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오늘도 예배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허락하신 하나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해방되는, 결정적순간에 관한 말씀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랜 세월 애굽에서 살아왔습니다. 처음에는 요셉을 통해 애굽에 정착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큰 민족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이들은 자유로운 백성들이 아닌, 애굽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들이 고통 속에서 부르짖는 기도를, 결코 외면치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시어, 바로를 향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보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바로는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같은 바로의 완악한 마음을 돌리기 위해, 애굽에 여러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그런데도, 바로의 마음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10번째 재앙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것은, 장자의 죽음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 죽음의 재앙이, 애굽 땅을 지나가기 직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 보아야 할 사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단순히 “두려워하지 말라”라고만 말씀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린 양을 준비하게 하시고,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게 하시고, 그 고기를 먹으며, 즉시 떠날 준비를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중요한 말씀을 덧붙이십니다. 그것은, “내가 그 어린양의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입니다.
여기에서 유월절이라는 이름이, 즉, “Pass-over, 넘어가다, 지나가다”라는 뜻이 유래하게 됩니다. 즉, 죽음이 왔지만, 죽음이 그 집을 넘어갔습니다. 재앙이 왔지만, 그 집을 지나갔습니다. 오늘 이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하나님 나라의 경계선!” 좀더 풀이해 말하면, “하나님 나라의 경rP선 안으로 들어서라”라는 제목으로, 여러분들과 함께,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죽음이 임한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매우 긴박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기 12장 12절에서, “내가 그 밤에 애굽 땅에 두루 다니며,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애굽 땅에 있는 모든 처음 난 것을 다 치고, 애굽의 모든 신을 내가 심판하리라, 나는 여호와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그날 밤, 애굽에는 죽음이 찾아옵니다. 왕의 아들부터 종의 아들까지, 집 짐승의 첫 새끼까지 죽음의 재앙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이 장면을, 단순히 옛날 이야기로만, 읽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지금 죽음의 현실 속에서, 동일하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오늘 우리의 문명은, 그 당시보다 훨씬 발전했습니다. 의학도 발전하고, 과학도 발전했습니다. 교통도 발전하고, 통신도 발전했습니다. 돈과 기술을 통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도,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그리고 앞으로도, 인간이 단연코 해결하지 못하는 한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죽음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병을 치료할 수 있지만, 죽음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습니다. 자동차가 안전해 졌지만, 사고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습니다. 과학이 발전했지만 자연재해를 완전히 통제할 수 없습니다. 돈이 많다고 하여, 우리의 생명을 마음껏 연장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아무리 건강하게 살아도, 언젠가는 우리 인생이 끝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래서, 인간은 본능적으로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죽음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젊을 때는, 죽음을 멀리 있는 남의 일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분명히 깨닫습니다. “죽음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구나.” 다시 말해, 우리는 가족 구성원의 죽음을 경험합니다. 친구의 죽음을 경험합니다. 교인들의 죽음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우리 자신의 죽음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같은 죽음의 현실을 꼭꼭 숨기지 않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괜찮다.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라고 막연한 위로의 말을 건네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인간의 연약함을 정직하고 정확하게 바라보며, 직시할 것을 말씀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죽음이 있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사실을 이야기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죽음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새로운 생명의 길을, 열어 보여 주신다라는 사실입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 땅에서 종으로 살았습니다. 그렇기에 이들은 힘이 없었습니다. 바로의 군대를 이길 수도 없었습니다. 애굽의 정치와 경제를 바꿀 수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죽음의 재앙을 막을 능력도 전혀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이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최선의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중요한 신앙의 진리 하나를 발견합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힘과 능력이 끝나는 바로 곳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비로소 경험하고 체험한다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이와 유사한 상황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이것은 해결할 수 없다.” “내가 아무리 준비해도, 내 미래를 확실히 보장할 수 없다.” “내가 아무리 자녀를 위해 노력해도, 자녀의 인생을 내가 책임질 수 없다.” “내가 아무리 건강을 관리해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 그 순간, 우리는 우리 자신의 한계를 절실히 깨닫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반드시 절망의 순간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 절망의 순간 앞에서,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능력이 철저히 부서지고 낮아지며, 끝나는 바로 그 곳에서, 하나님의 온전하신 능력과 은혜를, 우리는 온전히 바라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죽음이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하여, 우리는 죽음만 바라보는 사람들도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모두는, 죽음 너머에서,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허락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애써 죽음을 부정하거나 외면하지 말고, 죽음을 직시하며, 그 죽음보다 더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을 매순간 온전히 의지하시고 바라보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둘째로, 유월절은 하나님 나라의 경계선이란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죽음의 재앙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이겠습니까? 그들의 힘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애굽 사람들보다, 더 착했기 때문도 아닙니다. 그들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었기 때문도 아닙니다. 그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 방법을 온전히 순종하며 따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가정에 어린 양을 준비하여, 그 피를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 감으로써, 재앙이 너희에게 내리지 않도록 하겠다라고 하나님은 약속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 어린양의 피 자체에, 어떤 마술적 능력이 있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의 중요한 핵심은, 하나님께서 “너희가 말씀에 순종함으로, 그 피를 바른 것을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겠다”라고, 약속하셨다라는 사실입니다.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원은, 그들의 공로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약속과 은혜에 달려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경계선”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유월절을 통해, “여기까지는 죽음이지만, 여기부터는 생명이다”라고 선을 그으신 것입니다. 유월절은, 바로 그 경계선 안에, 철저히 순종하고, 인내하며, 마지막까지 버티며 머무르는 사건인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밤에, 그 누구도, 문 밖으로 나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그 집 안에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잠잠히 기다렸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하나님 나라의 경계선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물론, 그 경계선은 우린 눈에 보이는 건물의 벽과 같은 것은 아닙니다. 어떤 장소의 경계도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참된 유월절 어린 양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구약에서는 어린 양의 피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음의 재앙으로부터 보호했습니다. 이제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과 피를 내어주심으로써, 우리를 죽음으로부터 보호하셨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 보혈을 통해, 우리는 죄와 죽음의 권세에서 완전히 해방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유월절 식사 자리에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내 몸이다. 받아먹으라.” “이것은 내 피다. 받아 마셔라.”
예수님께서는 과거 유월절 사건의 은혜를. 새로운 성찬의 은혜로 완성하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성찬에 참여할 때, 단순히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닙니다. 정확히 말해, 우리는 성찬을 통해,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기억하고, 다시금 그 은혜 속에서 새롭게 회복하는, 거룩한 시간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바로, “나는 내 힘으로 구원받은 사람이 아니다.” “나는 나의 선행 때문에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이다.” 이것을 고백하는 사건안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이 같은 하나님의 은혜를 철저히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은혜를, 너무나도 당연히 여기는, 모습과 태도입니다. 아마도, 우리 모두, 처음 신앙 생활은,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로 시작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어느 순간, 내가 잘해서 여기까지 온 것처럼 생각을 합니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했으니까.” “내가 이렇게 봉사했으니까.” “내가 이렇게 기도했으니까.” “내가 이렇게 헌신했으니까.” 다 나의 노력과 공로의 결과다.
물론 우리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착각해서는 안될 사실은, 우리 구원은 우리의 열심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란 사실입니다. 언제나 은혜가 먼저입니다. 우리의 헌신과 봉사는, 이 같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와 찬양 그리고 영광으로 응답하는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의지할 것은, 우리의 능력이 아닙니다. 우리의 경력도 아닙니다. 우리의 재산도 아닙니다. 우리의 건강도 아닙니다. 우리의 선행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오늘도, 내일도, 앞으로도, 매 순간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시기 바랍니다. 그분의 은혜 안에, 철저히 순종하며 머무시기 바랍니다. 그분이, 우리의 영원한 생명이 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 주시는, 하나님 나라의 경계선임을 믿고 고백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마지막 셋째로, 구원받은 공동체는, 이제 새로운 유월절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특별히 눈에 띄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것은, 유월절을 가정 단위로 지키게 하셨다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개인이 아닌, 유월절을 가족이 함께 지키도록 명령하셨던 것이겠습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의 구원 이야기가, 가정에서 다음 세대로, 그 다음 세대로 전달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12장의 유월절은, 한 세대의 경험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녀들에게 이야기해야 했습니다. “우리가 애굽에서 종으로 살았단다.” “우리가 우리 힘으로 애굽에서 나온 것이 아니란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셨단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죽음에서 건져 주셨단다.” “그래서 우리는, 이 날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한단다.” 이것이 신앙의 전승입니다.
오늘 우리의 가정에서도, 이 같은 모습이 필요합니다. 특히, 이민교회에서 더욱 중요합니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많은 것을 물려주려고 합니다. 좋은 교육을 주려고 합니다. 좋은 직업을 갖게 하려고 합니다. 좋은 대학에 보내려고 합니다.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살도록 도와주려고 합니다. 물론 이것도 중요합니다. 부모라면 누구나 자녀가 잘되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그러나, 이것 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물려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마음을, 물려주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믿음을 물려주어야 합니다. “우리 가정은,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인도하셨다.” 이 고백을 자녀들이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가정에는 어려움도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함께하셨다.” “우리 가족이 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까지 왔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 이런 이야기를 자녀들에게 들려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가정의 신앙교육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 말씀, 11절을 보면, 한가지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유월절을 지킨 사람들은, 그 자리에 계속 머물러 있지 않았다라는 사실입니다. 즉,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며, 동시에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같은 사실은, 하나님의 구원이, 단순히 위험을 피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구원은, 새로운 삶으로 즉시 이동하는 것입니다. 바로, 애굽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노예의 삶에서, 자유의 삶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옛 삶에서 새로운 삶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단순히 애굽에서 죽지 않게 하려고 구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이들을 애굽에서 끌어내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새로운 땅으로 인도하시고자 구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사람들은, 과거의 삶과 모습이 아닌, 새로운 방향으로 살아야 합니다. 즉,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죽으면 천국 간다”라는 보험에 가입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지금 이 순간부터, 새로운 나라의 백성들으로, 새로운 정체성과 삶의 자세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같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세상의 기준만 따라가지 않습니다. 돈이 인생의 주인이 되지 않게 합니다. 성공이 인생의 목적이 되지 않게 합니다. 사람들의 인정이 우리의 가치를 결정하게 하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주인이 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과 섬김의 길을, 기쁨과 감사함으로 순종하며 따라갑니다.
또한, 오늘 본문, 4절을 보면, 가족의 숫자가 적으면, 이웃과 함께 먹으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유월절은 혼자만 살아남는 이야기가 아닌, 공동체가 함께 살아남는 이야기란 사실입니다. 우리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께 구원받은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는 서로를 돌보는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아픈 사람이 있으면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외로운 사람이 있으면 찾아가야 합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돌아보아야 합니다. 새롭게 교회에 나온 사람이 있으면, 따뜻하게 맞아 주어야 합니다. 어린 세대가 믿음을 잃어가면, 함께 관심을 가지고 돌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한 유월절 어린 양의 은혜를 받은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몸과 피를 함께 먹고 마시며 기억하는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엄밀히 말해 교회는 단순히 예배만을 드리는 장소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하고, 그 구원을 다음 세대에 전하고, 서로의 삶을 돌보며, 함께 살아가는, 사랑과 은혜의 자리가 되어야 함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 모두는 지금 “하나님 나라의 경계선” 앞에 서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어디에 서 계십니까? 나의 뜻과 생각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세상입니까? 아니면 예수님입니까?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과 그 말씀을 보여주시고 행하신, 예수님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 밖에서는, 우리가 모든 것을 스스로 책임져야 합니다. 내 힘으로 나를 증명해야 합니다. 내 능력으로 내 인생을 완성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아야 합니다. 성공해야 합니다. 실패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불안합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면,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바라보는 시선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신다.” “나의 생명은 나의 능력에 달려 있지 않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살아간다.” 이것이, 오늘 우리 모두를 향해, 복음이 허락하는 참 자유와 생명인 것입니다.
또한,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허리에 띠를 띠고, 신을 신고, 지팡이를 손에 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이제 떠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 우리의 구원을 위해, 떠나야 할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두려움에서 떠나야 합니다. 죄에서 떠나야 합니다. 자기 중심적인 삶에서 떠나야 합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가려는 마음에서 떠나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새로운 삶으로 담대히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에,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생명이 하나님의 손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죽음은 마지막 말이 아니란 사실입니다. 바로, 십자가가 끝이 아닙니다. 우리 예수님은 죽음에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음의 백성들은 죽음을 바라보면서도, 동시에 영원한 생명을 바라봅니다. 무덤을 바라보면서도, 새로운 시작인 부활을 바라봅니다. 끝을 바라보면서도, 하나님의 새로운 시작을 기대하며 바라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님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십시오. 우리의 가정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세우십시오. 우리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이야기하십시오. 우리의 교회를, 새로운 유월절 공동체로 함께 세워 가십시오. 그리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이렇게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죽음의 권세 아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 있는 사람이다.” “나는 두려움의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람이다.” “나는 나의 힘으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살아가는 사람이다다.”
그리하여, 오늘 우리를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가, 우리의 가정과 교회, 그리고 삶의 모든 순간마다 충만히 넘쳐 흐르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