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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5.16 / 토요 새벽 기도회 (고린도전서 3:16~23)

오늘도,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며, 예배에 참여신 모든 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들에게, 이 같은 질문을 합니다.  “너는 누구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입니까?  “성공한 사람입니까?”  “능력 있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인정받는 사람입니까?”  우리는 종종, 우리가 누구인지를, 자신의 학벌, 직업, 혹은 소유와 외모로 증명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영원히 말해 주거나 증명해 주는 것이 아닌, 시간이 지나면 언제나 변화하며 흔들라는 것들입니다.  다시 말해, 번듯한 직장도 변할 수 있고, 지금의 건강도 언제든 무너질 수 있으며, 주변 사람들의 평가도, 시간이 지나며 바뀔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들에게 흔들리지 않는 정체성을 선언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다”란 사실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비유적 표현이 아닙니다.  엄밀히 말해, 이것은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를 어떻게 보시는가에 대한, 공개적 선언인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이탈리아 피렌체에, 유명한 다비드상이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감탄스럽게 바라보며, 르네상스를 상징하는 미켈란젤로의 최고 작품으로 평가합니다.  그런데 이 조각품의 원재료가 된 돌은, 원래 많은 사람들이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버려진 돌이었다고 합니다.  즉, 결함이 많고 쓸모없어 보였기에, 40년 넘게 공터에 버려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미켈란젤로는, 그 돌 속에서 다비드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조각을 시작하자, 주변 사람들이 와서, 왜 힘들게 버려진 돌을 깎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미켈란젤로는, “이 돌 안에는 위대한 형상이 들어 있습니다.  나는 지금 그것을 드러내고 있는 중입니다”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우리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현재 우리의 모습을 보시는 것이 아닌, 앞으로의 가능성을 바라보며, 우리를 인도하고 계십니다.  물론,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부족하고 실패한 존재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 안에 하나님의 형상을 보십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아직 드러나지 않은 우리의 위대함을, 사랑과 은혜로 빚어 가십니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 인정받는 위대한 존재가 되기 위해, 우리는 앞으로 어떠한 모습과 자세로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임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시작에서, 놀라운 사실 하나를 선포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성전이란 건물 안에만 갇혀 계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성전은 하나님 임재의 대표적 상징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떠올리며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이후, 하나님은 더 이상, 성전 안에만 계시는 분이 아닌, 성령의 임재로, 모든 성도들 안에 거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믿음의 백성들이 모이는 교회는, 단순한 건물이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살아 있는 공동체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을 함부로 대하는 것은, 마치 그 안에 계신 하나님을 함부로 대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오늘 본문 17절에서, 사도 바울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라고 선언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성전은 우리 모두의 실제적 모습과 삶의 자세로서, 우리는 우리 자신과, 우리 주변의 이웃들을, 결코 함부로 다루면 안 되는 것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사람들을 기계의 부속과 같이 소비합니다.  즉, 필요하면 사용하고, 필요 없으면, 다른 사람들로 즉시 바꾸어 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보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자신이 친히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으로 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몸과 마음이 외적으로 드러나는, 삶의 모습과 자세를 함부로 더럽혀서는 안 됩니다.  다시 말해, 거짓, 미움, 다툼, 분열, 시기, 탐욕은,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을 무너뜨리는 죄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소중한 성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을 함부로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또한 다른 성도들을 함부로 판단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영이 늘 거하신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며, 언제 어디서나 거룩함과 사랑으로 살아가는 믿음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둘째로, 세상의 지혜보다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그 당시 해상 무역의 중심지였던, 고린도 사람들은, 자신들을 매우 지혜로운 사람으로 생각했습니다.  즉, 이들은, 철학을 좋아했고, 논쟁을 좋아했으며, 세상 지식을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이들을 향해 이렇게 선언합니다.  “세상의 지혜가 하나님 앞에서는 어리석을 수 있다”라는 사실입니다.

 

세상의 지혜는 눈에 보이는 것만 믿습니다.  그래서, 성공, 재물, 권력, 인기 등을 중심으로 판단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다릅니다.  십자가가 승리이고, 섬김이 위대함이며, 겸손이 능력입니다.

 

역대하 26장에 보면, 웃시야 왕이 등장합니다.  그는 그 당시, 매우 성공한 왕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남유다를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그리고 군사적으로 대단히 강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는 교만해졌습니다.  하나님의 질서를 무시하고, 제사장만 할 수 있는 일을 스스로 하려 했습니다.  결국, 그는 나병에 걸리게 되어, 비참한 인생으로 생을 마감합니다.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과거에, 하나님을 위해, 많이 희생하고 봉사한 것이, 지금 중요한게 아닙니다.  오히려, 이러한 희생과 봉사가, 현재 나의 공로가 되어, 나를 교만하게 만들어, 이제는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그것이 더 위험한 것입니다.  즉, 더 이상 기도하지 않고, 말씀을 무시하며, 자기 생각만 옳다고 여기며 신앙 생활을 하는 모습인 것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삶의 마지막은, 그 누구도 예외 없이 비참하게 될 것이라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매순간 따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있어 참된 지혜는, “내가 하나님 없이 한 순간도 살 수 없다”라는 것을 알고, 이것은 매순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십자가입니다.  세상은 십자가를 어리석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 십자가로 세상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믿음의 백성들은, 세상의 기준이 아닌, 언제나 하나님 말씀으로 세상을 해석하고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세상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를 붙드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기준은, 꽃이 시들고 풀이 마르듯 수시로 변하고 사라지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합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생각과 판단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우고, 세상의 기준보다, 십자가의 복음을 붙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마지막 셋째로, 우리는 그리스도께 속한 자이며, 모든 것이 하나님 안에서 의미를 얻게 됨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마지막으로 놀라운 선언을 합니다.  21절 후반부에서,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무슨 뜻이겠습니까?  이것은 우리 믿음의 백성들이 세상의 주인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것은, 우리가 그리스도께 속했기에, 세상의 모든 상황조차 하나님 손 안에서, 우리의 유익을 위해 사용된다라는 뜻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믿음의 백성들의, 가장 큰 축복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세상 소유가 아닙니다.  죄의 소유도 아닙니다.  사탄의 소유도 아닙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님의 소유요,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어렵고 힘든 절망적 환경이라 할지라도, 이것이 결코 우리를 좌절 시키거나,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 38~39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우리 믿음의 백성들은, 이 세상이 주는 고난과 환난 때문에, 망하는 존재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우리의 이 같은 고난과 환란조차 사용하셔서, 우리 모두를 믿음의 사람들로 오늘도 빚어 가십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관점에서, 고난 역시,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도구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어떠한 것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변 환경 때문에, 결코 무너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상황 속에서, 우리를 친히 붙드시고, 장차 우리의 순종과 인내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반드시 위대하고 아름답게 드러내실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오늘 사도 바울은 우리 모두에게 분명히 말씀합니다.  그것은, “너희는 하나님의 성전이다”이란 사실입니다.  이 정체성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은 우리를 실패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부족하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더 분명하고 명확하게,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 영이 너 안에 거하느니라.”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빚고 계십니다.  거친 돌 같은 인생을, 날카로운 조각 칼로 다듬고 계십니다.  그러니, 여러 고난 앞에서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달콤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이럴 때 일수록,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바라보며, 하나님의 성전 답게 거룩하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랬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통해, 반드시 아름다운 하나님의 작품을 이루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전 된 기쁨과 자부심을 기억하며, 매순간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힘과 능력, 그리고 지혜로만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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