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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8 / 토요 새벽 기도회 (요한복음 5:39~47)

오늘도, 예배에 참여신 모든 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어제 뉴스를 보니, 캘리포니아에서 일어난 산불이 서서히 진압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번 산불로 인하여, 가족과 재산을 잃고 실의에 빠지신 분들이 많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오늘 새벽, 기도하시는 가운데, 특별히 그분들의 영적 육체적 회복을 위해, 함께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어떠한 행위나 업적이 아닌, 오직 믿음으로 구원에 이른다는 사실을 잘 알, 또한 믿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믿음은 구원에 있어, 가장 근본이 되는 뿌리요, 출발점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종종 일부 사람들은, 믿음을 많은 지식이나 혹은 자신의 결심과 같은 것으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믿음을 하나님의 선물이라 분명히 말씀합니다.  에베소서 2:8~9절 말씀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하지만, 오늘 우리에게 허락하신 말씀을 보면, 예수님 당시 유대인은, 잘못된 신앙에 빠져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러한 이유로, 오늘 본문은,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믿고 따른다 하면서도, 예수님을 불신앙으로 거부하는 유대인들을 책망하면서, 참된 믿음이 과연 어떠한 모습과 행동으로 나타나게 되는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니님을 참되게 믿고 따른다는 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여러분들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믿음은 지식이 아니다라는 사실입니다.

 

요즘 유튜브나 신앙 서적들을 보면, 쉽고 자세하게 성경에 대하여 풀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과거 어느 시절보다 신앙인들은, 성경에 대한 많은 지식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과거에는 교회에 방문해야 목사님의 설교를 들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미디어의 발달로 인하여,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얼마든지 설교를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자신이 원한다면, 유명한 목사님들의 명설교를, 무한정으로 선택하여 들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깊은 성경 지식과 여러 목사님들의 뛰어난 설교로 인하여, 하나님의 뜻과 말씀이 아름답게 실현된 모습으로, 점점 변화되어 가고 있습니까?  여러 통계자료를 보면, 성경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좋은 설교 말씀이 넘쳐남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기독교인들의 숫자가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오히려, 과거 보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의 사람들의 숫자가, 현저히 줄어들고 있는 것입니다.

 

이 같은 사실은, 성경지식이 풍부한 사람들이, 반드시 신앙이 좋은 사람들로 연결되지 않음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히려,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많은 성경의 지식을 가지고, 자신과 다른 이들을 철저히 구분하며, 교만함에 빠지게 됨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이 신앙이 대단히 좋은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있다는 현실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이 같은 사람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바로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입니다.  이들은 성경을 그 누구보다 열심히 읽고 연구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려는, 숭고한 열심과 열정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많은 지식과 열심은, 오히려 성경의 본질을 꿰뚫는데, 큰 장애물이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이들은 성경의 지식을 많이 가졌으나 미련했고, 열심은 있었으나 교만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이들을 향하여, 구약성경 전체의 말씀이 하나의 초점, 즉 바로 자신을 증언하기 위해 쓰였다고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성경을 연구하는 가장 핵심적 이유는, 단순히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많이 쌓기 위함이 아닌,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을 참된 그리스도로 받아들이고, 그분을 통해 영생을 얻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성경의 물리적 지식은 많았지만, 성경의 본래 목적을 깨닫는 영적 지혜가 대단히 부족했습니다.  물론, 지식 없이 온전한 지혜는 있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식은 지혜로 나아가기 위한, 중요한 발판이요, 밑거름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문제는,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가 되듯,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단순히 앎에서 멈추는 것이 아닌, 그것이 참된 지혜로서 발전해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이, 우리 삶의 지혜로 변화되고 발전하였을 때, 그것은 우리를 참 진리의 길로 이끌고 인도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저 앎에 만족하는 지식에만 머물게 된다면, 그것은 우리 삶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하기에, 마치 맛을 잃은 소금과 같이, 우리 구원의 완성을 위해, 아무 쓸데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영생을 얻으려고 성경을 배우고 연구하는 것 자체를, 잘못된 것이라 결코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지적하시는 근본적 문제는, 그들이 성경을 자세히 배우고 살폈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이 증언하는 예수님을 지혜롭게 알아보지 못하고, 마지막까지 어리석게 거부했다라는 사실입니다.  물론, 구약성경의 모든 내용들이 예수님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 의미를 꿰뚫어 보는 참 지식과 지혜가 있었더라면, 이들은 구약 성경의 핵심 내용이, 바로 예수님을 증언하는 것임을, 한눈에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심지어, 예수님은 이들의 잘못된 지식과 지혜를 지적하시고자, 유대인들은 예수님에 관해 기록한 모세를 결코 믿지 않기 때문에, 자신을 믿지 않는다라고 강하게 질책하십니다.  서양 속담을 보면, 지식과 지혜를 구분하는 방법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지식이란, 토마토가 채소라는 것을 아는 것이고, 지혜란 토마토를 채소 셀러드에 넣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채소임에조 불구하고, 채소 셀러드에 토마토를 넣지 않는 이유는, 토마토가 셀러드의 모양과 맛을 완전히 망가트리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나라 속담을 보면, 선무당이 사람잡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뜻은 어설픈 지식이나 혹은 서투른 기술로, 사람을 치료하다가, 급기야 사람을 죽이기까지 한다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지식은, 단순히 앎에서 멈추는 것이 아닌, 우리 삶의 구체적 지혜가 되고 있습니까?  그리하여 우리의 삶을 온전한 구원의 길로 오늘도 인도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종종 많은 지식을 가졌다고 하여, 마치 자신이 지혜롭다라고, 또한 큰 믿음을 가졌다고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만약, 이러한 생각이 조금이라도 우리 마음속에 있다면, 즉시 그러한 착각에서 빠져나오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우리를 구원하는 지혜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우리는 그 속에서 예수님을 끊임없이 발견해 내야하고, 그분의 뜻과 말씀을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함을 분명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 삶에 있어, 예수님이 빠진 지식은, 교만과 그로 인한 잘못된 판단으로, 영원한 멸망에 이르게 됨을 기억하시고, 매순간 우리의 지식에 예수님이 함께하심으로 말미암아, 장차 우리를 영생의 길로 인도하는 참 지혜와 참 믿음을 마지막까지 소유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마지막 둘째로, 사랑만이 온전한 믿음을 세운다라는 것입니다.

 

복음전도자 무디는, 그리스도인을 세 가지 부류로 나눕니다.  첫째는, 지옥에 가는 것이 두려워 하나님을 섬기는 노예요, 둘째는 일한 대가를 받기 위해, 하나님을 섬기는 피고용인이요, 셋째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을 받고, 그분을 사랑하며 섬기는 아들과 딸들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이 셋 중, 어디에 속해 있습니까?

 

솔직히, 이 같은 모습은, 현대 교회 안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일부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러한 말을 서슴없이 합니다.  “천국은 없다, 하나님은 없다” 하다가, 죽은 뒤, 그때 후회해도 소용없으니, 일단 보험 삼아, 하나님을 믿어 보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으면 큰 복을 받아서, 집안의 모든 일들이 다 잘 풀리고, 부자가 된다며 복음을 소개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참된 복음과 그로 인한 온전한 믿음은, 장차 자신에게 무엇이 채워질지, 계산하는 태도에서 절대 나오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성경 지식도 많고 종교적 열심도 있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참된 메시야 이신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하는 이유를 간파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삶속에서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들 모두가 주님을 버릴지라도, 자신은 결코 버리지 않겠다라고 호언장담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알듯이, 그는 결국 예수님을 한 번도 아닌 3번씩이나 부인하고, 심지어 저주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찾아오셔서, “네가 이제는 나를 메시아로 확실히 믿느냐?”라고 질책하며 묻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베드로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한, 3번의 횟수 만큼 질문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성경을 제대로 몰라 예수님을 거부하고, 잘못된 영광을 구하며, 또한 모세를 참으로 믿지 않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을 제일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얻기 위해, 그들이 좋아하는 말씀만을 의도적으로 전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자신을 보내신 하나님의 편에 가정 먼저 섰고, 그분의 뜻에 모든 관심을 집중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을 질책하시기도 했고, 부유하고 권세가진 자들을 향해, 현재에 만족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는 지혜로운 자라 되라고 단호히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 거짓 메시야를 영접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하나님 보다, 자신의 욕심과 이기심에, 가장 먼저 끌렸기 때문이라 이야기합니다.  솔직히 이들은, 영생의 진리에 전혀 관심이 없기에, 그저 본인들이 원하는 말을 하고, 그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며, 이들의 귀를 즐겁게 해주는 이를 영접하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 이들은 장차 영원한 구원이 아닌, 영원한 멸망에 이르고 만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믿음의 성도들은, 세상의 가치와 물질 그리고 명예가 아닌, 가장 먼저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분의 사랑, 바로, 우리가 여전히 죄인 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먼저 죽으심으로써,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던 은혜 속에서, 다시 거듭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로 인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먼저 체험한 우리들이, 그 사랑을 이웃들을 향해 구체적으로 나누고 실천함으로써, 우리의 믿음을 세상에 밝히 드러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가져야 하는 참된 믿음의 모습과 자세인 것입니다.

 

믿음은 구원의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여전히 세상에는 믿는다고 하면서도, 형식적 종교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과, 또한 죽은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음을 보게 됩니다.  혹시 우리도 그 중에 하나는 아닌지, 오늘 이 시간 철저히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우리의 구원에 필요한 참된 믿음이란, 지식을 통해서도, 혹은 종교활동을 통해서도 얻지 못하며, 오직 주님을 향한 바른 지식과 그로부터 흘러나오는 사랑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온전한 지식이 우리의 지혜가 되어 참된 실천의 믿음을 세운다는 사실을 알고 믿음으로써, 오늘 아침, 주님을 더욱 사랑하고 가까이함으로, 우리의 구원을 아름답게 마지막까지 완성하는, 저와 여러분들의 복된 삶이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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