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오늘도 예배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이 세상 많은 사람들은, 세상의 기준과 가치의 거울 앞에서, 끝임 없이 자기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며, 이렇게 점검을 합니다. “나는 얼마나 성공했는가?” “나는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있는가?”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나를 과연 어떻게 평가하는가?”
이러한 이유로,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과 끊임없이 비교하고 경쟁하며, 더 큰 인정을 받기 위해, 보다 더, 높아지려고 애를 씁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에게 허락하신 본문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은, 전혀 다른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너는 주인인가, 아니면 청지기인가?”의 본질적 물음입니다.
즉, 청지기는 주인이 아닙니다. 청지기는, 주인으로부터 무언가를 위임 받은, 맡은 자입니다. 다시 말해, 내 것이 아니라, 주인의 것을 맡아, 온전히 주인의 뜻대로 관리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고 있는, 고린도 교회는 이 같은 사실을 잊어버렸습니다. 그 결과, 이들은 “나는 바울 편이다” “나는 아볼로 편이다” “나는 게바 편이다”라고 논쟁하며, 서로 다른 파벌을 만들어, 교회 안에서 다투었습니다. 또한, 그 당시 세상의 가치와 기준으로, 교회 지도자들의 모습과 자격을 평가하며 바라보았습니다.
하지만 이들을 향해, 사도 바울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우리를 높이지 말라.” “우리는 단지 맡은 자일 뿐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청지기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전히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유명한 목회자들 만을 따라다니며, 자신이 마치 그 설교 말씀을 듣는 것만으로,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된 것처럼, 생각합니다. 또한, 큰 교회에 출석하는 것을 내세우며, 자신 역시, 무슨 큰 사람이 된 것처럼, 자랑을 합니다. 심지어, 자신의 직분과 경력들을 사람들 앞에서 내세우며, 마치 하나님의 큰 일을 해낸 것 처럼 자신을 내세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이렇게 묻고 계십니다. “너는 나의 충성된 청지기냐?” 그렇다면, 오늘 허락하신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진짜 청지기의 삶이 무엇인지, 여러분들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청지기는, “맡은 자”임을 기억하는 삶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표준새번역 성경은 이 부분을, 이렇게 번역합니다. “이와 같이, 누구든지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관리인으로 보아야 합니다.”
여기서 “일꾼”을 나타내는, 헬라어 원문을 보면, 하루 품삯을 받는 고용된 사람이나 혹은 주인의 뜻을 따르는 종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여기서의 일꾼은, 마치 전쟁에서 적군에게 사로잡혀, 배 밑에서 노를 젓는, 포로 혹은 노예를 뜻하는 단어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 자신이 행한 어떠한 선하고 위대한 것도, 자신의 공로나 의로움으로, 주장할 수 없는 상태란 것입니다. 그렇기에, 사도 바울은, 우리는 어떠한 행위를 통해, 보상이나 혹은 영광을 받는 존재가 아님을 강조하며, 우리의 유일한 본분은, 사나 죽으나 오직 그리스도를 위해, 끝까지 섬기는 자임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사도 바울은 자신을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라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서의 비밀은, 은밀하고 난해하게 감춰진 암호와 같은 것이 닙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는 하나님의 비밀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하나님은, 그 복음을 우리 모두에게 친히 맡기셨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복음을 맡은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기본적 자세는 무엇이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이 같은 청지기의 핵심을, 출중한 능력이나 지혜가 아닌, “충성심”이라 선포합니다. 오늘 본문 2절을 보면,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결과를 통해 사람들을 판단합니다. 즉, 그는 지금 얼마나 유명한가? 얼마나 성공했는가? 얼마나 큰 업적을 남겼는가?가 사람을 판단하는데 있어 핵심이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 같은 세상의 법칙과는 전혀 다르게, 우리를 바라보십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가 “끝까지 충성했는가?”의 여부를 가장 크고 소중하게 여기시는 것입니다.
창세기를 보면, 노아는 주변 사람들의 끊임없는 조롱을 받으면서도, 하나님이 명령하신 방주를 끝까지 지었습니다. 예레미야 역시, 평생 눈물로 하나님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죽음을 앞둔 감옥에서조차, 복음을 붙들고, 어떻게든 그 복음에 마지막까지 순종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세상에서 말하는 큰 성공이 아닌, 하나님 앞에서의 충성이었습니다.
또한, 이러한 충성된 청지기는, 자기 것이 아니라 주인의 것을 관리하는 자입니다. 다시 말해, 청지기는, 지금 자신이 가진, 돈도, 재능도, 건강도, 시간도, 자녀도, 다 내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바로, 이 모든 것들을, 다 하나님께서 잠시 나에게 맡기신 것임을, 명확히 기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이에 대하여 큰 착각을 합니다. 즉, 내가 지금 가진 재물은, 능력은, 인생은, 모두 내가 스스로 이룬, 내 것이다라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명심해야 할 사실은, 청지기는 소유자가 아닌, 관리자란 사실입니다. 그래서 청지기의 질문은 언제나,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가 아닌, 과연 “주인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청지기의 삶은 “내 인생”이라고 주장하는 삶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라고 고백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상의 화려한 성공보다, 맡겨진 자리를 끝까지 지키는, 충성을 가장 크게 원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삶의 자리에서도, 아무리 사소해 보여도, 그것이 주님이 맡기신 일이라면, 그 모든 일들을 신실하고 충성되게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가 행한 일의 크기를 보시는 분이 아닌, 우리의 충성을 보시는 분이심을 기억하며, 오늘도 “주님, 저는 주인이 아니라 주님의 청지기입니다”라고 고백하는, 믿음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청지기는, 사람의 평가보다 주님의 평가를 귀히 여기는 삶입니다.
고린도 교회 안에는, 사도 바울을 비판하는 사람들 역시 있었습니다. 즉, “사도 바울은 말은 잘하지만 외모는 초라하다.” “리더십이 약하다.” “다른 사도들보다 정통성이 부족하다.” 등등 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비판 앞에서, 사도 바울은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그것은, “너희에게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란 선언입니다.
솔직히, 우리 인간들은, 주변 상황에 따라, 수시로 변화하며 바뀌는 존재들입니다. 즉, 오늘은 칭찬하던 사람들이, 내일은 비난을 합니다. 오늘은 우리를 향해 박수 치던 사람들이, 내일은 등을 돌리기도 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예수님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예루살렘 입성 때는, 많은 군중들이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라고 외쳤지만, 바로 며칠 뒤에는, 그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라고 강하게 외쳤습니다.
이 같이, 수시로 변하는 사람들의 평가를 우리 삶의 기준으로 삼고 살아간다면, 그 삶은 곧바로 병이 들고, 시들어 버릴 것입니다. 왜냐하면, 칭찬받으면 교만해지고, 비난받으면 한 순간에 좌절하고 무너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 앞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 시니라.” 우리 주님은 우리들의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않으십니다. 오직 우리의 중심만을 보십니다. 다시 말해,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외적 결과로 우리를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우리 내면 마음의 중심에 있는, 동기를 보고 판단하십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박수 받는 사역만을 원하고 기억하지만, 하나님은 아무도 모르는 눈물의 헌신과 충성을, 모두 기억하시며 귀히 여기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지막 날, 주님의 칭찬을 인내하며,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5절 말씀을 보면,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라고 선포합니다. 우리 믿음의 백성들의 최종 목표는, 세상 사람들의 칭찬과 박수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 한분으로 부터,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바로, 이 한마디를 듣는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우리의 목표는,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신앙인이 되는 것이 아닌, 마지막 날, 주님께 크게 칭찬받는 청지기가 되는 것임을 분명히 기억하며, 사람의 눈치가 아닌, 주님의 시선을 의식하며, 끝까지 믿음으로 걸어가, 마지막 순간, 하나님으로부터 인정 받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마지막 셋째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청지기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는 삶입니다.
오늘 말씀의 배경이 되고 있는 고린도 교회는, 한마디로 교만했습니다. 즉, 이들은 자신들의 은사를 자랑했습니다. 자신들이 가진 지식을 자랑했습니다. 현재 자신들의 성공적인 삶을 자랑했습니다.
그러자, 사도 바울은 이들을 향해 강하게 묻습니다.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표준새번역 성경은 이 부분을 이렇게 번역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지 않은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우리 역시, 우리가 가진 것 가운데, 하나님께 받지 않은 것이 있습니까? 우리의 생명도 하나님께 받았습니다. 우리의 건강도 하나님께 받았습니다. 우리의 물질도 하나님께 받았습니다. 우리의 재능도 하나님께 받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들은 자꾸 자기 스스로가 엄청나게 잘나서, 이 모든 것들을,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얻은 것처럼 착각을 합니다. 그래서 교만해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청지기는 분명히 압니다. 그것은, “나는 주인으로부터 모든 것을 받은 자”란 사실입니다.
교만이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린 상태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다 내가 했다.” “다 내 능력이다.” “다 내 힘이다”라고 주장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경험한 사람들은 다릅니다. 이들은, “하나님 아니었으면, 나는 여기 있을 수 없음”을 그 누구 보다 잘 압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러한 고백을 하게 됩니다. “나는 죄인 중의 괴수이지만, 나의 나 된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허락하신 이유는, 소유하며 자랑하라고 주신 것이 절대 아닙니다. 그 이유는 바로, 필요한 사람들을 향해, 끊임없이 흘려 보내라고 주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에게 복음을 맡기신 이유는, 전하라고 맡기신 것이요, 우리에게 물질을 주신 이유는, 나누라고 주신 것이며, 우리에게 사랑을 주신 이유는, 섬기라고 주신 것입니다. 이 같은 사실을 잘 아는 청지기는, 더 이상 자신의 곳간에, 이 모든 것들을 쌓아두는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 원하시고, 바라시며, 뜻하시는 곳으로, 기꺼이 기쁨과 감사함으로 흘려 보내는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입니다. 생명도, 믿음도, 건강도, 물질도, 사명도, 모두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자랑할 이유도 없고, 교만할 이유도 더더욱 없습니다. 그렇기에, 참된 청지기는, 받은 은혜를 움켜쥐는 사람이 아니라, 감사함으로 흘려보내는 사람입니다. 또한,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이웃에게 흘려보내고, 받은 복음을 세상 가운데 전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러했을 대, 우리의 삶은, 단순한 종교생활이 아닌,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드러내는, 거룩하고 아름다운 삶이 될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필라제일연합감리교회 성도님들,
우리 인생 마지막에 남는 것은 명예도 아닙니다. 돈도 아닙니다. 사람들의 칭찬도 아닙니다. 마지막에 남는 것은 단 하나, 바로, “나는 주님 앞에 충성된 청지기로 살았는가?”의 결과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사도 바울은 우리들에게 이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누구의 평가와 인정을 위해 살고 있느냐?” 사람의 인정입니까? 세상의 성공입니까? 아니면 주님의 칭찬입니까?
우리는 주인이 아닙니다. 잠시 맡은 자로써, 이 세상 마지막 순간, 모든 것을 다 내려 놓고, 떠나야 합니다. 그러므로 교만할 이유도 없습니다. 비교할 이유도 없습니다. 자랑할 이유도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임을 매순간 고백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더 늦기 전에, 이 같은 결단을 하길 소원합니다. “주님, 복음을 맡은 청지기로, 우리의 남은 삶을 충실하고 성실히 살겠습니다.” “사람의 평가보다 주님의 평가를 바라보며 기다리겠습니다.” “받은 은혜를 자랑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주님이 뜻하고, 바라시며, 계획하시는 곳으로 흘려보내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인생의 마지막 날, 주님 앞에서,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이제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자어다”라는, 이 거룩한 음성을 듣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