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오늘도 예배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우리 인간들에게는, 처음 시작할 때의 마음이 있습니다. 즉, 처음 직장에 들어갔을 때는, 열심히 일하고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처음 결혼했을 때는, 서로 사랑하고 배려하며, 행복한 가정을 이루겠다고 다짐합니다. 처음 교회에 나왔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고, 예배 드리는 것이 참으로 기쁘며,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시간이 매우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처음의 마음이 조금씩 사라질 때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기쁨으로 했던 일들이, 이제는 힘들고 버거운 의무가 되고, 처음에는 간절했던 기도가, 이제는 무미건조한 형식이 되기도 합니다. 또한, 하나님을 향한 기대보다, 세상일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어떻게든 이 초심을 지키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 성경은, 우리 믿음의 처음 시작도 중요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믿음을 끝까지 유지하며 지키는 것임을 시종일관 강조합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하박국 선지자 역시, 어떻게 자신의 믿음을 마지막 순간까지 지킬 것인지, 깊은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하박국 선지자가 살던 시대에는, 불의와 폭력이 가득했습니다. 즉, 악한 사람들이 득세하고, 정의가 무너지며, 의롭게 살려고 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큰 조롱과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러자,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께 이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하나님, 왜 악한 사람들이 잘되는 것입니까? 왜 하나님께서는 불의를 보고도, 그저 침묵하고 계시는 것입니까?”
게다가, 하박국 선지자가 더욱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장차 하나님께서 이 같은 유다 사회의 불의를 심판하시기 위해, 그 누구보다 악한 바벨론을 사용하시겠다라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즉, 하박국의 입장에서, 이 같은 하나님의 말씀은, 전혀 이성적으로 그리고 신앙적으로 납득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저항하듯 하나님께 다시 질문을 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하박국에게 허락해 주신 말씀이,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우리 역시, 도저히 하나님의 뜻을 납득하기 어렵고, 게다가 여러 불의와 고난이 우리에게 몰려오는 상황 속에서, 어떻게 믿음의 초심을 마지막까지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지, 여러분들과 함께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응답을 겸손히 기다리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께 질문한 이후, 파수하는 곳에 올라갑니다. 파수꾼은 성벽 위에서 먼 곳을 바라보며, 적군이 오는지 살피는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그는 밤낮으로 깨어 있어야 하고, 위험이 다가오면, 사람들에게 즉시 알려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하박국은, 적군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 상황에서 유심히 살펴보아야 할 것은, 하박국 선지자는, 그저 하나님께 여러 질문만 던져 놓고, 이후, 자기 뜻과 생각 속에서 마음대로 결론을 내리지 않았라라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그는, 하나님의 대답을 묵묵히 그리고 끝까지, 파수꾼의 성벽 위에서, 인내하며 침묵속에서 기다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믿음의 중요한 모습입니다.
우리는 종종 기도할 때, 하나님께 많은 질문을 하곤 합니다. “하나님, 왜 이런 일이 제게 일어납니까?” “하나님, 왜 기도하는데도 상황이 전혀 달라지지 않습니까?” “하나님, 왜 정직하게 사는 사람이 손해를 보고, 악한 사람이 더 잘되는 것입니까?”
이러한 기도 속에서,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께서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느낍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 것 같고, 아무리 노력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쉽게 절망하며 낙심합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나를 잊으신 것은 아닌지 강하게 의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박국 선지자는 달랐습니다. 그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뜻과 생각만을 고집하지 않고, 하나님 안에 머물며, 그 분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는 하나님께 날카로운 질문을 하면서도, 동시에 겸손히 하나님의 대답을 기다렸던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은 모든 것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의 모습과 자세는, 이해할 수 없을 때에도, 하나님을 묵묵히 기다리고, 바라보며, 신뢰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의 뜻과 생각을, 완벽히 다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런 일을 허락하셨는지 지금 당장 설명할 수 없을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의 선하신 하나님께서 여전히, 우리를 위해 지금도 쉬지 않고 일하고 계신다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다가 쉽게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상황이 어렵다고, 하나님을 의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하박국 선지자처럼, 믿음의 파수꾼이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묵묵히 그리고 끝까지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그러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믿음의 초심을 지킴으로 말미암아, 끝까지 하나님 마음에 합한 믿음의 백성들로 남게 될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때를 신뢰하며, 인내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박국 선지자에게 말씀을 주시면서, 이 받은 말씀을 분명하게 기록하라고 하셨습니다. 즉, 누구든지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기록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요구를 하셨던 것이겠습니까?
그 이유는 바로, 하박국 선지자, 한 사람만 그 말씀을 듣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지금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들, 미래에 어려움을 겪을 사람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는 모든 사람에게, 이 말씀이 분명하고도 명확히 전해져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중요한 말씀을, 3절에서 이어서 하십니다. 표준 새번역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묵시는, 정한 때가 되어야 이루어진다. 끝이 곧 온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것은 공연한 말이 아니니, 비록 더디더라도 그 때를 기다려라. 반드시 오고야 만다. 늦어지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비록 더디더라도 그 때를 기다리라”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박국 선지자에게 약속의 성취가 당장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면, 그것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굳게 약속하십니다.
우리 믿음의 백성들의 대부분의 문제는, 이 같은 하나님의 때를, 묵묵히 참고 기다리지 못한다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기도하면, 곧바로 응답받기를 원합니다. 노력하면, 바로 눈에 보이는 결과가 나타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다면, 오늘 당장 우리 삶속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분명히 자신이 정하신 때와 시간이 있으십니다.
성경을 보면, 믿음의 사람들도, 모두 기다림의 시간을 경험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시겠다라는 약속을 받았지만,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믿음의 조상인 그 역시, 그 기다림이 길어지자, 하나님의 약속을 뒤로 하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인간의 조급함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정하신 그 때와 그 시간에, 온전히 이루어졌음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요셉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여러 꿈을 보여 주셨지만, 그 꿈이 이루어지기까지, 긴 시간을 여러 고난과 고통 속에서 묵묵히 기다려야 했습니다. 형들에게 버림받고, 종으로 팔리고, 억울하게 감옥에 갇히는 시간을 지나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고난의 시간에도, 여전히 요셉과 변함없이 함께하셨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도 저마다의 기다림이 반드시 존재합니다. 기도해도 해결되지 않는, 가정의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자녀를 위해 기도하지만, 기대만큼 변화가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직장과 경제적인 문제, 건강과 인간관계의 어려움 등이 오랫동안 지속될 수도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조급해지기 쉽습니다. 하나님을 기다리기보다, 내 생각과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때로는, 믿음의 원칙을 조금씩 양보하고, 세상과 타협하려는 유혹도 받습니다. 그러나 오늘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분명하고도 명확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기다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믿음의 백성들의 기다림은,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으며, 오늘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않고, 성실하게 매순간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기도하고, 말씀을 지킬 때 말씀을 지키며, 사랑해야 할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약속이 대단히 늦고 더딘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때와 시간은 너무도 적합하고 완벽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조급함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들로서 당연히 감당해야 할 믿음의 길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마지막 셋쩨로, 의인은 반드시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리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4절을 보면, 두 종류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첫번째 사람은, 교만한 사람으로써, 자신의 힘과 능력을 믿고, 자기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 말씀은, 일차적으로 당시 유다를 침략했던 바벨론을 가리킵니다. 그 당시 바벨론은 강한 군사력과 권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의 힘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에, 이들은 하나님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신들 힘과 권력만을 전적으로 의지했습니다.
두번째 사람은, 의인으로서, 이들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믿음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에무나’입니다. 이 단어에는 믿음뿐 아니라, 성실함, 신실함, 변함없이 충성하는 태도라는 의미도 함께 담겨 있습니다. 따라서, 이 말씀의 깊은 의미는, 단순히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고백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며, 끝까지 하나님의 백성들 답게 신실하게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솔직히, 세상은 힘 있는 사람들을 부러워합니다. 돈이 많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성공한 사람을 크게 인정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기준이 아닌, 다른 기준으로 우리 믿음의 백성들을 바라보십니다. 즉, 얼마나 많은 것을 가졌는가가 아닌, 얼마나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았는가를 보십니다. 얼마나 높은 자리에 올라갔는가가 아닌, 얼마나 정직하고 신실하게 살았는가를 중요하게 보십니다.
우리는 때론,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나는 정직하게 살려고 하는데, 왜 손해를 보는가?’ ‘나는 믿음으로 살려고 하는데, 왜 어려움이 계속되는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더 잘되는 것 같은데, 나는 왜 이렇게 힘든가?’
그런데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거룩한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마지막까지 살리라”란 말씀입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세상과 똑같은 방법으로 성공하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손해를 보더라도 정직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비록, 다른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하나님 앞에서 충성하는 것입니다. 어려움이 있어도 예배의 자리를 지키고, 기도의 자리를 지키며, 사랑과 섬김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종교개혁자인 마틴 루터 역시,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하면서, 종교개혁의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즉, 인간의 공로나 행위가 아닌,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의를 얻는다는, 복음의 진리를 새롭게 발견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노력이나 자랑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받는 사람들이 절대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과 은혜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우리의 삶을 매순간 새롭게 변화시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정직하게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경험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겸손히 우리 주변 이웃들을 기쁨과 감사함으로 섬깁니다.
이것이 믿음의 열매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우리 믿음의 기준을 쉽게 바꾸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들이 세상과 쉽게 타협한다고 해서, 우리도 타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한다고 해서, 하나님 앞에서의 신실함을 결코 내려 놓거나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 하나님이 인정한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과거 어느 한 때에, 믿음으로 살았던 사람들이 아닌, 혹은 앞으로 어느 순간 믿음으로 살겠다라고 다짐하는 사람들이 아닌, 하나님이 허락하신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지금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 믿음으로 시작하고, 믿음으로 견디며, 믿음으로 우리 삶의 모든 과정들을, 묵묵히 견디며 걸어가는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이 인정하신, 바로 하나님 마음에 참으로 합한, 참 믿음의 사람들임을 분명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오늘 우리는 하박국 선지자를 통해, 믿음의 초심을 지키는, 세 가지 방법을 보았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 응답을 기다리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매순간 그리고 끝까지 바라보아야 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때를, 신뢰하며 인내해야 합니다. 더딜지라도 하나님의 약속만을 강하게 붙들고 기다려야 합니다. 마지막 셋째로,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야 합니다. 어떠한 순간에도,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고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하박국 선지자의 모습을 통해, 우리 믿음의 본질을 다시 돌아보았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가 다시 새로워지는 일은,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데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장 먼저, 우리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낮아지고, 부서지며, 다시 그 분의 손길로 빚어지는, 새로워지는 과정 속에서 시작됩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예배는 어떻습니까? 우리의 기도는 어떻습니까? 우리의 가정과 일터에서 살아가는 모습은 어떻습니까? 처음 하나님을 만났을 때의 감사와 감격을 기억하고 계십니까? 처음 주님을 사랑했던 마음을, 지금도 변함없이 간직하고 계십니까?
다시금, 우리 믿음의 초심으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세상이 변해도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상황이 어려워도, 기도를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응답이 더딜지라도, 그분의 때를 묵묵히 참고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어떤 자리에서든,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믿음으로 시작하여 믿음으로 끝까지 살아가는 하늘의 성도들, 처음 사랑과 믿음의 초심을 지키며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주님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