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예배에 참여신 모든 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장면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장면에는 아주 대조적인 두 모습이 등장합니다. 한쪽은, 하나님의 임재를 기뻐하며 찬양하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레위인들은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하며, 언약궤를 모셔옵니다. 다윗도 왕의 체면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서 기뻐하며 춤을 춥니다. 그런데, 다른 한쪽은, 창문너머 멀찌감치 이 모습을 바라보며, 업신여기는 사람입니다. 그는 바로, 다윗의 아내 미갈입니다.
같은 사건을 바라보면서도, 한 사람은 기뻐했고, 다른 사람은 멸시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의 시선은 왜 이렇게 달랐던 것이겠습니까? 오늘 우리에게 허락하신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임재를 귀하게 여기고, 기쁨으로 예배하는 예배자가, 어떠한 사람인지,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자는, 각자의 자리에서,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들입니다.
16절을 보면, 다윗은 레위 지파 지도자들에게 이렇게 명령합니다. “노래하는 자들을 세우고 비파와 수금과 제금 등의 악기를 울려서, 즐거운 소리를 크게 내라.” 여기에는 여러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즉, 노래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비파와 수금을 연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금을 연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팔을 부는 제사장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언약궤 앞에서 문을 지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모두 같은 일을 한 것은 아니지만, 목적은 분명히 하나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임재를 기뻐하며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사람의 눈으로 보면, 역할의 규모와 크기가 확연히 달라 보일 수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 이들이 맡은 직분들은, 한결 같이 모두 동일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공동체에서 안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역할을 맡았느냐”보다, “내가 지금 맡은 자리에서 누구를 위해 섬기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예배는 함께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생각할 때, 목회자나 성가대, 예배를 인도하는 사람들을 먼저 떠올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배는 몇 사람이 참여하여 만드는 공연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배는 하나님 백성 전체가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며 높이는 행위입니다. 즉, 찬양하는 사람들도 예배자이고, 말씀을 선포하고, 듣는 사람들도 예배자이며, 대표 기도자뿐만 아닌, 묵묵히 그 기도에 동참하는 사람들도, 예배자입니다. 또한, 교회의 문을 열고, 의자를 정리하고, 성도들을 맞이하고, 음식을 준비하고, 예배를 위해 묵묵히 준비하는 모든 섬김 역시,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역할과, 나의 역할을 비교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나는 왜 저 사람처럼 하지 못할까?” “나는 왜 저렇게 중요한 일을 맡지 못했을까?” 그렇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믿음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우리 저마다에게 맡겨 주신 그 자리에서, 끝까지 최선을 다해 충성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감당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생각과 판단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일을 이끌어 가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전 말씀을 보면, 언약궤를 자기들의 생각대로 옮기려 하다가, 큰 문제가 발생함을 보게 됩니다. 즉,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지 않고, 과거 블레셋 사람들이 행하던, 인간적 방법으로 언약궤를 옮기다가, 비참한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레위 사람들이 언약궤를 메었습니다. 찬양할 사람들을 세웠습니다. 악기를 준비했습니다. 나팔을 준비했습니다. 이 같은 모습은,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 우리의 열정만으로는, 충분치 않음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히 따라 준비하고, 서로 순종하며 협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토요 예배가 혹은 주일 예배가 은혜로웠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먼저 준비해야 합니다. 예배 전에 기도하고, 말씀을 사모하고, 마음속의 미움과 교만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정결한 마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지난번, 비젼 세미나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우리의 예배는 주일 아침 교회에 도착하면서 시작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한 주간의 삶을, 하나님의 은혜 앞에서 겸손히 순종하며 준비하고, 감사하는 것에서부터, 우리의 예배가 비로소 시작되는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함께 하나님을 높이길 원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예배가 형식적인 시간이 아닌, 말씀에 순종하며 준비된 예배가 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내가 맡은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따라, 최선을 다하고, 준비된 마음으로, 기쁨과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자는, 하나님의 임재를 공동체와 함께 기뻐해야 합니다.
25절 이후의 말씀을 보면, 드디어 언약궤가 예루살렘으로 옮겨지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표현이 있습니다. 그것은, “즐거이” 기쁨으로, 이 곳에 모인 사람들이, 언약궤를 옮겼다라는 것입니다. 바로, 다윗만 기뻐한 것이 아닙니다. 장로들도 함께했습니다. 천부장들도 함께했습니다. 레위인들도 함께했습니다. 제사장들도 함께했습니다. 온 이스라엘이 기쁨과 감사함으로 함께했습니다.
이 모든 순간들이, 기쁘고 감사했던 이유는, 언약궤가 단순한 물건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언약궤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함께하신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상징하는 물건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이 기뻐한 것은, 단순히 좋은 행사가 열렸기 때문이 아닌, 이들과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기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역시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임재가 우리의 가장 큰 기쁨과 감사함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때론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기뻐하고 감사할 때가 있음을 발견합니다. 즉, 좋은 일이 생기면 기뻐합니다. 사업이 잘되면 기뻐합니다. 자녀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기뻐합니다. 건강하면 기뻐합니다.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면 기뻐합니다. 물론 이 모든 것들도, 하나님께 감사할 제목들입니다.
그러나, 우리 믿음의 백성들의 가장 깊고 본질적인 기쁨은, 그곳이 최종 목적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바로,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 이 같은 고백이, 우리의 가장 큰 기쁨이요 감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감리교의 창시자 이신, 존 웨슬리 목사님 역시, 임종 직전 남긴 마지막 유언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이다”라는 고백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상황이 좋아져서, 형편이 나아져서 기뻐하는 사람들이 아닌, 상황이 어려워도, 우리의 형편이 변변치 못해도, 하나님께서 우리와 늘 함께하심을 믿고, 그로 인하여 기뻐하는 백성들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오늘 본문을 보면, 이 기쁨은 단순히 개인적인 기쁨만이 아닙니다. 오히려, 공동체의 기쁨으로 점점더 확장됨을 보게 됩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혼자 신앙생활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함께 찬양하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예배하고, 함께 울고, 함께 기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 주변의 형제 자매들을 통해 일하시고, 역사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교회 안에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성격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고, 세대도 다르고, 배경도 다릅니다. 그런데, 하나님 안에서는 우리가 한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예배 가운데, 다른 사람의 모습을 쉽게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 저 사람은 저렇게 찬양하지?” “왜 저 사람은 저렇게 기도하지?” “왜 저 사람은 저렇게 행동하지?” 다른 사람의 예배를 바라보다가, 정작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기쁨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저마다의 은혜와 은사를 바라보며, 그 은혜 안에서 함께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변 사람을 바라보는 예배가 아닌, 하나님을 바라보는 예배, 사람의 반응을 의식하는 예배가 아닌, 하나님의 임재를 기뻐하는 예배가 되어야 함을 기억하시며, “주님, 오늘도 우리 가운데 함께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라는, 바로 이 고백이, 우리의 매순간 예배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마지막 셋째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자는, 세상의 체면보다 하나님의 임재를 더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입니다.
이제, 마지막 29절에서 접어 들며, 갑자기 축제와 같은 분위기가, 냉랭하게 바뀝니다. 즉,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다윗의 아내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그 마음에, 그를 업신여긴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기뻐하고 있는데, 한 사람은 그곳에서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 그것을 냉소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입니다. 왕이라면 왕 답게 행동해야 한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왕이 백성들 앞에서 그렇게 뛰고 춤추는 것이 체면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왕의 체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었습니다. 바로,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었습니다. 자신이 왕이라는 사실보다, 자신이 하나님의 충성된 백성이라는 사실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렇다면, 미갈은 왜, 이 기쁨의 예배에 참여하지 못하였겠습니까? 오늘 본문은, 미갈의 마음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다윗은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기뻐했지만, 미갈은 그 기쁨을 멸시하며 조롱했다라는 것입니다. 바로, 같은 장면을 바라보았는데, 그 반응이 전혀 달랐습니다. 다시 말해, 다윗은 하나님의 임재를 보았습니다. 하지만, 미갈은 다윗의 행동만을 보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하지만, 미갈은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이 같은 사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우리가 지금 무엇을 바라보며 집중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신앙과 예배가 달라진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주변 사람들을 의식하고 바라보며 예배하면, 우리는 하나님 임재의 기쁨과 감사함을, 잃어버리게 된다라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예배하면서 사람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누가 왔나?” “누가 안 왔나?” “누가 어떻게 찬양하나?” “누가 어떤 옷을 입었나?” “누가 기도를 잘하나?” “누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나?” 이런 것들을 생각하다 보면, 우리는 어느 순간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됩니다. 바로, 예배의 중심에서 하나님이 사라지고, 사람이 중심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예배는 기쁨과 감사의 자리가 아닌, 불만과 불평의 피곤한 자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집중하여 바라보면 자유로워집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아십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십니다.” 이 사실을 믿으면, 우리는 우리 주변 사람들의 말과 평가에, 크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세상의 체면보다, 하나님의 임재를 더 귀하게 여기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보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을 더 소중히 여기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임재를 기뻐하는 예배자가 되라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참된 예배자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정말 기뻐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사람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예배의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도, 마음은 다른 곳에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다시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기를 소원합니다. 우리의 삶이 예배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가정이 예배의 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교회가 하나님의 임재를 기뻐하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배할 때마다, 세상의 시선보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사람의 인정이 아닌, 하나님의 임재를 가장 귀하게 여기는 공동체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에서 기뻐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며, 하나님의 임재를 세상 무엇보다 귀하고 감사하게 여기는, 참된 예배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