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오늘도 예배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마태복음 22장 1~14절까지의 말씀으로, 예수님께서는 한 임금이 아들의 혼인 잔치를 준비하고, 그 잔치에 여러 사람들을 초청하는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일반적으로 비유란, 우리가 지금까지 한번도 본적이 없고,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문학 방식입니다. 마치,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는 것과 같은 것으로서, 우리는 손가락과 같은 그 이야기 자체에 머물지 말고, 그 이야기가 가리키고 있는, 진짜 목적지인 달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혼인잔치의 비유를 통해, 땅의 언어로 하늘의 비밀을 우리들에게 들려주고 계십니다. 즉, 이 비유에서 임금은 하나님을, 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혼인 잔치는 하나님 나라를 상징합니다. 임금은 여러 사람들을 초대했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 초청을 단호히 거절하고, 이와는 다르게 어떤 사람들은 그 잔치에 기쁨으로 참여합니다. 그런데 마지막 장면을 보면, 잔치에 청함을 받아 들어온 사람들 중에, 그에 합당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들은 바로 쫓겨나게 됩니다.
오늘 예수님은, 이 비유의 말씀을 통해,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질문, 하나를 던지고 계십니다. 그것은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며, 그 은혜에 합당한 삶을 지금 살아가고 있는가?”입니다. 이미 여러 차례 반복하여 말씀드렸지만, 교회에 다닌다는 사실만으로,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 마음에 합한 모습으로, 자동적으로 완성되는 않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은혜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그 은혜에 감사하며, 그 은혜에 합당한 삶의 변화와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 청함의 은혜 앞에서, 어떠한 모습과 자세로 살아가, 장차 택함의 은혜를 입게 되는지, 여러분들과 함께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초청은, 우리의 노력과 공로와는 전혀 상관없는, 하나님의 전적인 그리고 일방적인 은혜란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임금이 아들의 혼인 잔치를 정성껏 준비하고, 여러 친한 주변 손님들을 정중히 초청하는 이야기로, 비유를 시작하십니다. 즉, 임금은 아들의 결혼을 위해, 성대한 잔치를 준비했습니다. 소와 살진 짐승들을 잡고, 모든 것들을 빈틈없이 갖추었습니다. 그렇기에, 이제 초청을 받은 손님들은, 이 곳에 참여하여, 함께 기쁨을 누리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초청받은 사람들의 반응이 이상합니다. 이들은 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공동번역 성경을 보면, 이들은 그 초청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어떤 사람들은 자기 밭으로 가고, 어떤 사람들은 자기 장사를 하러 갔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임금이 보낸 종들을 모욕하고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발견합니다. 이들은 애초부터 초청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왕의 호의로 초청받은 선택된 사람들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임금의 잔치에 참여할 기회가, 아무런 조건 없이 주어졌지만, 이들은 그 기회를 전혀 가치 있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오늘 우리들의 신앙에도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 된 우리를 먼저 사랑하시어, 그분의 값없는 은혜로 불러 주셨습니다. 바로, 우리가 하나님 마음에 합당해서, 혹은 율법적으로 완벽해서 부르신 것이 절대 아닙니다. 또한, 세상적 기준과 자격이 충분해서 우리 모두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통해, 값없이 구원의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허락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혹시, 하나님의 초청보다 세상의 일을 더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가고 있지 않으십니까? 직장과 사업, 재정 문제, 자녀의 미래와 개인적인 계획에, 우리의 마음을 더욱 빼앗겨, 하나님을 뜻과 말씀을 뒤로 미룰 때가 있지는 않으십니까?
물론, 가정과 직장 그리고 사회에서, 우리가 저마다 짊어져야 할 책임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보다 중요히 여겨져 앞서게 된다면, 우리 삶은 가장 중요한 핵심적 본질을 잃어버리게 된다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말씀과 예배를 통해, 다시 그 분의 은혜 앞으로 부르고 계십니다. 즉, 기도하라고 부르시고, 사랑하라고 부르시며, 믿음으로 살아가라고 끊임없이 부르십니다. 종종 우리는 이러한 부르심을, 무심코 흘려 보내고 있지만. 그 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것은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요, 또 다른 기회임을 발견합니다. 바로, 우리 모두를 하나님 나라의 기쁨에 참여하도록 초대하시는, 사랑의 부르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혹시라도 여러 개인적 사정과 이유로 하나님의 초청을, 지금까지 외면하며 살았다면,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초청을 가볍게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바로 기회가 있을 때 우리는 그 기회를 반드시 붙잡아야 합니다. 그래야, 장차 주님과 대면했을 때, 우리는 그 때 땅을 치며 후회하는 일이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주님께서 우리를 친히 부르실 때, 내 생각과 내 판단, 그리고 내 현실의 문제로 주님의 은혜를 거부하는 모습이 아닌, 그 기회를 온전히 잡아,기쁨과 감사함으로 응답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초청에는, 그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라는 사실입니다.
처음 초청받은 사람들이, 혼인 잔치에 오지 않자, 임금은 종들에게 다시 명령합니다. 그것은, 길거리로 나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초청하여, 이 잔치에 데려오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은혜가, 특정한 사람, 특정한 계층 혹은 특정한 민족만이 아닌, 그 모든 경계를 넘어서는, 넓고 풍성한 것임을 보여 줍니다.
즉, 임금은 사람들의 신분이나 사회적 지위, 과거의 모습을, 초청 기준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선한 사람들이나 악한 사람들이나, 만나는 대로, 잔치의 자리로 초청했습니다. 처음, 이 같은 예기치 못한, 갑작스런 초청을 받은 사람들은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임금은 잔치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아주 완벽해진 후, 자신을 찾아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상처가 없는 사람만, 실패하지 않은 사람만, 흠이 없는 사람만을 부르신 것도 아닙니다. 부족하고 연약한 사람도 부르십니다. 과거에 실수한 사람도, 삶의 방향을 잃었던 사람도,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 안으로 지금도 초청하고 계십니다.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완벽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장소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사람들이 모여, 함께 예배하고, 서로의 부족함을 품으며, 서로의 위로와 격려 속에서, 주님을 닮아 가는 공동체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이 아무리 옳다 할지라도, 다른 사람들을 쉽게 판단하거나 정죄해서는 안 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나를 아무런 조건 없이 초청하여 받아 주셨듯이, 우리도 다른 사람들을 사랑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나와 배경이 다르고 생각이 달라도, 아직 믿음이 연약하고 신앙의 표현이 서툴러도, 그 사람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우리는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 이민자의 삶에는, 여러 어려움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언어와 문화의 차이, 경제적인 부담, 가족의 문제로 지친 이들이,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차가운 시선의 판단이 아닌, 그저 따뜻한 위로와 환대, 그리고 사랑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그런 공동체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누구든지 와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며,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그러한 교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이와 같은 공동체를 만들어 가기 위해 개인적으로, 지키는 목회 기준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원치 않으시는 분에게 혹은 거절하시는 분에게는, 절대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혹시, 제가 여러분들에게 무엇을 부탁하는, 혹시라도 부담이 되시면, 그저 “No”라고 말씀하시면 됩니다. “아직 준비가 안되었습니다. 아직 시간이 필요합니다. 다음에 하겠습니다.” 라는 이유를, 굳이 저에게 말씀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또한 저도 그 이유를 묻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시어, 하게 되면 하는 것이고, 혹시 아직 자원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으면, 그 때까지 기도하며 기다리면 되는 것입니다. 절대 이에 대하여 부담을 갖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혹시, 지금 교회 인에서 자신이 맡고 있는 일이 부담되시면, 언제든 저에게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함께 기도하고 묵상하며,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참된 평안과 쉼을 얻기 위한 길을 찾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이와 더불어 여러분들에게 한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내가 어떠한 일을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나 대신 저 사람을 시키면 된다라는 말은, 삼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못하지만, 저 사람은 할 수 있다라는 생각은, 어찌 보면, 누군가에게 큰 모욕과 상처를 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교회는 자원하시는 분들의 마음을 철저히 존중하며, 혹시라도 여러 상황으로 인해 그렇지 못하신 분이 계시더라도, 함께 기도하고, 격려하며, 위로함으로써, 우리 주일의 예배가 고된 하루 일과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와 평안 안에서, 쉼이 있는 하루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우리가 결코 간과해서는 안되는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누구에게나 은혜의 문을 열어 주시지만, 참으로 그 은혜를 받은 사람의 삶은, 반드시 새로운 변화의 길로 나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있는 모습 그대로, 우리를 부르시지만, 동시에 우리를 죄와 미움, 그리고 이기심 가운데 그대로 머물도록 인도하시는 분이 아니란 사실입니다. 바로, 우리를 말씀으로 새롭게 하시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계획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철저히 닮게 하시려 우리는 부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 답게, 하나님의 은혜를 기쁨과 감사함으로 누리고, 동시에 그 은혜를 통해 우리 주변 사람을 환대하고 사랑하며, 새로운 변화의 길로 나아가야 함을 기억하시며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셋째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그에 합당한 예복을 반드시 준비해야 합니다.
이제 비유의 마지막 장면을 살펴보면, 극적인 반전이 등장합니다. 즉, 임금은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을, 하나 하나 살펴보다가,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고, 결국 그는 그 성대한 잔치 자리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 1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솔직히, 이 말씀은, 우리에게 다소 무겁게 들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잔치에 무조건적으로 초대해 놓고서는, 이제 와서 쫓아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 이유는, 단순히 화려한 옷 한 벌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임금의 잔치에 참여하면서도, 그 자리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 관망적이고 방관적 태도를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들에게 있어, 잔치에 합당한 예복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고 있겠습니까? 성경 전체의 가르침에 비추어 볼 때, 예복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의 은혜를 감사히 받아들이고, 그 은혜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말씀합니다. 즉, 겸손과 사랑, 회개와 순종을 통한, 거룩한 삶의 열매가, 우리 삶에 외적으로 드러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 믿음의 백성들은, 선한 행실의 결과로, 구원을 사거나 거래하는 사람들이 절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먼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구원의 은혜는, 그곳에서 절대 마침표를 찍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같은 하나님 구원의 은혜는, 우리 삶의 마침표가 아닌 쉼표가 되어, 기쁨과 감사함으로, 우리 삶의 매 순간 마다 하나님의 은혜에 응답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참된 믿음은 단순히 우리 입술의 고백에만 머물지 않고, 우리 삶 속에서 거룩한 성령의 열매들을, 매순간 맺어가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을 사랑한다라고 고백하면서, 이웃을 미워하고 용서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신의 믿음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예배에 열심히 참석하면서도, 가정에서 가족에게 상처를 주고, 교회에서는 신앙적인 말을 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고 멸시한다면, 우리의 신앙과 삶 사이에 커다란 간격이 있는 것은 아닌지, 바로 선 줄로 생각하며 살아가지만, 사실은 넘어진 실패의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진정 원하시는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종교적인 모습만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이 새로워지고, 우리의 삶이 예수님의 모습과 같이 점진적으로 변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4장 8절에서, “참되고 경건하며 옳고 정결한 것을 생각하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9절에서는, 배우고, 받고, 듣고, 본 것을, 참으로 행하라고 말씀합니다. 바로, 우리의 믿음은 생각과 말뿐 아니라, 반드시 행동으로 이어져 완성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예복은, 비싼 장식들로 꾸며진 외적 경건의 모습이 아닙니다. 바로, 주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겸손의 옷, 다른 사람을 품는 사랑의 옷, 잘못을 깨달을 때, 즉시 돌이키는 회개의 옷,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의 옷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모습을 하나님의 뜻과 말씀 앞에서, 정직하게 돌아보며, 혹시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기고 있지는 않은지?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만족하고, 삶의 변화는 미루고 있는 반쪽 믿음의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지? 하나님께 사랑받기를 원하면서도,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는 인색하지는 않은지? 살펴보기를 소원합니다.
진정, 하나님의 초청을 받은 사람들은, 그 은혜를 소중히 여기며 살아감을 기억하시며, 매일 자신의 마음을 살피고, 잘못된 것은 회개하며, 사랑해야 할 사람을 사랑하고, 주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가벼이 업신 여기지 말고, 그 은혜에 합당한 열매를 맺음으로, 지금부터 온전히 택함을 받은 사람들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