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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5.9 / 토요 새벽 기도회 (룻기 4:13~22)

오늘도 이른 아침, 예배에 참여신 모든 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몸이 지치고, 관계가 무너지며, 경제적으로도 어려워지고, 게다가 기도해도 아무런 응답이 보이지 않을 때, 쉽게 좌절하거나 절망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우리들에게 끊임없이 반복하여 말씀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끝이라고 생각하는 바로 그 자리에서, 내가 비로소 일하기 시작한다”라는 사실입니다.

 

“팬인가 제자인가”의 저자로 잘 알려진, 미국의 목회자 카일 아이들먼이 있습니다.  그의 또 다른 책, “나의 끝, 하나님의 시작”이란 책에서, 그는 이러한 사실을 힘주어 말합니다.  “내 힘이 끝나는 그 곳에서, 바로 하나님의 능력이 시작된다.”

 

오늘 우리에게 허락하신 본문 말씀이, 바로 그러한 이야기입니다.  사실, 룻기의 마지막 장면은 단순한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절망을 생명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관한 이야기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룻기의 처음 시작을 보면, 나오미는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그녀는, 남편을 잃고, 두 아들을 잃었으며, 그 결과 미래도 잃었습니다.  이러한 애통함으로 인하여, 그녀는 자신을 알아보는 주변 사람들을 향해,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마라라 부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마라”는 “쓰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룻기 마지막 장면에서, 하나님은 그녀의 쓰디 쓴 인생을 다시 회복시키십니다.  다시 말해, 빈손으로 돌아온 여인에게, 하나님은 새로운 희망과 생명을 안겨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절망의 자리에서, 다시금 희망과 감사의 찬송이 터지게 하셨습니다.

 

오늘 룻기의 마지막 말씀을 통해, 우리의 절망 속에서도, 여전히 새로운 희망과 생명으로 우리의 삶을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금 묵상하며 기억하고자 합니다.

 

첫째로, 우리 하나님은, 절망의 빈손을 은혜로 채우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본문, 13절을 보면, “이에 보아스가 룻을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그에게 들어갔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게 하시므로, 그가 아들을 낳은지라”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표현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임신하게 하셨다”입니다.  성경은 이 아이의 출생을 단순한 인간의 결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직접 행하신 일이라고, 분명히 선포합니다.

 

사실 룻은 오랫동안 아이가 없었습니다.  모압에서 결혼생활을 했지만, 자녀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장 적절한 때에, 그녀에게 새로운 생명을 허락하셨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명확한 증거는, 하나님은 늦으시는 것 같아도, 결코 늦지 않으신다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께 우리가 소원하고 바라는 모든 것들을, 빨리 응답 받길 원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우리에게 시종일관 말씀하시는 사실은,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가장 선한 타이밍과 시간에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이어지는, 14절과 15절에서, 여인들은 나오미의 품에 안긴 생명을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이 아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라.”  이 얼마나 놀라운 찬양입니까?

 

한때, 나오미는 자신의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크게 절망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분이 정하신 때가 되자, 그녀의 빈 품에, 새로운 생명을 안겨 주셨습니다.  이 같은 모습은,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하나님은, 단순히 우리의 환경만을 바꾸시는 분이 아닌, 우리의 죽어가던 인생을 다시금 소생시키시며 살리시는 분이란 사실입니다.

 

물론, 모양과 형태는 다르지만, 우리 삶속에도, 이와 같은 순간이 분명 있을 것입니다.  즉, 어떤 사람은 경제적으로 무너질 수 있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아픔 때문에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건강과 그에 따른 죽음 때문에 두려워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바로 그 때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우리의 막연한 불안감이 아닌,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반드시 지켜지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우리의 절망과 불안 그리고 아픔과 두려움으로 인해, 구멍나고 망가진, 그 비극의 자리에서, 새로운 호흡으로, 새로운 생명의 시작을 일으키신다라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아직 아니다”라고 말씀하신다리면, 우리의 삶을 결코 끝나지도 않고, 끝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나오미를 향해 놀라운 선언을 하십니다.  그것은 15절 말씀에서, 룻을 “일곱 아들 보다 귀한 며느리”라고 선포한 것입니다.  당시, 한 명의 아들도 귀한 상황 속에서, 일곱 아들을 얻게 된 것은 최고의 축복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룻을 그 어떤 자녀들 보다 귀하다고 선언하며 말씀하십니다.

 

왜 그렇게 말씀하셨겠습니까?  그 이유는, 룻은 조건보다 믿음을 선택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편안함보다 하나님을 선택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흔히 우리 인간들은, 사람들의 조건을 가장 먼저 보며, 그가 누구인지 판단합니다.  즉, 학벌, 돈, 배경, 능력 등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꿰뚫어 보십니다.  그리고 그러한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 한 명 한 명을 통해, 자신의 크고 놀라운 역사들을 오늘도 이루어 가고 계십니다.

 

그렇기에, 우리 손에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 손에는 여전히 새로운 소망과 능력이 있음을 반드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빈손이라고 절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눈물이 있다고 결코 우리 인생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은 절망의 자리에서도, 생명을 피어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우리의 빈 인생을 은혜로 채우시는 하나님을, 마지막까지 믿고 신뢰하며 따라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마지막 둘째로, 우린 하나님은, 평범한 일상의 순종을 통해, 위대한 역사를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룻기의 마지막은 갑자기 족보 이야기로 끝이 납니다.  처음 우리가 이 부분을 읽으면, 조금은 당황스럽게 느껴집니다.  그렇다면, 이 같이 아름다운 이야기가, 족보로 끝나고 있는 그 이유는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싶은 중요한 메시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 앞에서의 작은 순종이, 장차 위대한 역사가 된다라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22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아마도, 룻과 보아스는 앞으로 일어날 이 같은 사실들을, 전혀 몰랐을 것입니다.  즉, 자신들의 결혼이, 장차 이스라엘 역사상 최고의 왕이 될, 다윗으로 이어질 줄은 몰랐던 것입니다.  또한 그 다윗의 후손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모두를 구원하기시 위해, 이 땅에 오실 것 역시, 더더욱 몰랐을 것입니다.  이들은 그저 하루하루를 하나님의 뜻과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았을 뿐입니다.

 

다시 말해, 보아스는 책임을 다했습니다.  룻은 시어머니를 사랑으로 섬겼습니다.  그리고, 나오미는 과거의 모든 고통의 순간들을, 하나님만을 붙들며, 어떻게든 믿음으로 견뎌냈습니다.  하나님은 이 같은 작은 순종들을 사용하셔서, 이스라엘 역사를 놀랍고도 새롭게 바꾸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종종 크고 대단한 일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사실은, 오히려 하나님은 일상의 작은 순종을 귀하게 보고 계신다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작은 기도, 작은 섬김, 작은 헌신, 작은 친절 등, 하나님을 기억하며 행하는 모든 순종들을,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이러한 순종들을 사용하시어, 하나님은 다음 세대를 새롭게 살리고 계십니다.

 

물론, 지금 당장, 우리의 생각과 판단으로 이해되지 않는 많은 사건들이 있을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생겼는지, 왜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는지, 그리고 왜 하나님은 나의 간절한 기도에 아직 응답이 없는지 등… 무수한 이해되지 않는 사건들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이 분명이 기억해야 할 사실은,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구원의 퍼즐들을 맞추고 계신다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인생의 한 조각만 보며 판단하지 말고, 하나님의 크고 위대한 구원의 퍼즐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들이, 하나님의 놀랍고도 아름다운 구원의 사역에 동참하는 길을, 다름 아닌, 우리의 작은 순종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기에,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드리는 작은 순종들을 결코 가볍게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분명, 우리의 평범한 하루를 통해, 놀라운 방법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나가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맡겨진 자리에서 충성을 다함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순종이 다음 세대를 살리고, 하나님의 역사를 온전히 완성하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룻기는 결국 이러한 이야기입니다.  빈손의 이야기였지만, 은혜의 끝나는 이야기, 절망의 이야기였지만 회복으로 끝나는 이야기, 눈물의 이야기였지만 찬송으로 마치는 이야기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이유는,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친히 이 모든 것들을 인도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 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이해되지 않아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위해 선하고 아름다운 결과를 예비하고 계십니다.  바로, “끝이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는 자리에서, 하나님은 또 다른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주는 어떠한 어려움으로 인하여,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이 주는 두려움과 근심으로 인해, 결코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대신, 오늘도 우리와 동행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굳건히 붙드시기 바랍니다.

 

그러했을 때, 우리 생명의 회복자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의 모든 조각들을, 가장 아름다운 모습의 은혜로 완성하실 것입니다.  이 사실을 분명히 기억하시며, 오늘도 하나님의 뜻과 말씀 안에서, 작은 순종의 믿음으로 담대히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우리와 함께 오늘도 동행하시고 역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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