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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4 / 토요 새벽 기도회 (요한복음 1:29~42)

오늘도, 예배에 참여신 모든 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1월부터 3월 중순까지, 요한복음의 말씀을 통해, 여러분들과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신약 성경 처음에 등장하는,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은, 공통적으로 예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소개하며 시작하고 있습니다.  특히 요한복음은, 다른 복음서들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예수님을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다른 3개의 복음서와는 다르게,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이미 창세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이러한 하나님으로부터 인류 구원을 위한 소명을 받고, 하늘의 모든 영광을 뒤로 하고, 이 땅에 내려온 분이심을 말씀합니다.

 

특히, 요한복음 1장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태초부터 계셨던 하나님의 영원 불변의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으로, 선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요한복음 사용하고 있는, “말씀”을 뜻하는 헬라어 “로고스”는, 철학적 용어로서, 세상의 모든 질서 이면에 존재하고 있는 원리를 말합니다.  즉,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동시에 오늘도 변함없이 이 세상을 유지하고 계시는, 그러나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그러한 힘과 능력이, 바로 로고스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 원리와 이치의 말씀이, 이제는 우리와 같은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실제로 보여지고 있는 것입니다.  즉,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분은 예수님으로서, 우리는 그분을 통해, 비로소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 그리고 진리가 충만함을 보고, 느끼며,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은 우리 인간과 소통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통로로서, 그렇기에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직접 눈으로 생생하게 보고, 귀로 그분을 음성을 실제로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같은 이유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메신저이시자, 우리를 하나님께 인도하는 메시야의 역할을 동시에 감당하고 계십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말씀을 지속적으로 믿고, 지켜, 행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뜻 안에 거하며, 그것을 구체적으로 이루는 것이며, 이것이 장차, 우리 모두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생명의 길이 됨을, 요한복음은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음의 사람들에게 있어, 신앙생활을 한다라는 것은, 단순히 교회의 일원이 되어, 주일날 교회에 나와, 예배만 드리는 종교인이 된다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것을 완전히 뛰어 넘는 것으로서, 우리의 주인이자 스승 되신,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허락하신 말씀은, 요한의 제자였던 두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 그분의 제자가 되고, 시몬 베드로에게도 예수님을 알렸던 사건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통해,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반드시 요청되는 변화의 요소가, 과연 무엇인지 여러분들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반드시 요청되는 것은, 스승이신 예수님과 늘 함께 지내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성령이 비둘기 같이 예수님께 임하시는 모습을 보고, 그가 메시야 이심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하나님의 어린양, 바로 우리들이 오랫 동안 기다려온, 그리스도이심을 밝히 증언했습니다.  그의 말을 듣고, 세례 요한을 따르는 두 제자들은, 예수님을 찾아 뵙게 됩니다.  이 두 제자가 누구인지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아마도 이들의 마음 속에는, 영원한 진리에 대한 갈망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찾아온 이 두 사람들과 함께, 기꺼이 시간을 보내시며 교제를 나누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의 교제를 통해, 예수님이 참으로 자신들이 기다려온 메시야라는 사실을 확신하게 됩니다.  그 후, 이들은 앞으로 예수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그분 만을 따를 것을 결심합니다.

 

이 세상에서, 스승이 없는 제자들은 결코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제자는 자신이 모시는 스승과 동행하며, 그에게 배우고, 그를 닮도록 요청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여러 복음서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닌 3년의 사역 기간은, 한마디로 “사귐”의 시간이요, 동시에 “훈련”의 시간이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즉, 그들은 예수님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지면서, 그 누구보다 친밀하게 그분과 교제했습니다.  그리고, 그 분이 들려주시는 생명의 말씀에, 어떠한 모습과 방법으로 순종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배우며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특히, 요한복음의 저자로 알려진 사도 요한은, 예수님과 사귀면서 배운, 계시와 교훈을, 요한복음 뿐만이 아닌, 다른 신약 성경인, 요한 1서, 2서, 3서, 그리고 요한계시록에 풍부하게 담아냈습니다.

 

예수님은, 과거 자신의 12제자들 뿐만이 아닌, 지금도 우리 모두를 당신의 제자로 부르고 계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기록된 말씀을 통해, 자신과 친밀한 사귐을 누릴 수 있는, 특권을 허락하고 계십니다.  그렇기에, 그분의 제자로 부름 받은 우리 모두는, 성경 말씀을 통해, 그분의 성품과 사역을 본받으며 배워 나가야 합니다.  말씀 묵상과 기도 시간을 통해, 그분의 뜻을 구하고, 그분의 세밀한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2025년에는, 다른 것은 다 놓치더라도, 이 놀라운 특권 만큼은 놓치지 않기를 소원합니다.  우리 삶의 바쁘고 분주한 일들을 잠시 멈추고, 예수님께 가까이 나아가, 그분을 좀더 만나고 교제하며 배우는 시간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매순간 만나 주시는, 살아 계신 예수님을 통해, 예수님만이 허락하시는 평안을 누리며, 예수님이 공급해 주시는 성령의 힘과 능력을 가지고, 2025년 한해를, 넉넉히 이기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마지막 둘째로,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요청되는 것은, 새로운 이름에 합당한 삶을 살아 내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앞부분에서, 그 동안 정체를 밝히지 않았던, 두 제자 중의 한명이,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시간을 보내면서, 그분이 메시야임을 깨달은 안드레는, 즉시 베드로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를 예수님께 인도하였습니다.  베드로를 만나신 예수님은, 그의 이름을 “게바” 즉 “반석”이’라는 뜻의 이름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가장 먼저 베드로에게, 이같이 하신 이유가 무엇이었겠습니까?

 

신약성경의 복음서 뿐만이 아닌 구약성경을 보면, 베드로 이외에도 이름을 바꾼 여러 신앙의 인물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사래를 사라로 바꾸셨습니다.  자신의 형인, 에서의 축복을 가로챈 야곱도,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새롭게 받았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을 살펴보면, 이들 모두는 새로운 이름과 함께, 기존 삶의 목표와 방식을 과감히 버리고, 새로운 소명의 삶을 받았다라는 사실입니다.

 

물론, 우리 모두는 베드로나 그 외의 다른 성경의 인물들과 같이, 예수님이나 하나님으로부터 특정한 이름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 모두를 자신의 제자로 친히 삼아 주시고, 불러 주셨습니다.  우리가 그 분의 제자가 되었다라는 것은, 우리에게 새로운 소명이 주어졌 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기존의 삶의 모습에서 벗어나, 이제는 예수님께서 보여주시고 말씀하신, 그 뜻과 방법대로 살아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자기 자신을 통해,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보여준, 통로가 된 것 같이, 제자들인 우리들도,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과 말씀을 보여주신 예수님을, 세상에 널리 전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들은 예수님이 명령하시고 말씀하신, 제자의 소명을 얼마나 감당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지난 송구영신 설교 시간에 나누었던 말씀과 같이, 우리 모두는 애굽에서 빠져나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 새로운 가나안을 향해 나아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여전히 애굽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를 그리워하며, 하나님이 우리를 이 같이 혹독한 광야의 환경에 내몰아, 죽게 한다라고 불평하는 모습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다시 말해,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를 도우시며, 우리의 모든 요구와 필요를 적절히 예비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당장 펼쳐진 눈앞의 척박한 현실에, 불평과 불만, 그리고 실망과 좌절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주님이 말씀하신 제자의 소명을, 마지막 가나안 땅에 입성할 때까지, 잊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현실의 문제에서 과감히 벗어나, 제자다운 삶을 잊지 않고 살도록, 늘 주님의 은혜를 구하며, 기도와 말씀 가운데 깨어 있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비로소,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변치 않고 함께 하시겠다는 주님의 약속이, 실제로 우리 삶에 성취 되는 놀라운 기적과 경험을 맛보게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제자로 귀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란, 예수님과 늘 동행 하며 맡겨진 소명에 헌신하는 사람들입니다.  비록,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여건이, 넉넉하지 않고, 때로는 척박하고 힘들더라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택하심을 받은 사실은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이 어렵고 힘들수록, 우리의 눈을 세상이 아닌, 예수님께 믿음의 눈을 들어 더욱 고정함으로써, 말씀과 기도로 부지런히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과 동행하며, 제자의 사명을 온전히 완수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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