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오늘도 예배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을,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오늘은 대림절 둘째 주일로, 지난주에 밝힌 희망의 촛불과 더불어, 사랑의 촛불을 환히 밝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 가운데 보내 주신, 가장 큰 사랑의 선물입니다. 이 시간, 우리 안에 깊숙이 숨어 있는, 교만과 욕심, 그리고 여러 이기심과 자만심의 죄들을, 겸손히 주님 앞에 내려 놓고 회개하기를 소원합니다. 그리하여, 사랑의 선물로 우리 가운데 오신 예수님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또한 다시 오실 예수님을 소망 가운데 기쁨으로 기다리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우리는 기다림의 절기인 대림절의 시간을 보내면서, 우리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임을 다시한번 깨닫게 됩니다. 저의 삶을 돌아보더라도, 미국에 공부하러 오기 위해, 대학원 입학 원서를 넣고 기다리는 시간이 있었고, 그 후 입학 통지서를 받고 서는, 미국 비자를 신청하여, 인터뷰하는 시간을 다시 기다렸습니다. 몇 해 전에는, 저희 가족들이 한국에 가기 위해, 모두가 여권을 만들어야만 했습니다. 예약된 시간에 모두가 우체국에 가서, 신청서를 내고, 사진도 찍고, 그 후, 수수료와 접수증을 받아왔습니다. 그리고는, 두 달 후에 집으로 배달된 여권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병원이나 심지어 헤어컷을 하기 위해, 정해진 시간에 방문을 하더라도, 대부분은 그곳에서 몇 분 정도는 더 기다려야 합니다. 이처럼, 우리의 인생은 무엇을 하든, 어디를 가든, 기다림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기다림에는 보편적으로 두가지의 모습이 있습니다. 하나는 설레임이고, 다른 하나는 짜증입니다. 먼저, 우리가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시간은 설레임이요, 기대로 가득할 것입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지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와는 다르게, 내가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시간은, 그야말로 짜증과 신경질 그리고 분노의 시간일 것입니다.
그런데, 기다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기다림이 설레임으로 다가오는지, 아니면, 짜증으로 다가오는지는, 주변의 상황 보다도, 지금 내 마음이 어떠한지에 달려 있음을 발견합니다. 다시 말해,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시간에, 만약 비가 오거나 심한 폭풍우가 몰아치더라도, 그 설레임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날씨가 화창하고, 맑게 빛나더라도, 내가 싫어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시간은, 온갖 짜증과 불만으로 가득할 것입니다. 바로 우리의 마음이 어떠 한지에 따라, 그 기다림의 시간이 180도로 달라질 수 있습니다.
미국의 철학자요 시인으로 잘 알려진 에머슨은, 기다림에 대하여 이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사람이 영웅이 되는 것은, 타인보다 용감해서가 아니라, 타인보다 10분 더 오래 참고 기다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속담에도 “참을 인 세번이면, 살인도 면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의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따라, 우리 인생의 결과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 속에서도, 기다림이 등장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에게 기다림은, 막연하게 불확실한 무언가를 기다리는 시간이 아닌,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한 새로운 은혜의 자리로 나갈 수 있는 시간이라 말씀합니다. 즉, 기다림은 우리의 믿음을 회복시켜 참된 예배자로 세우기 위한 훈련의 시간이요, 또한 기다림의 인내를 통해,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더욱 철저히 순종하도록 인도하는, 단련의 시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기다림의 소중한 시간을, 무의미하게 흘려 보내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는 기회의 시간으로 바꿀 수 있겠습니까?
첫째로, 기다림을,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기회의 시간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들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의 배경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말씀하신 복이, 자신들에게는 전혀 베풀어 지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악인들이 여러 복을 누리며 사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향해, 자신들은 왜 고아와 같이 내버려 두시는지, 그리고 자신들을 괴롭히는 악인들이 번성을, 속히 심판하지 않으시는 지, 의문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들은 하나님께서 공의롭지 못하시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이 발생 했다라고 불평을 늘어놓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도대체 공의로우신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라고 분노하였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내가, 내 사자, 바로 메신저를 보내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사자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길을 준비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길을 준비한다”라는 말은, 왕의 위엄스러운 행차가 있기 전, 길 위의 모든 장애물을 제거하고, 무너진 장소를 보수하고, 높은 곳을 평탄하게 만드는, 전체의 행동을 말합니다. 이후, 이 말씀은, 세례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풂으로써, 하나님과 그 백성들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죄의 장벽을 제거하여, 하나님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백성들 가운데, 온전히 강림하실 수 있도록, 예비하는 일로 이어지게 됩니다.
바로, 하나님은, 우리들의 생각에, 우리를 멀리 떠나, 마치 사라진 것과 같이 침묵하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자신이 한번 말씀하신 약속은, 반드시 지키시고 성취하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모두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솔직히,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라는 질문은, 과거 말라기 시대에만 있었던 것이 아닌,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도, 많이 제기되는 의문이기도 합니다. 우리 주변에 악인들이 득세하고, 불법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볼 때, 과연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왜 악인들을 당장 멸하시지 않으시고, 그냥 저대로 내버려 두시는 가? 진지하게 질문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에게 허락하신 말씀은, 장차 우리 가운데 임하실 메시야를 기다리는 믿음의 백성들은, 이같은 세속적 흐름과 현상에 동조하여 휘둘리지 말고, 오직 진실한 마음과 굳건한 믿음을 통해, 하나님 약속의 말씀을 끝까지 의지하고 신뢰해야 한다고 선포합니다.
오늘 본문 1절 후반부를 자세히 보면, “갑자기”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이 말은 “생각하지 못하는 때”라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그 때에, 우리의 구원자이신 메시야가 임하게 된다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기에, 오늘도 구원의 소망을 향해 담대히 나아가는 하늘의 성도들은, 미래의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갈망 뿐만이 아닌, 지금 이 순간에도 잠들지 않고 깨어 있음으로써, 언제 다시 오실지 모르는 주님의 재림을, 철저하고 빈틈없이 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비록 이 세상에 살아가지만, 이 세상에 물들거나 속하지 않는 믿음의 구별된 백성들로써, 우리의 기준은 이 세상의 가르침이 아닌, 늘 하나님의 뜻과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부정하게 그리고 불의 동조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아닌, 주님의 뜻과 말씀 속에서 늘 진실하고 정직하며 경건하게 살아가 합니다. 그러므로, 언제 우리 가운데 임하실지 모르는 주님 앞에서, 매순간 부끄러움 없는 그리고 후회 없는 삶을 살아가야 함을 기억하시며, 변치 않는 주님의 말씀과 약속 위에 굳게 서서, 믿음으로 마지막까지 걸어가 승리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둘째로, 주님의 재림을 잘 준비하기 위해서는, 우리 힘과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하나님의 능력 앞에서 대단히 보잘 것 없는 것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날이 오면, “누가 능히 당하며, 그가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라고, 오늘 본문 2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쉬운 성경은 “그러나 그가 오시는 날에는, 아무도 견디지 못하며, 그가 나타나실 때에, 아무도 살아남지 못한다”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날이 오면, 우리의 힘과 지혜를 포함하여, 지금 우리를 안전하게 보호하고 있다고 믿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단숨에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누가 능히’라는 표현은, ‘누구도 결코’라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됩니다. 또한 ‘능히 당하며’라는 표현은, 메시야가 이 땅에 임하실 때, 악인들 중 견딜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해,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게 될 때, 여호와의 심판은 이 세상의 모든 악인들에게 날카로운 칼이 될 것이란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늘 깨어 기도함으로써,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우리의 구원을 신실한 자세로 매순간 이루어 가야 할 것입니다.
분명, 주님께서 오시는 그날은, 어느 누구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두렵고 떨리는 순간일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약속하신 뜻을 신실하게 따라간 성도들에게는, 축복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림절의 시간,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철저히 살펴봄으로써, 세속적인 삶의 모습과 태도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이제는 주님 앞에 신실하게 살아가는 결단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예비하신 잔치에, 한 명도 예외 없이, 기쁨과 감사함으로 참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마지막 셋째로, 주님의 재림을 온전히 준비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원하는 예배가 아닌, 진정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이 땅에 임하신 메시야는, 불같이 우리를 연단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하나님 백성들 가운데, 만연한 죄악들을 소멸하시는 일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메시야를, ‘금을 연단하는 불’에 비유합니다. 불은 금 뿐만 아니라, 금 속에 들어있는 모든 불순하고 더러운 찌끼를 태우거나, 녹여 없앱니다. 이렇듯, 불로 우리 가운데 임하신 메시야는, 불로 금을 연단하듯, 순수한 우리의 신앙과 믿음을 위해,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죄악된 모습과 태도 그리고 생각까지 소멸하신다고 선포하십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따르지 아니한 사람들은, 아무것도 남지 않고 완전히 소멸될 것이지만, 의로운 백성들은 더욱 정결하고 순결한 믿음의 모습으로, 서게 하신다리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메시야가 이와 같은 일을 행하실 때에, “앉아서”하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앉아서”라는 표현은, 어떤 일을 시작하게 되었을 때, 아주 치밀하고, 철저하게 진행하여, 완벽하게 마무리한다라는 의미입니다. 특별히 레위 자손들을 깨끗하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그 당시 레위인들은, 예배를 포함한 성전의 모든 일들을 책임지고 진행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시 레위인들은 심히 부패했다고 합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 하기 위해, 성도들이 예배를 위해 가져온 좋은 재물들은, 따로 빼돌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예배를 드릴때에는, 이들이 가져온 것이 아닌, 더럽고 부정한 제물을 드림으로, 성도들을 속이고, 여호와 하나님을 모독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하나님은 이들이 드리는 예배를 전혀 받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하나님은 메시야가 오시면, 먼저 레위인들을 깨끗하게 하여, 예배가 회복되게 하실 것을 선언하십니다. 즉, 3절의 말씀을 보면, 우리를 친히 회복시켜 주시겠다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3절 후반부는 “그들이 공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바칠 것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참으로 정결하게 된 자들이, 이제는 온전히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게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다시 말해, 부패하고 타락했던 예배가 회복되고, 온 마음과 정성, 그리고 뜻을 다하여 드리는 예배가 회복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예배가 회복될 때, 우리는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올바르게 준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1-2절에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권면합니다.
더 이상 우리의 예배가, 의무적이고 형식적으로 드려지는 예배가 아닌, 이제는 진정 기쁨과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 가운데, 드려지기를 소원합니다. 그리하여, 더 이상 우리만 기뻐하고 만족하는 예배가 아닌, 하나님이 원하시고 바라시며 기빠하시는 신령과 진정의 예배를 드리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필라제일연합감리교회 여러분들, 오늘 우리는 메시야로 오실,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는 대림절 두 번째 주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 기다림의 시간,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실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자신이 하신 언약의 말씀들을,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반드시 지키시고 성취하시는 분이란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이루시는 여러 일들이, 비록 우리 생각과 판단에 더디고 늘릴지라도, 우리는 참고 인내하며, 경건한 모습과 자세로, 다시 오실 주님을 준비된 모습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하여, 오직 하나님만이 허락하시는, 놀라운 하늘의 은혜를, 매순간 받아 누리는 복을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