가장 먼저 “아는 것”임을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분명히 알아야 하겠습니까?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다름아닌,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다”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죽음은, 단순히 2천 년 전에 일어난, 하나의 역사적인 사건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끊임없이 연합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오늘도 십자가에서 죽었다리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세례의 본질적 의미가 등장합니다.  세례는 단순히 물을 뿌리는 종교적인 의식이 아닙니다.  세례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죽음에 참여하고, 그리스도와 연합되었다라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징표입니다.  그래서, 세례는 한편으로 우리의 장례식과 같습니다.  바로, “나는 이제 옛 사람으로 살지 않겠습니다.”  “죄의 지배를 받던 옛 삶을 끝내겠습니다.”라는, 과거의 삶을 떠나보내는, 결단의 시간인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죄에 대하여 죽었다”라는 말은, 죄가 이제 우리 안에서 완전히 사라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는 여전히 죄의 유혹을 받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받을 것입니다.  그로 인해, 때로는 넘어집니다.  때로는 실패합니다.  그러나 이전과 결정적으로 다른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제 우리는 죄의 지배 아래 살도록, 운명 지어진 사람들이 아니란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예전에는 죄가 우리의 삶을 끌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죄의 유혹을 거절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속한 새사람, 바로 새로운 정체성을 가진 존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우리의 삶이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말씀합니다.  4절을 보면,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을 선포합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죽으신 이유는, 그저 우리에게 미래의 천국행 티켓을 주시기 위함이 아닌, 우리 모두가, 지금부터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은 단순히 “죄를 용서받았다”에서 끝나서는 안됩니다.  바로, 새로운 삶을, 이제부터,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자녀 된 정체성을 가지고, 시작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예전엔 내 뜻대로 살았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예전에는, 내 감정이 나를 지배했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다스리게 합니다.  예전에는, 나와 내 가족만을 위해 살았지만, 이제는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 그리고 그의 백성들을 위해 살아갑니다.  이것이 바로, 새 생명 가운데 행하는, 새로운 삶의 모습과 자세인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이기기 위해, 가장 먼저 헤야 할 것은, 지금 우리의 정체성을 아는 것입니다.  바로, “나는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얻은 사람이다”란 사실입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분명히 아는 사람은, 죄의 유혹 앞에서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임을 기억하시며,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이제는 새 생명을 향해 살아가는 새로운 존재들임을, 분명히 “아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있는 자들로 여겨여 합니다.

오늘 본문 11절을 보면,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여긴다”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그 사실을 기준으로, 나 자신을 새롭게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우리 자신을 바라보아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종종 사람들의 평가로, 우리 자신을 바라볼 때가 있습니다.  실패한 경험으로, 우리 스스로를 바라볼 때도 있습니다.  내 약점과 상처를 보면서, “나는 안 돼”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이제 너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사람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이렇게 여겨야 합니다. “나는 죄에 대하여 완전히 죽은 사람이다.”

 

하지만 우리 주변의 죄들을, 우리를 향해 끊임없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너는 나를 따라와야 해.”  “화를 내.”  “미워해도 되.”  “복수해.”  “욕심내.”  “너 자신만 생각해.”  바로 그때, 우리는 믿음으로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나는 이제 죄의 지배를 받는 사람이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여기서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겨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동 번역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러분도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죽어서, 죄의 권세를 벗어나, 그와 함께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십시오.”

 

이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기독교 신앙은, 단순히 죄를 안 짓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신앙과 믿음의 참 본질은, 하나님께 대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매순간 살아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미워하지 않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입니다.  거짓말하지 않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진실하게 사는 것입니다.  욕심을 버리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것입니다.  나를 중심으로 살던 사람이, 이제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삶에는 반드시 중심이 있습니다.  물론, 그 중심은 내가 될 수도 있습니다.  돈이 중심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자녀가 중심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성공이 중심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의 인정이 중심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고 살아가는 하늘의 백성들이 되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의 삶에서 이러한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우리는,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있는 사람입니다.”  “내 인생의 주인은 내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십니다.”  “나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살아갑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에 대하여 살아있는 자로 “여기는” 삶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셋째로, 우리는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11절까지 우리의 생각과 믿음을 다룬다면, 이어지는 12절 이후의 말씀은, 우리의 삶과 행동을 적극적으로 다룹니다.  13절을 보면,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 “드리라”라는 말이, 두 번이나 반복됩니다.  그 이유는, 죄를 이기는 삶은, 지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우리의 삶을 매순간 하나님께 드리는, 결단으로 이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말씀 안에서, 무엇을 바라볼 것인지 결정하며, 우리의 눈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또한, 내가 어떠한 말을 할 것인가 결단하며, 우리의 입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결단하며, 우리의 손을 하나님께 내어 드려야 하며, 내가 어디로 향할 것인가를 결단하며, 우리의 발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무엇을 사랑할 것인가를 결단하며,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고,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를 결단하며, 우리의 시간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삶을 구체적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삶인 것입니다.

 

이어지는 13절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의 지체를 “의의 무기” 혹은 “정의의 도구”라 표현합니다.  즉, 우리는 우리 스스로 무언가를 행하는 주체가 아닌, 늘 누구가로 인하여 사용되는 객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좀더 쉽게 풀이해 보면, 우리의 삶은 우리가 주인이 아닌,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수 있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도구는, 누가 사용 하느냐에 따라, 그 모습이 확연히 달라집니다.  다시 말해, 망치는 건축하는 사람들의 손에 있으면, 집을 세우는 도구가 됩니다.  그러나 잘못된 사람의 손에 있으면, 다른 것을 파괴하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입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입으로, 사람을 살릴 수도 있고, 상처를 줄 수도 있습니다.  같은 손으로, 사람을 도울 수도 있고 해칠 수도 있습니다.  같은 시간을, 하나님을 위해 사용할 수도 있고, 나 자신만을 위해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중요한 핵심은 이것입니다.  바로, “내 인생을, 우리 인생을, 과연 지금 누가 사용하고 있는가?”입니다.  우리의 죄가 사용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욕심이 사용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자존심이 사용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온전히 사용하고 계십니까?

 

우리가 착각하지 말아야 할 사실은, 우리에게 약점이 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지 못하시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부족함이 있어도, 얼마든지 하나님께 우리를 내어 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상처가 있어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실패의 경험이 있어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연약함까지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가 완벽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닌, 부족하고 나약하지만, 하나님께 나의 모든 것을 전적으로 맡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저는 부족합니다.”  “그러나 제 삶을 주님께 드립니다.”  “제 말과 생각과 행동을 주님께서 사용해 주십시오.”  그러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과 생각, 그리고 계획 속에서, 우리의 삶을 적절하고 아름답게, 그 분의 손에 붙들리어 시용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죄를 이기는 구체적 삶의 모습이요 자세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필라제일연합감리교회 성도님들, 오늘 말씀을 세 단어 요약하면 이것이 될, 것입니다.  첫째는, “알라”입니다.  바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기에,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님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둘째는, “여기라”입니다.  바로, 우리는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있는 존재들로써, 우리의 삶이, 매순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도록 반드시 여겨져야 합니다.  마지막 셋째로, “드리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정체성을 가지고,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야 합니다.  우리의 몸을 드리고, 마음을 드리고, 시간을 드리고, 가정을 드리고, 직장을 드리고, 재능을 드리고, 나의 부족함과 연약함까지, 모두 하나님께 내어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러 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죄를 이기는 삶을, 매순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죄를 이기는 삶은, 내가 얼마나 강한 사람이 되느냐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가 누구에게 속해 있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바로,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고 맡겨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을 귀하고 아름답게 사용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말이 누군가를 살리는 말이 되게 하시고, 우리의 손이 누군가를 돕는 손이 되게 하시고, 우리의 발이 복음을 전하는 발이 되게 하시고, 우리의 가정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가정이 되게 하시고, 우리의 교회가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교회가, 반드시 되게 하실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 모두, 알고, 여기고, 드리면서, 죄의 지배를 벗어나, 지금부터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새 생명 가운데서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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