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오늘도 예배에 참여하시는, 모든 분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눈에 보이든 혹은 눈에 보이지 않든, 세상의 모든 존재들은, 저마다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하며, 지금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역할들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할 때 부여하신 고유한 기능으로서, 각자가 부여 받은, 역할 외의 일에, 월권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건강함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 몸의 각 요소들이, 원래의 역할을 정상적으로 감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 몸의 세포가 원래 부여 받은 역할이 아닌, 어느 순간부터 다른 역할을 하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것은 우리 몸의 암세포가 되어, 우리 건강을 크게 위협하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 믿음의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각자 부여 받은 고유한 사명을, 매순간 감당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에게 그 역할은 다름아닌,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기억하고, 그분을 예배하며 매순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러한 삶을 추구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깨어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끊임없이 유혹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어떠한 모습과 자세로, 이 세상에 휩쓸리지 않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여하신 고유한 소명을, 아름답게 감당하며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오늘 우리에게 허락하신 말씀은,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당시 유대 지역을 통치하는 헤롯 왕은, 강력히 항의하는 유대인들의 요청으로, 그리스도인들 몇을 해치게 됩니다. 그랬더니, 유대인들이 대단히 좋아했습니다. 이에, 헤롯 왕은 유대인들의 더 큰 환심을 사려고, 적극적으로 기독교를 박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하는 사람들은 국민들의 여론에 약합니다. 정치인들은, 자신이 추진하는 일에, 국민들의 지지도가 높으면, 그 일이 옳고 그름을 떠나 강력히 추진할 수 있고, 이와는 반대로,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지만, 국민들의 지지도가 낮으면, 일을 진행함에 있어 주저하거나 멈추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헤롯도, 여론에 대단히 약하였습니다. 사실, 유대 지역을 다스리는 헤롯 가문은, 순수한 유대인 혈통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조상들은 에돔 출신의 이방인으로써, 이후 이들이 개종하여 유대인이 된, 어찌보면 반쪽자리 유대인과 같았습니다. 그렇기에, 로마로 부터 유대 지역의 왕으로 임명을 받은 헤롯은, 자신의 지역에서 반란이나 혹은 시끄러운 정치적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늘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고자 노력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헤롯은, 바리새인, 서기관 그리고 대제사장들처럼, 유대 지역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들과 손을 잡고, 시시때때로 유대 지도자들과 마찰을 일으키는, 소수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헤롯은 유대인들에게 더 큰 인기를 얻기 위해 마침내,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잡아 죽이게 됩니다.
오늘도, 우리는 믿음 생활을 하다 보면, 때때로 이해하지 못할 일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저런 분은 더 오래 이 땅에 사셔서, 하나님의 일을 아름답게 감당해야 하는데, 왜 이 중요한 때에, 데려가 시나?”,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교회에서, 어찌하여 이 같은 비극적 일이 벌어지는가?”, “저렇게 악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왜 심판하지 않으시는가? 등, 우리의 이성과 판단으로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믿음의 성도들은, 실망하거나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깨서는 당신의 때에, 반드시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하실 것이라, 분명히 약속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2:17~21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부여 받은, 우리의 고유한 사명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일이나 억울한 일을 만났을 때, 이에 대하여 원수를 갚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이 모든 것들을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고, 우리의 자리에서, 하나님이 원하시고 바라시는 선한 일들 도모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일을 만나도, 모든 판단을 하나님께 맡기고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모르는 그 곳에도 분명, 하나님의 선하시고 거룩하신 뜻이 살아 숨쉬고 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말씀을 보면, 야곱이 아무리 애쓰고, 야곱의 가족들이 아무리 부지런히 농사를 짓고, 양을 쳐도, 흉년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나?’ 하며, 아마도 야곱은 답답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흉년이 2년, 3년 계속되어, 그의 아들들이 양식을 구하러 애굽에 가게 됩니다. 그랬기 때문에, 이들은 요셉을 다시 만날 수 있었고, 그후, 야곱의 가족이 고센 땅에서의 축복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우리 앞에 놓여진 현실이, 도저히 이성적으로 또한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을지라도, 훗날 반드시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서, 축복으로 다가올 일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심지어, 이 땅에서 도저히 이해되지 못할 일들은, 분명 천국에서 이해될 줄로 믿습니다. 그렇기에, 만약 우리 앞에 놓여진 현실의 문제들이, 지금 당장 이해 된다면, 하나님께 감사하고,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있다라면, 의심하지 말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고, 믿음으로 묵묵히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가장 이해하기 힘든 사건 하나가 등장합니다. 그것은 야고보 사도가 헤롯 왕에게 무참히 죽게 된 사건입니다. 우리 생각에는, 야고보를 죽이라고 명령한 헤롯 왕이나, 야고보를 죽인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당장 벌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헤롯 왕도 건재하고, 심지어 야고보를 죽인 사람들도, 벌을 받기 보다는, 오히려 승승장구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헤롯 왕은 야고보를 무침히 죽인 양심의 꺼리낌도 전혀 없이, 유대인들이 이토록 좋아하니, 다음에는 베드로까지 잡아 죽일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해롯은 유월절 후, 베드로를 잡아 감옥에 가두고, 여러 병사들에게 철저히 지키도록 명령합니다. 심지어 베드로가 도망갈까 봐, 감옥에 갇힌 그를 쇠사슬로 묶기까지 합니다. 이렇게 세상은 철저하게 자기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잘 때도 병사들은 베드로의 양옆에서 같이 잠을 잤을 정도입니다. 이러한 현실이, 답답하고 안타깝지만, 세상은 자신의 힘과 권세를 더욱 강화하고 지키기 위해,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상황속에서, 또 다른 움직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옥에 갇힌 베드로에게, 천사를 보내신 사건입니다. 그런데, 천사가 나타나, 캄캄한 감옥에서, 환한 빛을 비추는 데도, 베드로는 태연히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어찌보면, 베드로는 참으로 복이 많은 사람인 것 같습니다. 내일 당장 죽을지도 모르는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이렇게 단잠을 잘 수 있는 것, 그것이 얼마나 큰 은혜요 축복입니까?
천사는 옥중에서 단잠을 자는 베드로에게 다가가, “일어나라”하며, 그를 깨웠습니다. 베드로가 무슨 일인가 싶어 일어나니, 그를 묶고 있던 모든 쇠사슬이 벗겨졌습니다. 천사는 놀라운 능력으로 베드로를 풀어주었던 것입니다. 잠에서 깨어 일어난 베드로에게, 천사가 다시 말합니다. “띠를 띠고 신발을 신어라.” 베드로가 그대로 하니, 천사가 또 말합니다. “겉옷을 입고 따라오라.” 베드로가 천사를 따라가니, 이전에 굳게 잠겨 있던 모든 쇠문들이 단숨에 열립니다. 하지만, 그곳을 지키는 간수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첫째 파수를 지나고, 둘째 파수를 지나도, 병사들은 잠에서 깨지 않습니다. 베드로가 성으로 통하는 쇠문에 이르니, 성문이 저절로 열리기까지 했습니다. 군사들이 베드로를 밤낮으로 지켰지만, 하나님은 베드로를 친히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 같은 사실은, 우리 인생의 사방 길이 막혔어도, 하늘은 언제나 열려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사방에 길이 보이지 않더라도, 하늘과 통하는 사람에게는, 새로운 길이 열린다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살아계신 하나님은, 거대한 홍해 가운데, 새로운 길을 내신 분입니다. 마라의 쓴물을 단물로 바꾸시고,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자신의 백성들의 필요를 채우시고, 밤낯 주야로, 이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께는 능하지 못한 일이 전혀 없으십니다. 바로 그 분이, 우리가 믿는 구원의 주님이십니다. 이러한 주님은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의 구원을 위해, 묵묵히 자신의 일을 행하고 계십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본문에는 믿음의 사람들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옥에 갇힌 베드로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다시 말해, 교회에 위기가 오고, 이들의 지도자가 어려움을 당할 때, 믿음의 백성들은, 자기 일만을 앞세우며, 행하지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만사를 제쳐주고, 고난 중에 있는 교회와 지도자를 위해, 함께 기도했습니다. 물론, 이들의 지도자인 베드로는, 옥중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태평스럽게 잠을 자고 있었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자도자 베드로가 알든지 모르든지, 그를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가지 교훈을 배우게 됩니다. 그것은, 교회가 위기를 극복하고 바르게 세워지려면, 그곳에 반드시, 기도의 눈물과 헌신이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교회와 그 교회의 지도자를 위하여, 함께 수고를 아끼지 않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은, 이것이 성도들의 가장 기본적 본분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세상이 세상의 일을 하고, 하나님이 하나님의 일을 하듯, 우리 믿음의 백성들이 가장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은, 바로 하나님의 뜻과 말씀 위에서, 기도의 헌신과 눈물을 아낌없이 흘림으로써, 그것이 교회의 덕이 되고, 그로 인하여 장차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하실 일에, 기쁨과 감사함으로 동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말씀 위에서 드려지는 기도는, 절대 허공을 치지 않습니다. 흩어 사라지지도 않습니다. 우리의 참된 기도는, 하나님의 편에 서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붙드는 것으로서, 우리 삶의 매순간 순간마다, 하나님이 개입하시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했을 때, 베드로가 감옥에서 풀려났던 것과 같이, 우리의 모든 문제들 역시, 주님의 은혜 안에서 온전히 해결될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며, 열심히 공부하고, 사업도 잘하며,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열심 가운데에서, 결코 놓치지 말아야 할, 한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도입니다. 우리는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참된 신앙생활은, 잠시 예배하기 위해, 교회를 왔다가, 가는 정도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교회가 베드로를 위해, 죽기 살기로 기도했을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음을,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분명히 보았습니다. 베드로를 얽매고 있던 모든 쇠사슬이 끊어졌습니다. 천사도 나타났습니다. 겹겹으로 잠겼던 옥문들이 자연스럽게 열렸습니다. 심지어, 베드로 옆에 있던 병사들이 힘쓸 겨를도 없이, 베드로가 그곳을 걸어나와 풀려 났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이같이 우리의 생각과 판단을 뛰어 넘는, 놀라운 사건으로, 우리 기도 가운데 오늘도 역사하십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있어, 영적으로 가장 무서운 일은, 우리와 우리 교회가 전혀 기도하지 않고, 그저 염려하고, 분노하며, 비난하고, 낙심에 빠져 있는 모습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 인간 관계에서 가장 무서운 손실은, 사람들이 서로를 위해, 더 이상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가정의 가장 큰 비극은, 부모가 자녀를 위해서, 더 이상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모가 자녀에게 이 세상의 재물과 풍요로움을 아낌없이 물려줄지라도, 기도하지 않는다면, 좋은 자녀와 후손들이 더이상 자라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삶에서 기도를 잃어버리는 것은, 인생 최고의 비극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말씀을 자세히 보면, 모든 장마다, 기도 이야기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제자의 수가 채워지고, 교회가 세워지며, 전도가 되고, 기적이 일어나며, 일꾼과 선교사들이 세워지고, 교회가 부흥하는 것은, 다 기도의 힘 위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가정이 세워지고, 자녀가 자라나며, 삶이 풍성해지는 것도 바로 기도의 힘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은, 하나님과 직접 마주하고 대화하는, 기도의 시간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은 오늘도 세상의 일을 합니다. 하나님께서도 하나님의 일을 지금 하고 계십니다. 우리 역시 우리의 일을 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가장 잘 하고, 제일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 그것은 다름아닌, 기도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이러한 사실을 다시금 기억하시며,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 우리 앞에 펼쳐진다 할지라도, 우리 삶의 매순간과 자리마다, 기도의 힘과 능력이 살아나, 우리를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과 역사를 생생히 체험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