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오늘도 예배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을,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오늘은 대림절 세번째 주일입니다. 계속되는 대림절의 귀한 기간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또한 다시 오실 예수님을 소망 가운데 기쁨으로 기다리는 은혜가, 우리 모두의 삶에 임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혹시 여러분들의 기억 속에, 간절히 기대하고 기다리던 날이 있으셨습니까? 제 기억속에는, 중학교 시절, 처음 수학여행을 떠나던 날을, 간절히 기다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히 남아 있습니다. 그 당시를 떠올려 보면, 경주로 수학 여행을 떠나기 전, 약 6개월 전부터 친구들과 함께, 이것 저것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며, 그 날이 빨리 오기를 하루하루 기다렸던 추억이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이와 비슷한 기억이 있으실 것입니다. 취업을 위해 원하는 회사에 입사 원서를 넣고, 합격 통지서를 받는 날을 기다렸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아직 경험을 하지 않았지만, 자녀들이 자기가 가고 싶은 학교에, 입학 원서를 제출하고, 합격 통지서를 받는 날을 간절히 기다렸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어떤 분들은 자신의 개인적 문제가 조속히 해결되는, 그날을 꿈꾸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지금, 앞으로 어떠한 일이 일어나기를 꿈꾸며, 그 일이 실현되는 그날을, 간절히 기다리고 계십니까? 그리고 그 날이 실제로 다가왔을 때, 여러분들은 어떻게 반응 하시겠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긴 고통의 시간 속에서, 이들이 간절히 기다리는 구원자, 바로 메시아가 도래하여 다스리는 그날이 오면, 어떠한 일이 일어날 것인지, 자세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메시야가 도래하게 되면, 이들은 “감사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하나님 앞에서 우상 숭배의 죄를 저지른, 남유다에 대한 심판과 구원 선포에 대한 결론 부분입니다. 여기서 이사야 선지자는, 남은 자들이 포로에서 귀환하여, 장차 도래할 메시야를 믿음으로 참고 기다리는 백성들은, 감사하게 될 것이라 선포하고 있습니다.
예언자가 이렇게 선포하는 이유는, 1절에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주의 진노가 돌아섰고, 또 주께서 나를 안위하시오니”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노하셨다’라는 말은, ‘격노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격노는, 단순히 감정에서 일어나는 분노와 죄절 그리고 그로 인한 실망이 아닌, 죄악을 견디지 못하는 그분의 거룩한 성품에서 나오는 모습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격노하심에서 벗어나는 길은, 오직 죄로부터 돌이켜 회개하고 돌아오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 여호와의 분노가 사라진 가장 결정적 이유는, 우리의 진심 어린 회개보다 앞선, 메시아의 구속 사건 때문입니다. 즉, 메시아의 구속 사역에는, 우리의 죄를 속죄하기 위한 피흘림이 있었고, 그것이 곧 여호와 하나님의 분노를 사라지게 하는, 원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진노를 사라지게 한 것은, 인간의 어떠한 노력이나 공로가 아닌, 오로지 하나님의 선행하는 은혜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메시야가 도래하시는 그 날에, 이러한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구원을 받은 백성들은, 당연히 하나님께 감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감사는 고마운 마음을 나타내는 일종의 외적 표현입니다. 그렇기에, 감사를 전한다는 것은, 자신의 그 마음을 전하는 것이고, 그로 인하여 상대방과의 관계를, 더욱 깊고 단단하게 이끌어가는 삶의 태도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감사의 태도와 표현은,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삶의 태도입니다. 어쩌면 감사는, 아무런 공로 없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가, 가장 먼저 하나님을 향해 고백하는 첫 번째 행위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기에, 나의 삶을 옭아매고 있는,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놓임 받게 하시고 벗어나게 하신 하나님의 그 은혜를 기억하고, 그 일을 행하신 하나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것은, 신앙의 가장 기본적인 자세이자, 믿음의 백성들의 마땅한 태도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모두는, 주님의 은혜 속에서, 하나님의 선택하심을 입은 백성들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거나 혹은 특별한 재능이 있어 하나님이 택하신 것이 아닌, 우리를 너무도 긍휼히 여기시어, 일방적으로 자신의 자녀로 택해 주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비록 우리 삶의 온갖 고난과 역경 그리고 시련들이 우리를 힘들게 하고 때로는 절망케 하였지만, 지난 시간을 곰곰이 돌아보면, 주님의 은혜가 우리를 한시도 떠난 적이 없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 주님의 전적인 은혜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기억만 하고 있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으로 받은 은혜에 대하여, 깊이 감사하고, 고백하며, 실천하는 믿음의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상황 속에서든, 어떠한 문제 앞에서든, 불평과 불만을 하기 전, 이미 우리 삶속에서 역사하시고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그분의 방법을 철저히 순종하며 따라감으로써, 우리를 예전에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선하고 아름다운 길로 인도하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다음으로, 메시야가 도래하는 날에는, 구원의 샘에서 생명의 물을 기르게 될 것이라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메시야의 도래를 잘 참고 준비하며 기다린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예비하시고 준비하신, 구원이 이르게 됨을 말씀합니다. 그 당시 이사야가 활동한 남유다의 상황을 보면, 주변 나라인, 아람과 북이스라엘이 동맹을 맺고, 남유다를 갑작스럽게 침공하게 됩니다. 그러자, 이사야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남유다의 왕인 아하스에게,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신뢰하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렇지만, 아하스 왕은 큰 두려움으로 인하여,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고, 그만 미래에 자신들을 철저히 멸망시킬, 앗수르와 동맹을 맺게 됩니다.
이러한 이유로, 이사야 선지자는, 훗날 새롭게 회복될 하나님의 공동체에서는, 이러한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말씀했습니다. 그래야만, 이들은 구원의 날에, 구원의 샘에서 ,영원한 생명의 물을, 마실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호와를 참으로 의뢰한다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여호와를 참으로 신뢰한다라는 것은, 하나님 외에 다른 어떠한 것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의 원리입니다. 그리하여 구원의 은혜 가운데 선 백성들은, 어떠한 상황과 환경 속에서도,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구원이라는 사실을 담대히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사야 선지자가 구원을 우물에 비유한 것은, 팔레스타인 지역이 건조한 땅이었기에, 물이 대단히 귀했기 떄문입니다. 그래서, 물은, 시시때때로 갈증과 갈급함을 경험하는 이들에게, 구원의 상징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구원을 우물에 비유하여, 구원을 통해서 얻게 되는, 풍성한 생명과 은혜를 말씀했던 것입니다.
솔직히, 우리 삶을 돌아보더라도, 그 무언가에 종종 갈증을 느낄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처럼, 자신의 만족을 채우기 위해, 세상의 것들을 끊임 없이 찾고, 또 찾게 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이 사마리아 여인은, 비로소 예수님을 만나고, 자신의 갈급함을 부족함 없이 풍성히 채울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그동안 해결되지 못했던 모든 인생의 문제와 갈증이 해결되었던 것입니다. 불만족이 만족으로 바뀌었으며, 만족하지 못했던 삶이, 이제는 자족하는 삶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역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체험하며, 결단하는 시간이,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출애굽기 15장을 보면,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바로의 강력한 군대를 수장시키고, 홍해를 마른 땅과 같이 건너게 하신, 하나님의 그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직접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기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감격에 젖어, 기쁨으로 하나님을 향해 소리 높여 노래했습니다. 이제 이러한 모습은, 예수님을 만나고, 체험하며, 그로 인하여, 그 분안에서 영원한 생명의 생수를 맞본, 참 신앙 공동체가 불러야 할 노래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그 안에 머무는, 거룩한 백성들입니다. 주님의 그 놀라운 은혜 안에 거하는, 주님의 택한 자녀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해서 주님의 은혜 안에 거하며, 그 분만이 허락하시는 구원의 샘에서, 생수를 길러 마셔야 합니다. 마치, 시냇가에 심긴 나무처럼, 주의 말씀 안에 머물러 무럭무럭 성장하는 삶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 인생의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주님께서 주시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마시고, 그로 인하여, 주님을 기쁨으로 노래하는 삶을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마지막으로, 메시야가 도래하는 그날, 그동안의 거룩한 삶을 통해, 만백성들을 향해, 그분을 증언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제 그날이 오면, 포로에서 돌아와 회복된 자들만이 여호와를 찬양하는 것이 아닌, 모든 민족과 열방이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라 말씀합니다. 이 같은 말씀은, 이후 예수님을 따랐던 증인들과 제자들에게 이어져, 지금도 우리의 삶과 선교 사역을 통해 성취되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날이 오면, “시온에 사는 사람들아, 기쁨으로 외치고 노래하여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이 너희 가운데 위대한 일을 하셨기 때문이다”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그날이 오면, “시온의 주민아! 소리를 높여서 노래하여라. 너희 가운데 계시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은, 참으로 위대하시기 때문이다”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그날은, 단지 택한 백성에게만 한정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온 우주 만물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그렇기에, 복음은 일부 사람들에게만 머물러서는 안되고, 우리의 울타리를 넘어, 모든 사람에게 전달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1장 14-16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 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사도행전 10장은, 대표적으로 예수님의 복음이 우리의 한계를 넘어서야 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베드로는 성령의 충만함을 경험하고, 복음의 눈을 다시 뜨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의 편협한 생각과 기준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즉, 베드로는 기도하는 가운데 환상을 하나 보게 됩니다.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왔는데, 그 안에는 네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 그리고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으로부터, 일어나 그것들을 잡아 먹으라는 음성을 들었지만, 즉시 거부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율법에서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내가 깨끗케 한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고, 이 일이 세번 있은 후,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 후, 배드로는 복음이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참뜻을 깨닫고, 이방인 고넬료에게 기쁨으로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그러자, 그가 전여 예상치 못한, 고넬료와 그의 온 가족들이 구원받는 기적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우리는 그날이 오기 전까지, 무엇을 준비하고, 어떠한 모습과 자세로, 메시야를 기다려야 하며, 그날이 왔을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겠습니까?
그것은, 오늘 해야 할 일들을, 하나 하나 내일로 미루다가, 정작 모든 기회를 잃어버리고,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 앞에서, 후회하며 한탄하는 모습이 아닌, 주님의 뜻과 말씀에 순종하며, 언젠가 다시 오실 주님을, 온 힘을 다해 힘껏 준비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했을 때, 우리는 그 날에, 두려움과 공포가 아닌, 주님을 기쁨의 찬송으로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우리를 고난의 길에서, 그리고 사망의 길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이제는 의의 길과 생명의 길로 인도하여 주신 하나님의 그 놀라운 은혜와 사랑에 대하여 노래하게 될 것입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우리에겐 그 날을 준비할 시간과 기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은 한정되어 있기에, 어쩌면 우리에게 유일한 기회는, 지금 이 순간 뿐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림절의 시간, 주님이 오실 그 날을 다시금 기억하며, 우리가 무엇을 준비하고, 어떠한 모습과 자세로 살아가야 하는지, 다시한번 돌아보고 점검하며, 올바른 길을 향해 결단하는 시간을 갖기를 소원합니다. 그리하여, 주남이 오실 그날, 이곳에 있는 한 분도 빠짐없이, 주님을 향한 기쁨의 찬송을 부르기를 소원합니다. 주님이 오실 그날, 우리 모두 구원의 샘물에서 생수를 길러 우리의 갈 한 영혼을 적시길 소원합니다. 그리고 영원히 목마르지 않은 생수를 주시는 그분을 향해 감사하기를 소원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속에서, 하나님이 예비 하신 곳에, 영원히 거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