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예배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지난주 우리는 성탄 주일 예배와 성탄 전야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이후, 마트를 가보니, 그동안 팔지 못했던 성탄 장식과 카드 그리고 여러 용품들을, 파격적으로 세일해 판매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다시 말해, 성탄절이 이제는 끝났기에, 여러 성탄 용품들을 할인해서 판매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 절기에서는 아직 성탄절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즉, 성탄절은 25일 하루만 지키는 것이 아닌, 성탄 후 13일째 되는 날인, 주현절까지 지키는 절기입니다. 여기서 주현절은, 동방박사들이 황금과 유황 그리고 몰약을 예수님께 가져와 경배를 드렸던 것을 기념하는 날로써, 우리 연합감리교회는 1월 6일에 가까운 주일을, 주현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우리 믿음의 사람들에게 있어, 성탄절은 1년 365일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성탄의 빛을 통해, 하늘의 영광과 기쁨을, 비로소 누리고 나눌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성탄은, 그동안 끊어져 있던 하늘과 땅을 잇는 놀라운 사건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늘 거하게 된 신비의 사건입니다. 이 신비의 사건은, 과거 하나님이 수많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신, 모든 예언들이, 우리 인간들 앞에 실제로 실현되고 이루어진 구체적 사건으로서, 우리는 이 성탄의 신비를 통해, 더 이상 이 세상의 가치가 아닌, 하늘의 가치를 추구하는 영적 시각을 갖게 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우리에게 주신 골로새서의 말씀을 통해, 우리 모두가 이 같은 성탄의 신비 위에서, 세속적 가르침이나 이단의 교리에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함을, 강조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성탄의 신비를 알고 체험한 이들은, 적극적으로 세상을 향해 그리스도의 신비를 증언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골로새 교인들을 향해 선포한, 성탄의 신비를 살아가는 삶의 방법은, 과연 어떠한 것이겠습니까?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는 삶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말씀에서, 가장 먼저 성탄의 빛 아래서 새롭게 태어난 사람들이 추구해야 할, 올바른 모습을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땅에 것이 아닌, 하늘의 것을 추구하는 삶입니다. 즉, 성탄의 새로운 빛 아래서 살아가는 믿음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택하신 사랑을 입은 거룩한 백성들로써, 이제는 성탄의 빛을 경험하지 못한 이들과 다른 삶, 바로 구별된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언급된 거룩함의 어원을 살펴보면, 그것은 죄로부터 철저히 구별된 모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었다는 것은, 우리 안에 무언가 선한 것이 있어, 우리의 힘과 의지로 거룩함을 이루었다는 것이 아닌, 하나님이 우리를 전적으로 사랑하셔서, 그분의 힘과 능력으로,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구별된 백성이 되었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우리와 늘 함께하시기에, 우리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같은 사실은, 출애굽기 3장에서, 모세가 호렙산에서 불에 타지 않는, 떨기나무의 신비를 마주할 때에도 드러납니다. 즉, 이같이 신기한 광경을 보려고, 모세가 떨기나무 앞으로 나아갔을 때, 곧바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그것은,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는 말씀입니다. 왜 하나님은 모세에게 가장 먼저 신발을 벗으라고 말씀하셨겠습니까? 그것은, 이곳이 바로 거룩한 땅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곳이 거룩한 곳이 되었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그곳에 임재 하여 계셨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이기에, 그 곳이 거룩한 장소가 되었다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통해, 성탄의 신비를 깨달은 사람들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모두는 주님의 거룩한 백성들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우리 모두는 완벽하게 거룩한 존재들로 거듭나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여전히 죄에 대하여 대단히 나약한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언제라도 우리의 욕심과 이기심으로 인해, 타락할 수 있는 불완전한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들로 온전히 서기 위해서는, 우리 가운데 임하신, 성탄의 거룩한 빛 속에서, 예수님께서 주시는 거룩한 옷을 입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주님께서 허락하시는 옷을,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이라 말씀합니다. 즉, 우리는, 우리 주변의 형제 자매들을, 늘 따뜻하게 품어주는 긍휼과 자비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또한, 상대방을 나보다 낫게 여기며 존중하는, 겸손의 마음을 가져야 하며, 늘 타인의 잘못을 지적하고 질책하는 모습이 아닌, 온유의 마음으로 이해하고, 위로해 주며, 인내의 자세로 참고 기다려 줄 수 있는, 사랑의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혹시라도,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용납해주고 서로 용서하는 마음을 가지라고, 사도 바울은 힘주어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내 힘과 내 능력으로는 전혀 불가능 하지만,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덧 입음으로써 가능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용납과 용서는 엄청난 용기와 결단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자신을 죽이려고 모인 사람들의 행동까지 용납하시고 용서하신 모습은, 그야말로 대단한 용기와 결단의 모습이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보여주신 용납과 용서는, 어떻게든 다른 사람들 보다 으뜸이 되고자 하는 치열한 경쟁의 모습이 아닌, 져주고 양보하는 모습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하나님의 사랑에 뿌리를 둔 모습으로써,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를 이들을 우리 가운데 보내시어,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신 용기와 결단인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13절 후반부에서,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우리의 모든 마음과 행동들 위에, 하나님의 사랑을 더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랑만이, 우리 모두를 온전히 하나 되게 만드는, 강한 생명의 띠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 세상 모든 성령의 열매의 근원이요 뿌리입니다. 그렇기에 사랑을 통해서만, 우리는 다른 성령의 열매들을 아름답고 풍성하게 맺을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성탄의 신비를 살아가는 삶은,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허락하신 빛 아래에 거하는 것 만을 말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탄의 신비를 살아가는 삶은, 거룩한 성탄의 빛 아래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허락하신 거룩의 옷을 입고, 그리스도의 성품 안에서 성령의 열매를 풍성히 맺는 삶인 것입니다. 더 이상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내 인생을 나의 생각과 뜻대로 운전하며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닌, 이제는 예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예수님이 내 인생의 운전대를 잡고, 그분의 뜻과 말씀을 통해, 내 인생을 인도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혹시라도,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의 구세주로 믿으면서, 아직도 우리 인생의 운전대를, 내가 잡고 있다라면, 이 시간 우리 인생의 운전대에서 우리의 손을 내려 놓기를 소원합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힘과 능력을 덧입고, 그 분이 운전하시는 우리 인생의 여정을, 기쁨과 감사함으로 순종하며 따라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둘째로, 성탄의 신비를 살아가는 삶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를 지배하는 삶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말씀인 15절에서, 성탄의 신비를 살아가는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강이 우리의 마음을 주장하도록 해야 한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은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지배하게 하십시오”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지배한다”라는 말은, 다스린다라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 끊임없이 영향을 받는다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를 지배하고 다스릴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을 끊임없이, 예수님 앞에 내어 드려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평강은, 완전하고, 하나되며, 조화로운 상태, 그리고 번영하고, 건강하며, 부족함이 전혀 없는 충만한 상태를 이야기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 이같은 평강인 것입니다. 이러한 평강의 다른 말은, 평화와 평안입니다.
누가복음 2장 14절은,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또한, 요한복음 14장 27절은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음의 백성들은, 하늘의 평강을 허락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 그 평강이 우리를 온전히 지배할 수 있도록, 우리의 모든 것을 주님께 겸손히 내어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충만하게 임하고, 내 마음이 늘 그분의 은혜가 충만하게 채워지도록, 우리는 항상 깨어 기도하고, 주야로 주님의 말씀을 묵상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도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 대적 마귀는, 우리의 가장 취약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의 삶에 있어, 가장 취약한 약점은 어디이겠습니까? 자녀일까요? 직장일까요? 경제적 부분일까요? 아니면, 건강이나 혹은 다른 근심의 문제일까요?
우리가 분명히 명심해야 할 것은, 우리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마귀는, 그곳으로 사망의 화살을, 끊임없이 쏘고 있다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항상 깨어 성령의 영향과 지배를 받지 못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그 자리에서 쉽게 넘어져, 크게 좌절하고 절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무엇에 취약한지, 그리고 무엇에 가장 악영향을 받는지 분명히 알고 대비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우리의 약함을 예수 그리스도께 철저히 의지함으로써, 비로소 세상의 불안과 위협에서 벗어나, 하늘의 평안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임한 성탄의 빛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허락하시는 평강을 누리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의 일부가 아닌, 우리의 전부를 주님께 드려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러했을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 그리고 우리 삶을 지배하고 다스릴 것임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우리의 욕심과 욕망을 당장 채워줄 것 같은, 세상의 헛되고 일시적인 평강을 쫓아 사는 어리석은 삶이 아닌, 우리의 전부를 주님께 의지하고 내어 드림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하늘의 평강을, 매순간 누리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마지막 셋째로, 우리가 성탄의 신비를 누리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이,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성탄의 신비를 살아가는 골로새 교인들에게,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게 하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새번역 성경은, 이 말씀을,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 풍 히 살아있게 하십시오”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거한다라는 것은, 곧, 그 말씀이 살아 숨쉬고, 움직여,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참여하도록 만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국 기독교의 선구자셨던, 다석 유영모 선생님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말씀을 말에 숨이 들어 있는 것이라 풀어 주셨습니다. 즉, 생명력이 없는 말은 그저 허황된 말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 생명력이 있는 말은, 살아있는 숨이 붙어 있어, 비로소 말숨,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히브리서 4장 12절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어서”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은, 문자 안에 갇혀 정형화되고 화석화 된 글이 아닌, 실제로 살아 움직이고 능력으로 역사하는 말씀이란 사실입니다. 바로, 이 말씀이 죽었던 우리의 영혼을 살리시고, 영적인 원리를 깨닫게 하는 하늘의 비밀스런 지혜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잠언 1장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모든 지혜의 근본”이라고 말씀했고, 시편 119편은,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오늘도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개인을 넘어서서, 말씀을 귀히 여기고 그 말씀에 순종하고자 노력하는 모든 사람들의 삶을, 선하고 아름다운 구원의 길로 인도하고 계십니다. 더 나아가, 아직 복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살아 생명력 있는 말씀으로 그들에게 다가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변화하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교회 공동체는, 가장 먼저 하나님의 말씀만이 다스리는 공동체가 되어야 하고, 그로 인하여 서로 말씀 안에서, 장성한 믿음의 분량에까지 성장해 가도록, 선한 영향력을 주고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준엄한 뜻으로 받고, 그 말씀에 매순간 순종하며 살아간다면, 그 말씀이, 우리의 혼과 골수를 찔러 쪼개는, 능력이 나타나게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말씀이 우리의 생각을 새롭게 변화시켜 주시어, 우리의 연약하고 무기력한 삶을, 놀랍게 변화시켜 주는 기적이 일어나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성탄절 후 첫 번째 주일을 보내면서 “성탄의 신비를 살아가는 삶”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우리 믿음의 백성들은, 단순히 종교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성탄의 신비를 알고, 그 빛 아래에서, 행동하며, 그 빛을 세상에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해, 세상 사람들과는 구별되고 차별된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 다름은 바로, 우리가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그 분의 성품을 드러내며, 우리의 삶을 통해, 그분이 누구이신지를 세상에 밝히 전하며 증거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의 모습은, 세상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으뜸이 되는 것이 아닌, 오히려 자신의 것을 나누고 양보하며 꼴찌가 되는 삶입니다. 누군가를 비난하고, 평가하며, 수군거리는 삶의 방식이 아닌, 서로를 포용하고, 용서하며, 오래 참아주는 용기와 결단의 삶입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 주시는 말씀이, 우리 삶의 생동력 있는 힘과 능력이 되고, 그로 인하여 하늘의 평강이 우리를 온전히 주관하시고 다스리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 모두 이 같은 성탄의 신비를, 온전히 살아가는 은혜가 임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지금까지 하신 일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동시에 장차 우리를 통해 하실 일들을 기쁨으로 순종하는, 우리 모두의 삶이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