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오늘도 예배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허락하신 말씀은, 누가복음 12장 22절부터 32절입니다. 신앙 생활을 오래 하신 분들이라면, 이 말씀을 너무나도 잘 알고 계실 것이라, 생각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아주 익숙한 문제를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염려와 걱정”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셀 수없이, 많은 근심과 걱정의 생각을 하며 살아갑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내 건강은 괜찮을까?” “자녀들은 잘될까?” “직장은 계속 다닐 수 있을까?” “노후는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면 어떻게 하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잘될까?”등등…. 어쩌면 우리의 삶은 염려와 걱정의 연속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아주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그것은, “너희는 염려하지 말라”입니다. 예수님이 이같이 말씀하신 이유는, 우리의 현실을 전혀 모르시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처한 상황과 현실을, 너무나도 잘 아시기 때문에, 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우리 삶의 먹고사는 문제가, 전혀 중요하지 않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일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말씀하지도 않으셨습니다. 미래를 준비하지 말라는 말씀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본문 속에서 말씀하고 계시는 것은, “너희의 삶을, 세상의 염려가 지배하도록 내버려 두지 말라”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우리를 친히 돌보시고, 이끄시며, 지키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세상의 염려와 근심을 넘어서서, 어떻게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로, 매순간 살아갈 수 있는지, 여러분들과 함께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우리의 염려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함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2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예수님은 가장 먼저, 먹는 문제와 입는 문제를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먹고 입는 것이, 우리 인간들에게 있어, 가장 기본적인 필요이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는 대부분의 걱정들은, 바로 이 부분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즉, 돈의 문제, 직장의 문제, 건강의 문제, 자녀의 문제, 주거의 문제, 미래의 문제 등…. 겉으로는 서로 다른 문제들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 밑바닥에는 이 같은 하나의 질문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바로, “내가 앞으로, 안전하고 풍요롭게,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우리는 미래를 미리 끊임없이 걱정합니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을, 오늘부터 걱정합니다. 아직 오지도 않은 내일의 문제들을, 오늘 우리의 삶속으로 가지고 와서, 마음속에서 수십 번, 수백 번, 반복하며 괴로움 속에서 씨름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 염려를 미리 그리고 많이 한다고 하여, 그 문제가 쉽게 해결되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25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느냐.”
우리는, 아무리 걱정해도, 우리의 키가 자라지 않습니다. 아무리 밤잠을 설치며 걱정해도, 지나간 시간을 돌릴 수 없습니다. 아무리 미래를 완벽하고 빈틈없는 생각으로 계획했을지라도, 그 미래를 우리는 온전히 통제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을, 어떻게든 통제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염려와 근심 그리고 걱정이 생깁니다.
그런데, 이 같은 염려에는, 더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염려가, 우리의 시선을, 더 이상 하나님이 아닌, 내 자신에게로 돌려놓는다는 사실입니다. 즉, 염려할 때, 우리의 생각은 계속해서 “나”에게 끊임없이 집중됩니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하지?” “내가 해결해야 하는데…” “내가 준비해야 하는데…” “내가 책임져야 하는데…” 물론, 책임감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은, 지나친 염려로 인해,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마치 모든 것을, 내 스스로가 책임져야 하는 사람처럼,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마치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제 우리 삶 속에서는,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러한 우리들을 향해, 예수님은, 눈을 들어, 우리 주변을, 둘러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우리 주변 까마귀는, 씨를 뿌리지도 않고, 추수하지도 않습니다. 창고를 만들어 곡식을 쌓아놓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들을 필요에 따라, 친히 먹이십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강조하시는 것은, 우리가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라고 말씀이 아닙니다. 또한, 예수님은 우리에게 삶을 포기하라고, 말씀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이 중요하게 강조하시며 말씀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돌보신다라는 사실을 확실히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더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하나님께서 새 한 마리도 돌보신다라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를, 어찌 돌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우리가 염려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의 삶에, 문제가 전혀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즉, 우리의 삶에는, 여전히 문제가 있지만,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그 어떤 문제들보다, 더 크고 위대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에 염려가 찾아올 때마, 이렇게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나를 돌보시는 하나님이 계신다. 비록, 내가 원하는 기대와 방향으로 나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지라도, 나는 그 분의 변치 않는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나를 반드시 지키실 것임을 믿는다.” 바로, 우리의 시선을 나에게서, 이제는 하나님께로 돌리는 순간, 우리 마음에 비로소, 주님 많이 허락하시는, 강 같은 평화가 임하게 될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우리 하나님은, 우리보다 우리를 더 잘 알고 계신다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우리의 시선을, 우리 주변으로 돌리십니다. 27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꽃은 스스로 옷을 만들지 않습니다. 실을 만들지도 않습니다. 옷감도 짜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입히십니다. 심지어, 예수님은 28절에서, 이 같은 예를 들어 말씀하십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성경에서 “하물며”란 표현은, 매우 중요한 사실을, 강조할 때 사용합니다. 즉, 작은 것조차 돌보시는 하나님이라면,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녀들을 얼마나 더 돌보시겠느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경중논법으로, 작은 것 혹은 덜 중요한 것에 적용되는 진리라면, 그보다 큰 것 혹은 더 중요한 것에는, 당연히 적용된다는 점을 강조하는 수사법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너무나도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마다, 우리의 모든 것들을, 세세히 설명해야만 하나님이 아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미 알고 계십니다. 내가 무엇 때문에 힘든지 잘 알고 계십니다. 내가 무엇 때문에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지 아십니다. 사람들에게 말하지 못하는 걱정도 아십니다. 가족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마음의 무게도 아십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혼자 속으로 흘렸던 눈물도 아십니다. 이 같은 하나님은, 우리보다 우리를 너무나도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29절에서 이렇게 단호히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이어지는 30절에서는, 이렇게 선언합니다.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
우리 하나님께서는, 어렴풋이가 아닌 막연하게가 아닌,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우리를 알고 계십니다. 바로, 하나님은 내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아십니다. 내가 무엇을 감당할 수 있는지도 아십니다. 내게 무엇이 유익한지도 아십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하늘 아버지가 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종종 신앙생활을 하면서, 놓치기 쉬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하나님을 마치 멀리 계신 분처럼, 생각하는 경향입니다. “내가 잘해야 하나님이 도와주시겠지.” “내가 열심히 기도해야, 하나님이 들어주시겠지.” “내가 믿음이 좋아야, 하나님이 나를 돌보시겠지.”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은, 마치 자신을 떠난 탕자를, 매일같이 기다리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아버지는 자녀의 필요를 압니다. 자녀가 말하기 전에 알고, 자녀가 구하기 전에 살피며, 자녀가 넘어지면 일으켜 세웁니다. 그래서, 우리는 완전하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 믿음의 백성들의 참된 믿음은, 장치 우리에게 펼쳐질 미래를 바라보며,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시며 기뻐하시는 뜻을, 마지막까지 신뢰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에게 이 같은 믿음이 있다 하여, 걱정이 전혀 생기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들에게도, 걱정은 늘 불현듯 찾아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걱정이 찾아왔을 때, 그것을 어디로 가져가느냐입니다. 걱정을 마음속에 쌓아두면, 염려가 됩니다. 그러나 그 걱정을 하나님께 가지고 나가가면, 우리의 기도가 됩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4장 6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하나님은 우리보다 우리를 더 잘 아십니다. 우리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아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삶을,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제가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알고 계심을 믿습니다.” “제가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음을 믿습니다.” 이 믿음으로 살아가시기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마지막 셋째로, 우리의 모든 염려를 내려놓고,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먼저 구해야 합니다.
이제, 예수님의 말씀은 31절에서 절정으로 나아갑니다.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예수님은 단순히, 염려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시고 끝내지 않으셨습니다. 염려를 넘어서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라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바로, 여기에 오늘 말씀의 핵심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단순히 염려가 없는 삶이 아닙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염려 속에서도, 가장 먼저 무엇을 구하며,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가야하는지를 분명히 아는, 삶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염려는 나를 중심에 놓습니다. 염려할 때, 우리의 삶의 중심에는 내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먹을까?” “내가 무엇을 입을까?” “내가 어떻게 성공할까?” “내가 어떻게 안전하게 살까?”
그러나,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사람들은, 이제 질문 자체가 달라집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어떻게 하나님을 섬길까?” “내가 누구를 사랑해야 할까?” “내가 가진 것을 누구와 나눌 수 있을까?” “오늘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왜냐하면, 우리 삶의 중심이, 나에서, 이제는 하나님으로 완전히 옮겨졌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허락하신, 누가복음 말씀은, 하나님 나라를 단순히 마음속에서 믿는 것으로만, 설명하지 않습니다. 바로,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믿음의 백성들의 삶은, 반드시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구체적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 바로 직전의 내용을 살펴보면, “어리석은 부자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그 사람은 풍성한 수확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창고를 더 크게 짓습니다. 그리고 자기 영혼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의 그대와는 달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늘 밤,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이 사람이 가지고 있던 문제는, 부자가 된 것 자체가 아닙니다. 그의 문제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모든 것들을, 자신만을 위해 쌓아두었다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주신 것을, 하나님 없이 사용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진 모든 것들을, 이제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사용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나만 가지고 있지 않고, 사랑으로 흘려보낼 것입니다. 용서를 흘려보낼 것입니다. 위로를 흘려보낼 것입니다. 필요하다면, 물질도 과감히 나누고, 시간도 나누며, 재능도, 기도도 함께 나눌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구한다라는 것은, 단순히 교회 안에서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되는 삶은, 내가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의 가정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직장에서 정직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웃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어려운 사람을 외면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위해서도 기도하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것을 움켜쥐기보다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먼저 구할 때, 우리 삶의 우선순위는, 완전히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얼마나 많이 가져야 안심할까?”를 생각했다면, 이제는 “하나님이 주신 것을 어떻게 선하게 사용할까?”를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내가 손해 보면 어떻게 하지?”라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내가 누군가를 위해, 무엇을 나눌 수 있을까?”를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내 미래가 어떻게 될까?”를 걱정했다면, 이제는 “내 미래도 하나님의 손에 있다”라고 믿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믿음의 백성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단순히 “걱정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걱정하는데 너의 인생을 다 쓰지 말고, 하나님 나라를 구하며 살아가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들에게 허락하신 주님의 말씀입니다.
염려는, 우리를 움켜쥐게 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우리를 나누게 합니다. 염려는 나 자신에게 집중하게 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과 우리 주변 이웃들을 바라보게 합니다. 염려는 “내가 무엇을 얻을까?”를 묻게 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내가 무엇을 나눌까?”를 묻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하나님 나라를, 가장 먼저 구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그리하여,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영원한 기쁨과 소망을, 지금 이 순간부터 누리며 살아가시기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죽음에서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